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2화 〉아이언사이드(8) (102/207)



〈 102화 〉아이언사이드(8)

알-테켈테 스테이션의 관리자인 엘리용텍 알-테켈테가 머무르는 중앙 관리부 건물에, 장륜장갑차 하나가 그 크기에 비하면 조용히 들어섰다. 전방, 후방으로 40mm 체인건 무인포탑을 장착한 모습이 꽤 위협적이어서, 주변의 경비원들은 사뭇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이 긴장한 것과 대처는 별개의 일이다.  포탑이 당장 작동을 개시하여 주변으로 화력을 쏟아낸다면, 몇 명은 쓰러지겠으나 곧장 분노에 찬 응징의 대장갑 로켓이 날아들 것이다. 탑승자 전원은 사망할 것이고, 어떤 미친놈들이 무차별 난사를 시도하다 죽은 테러라고 기록되겠지.

“거기 누구냐! 하차하라!”

그 장갑차가 정문에 도착하자마자, 경비원들이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나섰다. 돈을 많이 받거나, 꽤 충성심 있는 경비원들이구나. 유진은 그들을 그렇게 평가했다.

“초대받고 온 손님이다! 문이나 열어!”

“……여기서부턴 그거 못 몰고 들어갑니다. 내려주십시오.”

앞쪽 창문의 투과율을 낮추고 당당하게 하는 답에, 잠깐 머뭇거리던 경비책임자가 그렇게 답했다. 솔직히, 저 안쪽까지 이런 장갑차를 몰고 들어가게 해주는 놈이 있다면 그게 정신이 나간 놈일 것이다.

“뭐, 어쩔 수 없지. 저 옆에 세워둘 거니까, 어디 건드리기만 해.”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유진이 생각보다 순순히 협조하자, 경비책임자가 한시름 놓았다는 듯 그리 말한 직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유진이 한쪽 도로변에 장갑차를 대고 네 명 모두 내린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문을 열었다.

“타시죠.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는 사이,  안쪽에서 리무진 하나가 다가와 방향을 바꾸더니 후진으로 유진 일행에게 댔다. 보조석에서 누가 봐도 양복 입은 경호대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오고, 뒷좌석의 문을 열며 그들에게 탑승을 권한다.

“리무진까지 준비했으니, 안 타고 갈 수는 없지. 우릴 위해 이런 준비까지 해준 것에 심심한 감사의 인사를 표하지.”

“……타시죠.”

당연히, 엘리용텍은 유진 일행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런 고용주의 분위기를 못 읽을 정도로 둔감한 고용인들은 아닐 터. 유진의 저런 능청이 반가울 리가 없다. 애초에 눈치를 준다는 의미에서, 은근히 이 리무진이 유진 일행의 편의 때문에 준비된 게 아닌 엘리용텍의 기다림을 줄이기 위해 준비되었다는 암시를 담은 말도 했었으니.

“의외로 공간이 넓습니다?  같은 몸집도 별로 불편함을  느껴지니.”

개중에서 리무진을 가장 호평한 것은 코울슬로였다. 키가 2미터에 이르는 만큼 앉은키도 컸는데, 이 리무진은 그가 편히 앉고서도 위로도 공간이 남았다.

“돈은 있다 이거지. 하여튼,  신체검사가 있을 텐데, 괜히 저항하지 말고 무기는  넘겨줘. 우린 협조적인 모습을 보이러 온 거니까.”

엘리용텍이 준비한 리무진이고 당연히 여기서 말하는 내용은 그의 귀로 들어갈 것이므로, 유진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긴 내용을 말했다. 모르고 듣는다면 철저하게 협상을 위해 왔다고 생각할 터이나, 다른 세 명의 일행에겐 그러기 위해 왔다고 위장하자는 뜻이 된다.

다만 속내를 모르는 저쪽에서는, 달리 받아들일 방도가 없었다. 실제로 이후 무장해제를 위해 몸수색을 하는 과정에서 협조적으로 나오자, 긴장이 많이 풀리는 기색이었다.

“이로써 우린 비무장이 됐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네, 유진. 겉으로 보기에는 비무장이 됐습니다.”

몸수색이라고 손으로 대충 더듬는 게 끝이 아니었다. 금속탐지기는 기본에, X선 투과기까지 동원한 본격적인 몸수색. 물론, 그 수단들이 애니가 인공 신체임을 파악할 정도까지 섬세하진 못했다. 그녀가 작정하고 기만을 시작하면, 탐지 시스템을 단순히 돈을 아낌없이 써서 만드는 정도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어쨌건 실제로 총은 물론 칼까지도 몸수색 과정에서 맡겨둔 덕분에, 엘리용텍은 그들을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맞이했다. 유진 일행이 자신의 약점을 쥔 상황이었으나, 교섭하러 왔으니 결렬되지만 않으면 그게 바깥으로 새어나가는 일은 없을 터.

“어서들 오시게. 오는 길에 무슨 문제는 없었나?”

“러쉬모어에서 여기까지 오는 길 말입니까? 아니면 여기 알-테켈테 스테이션에서 란시스타 스테이션까지 갔다가 오는  말입니까?”

“허허, 이거 참, 내가 쌓은 업보가 너무 크군. 시작부터 이렇게 강하게 나오다니.”

여유롭게 대응하던 엘리용텍이 조금 당황할 정도로, 유진은 시작부터 아예  치고 들어왔다. 애니가 가공한 정보는 몰라도, 일단 유진이 그런 습격을 겪은 건 분명히 그의 탓이  사실이었으니까.

“우리가 워낙 강하고 운이 좋아서 다행이지, 그게 아니었다면 거기서 곧장 우주의 먼지가 됐을 겁니다. 이게 어디 보통 업보입니까?”

“그래. 솔직히  부분은 인정하겠네. 그래도 사람 목숨인데,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한 건 맞아. 그래서, 곧장 본론으로 들어가길 바라는 듯한데, 원하는 게 뭔가?”

정말 교섭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유진은 그래도 엘리용텍이 말은 통하는 사람이라 평가했을 것이다. 일단 인정해야  부분은 인정하고, 이쪽이 뭔가 바라는 걸 들어줄 수 있다는 전향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물론, 그렇다고 평가가 좋게 바뀌지는 않았으리라. 그의 계산대로 되었다면, 유진 일행은 기껏해야 목숨이나 건져서 빠져나오면 다행이었을 테니까. 자기 목숨을 끊을 짓을 시도한 사람을 겨우 그거 하나로 좋게 보는 건 말도  되는 일이다.

“아니, 우린 죽을 뻔했는데 여기서 선제시를 걸어? 그쪽에서 먼저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셀린이 오랜만에 아주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며 물었다. 헌병대 소위 시절의 태도를 다시 되살린것으로, 어쨌건 몸에 꽤 익었던 것인지라 오랜만이어도 그리 어색하진 않았다.

“으음, 아주 파격적인 계약을 제시하지. 나와 독점 계약을 한 용병들보다 더  권리에, 책임은 훨씬 작게 말이야. 어떤가?”

“말이  됩니다. 당신의  믿고 용병 계약을 맺겠습니까? 어차피 이번처럼 또 정보를 흘려서 우리를 처리하려 들지 모르는데 말입니다.”

여기선 애니 특유의 무표정과 무덤덤한 어조도 주효했다. 그녀가 예쁘장하기는 하지만, 그런 외모와는 별개로 얼음장 같은 태도와 분위기는 꽤 위력적이다.

“그럼 뭘 바라나?”

“애초에 태도가 너무 건방진 거 아뇨? 우리가 이번 정보만 쥐고 있나? 우리가 쥐고 있는 정보를 확 퍼뜨리면, 용병에 의지하는 이 작은 스테이션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하지 않나? 응?”

그러면서, 유진은 일부러 의자를 드르륵 소리 나게 밀고 일어나선 엘리용텍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근처에 있던 경호원들이 빠르게 다가온다.

“허허, 화가 많이 났군. 좀 가라앉히게. 내가 뭐  정보의 가치를 과소평가하겠다는 건 아니잖나.”

“지랄하지 마쇼. 엉?”

콰앙! 유진이 기어코 엘리용텍이 앉은 넓은 책상 앞까지 도달해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고, 그러자 곧장 경호원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열 명쯤 있는 경호원 중 네 명이 유진에게, 그리고 나머지 여섯은 나머지 셋에게 다가가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

책상이 넓어 거기서 유진이 주먹을 뻗어도 엘리용텍의 위치까진 한참인데다, 몸수색으로 유진 일행이 전원 비무장임을 알고 있었기에경호원들의 움직임은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다. 일단 머리끝까지 화가  것처럼 보이는 유진이 진정할 때까지 붙잡아두는 게 가장  목적이었고, 나머지도 그저 만약을 대비한다는 수준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런 판단과 행동은, 그들에게 아주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어, 어?”

우드드득, 콰직! 유진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관절이 꺾이고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른 경호원들이 잠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이, 애니가 맨손으로 무려 두 명의 목을 꺾은 것이다.

“야, 야! 잡아! 잡으라고!”

그 상황을 비교적 떨어진 위치에서 살필 수 있었던 엘리용텍이 반사적으로 그리 외쳤으나, 유진을 붙잡고 있는 넷은 유진이 한껏 몸부림을 치는 것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용텍이 외친 것도 어디까지나 유진을 제대로 잡으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그러는 사이 코울슬로의 핵주먹에 의식을 잃은 게 하나, 셀린의 비장의 손날치기에 뒷목을 맞고 경추가 나갔는지 눈을 까뒤집고 거품을 물며 쓰러지는 게 하나, 애니가 목젖을 때려 호흡곤란으로 쓰러진 게 하나, 또 애니가 곧장 지른 발차기에 고환을 제대로 얻어맞아 거품을 물면서 쓰러지는 게 하나.

빨갛고 파랗고 노란 피부의 경호원들이 그리 순식간에 줄줄이 쓰러지는 모습은, 엘리용텍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기 충분했다. 그래도 상황판단은 빨라, 곧장 자리에서 용수철 튕기듯 일어나더니 반사적으로 VIP용 상륙정 착륙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경보 울려! 경보 울리라고!”

 모습을 본, 유진을 붙잡고 있던 네 명의 경호원들이 한 타이밍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그러곤 소리치자, 뒤늦게 요란한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그와 거의 동시에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40mm 구경의 체인건이 요란하게 사격하는 쿠쿠쿠쿠쿵! 하는 소리.

아마 정문쪽에서는, 전원이 완전히 꺼져 축 늘어진 체인건 포신을 보고 마음을 놓고 있던 경비원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당하고 있으리라. 그리고 그러는 사이, 빠르게 달려든 애니와 코울슬로 덕분에 네 명의 경호원들도 순식간에 제압당했다. 개중에서 그나마 권총에 손을 댄 한 명은, 애니의 손에 의해 그 권총에 댄 오른손이 거의 으깨어지다시피 했다.

“엘리용텍님!”

경호원들이 달려오는 소리. 확실히, 아무리 방심했어도 경호원의 숫자가 이게 전부일 리 없었다. 일단 코울슬로가 문으로 달려들어 걸어 잠그는 사이, 애니가 쓰러뜨린 경호원에게서 권총을 뽑았다. 유진과 셀린도 마찬가지였으나.

[틱- 틱!]

“이거 지문 인식이야!”

가장 먼저 권총을 뽑은 셀린이 외치면서 애니를 돌아보는 사이에도, 엘리용텍은 필사적으로 VIP 착륙장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착륙장에서 들어오는 경비원들도 있었기에 달려서 따라잡긴 어려운 상황. 애니가 권총을 발사할 수 있도록 빨리 조치를 해야 했다.

그리고 여기서 애니의 조치는 아주 단순하면서 과감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우드드득.  주인의 손가락을 부러뜨려 으깨듯 떼어내더니, 방아쇠에 걸고 거기에 자신의 손가락을 포갠다. 그리고 사격.

[지지지지지직!]

“크아아아악!”

“쏴! 저 새끼들 죽여!”

레이저 권총은 엘리용텍의 오른 다리를 반쯤 불구로 만들었다. 순간적으로 스친지라 절단까지 가진 못했으나, 종아리가 반쯤 잘려 오른 다리를 도저히 쓰지 못할 정도는 되었다. 그렇게 도망치는 속도가 크게 줄었으나, 그럼에도 유진 일행은 그를 붙잡지 못했다. 경호원들이 그에게 도착해 몸으로 막았기 때문.

“애니!”

“압니다, 유진! 이미 장갑차는 자동 사격을 시작했고, 러쉬모어에도 신호가 갔습니다! 곧 반응이 있을 겁니다!”

아주 잠깐, 고작해야  초 동안의 소강상태 사이에, 애니는 재빨리 권총 두 자루의 지문 제한을 해제한  셀린과 유진에게 넘겼다. 코울슬로가 ‘누님 저는요!’라고 애타게 외쳤으나, 애니는 그런 그를 흘낏 살피더니 자신이 해야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정문 쪽에서 요란한 포성 외에, 장갑차가 요란하게 기동하는 소음이 들려온다.

“몰아 넣어! 몰아 넣기만 해! 화력은 우리가 압도적이야!”

경호팀장인지 책임자인지, 상황판단이  괜찮았다. 일단 엘리용텍은 그들의 손으로 넘어갔고, 유진 일행은 이미 고립된 상태다. 그러므로 현재 유일한 가능성은 스테이션 중앙 통제실을 빼앗기는 것 정도인데, 그걸 막아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바로 대치 상태를 이루는 채로 유진 일행을 화력으로 제압하는 것이다.

“그래도 바보는 아닌데?”

“걱정 마십시오, 유진. 사전 계획대로,  도착할 겁니다. 그리고, 포섭한 용병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옥외에서 무작위로 송출되는 정보 내용 또한, 현재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 상태입니다. 저쪽의 지원군은 당분간 발이 묶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 저쪽의 지원군의 발을 묶어둘 수단은 확실히 해둔 상태다. 물론, 그렇다고 러쉬모어의 승무원들이나 러쉬모어 자체가 지원을 올 수도 없었다. 제아무리 기습했다고 할지라도, 구축함의 움직임을 놓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스테이션치고 이렇게 규모가 작은 장소일지라도, 항상 드나드는 어뢰정 이하의 함선을 전부 감시하긴 어려웠다. 특히 이렇게 혼란스러운 순간에는 더더욱.

- 기다리셨습니까? 건스, 건스, 건스.

위이이이잉, 하는 불길한, 마치 레일건에 에너지를 채우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슈우욱, 콰아아아앙! 거대한 폭발음이 VIP 착륙장 방향에서 들려왔다.

“아이언사이드, 피해 평가는?”

- 직격, 직격. 핵심 목표물을 포함한 시설물 자체가 파괴되었습니다. 근접하여 화력지원을 개시하겠습니다.

자신들의 고용주, 스테이션 관리자가 몸을 피한 방향에서 들린 폭발음에 당황하던 경호원들 뒤로, 선체에 거대한 레일건을 박아넣은 어뢰정, 아이언사이드가 굉음과 함께 근접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어어 하는 사이에, 양 측면의 작은 레이저 포탑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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