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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회피기동 (64/207)



〈 64화 〉회피기동

프로스트 테라의 연방 행정부는 말이 행정부지, 사실상 작은 요새와도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행정부 건물 자체가 기존의 건물을 활용한 것이 아니라 17 전략 기동함대가 수송함에 싣고 온 모듈을 내린 새로운 건물이기 때문이다.


말이 건물이지, 외벽에 해당하는 부분엔 장갑을 두른 요새였다. 거기에 방어에 유리하도록 전용 구조물이 있어, 기갑부대가 동원되지 않으면 공략에 상당한 애로사항이 꽃피는 방어시설이다.

“그래서 그것만으로, 이 주변은 어느 정도 치안이 확보되어 있다. 지금 보이는 이 정도 범위 안쪽은 안전 구역이라고 봐도 좋아.”

유진이 브리핑 시스템을 건드리자, 1기동대 각각의 단말기 홀로그램 화면에 떠 있던 지도에 선이 그어졌다. 그 선의 중심에 있는 것이 연방 행정부 건물이었고,  안에있는 게 프로스트 테라 연방 중앙은행, 1기동대 병영, 연방 육전대 행정부 수비대 병영 등이었다.

“정말로 여기가 다 위험구역입니까?”

하지만 진압대원들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안전 구역이야 그렇게 형성되는 게 당연하지만, 위험 구역이 이렇게 형성되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모습이었다.


“이 근방은 연방에서 일부러 포격을 안 했으니까 그 힘을 모르는 거지. 기존 군대의 주력 무기들은 거의 회수했지만, 2선급 무기들은 이미 여기저기 풀린 상황이다. 귀관들이 입고 있는 경량형 강화복으로 급소는 방어가 되겠지만, 잘못하면 팔이나 다리 한 짝은 뗐다가 다시 붙일 각오를 해야 해.”

유진의 비교적 격한 표현에, 기동대원들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거기서 문제는, 그의 표현이 격하기는 해도 그 내용에 잘못된 부분이나 과장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그들의 홀로그램 지도에서 위험 구역이라는 의미의 붉은색으로 칠해진 구역은, 안전 구역으로 표시된 구역 바깥의 거의 전부였다. 붉은빛의 중간중간 알 박히듯 조금씩 있는 초록색, 그런 초록색 주변으로 조금씩 보이는 노란색, 나머지를 차지하는 붉은색까지.

“이걸 우리만으로 전부 처리합니까?”

“충분히   있다. 무장했다고 하나 대부분 2선급, 혹은 파기 예정 물자에서 나온 것들이라 화약식에 불과하다. 방어구도 그 수준의 방탄복이 전부고. 거기에 선두의 돌파대가 있으니, 그나마 있는 화력도 상당히 분산될 거고.”

유진의 보직이 사령관, 셀린의 보직이 작전관이라면, 애니의 보직은 돌파대 전술 지휘관이었다. 유진 일행 중에서는 유일한 현장 보직으로, 대신 제대로 된 레일건이나 레이저, 플라즈마가 화기가 나오더라도 어지간해선 무시할 수 있는 중량 강화복을 입었다.

연방 육전대 장교가 그랬듯 진압대에서도 애니에 대한 의문이 생기기는 했었다. 기껏해야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나이, 거기에 신체적으로도 대단하게 단련한 흔적은 안 보였으니. 하지만 몇 번의 실력행사 끝에, 1기동대에선 그들의 돌파대 전술 지휘관을 의심하는 사람은 사라졌다.


“저쪽에서도 뭔가 방도를 만들지 않겠습니까. 자칫하면 사상자가 많이 생길 겁니다. 이런 일을 하다가 죽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사상자가 많이 생겨서 연방군이 개입하기 시작하면 그때야말로 진짜 사상자가 생길 겁니다.”


동족들을 위해 동족들을 탄압하는데 앞장선다는 모순된 역할을 진심으로 믿는 이들이니만큼, 기동대원들은 그런 말을 아주 진지하게 했다. 그나마자신들이 하기에 사상자가 생기지 않고, 손속을 봐가면서 진압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작전에서의 결과가 중요하지. 각 중대의  작전 관련 자료는 이미 숙지했을 테니, 보면 사상자 없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일이라는  알 수 있잖나.”

“첫 작전은그렇긴 합니다만, 앞으로도 이럴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그건 그럴 때가 오면 본격적인 대책을 찾는 것으로 하지. 그전까지는, 적어도 1기동대에선 사상자가 없어야 해.”


“……알겠습니다, 사령관.”

직전 브리핑이었으므로, 추가 질문이나 다른 변수에 대한 보고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미 파악할 건  파악했고, 이제 출동 개시 시각이었으므로.

“준비됐습니다, 유진.”

“그런데 정말 괜찮겠어? 실력이 뛰어난 건 알지만, 솔직히 어지간하면 1선에는 안 나갔으면 하는데.”

대원들을  내보낸 상태에서, 유진은 중량 강화복을 입은 애니와 마주했다. 애니 본인이 자청했고 유진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보긴 했으나, 그런 가능성과 실제 행동은 또 별개의 문제였다.

“유진, 이 중에서 오직 저만이 시스템 제어와 현장 활용을 동시에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딱히 티를 내지 않을 수도 있죠. 이런 무장에, 서대륙 정부가 존재할  형성되어 여전히 남아있는 네트워크와 감시 체계를 활용할 수 있다면 백전불태 정도에서 끝나는 게 아닌 백전백승입니다.”


유진이 애니에게 선두를 맡긴 가장  이유가 이 부분이었다. 시스템 전문가로서 활약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도움이 되겠으나, 연방에서 이미 애니를 적당한 실력으로 시스템 전문가로 위장한 격투전문가로 보고 있었다는 건 사실 부차적인 원인에 불과했다.


애니의 능력이라면 아직 살아있는 서대륙의 네트워크와 감시망을 통해, 잔존 저항군이 어디서 어떻게 방어 태세를 갖추고 있는지 훤히 꿰뚫어볼 수 있을 것이다. 위성궤도에서의 관측으로 닿을  없는 구석구석까지도.


그런 현장 파악과 활용을 동시에 할 수 있다면, 저항군을 상대로 어려움을 겪을 리가 없었다. 애니의 실력이 허투루 갖춘 것도 아니고, 전술에 있어서는 정규 사관학교 교육을 이수한 셀린이 보조할 것이며, 전체적으로는 유진이 조율할 테니.


“효율은 애니, 네가 하는 게 가장 좋긴 하겠지. 그래도 이건 좀, 원래는 이런 일을 할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야. 그리고 혹시나 다치면 곤란하고.”

“걱정해주는 겁니까?”

“그럼 걱정이 안 되겠냐. 그래도 동료인데.”

애니 덕분에 곤란할 뻔했던 경우를 피한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덕분에 본래는 손에 넣을 수 없었던 요긴한 정보를 손에 넣은 것도 여러 번이고, 같은 장소에서 지내면서 정서적 교감을 쌓은 것도 있었다.

비록 애니가 보이는 감정이라는 게 인간의 감정을 흉내 내는 인공지능의 그것이라 생각했었다 할지라도, 어쨌건 겉으로 보이는 감정에 아무런 이상이나 하자가 없다면 유진도 인간인 이상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여기에는 애초에 유진 본인이 인공지능과의 전쟁을 겪거나 거기서 영향을 받은 세대가 아니라는 게 가장 컸지만.

“감사합니다, 유진. 적어도 유진이 저를 도구로 생각하진 않는다는 게 느껴집니다.”

애니의 말에, 유진의 표정은 상당히 오묘해졌다. 도구 취급이라니. 동료로 받아들인 이상은 그런 취급을 하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인데, 또 애니가 인공지능에 신체마저도 인공 신체임을 생각하면 사실 인간이라면 도구 취급을 하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마 애니의 창조자이자 전 사용자인 연방에서는 완전히 도구 취급했으리라. 그게 아니고서야 폐기를 하겠답시고 화물 컨테이너 하나에 전부 넣어서 화물선에 싣고 갔을 리가 없지. 애초에 편리한 도구처럼 쓰다가, 도구로만 있을 존재는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기에 폐기하려 했던 것 아닌가.


“동료니까. 하여튼, 조심해. 너 다치면 나뿐만이 아니라 셀린도 꼬맹이도 심란할 거야.”


“알겠습니다, 유진. 다치지 않고 돌아오겠습니다.”


애니는 미소를 지은 채 그리 말한 후, 강화복을 완전히 착용하고 돌파대를 이끌러 나아갔다. 목표는 행정부 건물 서쪽에 자리한, 서대륙의 연합 의회 의사당. 무장은 2선급이어도 인원은 제법 되는 저항군이 농성 중인데, 연방 측에서는 연방군을 동원하면 해당 의사당이 크게 손상될 수밖에 없다면서 1기동대를 투입하기로 한 것이다.


연방은 해당의사당 건물을 연방 경찰국 건물로 사용하길 원했다. 아주 상징적인 처사인데, 그런 상징성을 제대로 적용하려면 의사당 건물의 형태가 온존되어야 한다. 거기에 사전 확인으로 무장이 1선급이 아님을 파악했으므로, 기동대를 투입한 상황.


[타타타탕!]


부상자 발생! 부상자 발생!

“으음…….”


하지만 연방 나름대로 품은 기대와는 다르게, 부상자가 너무 이른 순간에 나기 시작했다. 생명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겠으나, 팔이나 다리를 제대로 맞아 전투 불능이 되었을 것일 텐데, 고작해야 화약식 화기에 강화복을 입은 부대가 고작 화약식 총기에 당한 손실로는 지나치게 빨리 일어난 상황이다.

- 돌파대, 돌파합니다. 내가 선두입니다. 모두 이름값을 할  있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런 가운데, 유진이 가장 크게 띄워둔 화면은 부상자가 생긴 위치에서 돌파를 시작하려는 애니의 것이었다. 강력한 중장갑에서 나오는 방어력을 믿고, 다른 돌파대는 가지고 있는 바디실드도 없이  손으로 드는 기다란 쇠망치를 든 모습.

아니, 근데 쇠망치라고?


[타타타탕! 투툭! 투투툭!]

애니의 시야에 불꽃이 튀었으나, 그건 그저 불티 수준에서 끝났을 뿐이다. 로비 입구의 교두보를 간신히 확보한 상황에서, 건너편 2층과 3층에서 나는 발포로 인한 총구 화염이 여럿 반짝이는  보인다.

- 대장! 너무 돌출됐습니다!


저기만 무너뜨리면 됩니다. 강화복을 믿고, 침착하게 저를 따라하십시오.

[위이이잉! 부우우웅!]

강화복이 작동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커지며, 애니의 시야가 제자리에서 힘차게 뛰어올랐다. 말 그대로, 뛰어오른 상황이다. 거의 로비 천장에 닿기 직전까지 올랐다가, 총구화염이 반짝거리는 위치에 빠르게 가까워졌다.


활용하기에 따라 이렇게 날아오를 수도 있구나. 물론, 날아오르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장 유진만 하더라도, 3층 높이건 4층 높이건 강화복을 입고 있다면 있는 힘껏 뛰어오르면 저렇게 된다.

하지만 그걸 교전 와중에, 그것도 어쨌건 제대로 맞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살상 무기가 자신을 향해 발사되고 있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솔직히, 유진이었다면 저렇게 무작정 뛰어오르기보단 다른 우회로를 찾았을 것이리라.

- 애니! 너무 무모해!

[위이이잉! 쿠우웅!]

작전을 관제하던 셀린도 한 박자 늦게 만류했으나, 이미 애니는 3층에내려앉아 상당한 흙먼지를 내고 있었다. 다만 애니만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없다.


- 돌파대! 뭐합니까!


[쿠웅! 쿠우웅! 콰앙!]


다른 대원들이 그런 애니를 뒤에서 멍하니 보기만 한 듯했다. 애니가 한 명의 멱살을 붙잡고 안 죽을 정도로만 바닥에 내리꽂고, 다른 한 명에게 근접 테이저를 먹이고 나서야, 다른 대원들도 하나둘씩 애니를 본받아 있는 힘껏 뛰어 무장이 빈약한 저항군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가히 일방적인 폭력이라고 해도 좋으리라. 한 명이 기절하고, 다른 한 명이 감전당하고,   한 명을 진압하고 체포할 때마다 현장의 흥분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상황.

동족을 때리는 주먹에 이가 서너 개씩 허공을 난다. 당황해서 연사로 놓고 탄창 하나를 쭉 긁던 다른 저항군은, 기동대원 하나가 총을 붙잡고 힘을 주자 총몸이 구겨지고 부러져 약실이 터지고 말았다. 그에 손이 박살 나서 뒤로 물러나도, 발 코로 걷어차는 행동에 정강이가 부러져 앞으로 넘어진다.


진압은 그런 식이었다. 2선급이라도 어쨌건 살상무기를 쥐고 있는 저항군을 상대로는 오히려 적절한 수준이겠으나, 동족을 어떻게든 살려보겠다고 이런 일을 자처한이들의 행동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지지지직! 콰지직!]

뒤늦게 전원이 내려지고, 그 가운데 혼란은 한  더 가중되었다. 이젠 현지 저항군마저도 사방에서 서로를 쏴대기까지 했다. 애니의 시야는 적외선으로 바뀌었고 다른 대원들도 같은 상태라, 진압은 더욱 쉬워졌다.

하지만 손속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다.  명이 쓰러질 때마다 저항군의 사기는 극적으로 꺾여나갔고, 심지어는 총을 버리고 도망치기 시작하는 이들까지 나왔다.


그 강대한 연방 함대에 대항하기 위한 저항군이라기에는 너무 빠른 사기 저하였으나, 그렇게 도망치려고 해도 눈에 보이는 게 없으니 오히려 후속하는 기동대원들에게 스스로 달려드는 모습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양반이지, 벽이나 다른 구조물에 머리를 부딪히고 알아서 기절하는 얼간이도 있었다.

“제압 정도에 주의하라. 우리 목적은 사살이 아니라 체포야.”

- 흠, 이런. 유진의 말이 맞습니다. 대원들, 침착함을 되찾고, 손속에 사정을 두십시오. 이대로 가면 사망자가 반드시 나올 겁니다.


그쯤 해서 유진이 제동을 걸자, 애니마저도 그런 상황에 반쯤 매몰되어 있었던 듯 간신히 정신을 차린 듯이 말했다.

대원들도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들의 손속이 슬슬 지나쳐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습이었다. 이젠 저항 의지를 완전히 상실한 얼치기 저항군들을 한 명씩 붙잡아 체포, 포박하고, 여전히 총을 들고 저항하는 자에게는 가차 없는 테이저 탄자가 날아가 제압했다. 적절한 방어 장비가 없는 저항군은, 테이저  방에 무력화됨은 물론 도와달라면서 다른 동료를 붙잡다가한 번에 둘이 같이 제압되기도 했다.

“셀린, 다른 방향도 이래?”


- 일단 근접에 성공한 쪽은  비슷해. 아예 원거리에서 제압용 수류탄을 던져서 끝낸 팀도 있네. 거기선 저항군 사망자도 생겼어.


다른 작전구역을 살피던 셀린의 말에, 유진은 사망자 부분에서 새삼 감탄했다. 저항군 사망자가 생겼다기보다는, 다른 작전구역에서는 사망자가 생기지 않았다는 부분에까지.

“당분간은 매일매일이 길겠군.”


결국, 유진은 한숨을 내쉬듯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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