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9화 〉아이언사이드(5)
유진은 마음을 먹었다. 애니의 프레젠테이션이 그만큼 인상 깊기도 했거니와, 제대로만 된다면 이렇게 운에 기대어 한 척 한 척 간신히 배를 늘려나가는 대신 한꺼번에 엄청난 숫자의 함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알-테켈테 스테이션을 장악하면 순양함을 건조하거나 얻을 수 있느냐 하면 그건 아니었으나, 구축함 몇 척으로 함대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상당한 전력이다. 대여섯 척이 모여야 본격적인 순양함을 맞상대할 수 있는 구축함이라지만, 반대로 그 정도 함대가 꾸려지면 외우주에서는 무시할 수 있는 세력은 없다.
최강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느 쪽에 붙느냐에 따라 전력의 우열을 뒤집어버릴 수 있는 정도는 된다. 그나마도 내우주로 들어간다면 또 모르겠으나, 외우주에서는 그런 위력을 발휘하기 충분하다.
“그래도 너무 무모한 거 아니야?”
“가능성이 너무 낮습니다, 제독. 차라리 정보를 적당한 사람에게 파는 것이 훨씬 나을지도 모릅니다. 실패했을 때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지만, 괜히 적을 만들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다만, 그러한 내용을 기존 동료들, 그리고 교인 승무원들에게 말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은 꽤 회의적이었다. 굳이 그런 짓을 해서,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있냐는 식이다.
“……사람이 또 죽을 거예요.”
접근의 방향성이 다르기는 해도, 하니엘 또한 그 자체에는 별로 찬성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확실히, 아무리 핵심만 노린다 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사람이 죽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꼬맹아, 사람은 어쨌건 죽게 되어 있어. 우리 손으로도 많이 죽여왔고.”
하니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유진으로서는 그런 이유로 반대하는 소녀의 태도를 완전히 납득할 수는 없었다. 다른 건 그렇다 치더라도, 일단 소녀가 합류한 이후 그들의 손에, 혹은 그들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 한둘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일이 익숙해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이라지만, 그렇다고 그걸 이유로 저런 태도를 보이는 건 별로 좋게 보이지 않았다. 어쨌건 간에, 하니엘 또한 이제는 러쉬모어의 일원인 것이다. 좀 의구심이야 가지겠으나, 누가 봐도 용병이라는 말.
“아저씨가 죽을 수도 있잖아요. 지난 번에, 프로스트 테라에서도 그랬고.”
한 번의 순간을 넘기고 나서야, 하니엘은 유진에게 자신이 정말로 걱정하는 부분을 털어놓았다. 다른 게 아니라, 소녀는 그 과정에서 유진이 죽거나 다칠 가능성을 염려하고 있었다.
“용병은 원래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거야, 꼬맹아. 애초에, 네가 바라는 걸 이뤄주는 과정에서 죽을 가능성도 꽤 크고. 그리고 정말 심각하게 다치더라도, 꼬맹이 네가 살려줄 거잖아?”
“나라고 죽은 사람을 되살리지는 못해요, 아저씨. 그리고 상처가 깊으면, 저도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고요.”
아무리 하니엘의 능력이 사기적이라 할지라도,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깊은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공짜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하늘에서 강림한 천사가 해주는 치유 행위겠으나, 실은 소녀의 능력도 한계는 있는 것이다.
하기사,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는 정도라면 아예 대놓고 함대로 호위를 했겠지. 물론, 여전히 연방에 고작해야 델 아스트로라는 무장 수송선 단 한 척에 하니엘과 그 복제체들을 맡긴 건 너무 무모한 처사인 게 사실이었다.
“대가? 어떤 대가?”
5초, 어쩌면 3초만 더 늦었으면 그대로 죽었을 부상을 치유 받은 입장에서, 유진은 하니엘이 치러야 한다는 그 대가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그저 죽지만 않았다 뿐 죽음 자체가 기정사실인 치명상을 치유해주었다. 그런데 대가가 있다니, 여태까지처럼 몰랐다면 모를까,안다면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그런 부상은, 치료해줄 때마다 내가 나이를 먹는댔어요.”
아, 그런 건가. 하니엘의 말을 들은 유진은, 대충 상황을 유추할 수 있었다. 유진만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모든 이들이 그랬다.
이곳에 모인 이들은, 러쉬모어 함대 내에서 하니엘에 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 내용에는 소녀의 실제 나이가 열두 살에 불과하며, 그저 신체가 거기에 맞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 정도였다.
어쩌다 그랬나 하는 추측이야 많았지만, 하니엘이 직접 말하는 것으로 그 이유가 확실히 알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이를 먹은 이유가, 그만큼 중상을 여러 번 치유했기 때문인 게 분명했다.
“그건 맞는 것 같네. 음, 그러면 아무 곳에나 막 쓸 수는 없다는 뜻인데, 연방이 왜 복제체를 양산하려고 했는지도 설명이 되네.”
처음 하니엘과 그 복제체를 접했을 때, 왜 굳이 그렇게 많은 복제체를 만들었는지 의문이었다. 그 복제라는 게 아무렇게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연방의 생명공학 기술력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으나, 그걸 간단히할 정도는 아님이 분명했다.
그걸 왜 굳이 했나 싶었더니만, 하니엘에게 그런 한계가 있기에 어쩔 수 없이 한 일이었다. 비용이 상당했겠지만, 연방을 구세주가 실존하는 종교로 연방을 하나로 묶는 것에 필요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감수할 만하다.
“하여튼, 아저씨가죽거나 다칠 수도 있으니까 안 했으면 좋겠어요.”
“그런 이유라면 안 되겠어. 난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일단 한 번 해보기로 마음을 정했거든. 이미 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건네줄지도 구체적으로 정해놨어. 어때? 할 거지? 셀린?”
“……뭐, 한 번 해보자. 그 정도 정보 공작이 된다면 정말 될지도 몰라.”
그 정도로 정교한 정보 공작이었다. 유진이 없는 사이 수집한 알-테켈테 스테이션의 정보를 바탕으로, 누구에게 어떤 정보를 주는 게 가장 확실한 반응을 끌어낼 수 있을지 파악하여 감쪽같이 가공한 내용의 정보가 준비된 상태.
“제독, 정보 전달은 어떻게 할 겁니까?”
개중에 문제라면, 과연 그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까 하는 점. 그 정보 하나하나가 현재 목표가 되는 대상에게는 더 그렇겠지만, 다른 용병이나 스테이션 거주민들에게도 제법 충격을 줄 수 있는 정보인지라 가능한 한 은밀하게 전해져야만 했다.
“인편으로 전달해야지. 받는 당사자에게는, 우리 러쉬모어 함대에서 알려주는 정보라는 걸 확실히 알게 해줘야해.”
“너무 노출되지 않을까?”
“그래도 그게 제대로 된 의심으로 맺어지기 전에 쿠데타가 시작될 거야. 뭐, 일정대로 된다면 말이지만.”
“일정대로 될 겁니다, 유진.”
어디서 그런 확신이 나오는 것일까. 이 자리의 모두가, 애니가 그리 단호하게 말할 수 있는 배경을 궁금해했다. 아무리 그녀의 능력이 좋더라도, 이런 일은 계산한 대로만 흘러가진 않는 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결행은 언제 하려고?”
“귀환하는 항해가 끝나고 나면, 곧장 정보를 풀기 시작할 겁니다. 그 과정에서 핵심 용병들을 우리 편으로 빠르게 포섭하고, 어느 정도 포섭이 완료된 시점에서 계획을 공유하여 스테이션의 핵심 기능을 확보하는 겁니다.”
“그래도 알-테켈테는 멀쩡할 거 아냐. 그러니까, 이름이 엘리용텍이었나? 하는 여기 관리자 말이야.”
아무리 핵심 기능을 장악한다고 해도, 본래의 지도부가 남아있는 환경이라면 혼란을 수습하고 압도적인 병력으로 진압을 개시할 수도 있었다. 어쨌건 지도부가 살아남아 충성파 병력과 합류하면, 일격필살을 노리는 소수의 쿠데타는 진압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우리가 행동합니다.우리가 직접 제압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호위 선단을 습격한 해적 구축함으로부터 얻은 정보를 여기서 활용합니다. 넌지시 그걸 가지고 있다며 언급하면서, 직접 만나 협상을 원한다고 하면 됩니다. 입구에서 무장이 압수당하겠으나, 저 혼자만으로도 소수의 호위병력과 본인까지 모두 제압할 수 있습니다.”
누가 들으면 객기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애니의 실력을 잘 아는 이들은 그런 그녀의 말을 객기로 치부하지 않았다. 특히, 러쉬모어에 침입한 해적들을 상대로 보여준 활약은 애니에게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셀린마저 그녀를 인정하게 만들었다.
알-테켈테에서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호위 함대의 다른 용병들도 그저 러쉬모어에서 해적을 격퇴했다는 것만 알지 애니의 역할에 관해선 잘 몰랐고, 새로 합류한 승무원들은 그보다 더 모르고 있다.
“만약 실패해도, 근처의 VIP 전용 포트에 준비된 상륙정으로 부두까지 가면 바로 탈출할 수 있어. 고용된 승무원들은 내막을 모를 거고, 미처 못 탄 인원은 그냥 두고가도 괜찮습니다. 아니, 아예 모든 승무원을 내보내고, 탈출할 필요가 있을 땐 최소인원으로 행동해도 괜찮겠지.”
주변에서 러쉬모어 함대의 평판이 바닥을 기겠으나, 어차피 실패하면 이 주변에선 자리를 잡을 수 없게 된다. 다소의 무리를 해서라도, 정보가 없는 먼 곳으로 새로 떠나야 했다.
“음, 그럼 다음 초광속 항행을 준비하겠습니다. 저희는 아이언사이드로 옮겨야겠군요. 부디 무탈하십시오, 천사님.”
“어, 알았어요. 그, 아저씨들도 무탈하세요.”
이런 식으로 핵심 인물 간의 합의를 끝냈으므로, 러쉬모어 함대의 방침은 알-테켈테 스테이션의 점령으로 끝이 났다. 그 과정에서 본래 핵심 전력이었을 용병들을 포섭하며 지분을 나누게 되겠으나, 그래도 주도하는 건 러쉬모어 함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아, 제독! 방금 포탑 구역 최적화를끝냈습니다! 이제 정박하고 기관실만 손보면 얼추 1차적인 조치는 다 끝납니다!”
그렇게 초광속 항행을 위해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을 때, 블루가 함교에서 그를 맞이했다. 러쉬모어에 탑승한 이후 상당한 열의를 보이면서, 어느새 자신이 해야 할 기본적인 일을 거의 끝마쳐가는 모습이다.
“수고했네. 뭐, 다른 승무원들이야 자네가 타는데 별로 내켜하진 않았지만, 이제 덕을 보기 시작하면 시선도 달라질 거야.”
“아닙니다. 뭐, 사실 제가 건방졌던 것도 맞고요.”
돌아오는 대답이 의외였다. 혼자 잘난 줄 알고 잘난 체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스스로 가진 실력을 깎아내리지도 않는 게 이번에 새로 태운 블루라는 사람이었다. 기술공이라는, 함선에서는 간부로 취급받는 지위에 적당히 어울리는 모습이었지.
헌데 유진에게 돌아오는 대답이 이런 식이라니. 자신의 능력을 어필하는 것에 있어서 대상이 유진이라면 오히려 적극적이어야 하는데, 어째선지 의기소침한 모습을 보인다. 벌써 자신이 자리를 잡아, 안정적인 지위를 차지했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자신감이 갑자기 바닥이군.”
“그야, 정말 대단한 사람을 봤으니 말입니다. 제가 기술공에 과학자라 시스템 전문가들의 기본적인 역량 정도는 잘 알고 있는데, 여기의 그 애니라는 시스템 전문가 같은 실력의 사람은 전에 본 적이 없습니다. 제 방식대로 하드웨어를 최적화하면 최적화하는 대로, 한계까지 성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시스템 전문가라뇨.”
아, 그 부분 때문인가. 그래도 기술공이면 시스템 전문가의 능력을 간접적으로나마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직위이니, 자기가 깔아주면 깔아주는 대로 효율을 전부 뽑아먹도록 시스템을 조정하는 애니의 능력에 벽을 느끼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뭐, 애니가 뛰어나긴 하지.”
확실히, 애니는 능력으로 보면 감탄이 나오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이전의 여러 일에서도 그렇고, 이번에 알-테켈테 스테이션을 노려라도 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녀 덕분이 아니었던가.
“뛰어나긴 한 정도가 아닙니다, 제독. 제독은 의외로 그녀를 과소평가하고 계시군요. 세상에 그 어딜 가서도, 수석 시스템 전문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아니, 과소평가하고 있는 중은 아닌데. 하지만 블루에게 유진의 생각을 어찌 설명하겠는가. 설명하려면 프로스트 테라에서의 행적을 밝혀야 하고, 알-테켈테 스테이션 전복 계획을 공유해야 하는데.
비록 블루가 러쉬모어 함대의 새로운 간부진이라 할 수 있는 지위더라도, 아직은 합류한 지 얼마 안 된 이에 불과하다. 즉, 그는 유사시 탈출할 때 데리고 나가기보단 그냥 버려둘 대상에 가까웠다.
“그 정도는 알고 있네. 다만 나는, 기술공이라면 그런 시스템 전문가와 일하면서 더욱의욕을 불태울 줄 알았지. 거기서 자신감을 잃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거든.”
그러니 이렇게 좋은 동료가 있는 배에서 잘 하려면 좀 더 의욕을 내라. 유진의 말에 담긴 속뜻은 그런 내용이었다. 일단 당장 전투에 참여할 일이 없으니, 자신의 가치를 보이는 수단이라곤 가진 바 실력을 내보이는 게 전부이기도 했다.
“음, 알겠습니다, 제독. 확실히, 제가 애써 가꾸어놓은 하드웨어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는 동료가 생긴 셈인데, 오히려 의욕을 내는 게 당연하군요.”
“회복이 빠른데, 그럼 기대하지.”
“아닙니다, 제독. 러쉬모어의 기술공이 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헤매는 모습 보여서 죄송했습니다.”
다행히 눈치는 어느 정도 있고, 뭘 해야 하는지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 물러나는 블루를 보면서, 유진은 애니의 실력을 새삼 재평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뛰어나다는 부분이 아니다. 바로, 아무런 은폐 없이 드러나면 지나치게 많은 관심이 모인다는 부분.
확실히, 애니쯤 되면 여태 다른 세력의 꼬드김이 없었던 게 이상할 정도다. 아직까진 신규 세력, 그리고 외부에서 보기에 검증이 확실히 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겠지만, 이제부턴 달라질 수도 있다. 일단 이번 스테이션 쿠데타 이후의 일이겠지만.
“제독, 기관실에서 초광속 항행 준비 완료를 보고해왔습니다.”
“그럼 개시하지.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오늘 내로 알-테켈테 스테이션에 도착한다.”
“알겠습니다, 제독. 전 승무원 주목. 초광속 항행을 곧 시작한다. 각자 위치에서 준비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