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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흔들기(2) (105/207)



〈 105화 〉흔들기(2)

여기서 유진이 확실히 셀린의 편을 들어준다면, 일단 현 상황 자체는 어렵지 않게 넘어갈 수 있었다. 아무리 애니가 커다란 공적을 세웠다고 할지라도, 그 공적에 관한 보상을 러쉬모어 함대의 공적인 부분으로 처리한다면더 요구할 명분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때는 셀린이 자리하고 있는데, 현재 러쉬모어 함대 내에서 2인자 자리가 위험해지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 부분이야말로 애니가 그럴 자격이 있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 부분으로 보상을 제한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럴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유진.”

“아니, 그래도 그렇지. 셀린 눈앞에서 그런걸 요구하면 그걸 어디 알겠다고 들어주겠냐고. 사람이라는 게, 그게 감정적인 부분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알잖아.”

유진도 그런 부분을 알기에 애니를 따로 불러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해보려 했으나, 애니는 그걸 아주 완강히 거부했다. 애초에, 그녀가 바라는 유일한 보상이 그쪽이었으므로, 그 외에는 그녀가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진이 정말 단호하게 끊으면 애니라도 어쩔 수 없겠으나, 유진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 원인을 한 가지로만 확정하지는 못하겠지만, 일단 유진이라고 애니에게 마음이 없는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유진 자신이 그리 단호하게 나왔을 때 애니가 함대를 이탈하지 말라는 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러쉬모어 함대에서는 애니가 사실상 2인자다. 아니, 그녀가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유진도 모르는 사이 그녀가 러쉬모어 함대를 손에 넣고 주무를 수도 있었다. 스테이션 하나의 시스템을 혼자서 장악할 수도 있는데, 그 정도를 못하겠는가.

“안 됩니다, 유진. 지금 제가 유진, 당신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든 태도와 당신에게 안겨주고 있는 모든 이득, 이게 다 제가 당신에게 하는 구애의 행위입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말하는데, 이걸 무시하는 순간 그런 위험 상황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아도 되게 해주는 애니와의 신뢰에 금이 갈  거의 확실했다. 사실, 애니가 자신의 능력을 온전히 유진을 위해 사용하는 것도 어디까지나 그 ‘신뢰’ 덕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사실, 그게 그렇잖아. 셀린에게 너무 그렇게 대놓고 요구하면…….”

“저의 요구가 그렇게까지 말도 안 되는 건 아닐 겁니다. 단적으로 하니엘을 포함하여, 교인 승무원들도 제게 동의하지 않았습니까.”

그 부분도 문제였다. 아무리 봐도 이건 셀린의 감정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인데, 정작  내의 여론은 다른 것이다. 하니엘을 포함하여, 교인 승무원까지 같은 목소리를 냈다. 자기 생각이 뭔가 잘못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셀린이 느끼기에는, 음, 아닌  아니라고 생각할 거야.”

그렇다. 아닌 건 아니다. 여기서 누가 뭐라고 해도, 결국 셀린이 느끼는 감정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쨌건 현재 유진과 연인인 사람은 셀린이고, 그와 이성적인 관계에서 가장 큰 지분을 가지고 주장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

“그건 염려치 마십시오, 유진. 셀린이 제 요구를 받아들이면서도, 유진과 함대를 떠나지는 못하도록 만들겠습니다.”

마치 당연하다는  덤덤하기에, 오히려 거기에서 자신감이 느껴지는 어조. 그리고 유진은, 어째서인지 애니의 그런 어조와 말하는 내용에서 약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래. 유진을 향한 애니의 마음이 어떤지는, 그리고 그게 얼마나 강렬한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그건 유진을 향한 마음이었다. 함대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만약, 아주 만약에, 유진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이용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애니, 협박이나, 강압은 안 돼. 절대로. 무슨 뜻인지 알지?”

“압니다, 유진. 염려치 마십시오. 애초에 셀린과 저는 유진을 사이에 둔 연적이기 이전에, 같은 함대에서 서로 등을 맡길 동료이기도 합니다. 유진과의 관계를 인정받기 위해선 셀린의 협조가 필수적인 마당에, 제가 그렇게 나오겠습니까?”

생각해보면 그렇다. 정말로 애니가 셀린을 동료라고 여기고 있다면, 그녀의 말에 틀린 구석이 없는 게 사실이다. 애니가 유진과의 관계를 인정받는 가장 안정적인 방법이 바로 셀린의 동의이기도 했고.

“아니, 아니지. 여태보여준 게 있으니까, 믿을  애니.”

더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믿겠다고 말해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므로. 물론, 실제로 유진이 애니를 신뢰하고 있다는 부분도 있었다.

좀 더 깊게 따지고 보면 생각할 거리가 더 있겠지만, 현재 유진에겐 러쉬모어 함대를 위해  일이 여기저기 산적한 상태였다.

“기존에 교역로가 형성된 다른 스테이션 및 포스트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대부분 교역로의 유지와 향후 더 좋은 관계가 되길 희망한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만,  곳으로부터는 다소 주의해야 할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유진에게 직접 보고하는 자는, 지난 쿠데타 당시 유진에게 직접 항복한 중앙 통제실 실장이었다. 실무적으로 아는 부분이 많고, 다른 생각을 품더라도 애니가 형성해놓은 시스템 덕분에 사전에 파악해낼 수 있었으므로 딱히 문제 될 게 없었다.

“어디서, 어떤 답변이 돌아왔나?”

“어, 간디 디포라는 곳입니다. 반란군 소속인데, 이전 관리자가 연방과 조금씩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던 모양입니다. 이번에 새로운 관계를 맺을 생각이 없냐고 하더군요.”

디포라면, 스테이션과 포스트 사이의 애매한 규모를 말하는 것이다. 포스트라기에는 크지만, 스테이션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모자란 부분이 많은 수준.

다만  디포라는 분류에 속하는 곳은, 스테이션이나 포스트에 비하면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니었다. 일단 규모가 포스트에서 더 오를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면 스테이션이 되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으면서, 스테이션까지 오르지 못하는 규모라면 애초에 포스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로, 디포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대부분 특정 집단이나 단체에서 보급기지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유지하는 곳이었다. 괜히 디포라고 이름이 붙은 게 아니다.

“간디 디포? 반란군 보급거점인가?”

“정확히 말하자면 확장 거점입니다. 연방의 세력권이 약한 외우주에서, 반란군이 본격적으로 개척을 시작하는 거죠. 왜, 자연환경은 애매하게 적대적이면서, 굳이 개척에 매력을 느끼진 못할 정도로 이득이 계륵인 행성들 말입니다.”

그런 행성들은 제법 있다. 적도 부근에서만 툰드라나 냉대 기후가 나타나고 나머지는 극한의 빙설기후인 행성이나, 극지방에서나 열대 사바나가 나타나고 그 외에는  생명체가 살기 매우 어려운 극한의 고온을 보이는 행성은 여기저기 널렸다. 항성이 하나 존재하면, 그런 행성은 꼭 하나씩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그렇다 보니, 사람이 살기도 어렵고 희귀 자원도 딱히 없으며, 혹여 있더라도 채산성이 맞지 않아 개척해 봤자인 행성이 제법 많았다. 사람을 살게 만들 수는 있겠으나, 딱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다.

“그런 행성들은 왜? 아무리 봐도 돈낭비잖나.”

“뭐, 반란군 나름대로 생각이 있지 않겠습니까? 어쨌건 거주 가능한 환경에선 일단 숫자가 불어나는 게 사람이니, 장기적으로 관리하고 세금을 걷는 것만으로도 득이  거라고 봤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는 그 개인의 의견에 불과했다. 실제 반란군이 어떤 꿍꿍이로 그런 극한 환경 행성을 개척하려는지는,반란군 당사자들만이 알고 있을 테다.

“그래서 새로운 관계라는 건?”

“대단한 건 없고, 그저 우리 스테이션의 이름을 듣고는, 우선순위 계약을 희망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본격적으로 용병 중개업에 집중할 게 분명한 이름인데, 그쪽에선 활발하게 개척 중이니 용병 쓸 일이 많지 않겠습니까?”

그렇긴 하지. 개척 과정에서 적대적인 것은 그런 환경만이 있는 게 아니다. 그런 환경에서 나름대로 적응하여 살아가는 생명체들이 의외의 위협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한 사항을 조사하고 대응하는 것에는, 아무리 연방과 자웅을 겨루는 반란군이라도 용병들을 활용한다.

그뿐인가. 또 그런 곳마저도 어떻게 털어보겠다고 달려드는 해적들도 있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해적들이라면 그런 곳에서 얻는 이득보다는 완복 비용이 더 들기에 별로 눈독 들이진 않으나, 소규모의 어중이떠중이들은 소규모 정착지를 털어서 얼마 없는 재물에 더해 사람을 납치해 노예로 팔아먹기도 한다.

“스테이션 통째로 우선순위 계약은 곤란하고, 희망하는 용병대를 모집해서 우선순위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중개는 해보겠다고 답신을 보내게. 그 정도로도 충분하겠지.”

“하긴, 스테이션 단위로 계약을 맺으면 너무 반란군 편에 치우치게 섰다고 보이겠죠.”

아무리 연방의 세력권 바깥이라곤 하나, 반란군과 너무 친해져선 좋을  없었다. 외우주의 중소 세력 중에서도 반란군과 적대적인 곳은 있었고, 용병이라면 한쪽 편을 드는 것보다는 중간에서 어느  의뢰건 조건만 맞으면 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용병 파견 연합 스테이션의 핵심 관리자층인 러쉬모어 함대에서는, 무려 기함의 함장이 반란군 출신으로 영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러쉬모어 함대 간부진 전체가 반란군엔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그런 와중에 갑자기 스테이션 단위로 우선순위 계약을 했다고 한다면,  그래도 불안한 함대 조직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도 고려해야 했다.

“연방 쪽에서는 뭐가 없나?”

“알겠다는 단문으로만 답신이 왔습니다. 뭐, 이전 알-테켈테 가문과 물밑 거래를 하다가, 그것 때문에 쿠데타가 일어나 관리체계가 바뀌었으니 그쪽에서도 적당히 물러나는 거겠죠.”

연방으로서는 선택과 집중을 계속해도 모자랄 판국이다. 지휘관이나 현지 책임자의 성향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현재 연방의 상태로는 어지간히 다혈질이면서 공격적인 지휘관이 있는  아닌 이상 강제적으로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고작해야 정보나 좀 넘기고 해적들과 연계하는  전부인이곳에 더 큰 관심을 쏟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바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고, 중간에 해적이라는 매개체를 두고 한 번 거쳐서 되는 연결이니까.

“당분간은 어쩔  없이 반란군에 신세를 좀 져야겠네. 알았어, 수고하도록. 아직은 내부 안정화도 필요하니까, 딱 이 정도로만 해두지.”

“알겠습니다, 제독. 그런데, 제독.  가지…….”

어쩌다 보니, 유진을 칭하는 명칭은 제독이 되었다. 유진의 마음에는 제법 들어맞는 명칭이라, 나름대로는 만족하며 듣고 있었다.

“무슨 부탁?”

“그, 러쉬모어 함대 수석 시스템 전문가님은 이쪽으로 가끔만 오도록 확인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솔직히, 압박이 너무 심합니다.”

남의 비위 맞추면서 자기 일을 하는 것에서는 이미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졌을 텐데, 저렇게 말하는 걸 보면 애니가 보통 갈구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하긴, 아무리 애니가 시스템을 장악했을지라도, 스테이션을 혼자서 관리할 수는 없을 테니 기강을 확실히 다지는 게 당연한 일이다.

물론, 작정하고 붙는다면 애니 혼자서도 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일을 할 수 없게 되므로,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도 생각도 없었다.

“어떤 압박?”

“명칭이 ‘총체적 업무 개선을 위한 시스템 재정비’인데, 그것 때문에 다들 죽을 지경입니다. 한 번 살펴보십쇼.”

그 말을 듣고 유진이 주변을 살피자, 확실히 중앙 통제실 요원들의 얼굴에 다크써클이 짙었다. 아니, 스테이션의 통제권이 넘어온 지 얼마나 됐다고, 피로도가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이다. 쿠데타 당일 중앙 통제실로 진입했을 때는 긴장은 했을지언정 이렇게까지 소모된 상태는 아니었는데.

“인력을 좀 충원해주면 되겠네. 아닌가?”

“……그것도 방법입니다만.”

약간 뜸을 들이다 그리 대답하면서 눈알을 굴리는 모습이, 악질 상사에게 마구 굴려지면서도 다른 방법이 없어서 더 높은 상사에게 이르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이를  다 이른 게 아닌가싶겠으나, 뭔가 더 있는 거겠지.

“원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야.  이제 정말 가보겠네.”

유진이 거기까지 말하자, 그는 반쯤 체념한 것처럼 한숨을 내쉬었다. 가재는 게 편이고 초록은 동색이라고, 어쨌건 아직 완전히 신뢰할 수 없는 이들보다는 애니의 기강 다지기에 힘을 실어주는 게 맞았다.

물론, 유진이라고 그저 전적으로 맡기기만 할 생각은 아니었다. 유진은 밤늦게 할 말이 있다며 찾아온 애니에게, 그 일에 대해 물었다.

“어떻게, 얼마나 압박했기에 그런 반응이 나오는 거야?”

“본격적으로 압박하지도 않았습니다, 유진. 그저 처리 과정에서 생기는 비효율을 지적함과 동시에, 이전 관리자들에게 편승하여 횡령 등의 행위를 저지른 자들을 즉석에서 해고하고 재산 압류 처리를 했을 뿐입니다.”

답변은 명쾌했고, 그에 대한 유진의 감상 또한 명쾌했다. 그렇게 질러버리니까 중앙 통제실 요원들이 그렇게 되지. 관리자가 무력으로 바뀐 마당에, 갑자기 들쑤시면서 해고와 재산 압류를 휘두르니 다들 긴장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다. 인력이 빠져나간 만큼 일의 양도 늘어날 테고.

“충격요법이 효과는 괜찮겠지만, 그래도 뭐든 적당히 해.”

“사실, 지금 유진에게도 충격요법을 실시하려는 중입니다. 천천히 설득하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빠를 겁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야. 유진은, 자신이 충격씩이나 받아야  상황에 무엇이 있는가 잠깐 고민해보았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뒤이어 들어오는 사람을 보자 완전히 날아갔다.

“셀린? 왜?”

“……난 절대로 애니의 제안에 동의할 수 없어.”

스륵, 스륵. 유진이 ‘충격’에 허를 찔려 아무것도 못하는 사이, 옷자락이 여체의 살결을 스치며 벗겨지는 소리가 겹쳐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니, 이게 뭐야.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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