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8화 〉 양과 늑대(7) (138/207)

〈 138화 〉 양과 늑대(7)

* * *

당연한 말이지만, 맥코인 전대가 유진에게 전한 것은 여태까지 그들이 수집한 정보만이 아니었다. 이후 전대의 이동 예정 계획 몇 가지와, 추가 함선을 파견할 때의 연락 수단 정도는 있었다.

“하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시민들은, 그, 무고한 이들 아닙니까.”

“이미 연방의 시민들은, 연방이 아닌 무고한 시민들의 시체더미 위에 서 있는 꼴입니다. 그래, 무고한 이들은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이 꼴을 두고 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오글릭 사제.”

함대 구성은 클리어 플래닛 포스트의 생존자들이 타고 온 대형 수송함에, 여기저기서 모인 빛의 교단 소속 함선 중 구축함 두 척과 어뢰정 여덟 척이었다. 아무리 무주공산이라도 그 정도는 되어야 유사시 호위 비슷한 거라도 할 수 있었으므로, 이런 중요한 일엔 이 정도 호위는 당연했다.

그 ‘이런 중요한 일’이 과연 무엇인가 하니.

“그래도 이건 너무 가혹합니다. 연방 포로들을 이용한 연방 구역의 감염 확산이라니. 겨우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고향을 파멸로 몰아넣을 길이 되는 게 아닙니까.”

“연방이 이런 짓을 벌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다시 연방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다시 기회가 생기면 가장 앞에 서서, 이 스테이션과 우리 꼬맹이를 붙잡으러 올 놈들이란 말입니다.”

“……천사님을 위한 일이기에 저와 교인들이 나서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에겐 너무 가혹한 몫입니다.”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연방 포로들이 있다. 주로 여기서 전멸한 전략 기동 함대의 포로들이고, 3전대에서도 극소수나마 귀환하겠다는 이들이 있었다. 아이브스는 그들을 아직 처리하지 못한 스파이라 여겼으나, 실제로 그럴지는 모를 일이고.

“방법은 간단합니다. 해방될 포로들을 감염시키고, 이 실패작을 주입하는 겁니다. 식사를 이쪽에서 담당하는 와중에 수면 유도제를 사용하면 어렵지 않을 거고, 그 실패작을 주입한 사람은 당분간 증상이 억제되긴 하니 시한폭탄이 되겠죠.”

“그로 인하여 어떤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싫지만, 자꾸만 상상하게 됩니다.”

치료제의 개발 과정에선 당연히 실패작이 나온다. 특히 아무리 작아도 스테이션은 스테이션인 와중에, 치료제 개발에 온 역량을 쏟아 빠르게 개발에 성공한 상황이라면 그만큼 실패작도 많이 나왔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실패작 중에, 잠시 감염을 억제하는 듯하다가 나중엔 오히려 확산이 빨라지는 물건이 있었다. 양산도 설비만 갖추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고, 애초에 그렇게 많은 양을 생산할 필요도 없어 클리어 플래닛 포스트의 생존자들이 타고 온 수송함 내에 갖춘 설비만으로도 필요 물량을 충당할 수 있을 정도였다.

“긍정적으로 봅시다. 이 생물병기를 이용하려던 연방은 오히려 역으로 당할 거고, 원래 당했을 이들은 치료제의 전파로 살아날 겁니다. 그리고 살아날 이들이 더 많겠죠.”

“생명의 무게는…….”

“숫자로 판단해선 안 된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에겐 다른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할 겁니까? 꼬맹이를 인피니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함대의 규모 확장이 불가피합니다. 그런 와중에 이 스테이션을 버립니까? 아니,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이 정도 설비의 스테이션, 순양함까지 건조할 수 있는 간디 디포의 시설을 다시 손에 넣을 기회가 언제 올지는 모르는 일입니다.”

오글릭 사제를 포함한 교단 사람들의 장점 아닌 장점은, 기본적으로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는 건전한 종교인들이면서도 하니엘과 관련된 부분에 관해서는 그런 요소에 영향받지 않고 지극히 객관적인 시각을 견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지금도 연방의 무고한 시민들까지 죽게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 괴로워하면서도, 당장 하니엘이 연방의 추격을 뿌리치고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다는 사실에는 동의하여 이 일이 나서고 있지 않은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빛의 교단에게 있어서 가장 우선되는 것은 하니엘의 안위다.

“정의와 명분은 모두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건투를 빕니다, 오글릭 사제.”

“……알겠습니다. 천사님을 위하여.”

마찬가지로, 출항은 조용하게 이루어졌다. 아무리 명분을 갖췄어도 크게 알려지긴 곤란한 일임은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게 포장하더라도, 결국에는 감염 사태를 일부러 퍼뜨린다는 행동이 변하진 않는다. 명분이 있고 없고 하기 전에, 어쨌건 교단의 동기는 하니엘 한 사람을 위해 다른 이들을 희생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아, 그래도 이렇게 일찍 이용할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무슨 말이긴요. 치료제와 미완성품을 함께 보내지 않았습니까? 왜 함께 보냈는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목적지가 내우주라면 굳이 알아볼 필요도 없겠죠? 난 이 주변을 확실히 장악하고 안정화한 후에나 그럴 줄 알았는데, 좀 일렀다는 말입니다, 유진 제독.”

그리고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이브스가 유진과 따로 면담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부터 말해야 하나. 유진은 잠시 머리가 어질함을 느끼며 그런 고민을 했다.

“그걸 어디서 알았습니까? 미완성품까지 실려있다는 건 정말 극소수만 알고 있는 사실인데.”

미완성품을 실었다는 부분은, 출항한 함선의 승무원 중에서도 그 작전을 수행할 교인 승무원과 러쉬모어 함대의 핵심 간부 일부 외엔 거의 없었다. 그 외에는 기껏해야 미완성품 공급에 협력한 연구소 직원 일부, 거기에 미완성품 생산과 분류를 담당한 협력자 몇 명이 끝.

“정말 아무 능력도 없이, 그저 대충 먼 외우주에 죽게 만들겠다는 이유로 적당한 명분을 붙여서 장거리 정찰 함대를 맡은 게 아니라고만 해두겠습니다. 사람은 비장의 수단 몇 개는 가지고 있어야지요?”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두루뭉술한 미소를 지으며 알려주지 않았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사실 그게 당연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리 러쉬모어 함대에 합류했다 하더라도, 아이브스를 비롯한 3전대는 아직 연방의 색채가 강하다. 거기에 함대 소속 승무원들을 섞으려 해도 분위기가 마치 물과 기름 같았으며, 이제야 개인 단위의 교류에서 조금씩 어울리기 시작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샜다면 교단에서 샜겠군요.”

“아마 그렇지 않겠습니까?”

유진이 한 번 쿡 찔러보았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의뭉스러운 되물음이었다. 그러면서 띤 미소는 여전히 그녀 특유의 자신만만한 분위기. 여기서 뭘 더 어쩔 수 있겠는가?

다만, 그나마 현재 이 스테이션에서 연방의 색채가 강한 3전대에 정보를 줄 곳으로 교단이 유력한 건 사실이었다. 빛의 교단이야 본래 연방에서 물 밑으로 지원하던 곳이었으므로, 어느 정도 지위가 있는 이들이라면 연방의 색채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진 않기 때문이다.

현재 빛의 교단이 스테이션에 합류하여 연방을 향해 단검 끝을 은밀하게 들이미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연방이 교단의 존재 이유이자 최종적 가치인 하니엘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이용하려 든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면 3전대는 적어도 아직까진 소녀에게 수작을 부리려 하는 기미조차 없었고, 오히려 괜한 오해를 피하려 스스로 접근을 제한하고 있었다. 거기에 사실상 본국으로부턴 버려지기까지. 교단이 딱히 거부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

“그래서 그 내용을 어디까지 말하고 다닐 셈입니까?”

“말하고 다닌다뇨? 참, 뭐가 좋다고 그렇겠습니까? 안 그래요? 그 내용을 퍼뜨린다면 상당히 그럴싸한 이야기를 덧붙여서, 거기에 우리 3전대가 뭔가 도움을 줬다는 내용을 더하지 않으면 득이 될 게 없을 텐데 말입니다.”

하니엘의 장난기가 그저 순수한 느낌이라면, 아이브스의 장난기는 다른 사람이 곤란해하는 모습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쪽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고 아예 악의가 듬뿍 포함된 건 아니나, 당하는 쪽에선 짜증을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바라는 게 뭔데요.”

“우리 3전대에 도크 사용 우선권과, 필요한 인비지늄을 얻는 것에 도움을 줬으면 합니다. 아무래도 속이 썩어들어가는 할머니들이기 때문에, 이참에 함선을 개장할 생각입니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3전대의 사정이 스테이션 사람들에게 먹혔고 일단 러쉬모어 함대에서 관리한다니 넘어가기는 했지만, 안 그래도 사용할 곳이 많은 인비지늄을 제공하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그 자체의 가치도 가치이지만, 스테이션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인비지늄의 양 자체가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어디서 채굴하거나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이전에 왔다가 이물에 감염되어 자멸했던 연방 전략 기동 함대의 잔해를 파먹고 있었다. 그게 다 떨어지면, 당장 인비지늄을 그만큼 대량으로 구할 구석이 없다.

거기다 인비지늄을 쓸 정도의 함선 개장이라면, 정말 본격적으로 함선을 갈아엎겠다는 뜻이다. 거기에 드는 물자나 인력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렇게 개장한 이후의 성능을 고려하면 그냥 내주기엔 아직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

“무리한 부탁이군요. 감염 행성 폭격에서 상당한 역할을 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리도 모자란 인비지늄을 넘겨주는 건 곤란한데요.”

“아, 내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군요. 인비지늄을 달라는 게 아니라, 얻는 걸 도와달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전부 다 가지겠다는 것도 아니고 말입니다.”

인비지늄을 얻는다? 그 내용을 듣게 되자, 유진으로서는 아무래도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인비지늄을 수급할 수 있는 수단은 파괴된 연방 기동 함대의 잔해에서 수거하는 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반란군의 여러 거점을 찾아볼 수도 있겠으나, 최우선 대피 물자로 지정되어 어지간한 군수품보다 우선순위가 위인 인비지늄이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어디서 얻을 수 있다는 겁니까? 도움이 필요하든 걸 보니, 방해가 없는 것 같지는 않고.”

그러므로, 아이브스의 이 이야기는 한 번 들어볼 가치가 충분했다. 인비지늄의 확보 자체가 어려워 보통은 격침한 적함에서 수거하는 가운데, 그 외에 조달 수단이 있다면 당연히 관심을 가질 만했다.

“자, 여깁니다. 이곳에서 약 5만 광년쯤 떨어져 있는, 반란군 인비지늄 채광기지죠.”

“이걸 어떻게 알고 있는 겁니까?”

“내가 지휘하던 게 장거리 정찰 함대인지라, 본연의 의무에 충실했던 것으로 해둡시다.”

해둡시다라니. 묘한 어감에 유진이 인상을 찌푸렸으나, 그 이상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사실 자세한 사정 보다는, 눈앞의 홀로그램 지형에 더욱 관심이 가는 게 사실.

“전형적인 채광 시설인데, 지대공 포대가 좀 많군.”

유진도 용병 생활을 하면서 이런저런 채광 시설을 여럿 봐왔고, 개중엔 인비지늄 채광 시설도 존재했다. 그러므로, 아이브스가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지 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맞습니다, 제독. 대공포대가 상당히 많고, 모두 무인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아마 반란군 수뇌부에서 철수 당시 제어 권한에 제한을 걸어놓고 접근하는 모든 대상을 격추하도록 만들지 않았나 합니다. 주변에 접근을 시도하다 격파된 함선 잔해가 떠다니고, 그중엔 기존 반란군 소속 함선의 잔해도 있더군요.”

도망은 참 뻔뻔하게 친다 싶더니, 그 와중에 필요한 조치를 아무것도 안 하고 도망친 건 아니구나 싶었다. 인비지늄이 나오는 행성 자체가 매우 드문 와중에, 돌아올 나중까지 생각해보면 일단 봉쇄해두는 것이 맞았다.

거기에 신경을 쓸 여유가 있었다면, 더 많은 생존자를 구출하는 것도 할 수 있었지 않았을까 싶지만.

“그런 곳을 어떻게 도우라는 건지? 이물 감염이 없다 치더라도, 그 자체의 화력만으로도 상당한 곤란함을 겪을 텐데요. 우리 전력으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얼마나 철저하게 손을 써놨는지, 유진의 눈에는 도저히 돌파할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인비지늄 채광기지이니, 그 방어시설에 빈틈이 쉽게 보이는 게 이상한 일이었겠지.

“하지만 여기,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당신이 질적 주력을 맡아주면, 내가 양적 주력을 맡아서 지상을 장악할 수 있습니다. 저기서 뭐가 얼마나 나오건, 당장 나한테 줄 건 내 함선들을 모두 개장하는데 필요한 정도면 됩니다. 그 분량이 충족될 때까지 생산량의 반을 나눠달라는 겁니다.”

얼핏 들어보면 그럴싸한 조건이었다. 채광기지의 운영권을 넘길 테니, 그 채광기지를 장악하는데 도움을 달라는 것이다. 게다가 양적 주력이 아닌 질적 주력이라지 않는가.

“질적 주력? 나한테 질적 주력이라고 할 게 뭐가 있다고?”

문제는, 현재 이 스테이션에 딱히 질적 주력이라고 표현할 함선이 없다는 것에 있었다. 오히려 승무원들의 숙련도나 조직력만 따지면, 질적 주력은 3전대가 맡고 스테이션에서 양적 주력을 맡는 쪽이 더 적절하다.

“순양함 ‘우랄’이 있지 않습니까. 내게도 순양함은 있지만, 그렇게 극단적인 화력 중시형은 없습니다. 게다가 무장이 너무 극단적이라 문제지, 다른 성능에서는 내 휘하의 순양함 ‘줄리오 체자레’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대단하지 않습니까?”

생각해보니, 객관적으로는 몰라도 상대적으로는 그렇게 볼 만했다. 사실 3전대의 순양함 줄리오 체자레의 경우, 우랄처럼 극단적인 무장을 달려고 해도 그 출력과 내구성 때문에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본래 FSS 트라이던트였던 우랄은, 외형은 꽤 바뀌었을지언정 그 동력원이나 장갑, 방어막, 기타 장비는 연방 기준으로도 일류였다. 그리고 이 우주에서 연방 기준으로 일류라면 다른 기준으로도 최소한이 일류다. 괜히 유진이 연방 대형함이 찾아왔을 때를 대비하여 그걸 개조하기로 한 게 아니다.

“그럼 필요한 건 화력입니까?”

“맞습니다, 제독. 뭐, 혹시 만약의 경우가 염려된다면, 제가 우랄에 승함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3전대 소속에선 저 혼자서요. 작전 통제를 위한 중계에만 협력해주면 됩니다.”

아직 신뢰가 충분히 쌓이지 않았다는 점을 고려하여, 아이브스 본인이 만약의 경우 우랄을 나포할 가능성까지 미리 예방해두었다. 그녀가 없어도 3전대가 스테이션을 쑥대밭으로 만들리라는 협박은 서로 협력 관계가 아닐 때의 이야기였고, 지금처럼 일단 협력 관계인 와중에는 또 다른 이야기였으니까.

“우랄의 화력이면 방법이 생깁니까?”

“아, 그 부분이 정말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 알려주는 부분이기도 하죠. 듣고 싶습니까?”

그 누가, 어떻게 여기서 어떻게 듣기 싫다고 할 수 있겠는가.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