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0화 〉아이언사이드(6) (100/207)



〈 100화 〉아이언사이드(6)

알-테켈테 스테이션에 도착하자마자 뭔가 날리고 시작한 건 아니었다. 빠르게 끌어들인다고는 해도 최소 일주일에서 보름 정도는 시간이 필요한 일이었으며, 아무리 마음이 급해도 그렇다고 행동까지 급하게 하면 망치기 십상인 일이다.

“정말 다행입니다. 덕분에 살았지 뭡니까? 도중에 아주 강력한 해적 습격을 받으셨다고요.”

그런 그들을 맞이한 것은, 다름이 아닌 그들에게 의뢰를 맡겼던 채광 회사의 지부장이었다. 속내까지 그러한 건지 아니면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는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연기하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뭐, 격퇴하고 해적 구축함까지 나포한 덕분에 전화위복이 됐죠. 위험했던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호위 의뢰에 동반했던 용병 모두가 한 몫을 챙겼습니다.”

“그거 잘 된 일입니다. 우리 회사에서도 해당 물자를 훌륭하게 인계하여, 아주 큰 이득을봤습니다. 저도 회사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요. 손해 본 것은 배를 빼앗긴 해적밖에 없으니, 이거  잘된 일이 아닙니까.”

말하는 어조만 들으면, 그가 하는 내용은 정말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확실히, 건실하게 살아가는 사람 중에서 해적을 좋아하는 이는 없었다.

애초에 해적이라는 것이, 매체에서재생산되면서 더해지는미화와는 달리 그저 악질일 뿐인 놈들이었다. 건실하게 의뢰를 받아 생계를 이어가는 역할은 용병이 다 하고있으니, 해적을 고용하는 자들은 뒤가 구리거나 뒤가 구린 일을 맡기는 자들일 뿐.

그리고 솔직히 채광 회사 지부장이라면, 견실하게 살아가는 부류의 대표단으로 뽑혀도 괜찮을 정도다.

“하여튼, 덕분에 러쉬모어도 드디어 함대 단위가  수 있었습니다. 이대로 승승장구할 미래의 시작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군요.”

“하하, 덕분에 저도 잘됐으니, 앞으로도 잘해봅시다.”

그와의 대화는 그렇게 끝났다. 딱히 대단한 일은 아니었고, 딱히 탐색전 같지도 않았다. 말 그대로의 안부 인사.

“어조에 흔들림이나 수상함은 없었습니다, 유진. 저 사람이 연기를 고도로 익힌 연기의 고수이거나, 타고난 연기자가 아니라면 진심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보면 시스템 전문가가 드디어 사람의 심리까지 읽어낼 경지에 이르렀나 싶겠지만, 실은 그보단 다시 알-테켈테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면서 갑자기 늘어난 승무원들과의 교류에서 파악한 자료가 쌓인 덕분이다.

애초에 인공지능이라는 특성에다 굳이 다른 사람과의 대면 교류를 자주  필요가 없는 시스템 전문가이기에, 이렇게 승무원이 늘어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기회를 자주 가지지 못했었다.

“아직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쌓인 자료가 적지 않아?”

문제는, 그러고서도 아직 사람의 심리를 읽는데 필요한 자료를 쌓았다기에는 모자란 점이 있다는 부분이다. 애니가 아무리 자기 분야에서 능력이 좋고 평범한 사람이 파악하지 못하는 능력이 있어도, 새로운 능력은  별개의 부분 아닌가.

“기본적으로는 그러합니다만, 일단 파악하기 쉬운 인간상입니다. 엄청난 연기력을 쌓지 않았다는 전제가 사실일 때의 내용입니다만.”

어떻게 할까. 잠깐의 고민 끝에, 유진은 애니의 평가를 수용하기로 했다. 솔직히, 그가 보기에도 저 채광 회사의 지부장이 뭔가 감추려 한다는 느낌을 받진 못했기 때문이다.

유진도 용병으로서, 어느 순간부터는 소규모라지만 나름대로 명성을 쌓은 용병대장으로서 많은 사람과 상대했다. 그때마다 상대의 속내를 파악하는 대단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하나, 그래도 수상한 기색을 느끼는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어때? 애들 내보내? 일단 관례대로 단말기에 위치추적 시스템은 다 넣어놨는데.”

“내보내야지. 여기가 우리 근거지인데, 일단 익숙해지기는 해야 하잖아. 지금 뭐 안 좋은 일 있는 것도 아니고, 괜한 티를 안 내려면 이것밖에 없어.”

“알았어. 그럼 애들 자유롭게 내보낼게. 술이나 마시다 계약금  써버리지 않으면 좋겠는데. 괜히 귀찮아지잖아.”

본래 쿠데타라면, 아무리 티를 내지 않을 목적이라도 최소한의 운용 인원은 남겨놓는다. 하지만 러쉬모어 함대의 최소 운영 인원은 모두 더해도 기존 일행 넷에 교인 승무원 여덟이면 된다.

그러므로, 유진은 만약 많은 인원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황이 닥치는 걸 감수하기로 했다. 계획대로라면 그런 상황을 겪지는 않겠지만, 보통 일도 계획과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물며 쿠데타라면, 각오를 해둬야 한다.

“그런 바보라면 거를 좋을 기회지. 하여튼, 지금은 아주 대박 난 의뢰를 자축하는 모습을 보이자고.”

“그래, 좋아. 아주 대박난 의뢰를 자축하는 거 맞지? 근데 그러려면 우린 안에 있어야지 않겠어?”

“음, 그래서 바깥에 있어야지. 연인끼리 술 한 잔 하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주다가, 밤늦게 들어가서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 나오는 거야.”

유진의 너스레에, 셀린이 푸흡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애니와의 일로 살짝 틀어졌던 것이 다시 제자리를 찾는 느낌은 덤으로, 그녀에겐 아무리 애니가 달려들어도 결국 그와 침대를 공유하는  자신이란 확실한 결과가있었다.

글쎄, 애니라고 그냥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셀린이 보기에도 그녀는 상당한 능력자였고, 거기에 어지간해선 포기하지 않는 끈기 넘치는 사람이기도 했다. 엄밀히 따지면 사람이 아니긴 한데, 그건 셀린을 포함해서 애니의 실체를 아는 모두가 전혀 신경 쓰지 않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유진, 셀린. 잊으면  됩니다.  할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난 가자고 했는데…….”

“아, 갈 거야. 그냥 농담 좀 했던 거니까, 너무 그렇게 반응하지 마. 나라고 이게 중요한 일인지를 모를까.”

러쉬모어에서 방금  나온애니가 그리 말하자, 애니가 괜히 걱정한다는 듯 답했다. 그녀가 생각하기엔, 누가 봐도 우위는 자신에게 있었으므로 거기서 짜증을 내거나 애니를 꺼려하는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괜힌 일로 유진의 호감도를 깎아먹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럼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이쪽 준비는 끝내놓겠습니다.”

“맡길게. 항상 신세 지네.”

“아닙니다, 유진. 유진의 이익이  제 이익입니다.”

저거, 저거, 역시 포기한  아니구나. 그 말을 들으면서, 셀린은 그렇게 생각했다. 단순히 말의 내용만이 아니라, 그러면서 애니가 지은 표정도 문제였다.

여전히, 애니는 다른 사람과 대화할  거의 무표정을 고수한다. 처음부터 그랬는지라 모두에게 당연한 일이었고, 새로 합류한 승무원들도 이 사람은 그렇구나 하는 식으로 익숙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들어, 한 명에게는 예외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명이라는 건 당연하게도 유진으로, 아주 가끔씩이지만 미소를 지어 보이는 것이다. 방금도 그랬고.

“정말 너무하지 않습니까? 자기들은 다 나가면서 누님만 이렇게 남겨둡니까?”

셀린이 그런 마음을 안고 유진을 이끌어 멀어지자, 러쉬모어에서 그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대머리의 새파란거한이 걸어 나와 애니에게 말을 걸었다. 말의 내용만이 아니라 정말로 불만을 가진 모습으로, 그녀에게 상당히 감화된 듯한 모습이었다.

“다 이쪽에 필요한 일입니다, 코울슬로. 유진에게 너무 뭐라고 하지 마십시오.”

“끄응, 정말이지, 누님에게 너무하지 않습니까? 여기 함대에서 제일 큰일하는 게 누님인데, 제독은 왜 저렇게 대하시는지.”

코울슬로라고 불린 거한은, 정말 진심으로 현재 애니의 상태를 안타깝게 여기는 모습이었다. 애니의 진짜 배경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녀에게 유진과 맺어지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는 부분은 알고 있었다.

“유진에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계획한 대로만  된다면, 현재 상황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충분히 감수할 수 있습니다.”

“으음, 누님이 제 빚도 다 해결해주시고, 이렇게 깨우쳐도 주셨으니까, 그렇게 말한다니 그런 줄은 알겠는데요, 그래도 저는 좀 그렇습니다.”

코울슬로는,  개뿐인 손가락으로 자신의 까끌까끌한 피부의 대머리를 문질러 긁었다. 사고를 당했거나 선천적 기형이 아니라, 그의 종족은 본래 그런 모습이었다. 빌펜니아인으로, 까끌까끌하고 파란 피부에 평균적으로 1미터하고도 50센티미터에 불과한 키와 근육질이 특징이다.

여기서 이상한 부분을 느꼈다면 정상이다. 그렇다. 평균적으로 키가 1미터50센티미터에 불과한 종족인데, 그의 키는 거의 2미터에 달했다.

“눈에 보이는  다가 아닙니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흠, 흠. 뭐, 그렇죠. 저도 뭐, 다른 종족은 다를 거라 믿었는데, 등쳐먹기는 매한가지더라고요. 이렇게 배웠는데도 이러니, 아직 멀었나 봅니다.”

그가 그리 말하는 어조는 정말 쑥스러운 느낌이었다. 확실히, 다른 종족이었다고 무턱대고 믿었다가 거대하고 불합리한 빚이 생기는 경험은 부끄러워할 일이긴 했다.

코울슬로의 신체적 특징과 대화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종족 사이에서는 기형 취급받으며 다른 종족에 관한 환상을 키워왔다. 그러다 우주로 나와서 만난 첫 외계 종족에게, 경제적으로 아주 뼛속까지 털렸고.

거기서 그를 구해준  애니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러쉬모어에 탑승한 후 애니가 신규 승무원들의 인적사항을 파악하면서 발견한 내용이었다. 아주 철저하게 뽑아먹기 위함이었는지, 그 빚을 만든 쪽에서 아주 깊게 숨겨놓은 상태였다.

“당신에게는 당신의 역할이 있습니다. 잊지 마십시오, 코울슬로.”

“아무렴요, 아무렴요. 그 역할이 무엇인지 알려주지 않아서 문제지만. 누님이 베풀어준 은혜가 아니었다면 아주 섭섭할 뻔했습니다.”

코울슬로는, 그렇게 말하면서 ‘허허’하는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가 애니로부터 받은 은혜가 가볍지 않았기에, 애니가 얼핏 차갑게 느껴질 수 있는 태도를 보임에도 그저 웃기만 할 수 있는 것이다.

“들어갑시다. 일이 많습……윽!”

“애니! 뭐야, 아저씨랑 언니는 벌써 갔어?  이렇게 빨리 간 거야?”

그런 애니를 뒤에서 와락 덮치듯 안는 하니엘을 보며, 코울슬로의 표정이 묘해졌다. 일그러진 듯도 했고,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신기한 물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셀린과 유진은 함께 나갔습니다, 하빈. 그리고 좀 떨어져 주십시오. 목을감고 있으면 답답합니다.”

“아가씨, 누님에게서  떨어지시죠.”

애니의 말을 코울슬로가 거들었다. 둘이 하니엘을 부르는 명칭은, 현재 러쉬모어 함대에서 핵심 간부진과 나머지를 구분하는 경계선이기도 했다.

“왜요? 양배추샐러드 아저씨? 난 애니가 좋은데?”

“……제발 그렇게 부르지 마십쇼, 아가씨. 아가씨 때문에 지금 함대에서 내 별명이 그게 됐단 말입니다.”

생각해보면, 코울슬로라는 이름은 인류가 즐겨 먹는 음식 중 하나의 이름이었다. 양배추를 잘게  썰어서 마요네즈를 뿌려 먹는 샐러드로, 지금 하니엘이 그를 양배추샐러드라고 부르는 이유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종족 차이로 생긴 어처구니없는 오해라고  수 있으리라. 그의 부모님이 그 이름을 지어줄 때, 우주에서 알려진 문명 중에선 가장 강력한 연방의 일반 공용어를 고려하지 못한 탓이겠지. 사실, 외우주 출신 외계 종족에겐 아주 가끔씩이나마 있는 일이다.

그래도 코울슬로는 좀 너무 많이 경솔하지 않았나. 하니엘을 통해  내용을 접한 다른 인간 선원들 감상은 그러했다. 연방의 순기능인지 역기능인지, 인류의 요리는 전 우주에 걸쳐 퍼져있으면서 개중에서 그 양배추샐러드는 많은 종족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는 음식인데 말이다.

“왜요? 이 많은 사람들이  양배추샐러드 아저씨를 알게 됐으니까 잘 된거 아니에요?”

그리 말하면서,하니엘은 장난기 가득한 웃음과 함께 검지와 엄지로 특유의 V자를 그리며 윙크했다. 모르고 본다면 귀여운 모습이겠으나, 저런 모습을 본 사람 치고 골탕을 먹지 않은 자가 없었으므로 보통 당사자는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런 공식에 가까운 반응은, 놀랍게도 새로운 승무원들이 고용된 후 러쉬모어 함대가 알-테켈테 스테이션으로 돌아오는 사이에 완성된 부분이다. 그만큼, 러쉬모어의 ‘아가씨’는 많은 승무원을 골탕 먹였다. 그게 꼭 밉지는 않아 공공의 적보다는 일종의 마스코트로 통하고 있었으나, 이 ‘양배추샐러드’는 귀엽기보단 좀 안 봤으면 할 정도로 심하게 당한 피해자였다.

“그런 식으로 알기보단, 아주 강하고 튼튼하고 멋진 남자로 알았으면 좋겠는데요.”

“에이, 다 보는 앞에서 자신만만하게 나섰다가 애니한테 완전히 탈탈 털렸으면서.”

“아, 아니, 그건…….”

그가 애니를 추종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애니의 격투 능력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그가 대련을 신청한 결과로, 당연하게도 맨몸으로 애니를 이기진 못했다. 오히려 압도적으로 발렸지.

사실, 따지고 보면 아무리 단련했더라도 보통 사람이 애니에게 맨손으로 덤비는 것 자체가 바보짓이다. 그 강력한 인공 신체로 인하여, 애니는 항상 강화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애니 본인을 제외하면 고작해야 세 명뿐이었다.

당연히, 이 양배추샐러드는 거기에 끼지 못했고.

“들어갑시다, 하빈. 사람을 괜히 놀리는 건 안 좋은 행위입니다.”

“으음, 애니가 저렇게 말하지 봐줄게요, 양배추샐러드 아저씨.”

“대체 그렇게 부르는 어디가 봐주는 겁니까…….”

결국, 양배추샐러드는 아주 크게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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