소설리스트

〈 58화 〉급강하 (58/207)



〈 58화 〉급강하

연방 함대의 출현은 올림푸스 스테이션에 극적인 영향을 끼쳤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전투 함대에, 일단 OSBF부터가 크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올림푸스 스테이션에 배치되어 있던 여러 고가치 물품이나 인력들이, 빠르게 재배치된 것이다.


물론, 올림푸스 스테이션을 빼놓고 OSBF를 논하는 게 어불성설인 수준이니만큼, 그렇다고 완전히 빼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OSBF의 유일한 대형함인 순양함이 도착하여 나름대로 대치 구도를 형성했으며, 스테이션 방어설비는 알게 모르게 조금씩 증축되기 시작했다.


아무리 연방이 강력한 세력이고 전함과 순양전함, 거기에 어울리는 강력한 함대 구성을 갖춰 왔더라도, OSBF 또한  근방에서는 제법 어깨에 힘을 주는 집단이었다. 나름대로 세력이 갖춰져서, 제대로 된 대형함 건조의 바탕을 형성하려고 프로스트 테라를 공략하려고 들지 않았던가.


따라서, 일단 OSBF의 대응은 연방 함대와 대치하는, 혹은 최소한 대치하는 척은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일단 근방에서 나름대로 힘  준다는 세력인데, 연방에게 너무 쉽게 굴복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했다. 최소한 배짱은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지.


그러는 와중에, 연방 측의 인사가 OSBF와 접촉하면서 뭔가 협의가 이루어지고 있기도 했다. 협의 내용 자체가 전체적인 부분은빤히 예상이 가면서도 민감한 내용인지라, 애니의 능력으로도 어떤 내용이 오가는지 알아낼 수는 없었다.


다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뭔가 나오긴 했다.


“잘 찾아왔군요. 반갑습니다, 유진 형제님.”


“아, 네, 반갑습니다, 오글릭 사제. 여기까진 무슨 일이십니까?”

몽블랑의 엔진 수리에 시간이 드는 동안 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유진 일행의 거점에 오글릭 사제가 방문했다. 초대한다면 그냥 연락만 넣으면 충분한데, 그래도 사제씩이나 된다는 사람이 직접 찾아온 것이다.


“유진 형제님은 용병이지요? 혹시 현재 어딘가와 전속 계약이나 소속 계약을 맺고 있습니까?”


“아뇨, 따로 그런 계약을 맺고 있지는 않습니다. 이곳에 자리를 잡은 게 오래되지 않아서 그만한 신뢰가 쌓인 상대도 아직 없고, 개인적으로도 의뢰 우선 수주 이상의 계약은 선호하는 편이 아니라서 말입니다.”

의뢰 우선 수주 계약이란, 해당 세력이나 집단이 지정하는의뢰를 다른 의뢰보다 우선으로 받겠다는 수준의 계약이었다. 어딘가에 전속되거나 어떤 용병 조직에 포함되는 계약에 비하면 상당히 가벼운 정도다.


“그렇군요.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까?”


“뭐, 단기간이라면 전속 계약을 맺을 생각도 있습니다. 일단 3개월을 생각하고는있는데, 길면 6개월 정도는 괜찮을 겁니다.”


이쯤에서, 유진은 빛의 교단이 자신에게 전속 계약을 제의하려 한다는 사실을 눈치챌  있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런 부분을 굳이 물어볼 리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 집단인 빛의 교단의 전속 계약은 과연 받아들일 만한가. 그의 결론은, 현재 상황으로 봤을  보수만 확실하다면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장 몽블랑 팀이 여기저기서 의뢰가  들어올 정도의 명성을 쌓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올림푸스 스테이션에선 상당한 세력을 갖춘 빛의 교단과 전속 계약을 맺은 경력이 유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히려 너무 장기간은 곤란했다. 단기간이야  정도로 실력과 신뢰를 갖춘 용병이라는 평가를 받겠으나, 장기간이면 아예 교단 사람이라는 인식이 박힐 것이기 때문. 어쨌건 종교이니만큼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테니, 장기간 전속 계약을 했다간 오히려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컸다.


“그렇군요. 다름이 아니라, 우리 교단에서 이번에 전속 계약할 용병들을 찾고 있습니다. 특히 유진 형제님은 지난번 의뢰에서 보여준 것 덕분에, 교단에서 아예 계약 대상으로 지정하기까지 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예, 유진 형제님만 괜찮다면, 우리 빛의 교단과 전속 계약을 했으면 합니다. 3개월을 생각한다니 일단 3개월을 계약하고, 괜찮으면 차후에 기간을 늘리는 계약을 해도 충분합니다.”

 보인 보람이 있었다고 해두겠다. 지난번 프로스트 테라의 난민들을 빛의 교단으로 인계하고, 그쪽에도 정중한 태도를 보인 반사효과였다. 아예 대사제부터가 프로스트 테라인이었으니, 이보다  좋게 보이기가 어렵기도 했다.

물론, 그뿐만은 아니었다. 오글릭 사제를 비롯해 다른 용병들이 유진의 실력을 증언한 덕도 있을 것이다. 프로스트 테라에서 벌어진 영혼의 한타에서, 가장 먼저 대기권 바깥으로 성공적으로 빠져나온 배가 바로 몽블랑이 아니던가.

“그러면 우선 3개월만으로 괜찮겠습니까? 빛의 교단 같은 강성한 곳에 전속 계약을 제의해준다면 좋겠지만, 전속 계약은 어디와 맺건 너무 길게 하면 용병으로서의 기회를 놓치는 기분이라 말입니다.”


“그러면 3개월로 하겠습니다. 여기, 서명해주시지요, 형제님.”

그러면서 전자계약서의 데이터를 넘기자, 유진의 단말기에 홀로그램으로 계약서가 떴다. 전형적인 용병 전속 계약에서의 표준 계약서로, 그런 것치고는 보수가 제법 높은 편에 속했다. 빛의 교단의 자금 사정이 넉넉한 걸까? 아니면 OSBF가 뒤에 있는 덕분일까?

하여튼, 기간도 이쪽에서 원하는 대로됐겠다, 보수까지 충분하니 계약을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곧장 손짓으로 서명한 유진은, 그 자료를 복사, 동기화 후 오글릭 사제에게 넘겼다. 오글릭 사제에게도 같은 계약서가 뜨고, 사제가 서명하자 이쪽 계약서에도 그 서명이 뜨면서 계약서가 완성되었다.

“빛의 교단과 전속 계약을 맺게 되어 기쁩니다.”

“아니요, 우리야말로 기쁩니다, 형제님. 그리고 가능한 한 빨리, 교단 측의 의뢰를 받아줬으면 합니다.”

역시 뭔가 있었다. 너무 관대한 조건이다 싶더니만, 당장 빛의 교단 측에서도 급하게 용병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것도 그냥 용병이 아니라, 최소한의 제약을 걸어둔 용병이.

잘못 걸린 건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유진은 그리 심각한 일은 아니리라 생각했다. 정말 심각한 일이라면 이렇게 용병을 계약으로 끌어모으기 전에,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모았을 테니까.

“지금 몽블랑이 수리에 들어가 있어서, 끝나는  모레 아침쯤이랍니다. 의뢰야 자살이나 다름이 없는 내용만 아니라면 곧장 받겠지만, 당장은 배가 못 움직여요.”

“아, 그건 괜찮습니다. 당장 의뢰는 배가 필요한  아니라서 말입니다. 연방 손님들을 맞이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있기만 하면 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유진 형제의 일행이 아니라 유진 형제가 필요해서 말입니다.”

“연방을 상대하는데 말입니까?”


연방 함대는 도착한  고작 며칠째다. 물론, 빛의 교단이 애초에 연방 구역에서 만들어져서 나온 건 맞았으나, 그렇다고 연방이 바로 접촉하는  부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애초에 연방 내에서도 딱히 우세한 종교는 아니었으므로.


“그렇습니다. 연방에서도 프로스트 테라에서의 일에 아주 관심이 많아서요. 알다시피, 현재의 프로스트 테라는 두 대륙이 공멸하고 있지 않습니까. 연방에서는  공멸을 멈추고, 행성에 평화를 일구는 일에 아주 큰 관심이 있습니다.”

행성에 평화를 가져다주기는 하겠지. 하지만 그 대가로 치러야 할 것은, 기존 원주민들의 축출과 인류 위주의 개편이 될 것이다. 연방의 행동은 항상 그래왔으니까.

여기서 문제는, 프로스트 테라가 연방의 그런 시도에 저항할 수 있을 정도의 여력을 이미 상실했다는 점. 가장 왕성할 때도 우주 전력에서 감히 맞설 수 없을 정도였지만, 지금은 더 절망적이었다.


며칠. 고작 며칠만의 일이다. 두 대륙 사이에서 벌어진 영혼의 한타는 장장 48시간 동안이나 계속되었고, 그러면서 우주 전투가 가능한 수많은 함선이 격침되었다. 동대륙군의 순양함도 한 척은 살아남았으나, 다른 한 척은 서대륙군 필사의 총공세에 잘못 걸려 침몰했다고.


거기에 각 대륙의 여러 도시에 핵탄두가 떨어지기도 했다. 처음에 수많은 탄도탄을 서로 쏴대면서 요격했으나, 그것마저도 전부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리되었으니, 프로스트 테라는 군사적, 산업적, 정치적 역량 상당 부분을 상실한 상태였다.


“대신 연방의 질서를 요구하겠군요.”


“음, 아마 그럴 겁니다, 유진 형제님.”

“저야 괜찮겠지만, 사제님도 정말 그게 좋은 겁니까? 아시다시피, 연방은 인류가 아닌 종족에는 상당히 엄격하면서 차별적인 잣대를 들이미는 집단입니다. 연방 구역에서 의뢰를 받고 일하려면 동료 중에 인류 외 종족이 없어야 할 정도로 말입니다.”

연방은 많은 의뢰를 준다. 연방의 확실한 통제 구역이 아닌 곳에서도 연방의 의뢰가 닿을 정도였는데, 의뢰 자체가 위험할 때가 있더라도 보수 자체가 좋은 편이므로 연방의 의뢰는 인기가 제법 있는 편이다. 연방 자체는 싫어도, 연방의 돈은 싫어하지 않는다는 뜻.

여기서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바로 연방의 인류 중심주의적 부분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의뢰 계약서에 인류 외 종족이 팀의 구성원일 경우에는 성과급을 깎는다는 내용이 당당하게 있을 정도였다.

그러므로, 내우주의 용병 팀은 인류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많았다. 자유 스테이션이나 판도라 스테이션 같은 예외도 제법 있었지만, 내우주에서 구역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려면 팀 전체를 인류로 짜는 게 기본 사항이나 다름이 없었다. 연방이 아닌 반란군에게도 인류 중심적인 사고가 만연했으니까.

“괜찮습니다. 최근 우리 빛의 교단이 연방 내에서도 제법 인정을 받은 터라, 우리 교단의 교인들은 인류가 아니더라도 정책적인 차별을 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연방  많은 인류 외 종족이 우리 교단의 교인이 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식인가. 연방은 연방 내에서 자연스럽게 하층민을 형성하고 있는 인류 외 종족을, 빛의 교단이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로 묶는 정책을 펼칠 심산이었다. 그리하여 불만을 최대한 억누르고, 빛의 교단에 정신적으로 의존하게 만들어서 의지박약을 만들어놓으면 다루기 편하다는 이론이겠지.

빛의 교단으로서도 좋은 일이었다. 비교적 최근이라고 한들  시작이 연방 내에서 일어났으며, 따라서 어떤 방식으로건 연방 내에서 세력을 확장할 필요가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연방  비 인류나 믿는 종교라는 취급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그런 부분조차 헤쳐나가지 못하면 어차피 망하리라는 생각이다.


“……그러면 빛의 교단에 귀의하지 않는 프로스트 테라인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하지만 거기에도 맹점이 있었으니, 정작 연방의 관리에 들어갈 프로스트 테라의 사람들의 의견이 빠져있다는 점이다. 결국, 연방이 프로스트 테라를 관리하기 시작하면 기존 원주민들이 연방의 탄압을 피할 길은 빛의 교단에 귀의하는 것뿐. 사실상 연방과 짜고 반강제적인 교인 권유를 하는 셈이 된다.

아, 그런 건가. 유진은 왜 그렇게 됐는지 확신할 수 있었다. OSBF가 물 건너갔으니, 곧장 연방에 붙어서 교세를 확장할 셈이구나. 괜찮아 보이는 사제에 괜찮아 보이는 교리였지만, 어쨌건 종교는 종교고 세력은 세력이었다.


“안타깝지만,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 빛의 교단이 없더라도 연방은 프로스트 테라를 어떻게든 관리 아래에 둘 상황. 그렇다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야기는 그럴싸했다. 확실히, 교단에 귀의해서라도 정책적으로는 인류와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면 그러려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적어도 고향 행성에서 축출되지 않을 테고.

하지만 애초에 교인은 연방의 정책적 차별을 받지 않는다는 부분 자체가, 빛의 교단과 연방의 유착을 증명하는 사실이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종교 주제에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유착 관계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알겠습니다. 뭐, 그러면 일단 저만 가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동료들은 각자  일도 있고, 연방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서요.”

실은 유진의 동료 중에 연방을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모두가 싫어했다. 유진은 당연했고, 셀린도 반란군이 자신을 버렸다고 연방이 좋아진 게 아니었다. 애니는 아예 버림받아 폐기처분당할 상황이었던데다가, 소녀는 아예 연방에서 탈출한 실험체였으니. 모두가 싫어하는 게 당연했다.

“그러면, 알겠습니다. 아마 연방에서 우리에게 요청하여 몽블랑 팀을 고용하려 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만, 몽블랑의 선장이 유진 형제님이니 괜찮겠죠.”


“어, 음. 그건 미리 동료들과 조율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형제님.”

동료들이라고 딱히 거점 바깥으로 나갈 일이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모두가 거점에 있었다. 애니는 아예 거점 내에 부설한 스테이션 네트워크로 정보를 수집하느라 바빴고, 소녀는 심리적으로 어느 정도 안정이 되긴 했어도 여전히 연방 함대 때문인지 바깥에 나가길 꺼렸으며, 셀린은 그런 소녀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대기하고 있었다.


“그 사제님이죠? 어떻게  거예요?”


“빛의 교단과 3개월 동안 전속 계약하기로 했어. 그래서 일단 내가 프로스트 테라의  때문에 연방과 교단이 만나는 자리에 있게 됐는데, 어쩌면 연방에서 교단에 요청에 우릴 고용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라고.”

유진의 설명을 들은 소녀의 표정이 나빠졌다. 셀린도 마찬가지였고, 애니라고 딱히 기꺼운 기색은 아니었다. 연방과 의뢰로 엮일 수 있다니, 셋 중에서 누가 좋아하겠는가.

“괜찮은 거야? 연방이 눈치챌 수도 있어.”

“아니,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셀린. 연방 내에서 제 기록은 없을 거고, 셀린이 반란군이었다는 점은 알더라도 현재로선 아니니 크게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유진이나 하빈 또한 저쪽에서 아는 건 얼굴 정도. 하지만 그 정도로는, 이 먼 곳까지 와서   있을 정도는 아닙니다. 어디서든 대조할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있는 건 아니니 말입니다.”

“애니 말이 맞아. 연방이 용병을 고용할 때 신경 쓰는 건 종족이지 범죄 경력 같은  아니거든. 여기까지 왔더라도, 우리가 돈을 떼먹을지 아닐지가 우선이지 범죄 경력 때문에 본국으로 소식을 전하고 그러진 않을 거야. 그런 신뢰는 교단을 통해 확보될 거고.”


유진도 간신히 구분할 정도였지만, 애니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날이 서 있었다. 하지만 내용은 어디까지나 객관적인 사실관계에 기반했고, 딱히 반대하는 것도 아니었다.


“음, 그러면…….”

“연방이 올림푸스 스테이션에서 영향력을 확보하려는  확실해. 연방이 도착했다고  마련한 거점을 처분하고 옮기는 것도 부자연스럽고. 그렇게 됐으니, 차라리 빛의 교단과 연방에 고용됐다는 걸 경력 삼아서 어느 정도 뭔가 쌓였을 때 그걸 바탕으로 옮기는 게 나아.”

그렇게 말하고 일행을 둘러보는 유진. 표정은  아니었으나, 반대를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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