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플레어 사출
가스 클라우드 스테이션으로 향할 준비는 빠르게 끝났다. 비록 제대로 된 선실이 없다시피 한 상륙정이라도 간단한 주방과 창고는 갖추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이 한 달 동안 소비할 식량 및 소모품을 적재할 공간은 있었다. 넉넉하게 잡아서 3주 일정이니,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한 여유 보급품까지 생각한 수치다.
“날개는 언제쯤 없어지는 건데?”
“왕복해서 도착하면 없어지지 않을까요? 어쩌면 실험할 땐 길면 3주였는데, 아직 1주가 채 안 됐으니까 좀 더 필요할 수도 있고요.”
문제는 하니엘의 등을 차지하고 있는 날개였다. 저 날개 때문에 타이트하게 딱 맞는 경량 강화복을 입는 것도 곤란했고, 그렇다고 너무 펑퍼짐한 옷을 입게 하는 것도 난감했다. 차라리 얼굴을 가리는 쪽이 낫지.
“그러니까 이것 좀 써봐라.”
“엑? 이런 가면을요? 좀 이상한데.”
“당장 얼굴 가리는덴 이만한 것도 없어요. 이렇게 누르면 음성 변조도 되니까, 신분 숨기고 싶은 사람 쓰세요, 하고 나오는 물건이지.”
그런 생각으로, 유진은 하니엘에게 꼭 맞는 크기의 변조 마스크를 건네주었다. 어디서 용케 구했구나 싶은 물건으로, 일단 자체적인 방어력도 있어서 화약식 권총탄 정도는 막아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러면 숨긴다는 티 너무 나지 않아요? 으엑? 목소리가 왜 이래.”
가면을 쓰자, 하니엘의 목소리가 완전한 기계 음성으로 바뀌었다. 헬륨가스를 마셨을 때보다 약간 낮은 변조음은, 소녀가 걱정하는 것처럼 사용자가 신분을 감추려 한다는 티를 너무 많이 내고 있었다.
“이번엔 숨기는 걸 티내는 게 목적이니까. 누가 탐문하고 다닐 때 ‘아, 그러고 보니 좀 숨기는 것 같기는 했지’라는 말이 나와야지.”
“뭐, 엄청 수상해보이긴 하겠네요.”
아주 드문 것까진 아니더라도, 만나는 사람에겐상당히 인상에 남는 모습이 되리라. 애초에 그걸 노렸고, 가면 하나만으로도 그 목적을 상당히 달성해냈다.
“아, 이제 출발해?”
“준비는 다 끝났으니까. 돌아올 일정 생각하면 조금이라도 일찍 출발해야지.”
“음, 그래. 하니엘이 정말 수상쩍어 보이기는 하다.”
거기엔 마중을 나온 셀린도 동의를 표했다. 이 자리에는 없지만 애니도, 다른 교인 승무원들도 가면을 보고 보인 반응은 마찬가지.
“잘 고른 것 같아요?”
“아, 잘 고른, 푸흡, 파하하! 아니, 목소리가 이거, 너무 허를 찌르잖아!”
가면을 쓴 채로 유진 외의 사람에게는 처음 목소리를 들려준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셀린의 반응에 가면을 그대로 벗으며 유진을 올려다보는 채 입술을 삐죽 내밀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만했다. 객관적으로 봤을 땐 셀린처럼 급격한 반응을 보일 정도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눈앞에서 셀린의 웃음이 터지는 모습을 보았으니 여기선 어떤 설득을 하더라도 제대로 먹히지 않을 것이다. 유진도 그걸 알았으므로, 그래서 뭐 어쩔 거냐는 시선만 돌려보냈다.
“아니, 셀린 언니가 웃잖아요! 이거 어쩔 거야!”
“가면 생김새가 딱딱한데, 목소리가 좀 얇게 나와서 그래. 그건 변조기를 조절하면 되는 거니까 잔말 말고 써라.”
“으이씨!”
그럼에도 하니엘이 반발을 보였으나, 유진에게는 그저 우스울 따름이었다. 어쩌겠는가. 몸만 성숙한 어린애라서 주의해야할 점도 있었으나, 그래도 이렇게 놀려먹는 재미가 쏠쏠한 것을.
“이제 가자. 올라 타.”
“끄응, 알았어요, 아저씨. 나중에 봐요, 셀린 언니!”
하니엘도 바보가 아니라 유진이 자신을 놀려먹는 상황은 눈치를 채니, 이번에도 자리를 피할 기회가 오자 잽싸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봐도 이번엔 평소보다 순순히 들어간 상황이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고.
“그래도 정말 좋아하네. 조종하는게 그렇게 좋은가.”
셀린이 언급한 것처럼, 하니엘은 이번 기회에 유진에게 조종에 관한 기본적인 기능을 익힐 예정이었다. 고작 보름만에 능숙한 조종사가 되기는 어렵겠으나, 기회가 될 때마다 조금씩 배울 수 있는 기본적인 기능을 익히는 것으로는 충분하겠다.
당연한 말인데, 그것만으로는 공신력이 있는 기관에서 면허를 취득하기 어렵다. 용병 조종사의 태반이, 해적 조종사의 거의 전부가 면허 따위는 없이 행동한다지만, 그리고 어중간한 기관의 면허는 별 득이 되지 않는다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단 있는 게 나음을 고려하면 어떻게 됐건 소녀의 실력이 무르익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고 당장 조종을 맡길 건 아니야.”
“그야 당연하지. 거기서 조종을 맡겼다간 그것 때문에 큰일이 나기 전에 내가 널 큰일 나게 만들 거야.”
“여기나 신경 써줘. 나 없는 동안 일 내지 말고. 그럼 다녀온다.”
예정으로는 보름이다. 해적을 떨쳐낼 수단도 있었고, 신분을 숨길 수단도 이미 구해놓았다. 유진 개인의 전투력도 격투에서야 애니에게 밀리겠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어디서 꿀릴 몸이 아니었다.
애초에 그 가스 클라우드 스테이션에서는, 단 한 시도 강화복을 벗지 않을 예정이기도 했다. 어차피 잠깐 있다가 떠날 에정이었으므로,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문제라면 하니엘이겠으나, 소녀도 강화복만큼은 아닐지라도 상당한 방어력을 발휘하는 복장을 옷 아래에 입은 상태다. 날개가 거슬려서 등 부분을 약간 열어두기는 했어도, 화약식 화기를 방어할 수 있는 물리적 방어력과 어지간한 출력의 레이저도 막을 수 있는 코팅까지 되어있는 고급품이었다. 팔다리까지 막아주진 않지만, 주요 장기가 몰려있는 목부터 사타구니까진, 등부분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막아주는 복장이다.
“아니, 다녀오는 건 다녀오는 건데, 배 이름은 왜 ‘한라’야?”
“잠깐 쓸 거라니까. 실제 등록명은 일렉트로니카잖아.”
“그것도 마음에 안 든다니까? 아니 무슨, 야, 야! 문 열어! 문 열라고!”
[쿵! 쿵!]
닫혀가는 상륙정의 문을 두드리는 셀린이었으나, 문은 닫히고 상륙정의 엔진은 출력을 올리기 시작했다. 아니, 잠깐. 내가 조종석에 없는데 왜 출력이 올라가지? 유진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야! 꼬맹아!”
“아니, 정말! 난 반짝거리는 것만 눌렀어요! 근데 이게 막 이렇더라니까요!”
조종석에서 자기는 무고하다는 듯한 눈을 한 채, 아주 억울한 어조로 외치는 하니엘. 그럼에도 앉은 조종석에서 나오지 않는 것은, 아마 너무 당황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녀에게 있어서 조종이란, 그저 책자 몇 개 들춰보면서 얻은 이론적인 부분이 전부였으니까.
“나와, 나와! 이 말썽덩어리야!”
“아! 아! 아야! 아프다고요! 아!”
유진은 하니엘을 막 밀어냈고, 자리를 차지하자마자 비행 보조기부터 켰다. 오묘하게 차이가 나는 출력이 제대로 조정되면서, 수십 초만 더 방치되었으면 문제가 생겼을 상륙정의 균형이 원상태로 회복되었다.
“아무리 신나도 그렇지, 아무거나 막 만지진 마라. 제발, 부탁이다, 꼬맹아.”
“으음, 그게, 막 조종한다고 생각하니까, 좀 신났어요. 미안해요, 아저씨.”
그래도 자기가 큰일을 낼 뻔했다는 사실은 아는지, 하니엘은 바닥에 널브러진 채로 꾸물꾸물 움직이며 부조종석으로 올라가 앉았다. 유진은 그런 소녀를 짜게 식은 눈으로 보았으나, 그럼에도 일단 조종간을 잡는 걸 우선으로 했다.
“부조종석에서도 조종간 잡아.”
“어? 벌써요? 벌써 해도 괜찮아요?”
“내가 시키는 대로, 천천히 해. 문제가 생기면 곧장 조종권한 회수해서 옮길 테니까. 갑자기 확 밟는실수를 해도 내가 감당할 수 있다.”
조종의 모든 시작은 이륙부터다. 잘 나는 방법, 잘 피하는 방법을 배워 봐야 이륙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마찬가지라 착륙 또한 중요하나, 그래도 순서 상으로는 이륙보다 우선되는 조종법은 없다.
“그럼 나 진짜 해요?”
“그래. 조종간 천천히 당기면서, 출력 조절해. 그 정도는 머리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그런 사고를 바탕으로, 유진은 하니엘에게 이륙부터 천천히 가르치기 시작했다. 소녀도 드디어 제대로 조종을 배운다는 느낌에, 시키는 대로 출력을 조절하며 조종간을 잡아당겼다. 상륙정 ‘한라’가 조금씩 떠오른다.
그것만으로도 하니엘에 호들갑을 떨지는 않을까 염려했던 유진이었으나, 소녀는 입술을 동그랗게 한 채 짧게 ‘오, 오’ 하는 소리를 내면서 자신이 하는 조종에 집중하느라 바빴다. 그 성격에, 첫 조종을 이렇게 얌전히 하는 것도 유진이 보기엔 별일이었다.
다만 하니엘로서는 그렇게 반응할 이유가 충분했다. 소녀가 보기에, 지금 자신이 하는 것은 고작해야 이륙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항상 유진이 옆에서 조종하는 것을 봐왔는데, 소녀의 기준이 어디로 잡혀있겠는가.
“저, 떴어요, 아저씨! 그럼 이제 뭐 해요?”
“내가 유도선 띄우는 방향으로 선수 돌려서, 추진기에 동력 분배해. 동력이 충분히 배분되었으면, 그러고 나서 추진기를 작동하는 거야.”
당연히 하니엘은 한순간 한순간을 헤맸다. 유진이라면 몇 초가 지나기 전에 전부 해내고 진즉에 초광속 항행 거리를 확보했겠지만, 소녀에게 거기까지 바라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나마 큰 문제 없이 알-테켈테 스테이션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천만다행이라기에는 상당히 쉬운 일이면서도, 또 아무것도 아니라기에는 하니엘의 경험이 너무나도 일천했다. 뭐 조종 비슷한 거라도 해본 적이 있어야지.
“우아, 와! 쉽지는 않았는데, 생각한 것만큼 어렵지도 않았네요!”
“그래, 말썽이 없지는 않았는데, 염려했던 것만큼 크진 않았네.”
“아니, 그건 미안하다고 했잖아요. 어휴, 정말 속 좁고 쪼잔해서는.”
하니엘을 상대로 거기서 더 화를 내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유진은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았다. 그러고선 조종권을 빼앗아선, 그대로 초광속 항행 엔진에 동력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안전띠 꽉 매. 앞으로 몇 번 반복할 거야.”
“몇 번이요? 그럼 내 조종 연습은요?”
“따로 시간 낼 거니까 거기까진 염려 말고. 하루에 한 시간씩 보름 연습하면 열다섯 시간이야. 그 정도 하면 그래도 다들 기본은 하게 돼.”
그렇게 하니엘을 달랜 유진은, 곧장 몇 차례에 걸쳐 초광속 항행을 개시했다. 한 번에 20분 동안 3천 광년을 뛰고, 10분의 냉각 시간을 가진 후, 다시 20분 동안 3천 광년을 뛰고, 다시 10분의 냉각 시간을 가지길 반복.
그런 과정에서, 하니엘은 이미 여러 번 봤던 초광속 우주의 새까만 공간을 또 신비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매번 볼 때마다 저런 반응이라, 유진으로서는 질리지도 않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시끄럽게 쫑알거리는 것보다는 낫지. 그는 그리 생각하면서, 초광속 항행이 끝날 때마다 곧장 엔진과 동력 계통을 점검하고, 냉각 상태를 확인하는 등의 일을 했다.
“음, 아저씨. 초광속 항행이잖아요? 밖에 아무 것도 없이 까맣잖아요?”
그런 와중에, 하니엘이 갑자기 알 수 없는 말을 해왔다. 이미 몇 번이고 지겹도록 봐서 모를 리가 없을 텐데. 그런 걸 묻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렇지. 아무 것도 없이 새까맣지.”
“그런데 가끔 멍하니 보고 있으면, 한 번씩 반짝이는 게 보여요.”
그런가? 유진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바깥은 분명 새까맣지만, 그걸 계속 응시하고 있으면 선내의 조명이 산란하여 영향을 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안쪽에 조명이 있으니까, 그게 망막에 머무르면서 그렇게 보이는 거야. 연방에서 사람 목숨 버리는 실험을 한두 번만 해본 것도 아닌데, 뭔가 있었다면 진즉에 알아냈을 걸.”
“음, 그런가요?”
“그런 거지. 계속 그렇게 보면 시력 나빠진다. 안경을 쓰면 된다지만, 가장 좋은 건 시력 좋은 눈이 멀쩡한 거야.”
유진의 충고가 이어지자, 하니엘도 그 부분에 대해선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확실히, 초광속 우주를 멍하니 보고 있자면, 소녀로서도 뭔가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났다. 특히 시각적으로는 더욱 최악으로, 그러고서 다시 조명이 있는 함선 내부를 보면 빛이 멋대로 산란하여 시야를 어지럽혔다.
“알았어요. 어, 여섯 번만 더 뛰면 점심 식사 시간인 거 알죠? 아까 옮겨 실을 때 뭐 실었는지 다 봤어요. 첫날이니까 소고기로 해요.”
“소고기는 무슨 소고기. 점심은 뜨끈한 걸로 할 거야. 국밥이라고 알아?”
“윽, 뭔가 먹기 싫어지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