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4화 〉 기회주의자(3) (144/207)

〈 144화 〉 기회주의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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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대 강습 해병대의 방어시설 장악은 놀랍도록 빨랐다. 문제아들만 모아놨다더니 실력 때문에 문제아가 된 건 아니라는 듯, 자동화 방어시설의 화력과 전술을 상당히 빠르게 돌파한 것이다.

물론, 이는 3전대 강습 해병대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애초에 애니 같은 본격적인 인공지능도 아니고, 그저 주어진 상황에만 대응하도록 설계된 수준의 자동화이니 조건만 갖춰진다면 공략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그리고 그 조건은, 몸을 사리지 않은 구축함들의 동반 강습과 아이브스의 적절한 지휘로 이루어진 화력 지원으로 채워졌다.

어쩌겠는가. 유진은 좀 덜했으나, 셀린이나 다른 함교 요원들로서는 감탄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걸 직접 봤으니, 아이브스와 3전대를 향한 시선도 조금씩은 바뀌기 시작했다.

“구축함 세 척이 회생 불가에 다른 구축함들도 멀쩡하진 않고, 초계함과 상륙정 손실도 상당해요. 강습 해병대는 2할이 사상. 이걸로 당분간 우리 3전대는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게 됐네요. 연방일 때처럼 어쨌건 기본적으로 훈련은 된 보충병을 받을 수도 없으니까요.”

거기에 아이브스의 그런 말이 엄살이 아닐 정도로 3전대의 피해가 제법 커서, 아무리 연방을 아니꼽게 보는 사람이라도 3전대의 역할을 부정할 수는 없게 되었다. 비록 간디 디포의 운영을 반쯤 인질로 잡혀있긴 하나, 그래도 이 정도 희생했으면 스테이션의 일원이라 봐줄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 그걸 핑계로 또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을 멋대로 데려다가 훈련해 병력을 보충하겠지.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그럼에도 적대적으로 나오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었다. 본래는 맥코인 대령의 휘하에서 반란군에 속해있던 이들이 주로 그랬다. 저렇게 말한 것도, 맥코인 대령과 그 부하들이 스테이션에 흡수되면서 소속을 스테이션 직속함대로 옮긴 사람이었다.

“스테이션에서 허락해준다면, 그럴 생각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 허가해주시겠습니까? 유진 제독?”

­ 제독! 설마 정말 그걸 허락할 생각은 아니겠죠? 저놈들에게 보충병에 인비지늄까지 줘버리면, 다시 연방에 합류하겠다고 도망쳐버릴 겁니다!

저렇게 항변하는 스테이션 직속 함대 구축함장의 말이, 스테이션 내의 극렬한 반 연방 성향을 대표하는 말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리고 약간 귀찮게도, 스테이션 내에는 그런 극렬한 반 연방 성향을 띈 사람이 제법 많았다.

그나마 트라이던트의 함장이었던 프라이하이트 대령이 생물병기의 원흉을 밝혔음에도 이 정도였다. 과학기술 실증군과 3전대가 같은 소속은 아니더라도, 어쨌건 연방군은 연방군 아니냐 하는 것이다.

“지원자를 모집해서 훈련할 권리는 주겠습니다. 다만 그를 위해선 사전에 얼마나 모집할지 그 숫자를 확실히 해야 하며, 스테이션에서 지정한 감독관이 모집과 훈련 절차를 참관해야 합니다.”

“고맙군요, 유진 제독. 이로서 걱정은 좀 덜었어요. 이런 곳에서 병력 보충도 못하고 서서히 말라죽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니까요?”

실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으면서. 유진은 그 말을 속으로 삼켰다. 채광기지 공략 직후, 통신 중계를 열어 결과를 확인하고 직후 대처를 정하는 자리가 아니었다면 분명 그렇게 말했겠지.

­ 안 됩니다! 제독! 이건 말이 안 됩니다! 해달란 대로 다 해주면, 나중에 무슨 일을 꾸밀지 모르는 게 연방 놈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감독관은 3전대의 이전 소속이었던 연방에 엄격한 기준을 가진 이들로 구성할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준비해두겠습니다.

유진에게는 다행스럽게도, 시종일관 적대감을 드러내던 스테이션 직속함대의 구축함 함장은 그 정도로 납득했다. 그가 스테이션 내 반 연방 성향의 대표 격임을 고려하면, 다른 반 연방파도 이 정도 조치로 충분히 납득한다고 보면 되겠다.

당연히 그런 감독관들이 들러붙는데, 아무리 아이브스에게 용을 빼는 재주가 있더라도 적잖은 곤란을 겪을 게 분명했다. 사실, 유진도 어느 정도는 그런 부분을 노리고 한 말이기도 했다.

“그 정도는 받아들여야죠. 자, 그러면 여기에도 전초기지를 형성할 건가요? 사람들도 이주시키고?”

“조금이라도 인구밀도를 분산해야 하니 말입니다. 여전히 스테이션의 인구 밀도는 과밀하고, 모든 물자는 조금이라도 많은 게 좋습니다. 이 행성의 근본은 적도 부근의 채굴기지이고 적도를 제외하면 죄다 영구동토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자원이 아예 안 나오는 것도 아닌데다, 농사가 아예 불가능한 환경도 아니니까요.”

지표면 기후 전체가 거주와 생산에 적합한 행성은 흔치 않다. 그나마도 개발에 드는 비용보다 개발 후 뽑아낼 이득이 더 큰 행성은 더 적다. 상징적인 통제력이나 영향력이 필요하거나, 아니면 그 한 뼘밖에 되지 않는 공간이나마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어지간하면 손대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그 어떤 열악한 환경도 재고하게 만드는 자원이 있으니, 바로 그 인비지늄이었다. 당연히 다른 자원 채굴이나 농사의 효율이 나쁜 지대이지만, 거기에 인비지늄 채광 시설이 있다면 일단 곁다리로 충분히 확장할 만했다.

애초에, 스테이션 자체가 인구 과밀로 고생하고 있었으므로 다른 선택지도 없었지만.

“그러면 이곳 식민지 방어병력은 기존 다른 식민지만큼 하는 겁니까?”

“그것보단 더 강화해야죠. 아무리 주변에 우릴 위협할 적대 세력이 없다시피 해도, 여긴 인비지늄 채광 시설이 있으니까요.”

유진의 말을 정석이었다. 식민지 방어에 함선을 할당하느라 점점 스테이션 함대의 피로도가 올라가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인비지늄 채광 시설의 방어병력을 일반 식민지 수준으로 맞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연방제 생물병기에 의해 주변이 완전히 박살 나긴 했다. 이 주변에선 용병 파견 연합 스테이션이 거의 유일하게 멀쩡한 세력이고, 당장은 그냥 무방비로 두더라도 딱히 공격할 세력은 없었다. 여전히 간간이 나타나는, 간신히 살아남아 아직도 감염을 옮기는 소수의 소형함들만 통제할 수 있으면 된다.

하지만 그런 무주공산이기에, 더욱 준비해둘 필요가 있었다. 차라리 여러 세력이 뒤엉키는 상황이었다면, 각 세력 간의 동맹이나 적대 관계를 이용한 정치적, 외교적 무엇인가로 채광 시설의 안전을 도모해볼 수 있었겠지. 하지만 이런 무주공산에선, 인비지늄 채광 시설을 노리고 외부에서 세력이 유입될 수도 있었다.

그런 일이 벌어지려면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게 여러 사람의 생각이었지만, 세상일은 또 모르는 거니까.

“그럼 그걸 우리 3전대에 맡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당분간 우리 3전대는 실전에 투입되긴 어려운 상태고, 동시에 신병도 모집해야 합니다. 마침 여기엔 감독관을 맡을 의욕으로 넘치는 사람들도 있고, 간디 디포라도 3전대 전체를 한꺼번에 수리할 수는 없으니 여기서 몇 척씩 천천히 왕복하면 됩니다.”

아. 그런 감탄사가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정말로 감탄한 게 아니라, ‘뭐 어떻게 저렇게 노골적이고 뻔뻔하게 말할 수가 있지?’하는 의미에서 나오는 감탄사였다.

말이 경비이지, 그렇게 되면 3전대가 인비지늄 채광 시설을 사실상 관리하게 되고 만다. 행정력이야 스테이션의 그것을 빌릴 수밖에 없겠으나, 그게 그렇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될지는 해 봐야 알겠지만.

“좋아요. 그러면 우린 그로 인해 3전대에게 생기는 전력 공백을 대신해, 우리 스테이션 직속함대가 간디 디포를 인계받겠습니다. 이곳에서 나오는 모든 원재료는, 스테이션 직속 수송선으로 간디 디포로 옮기면 됩니다.”

스테이션에서 아이브스를 가장 많이 상대해본 사람이 누구냐면, 이견의 여지도 없이 유진이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런 경험에 걸맞은 대응을 내놓았다.

확실히, 아무리 3전대의 전투력이 뛰어나도 숫자 면에선 부족했다. 간디 디포 하나만 관리하던가, 아니면 인비지늄 채광 시설 한 곳만 관리하던가 한다면 모를까, 둘 모두를 관리하기엔 부족한 면이 많았다.

그러므로, 현실적인 이득과 효율을 내세워 이곳을 관리하려 든다면 유진 또한 현실적인 이득과 효율을 앞세워 간디 디포를 가져가면 그만이었다.

­ 찬성입니다. 3전대는 이곳의 관리를 담당하고, 스테이션에서 간디 디포의 관리를 인수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현재 실시간 연락이 가능한 범위 내의 반 연방파 수장 격인 직속 함대 구축함의 함장도, 유진이 말한 바가 무엇인지 깨닫고 아이브스의 대답이 있기 전에 재빨리 말을 거들었다. 인비지늄 채광 시설이 중요하긴 하나, 현재 용병 파견 연합 스테이션에게 있어선 간디 디포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행성에서 여러 원자재를 생산할 수는 있겠으나, 현재 이 주변에서 그렇게 생산한 원자재를 빠르게 가공할 수 있는 설비는 간디 디포가 최대로 갖추고 있었다. 다음인, 유이한 시설이 스테이션이었으나, 원자재를 가공하면서 다른 여러 공산품과 군수품을 생산하고 대형함을 건조, 수리할 수 있는 곳은 간디 디포밖에 없었다.

즉, 만약 3전대가 인비지늄 채광 시설을 완전히 장악하려 들더라도, 간디 디포가 없다면 써먹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인비지늄 뿐이겠는가. 그 행성에서 나오는 거의 모든 원자재도 마찬가지.

“알았어요. 이런 시기에, 이런 관계에선, 서로를 확실히 신뢰할 수 있는 담보라는 게 중요하니까요.”

다만, 아이브스도 거기엔 순순히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일단 현실적으로 3전대가 인비지늄 채광 시설과 간디 디포를 한꺼번에 장악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이고, 여기서 반대한다고 다른 방법이 생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이브스의 속내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라도, 그녀는 약간 멋대로 굴지언정 현실까지 거부해가며 일을 벌이는 부류는 아니었다. 애초에, 3전대는 현재 연방에도 돌아갈 수도 없고 스테이션이 도와주지 않으면 편제를 유지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좋습니다. 필요한 물자를 요청하면 최대한 내어드리죠. 그럼 일단 주변을 장악할 병력을 내려보내겠습니다.”

“3전대로 충분한데요?”

“아닐 겁니다. 정말 중요한 시설이니, 내가 직접 살펴보았다는 사실관계 정도는 있어야 나도 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습니다.”

과연 이건 어떨까. 3전대와 적대하는 건 유진에게도 상당히 골치가 아픈 일이겠으나, 그렇다고 아이브스가 은근히 자신의 영향력을 늘리려고 나오는데 너무 약하게만 나갈 수도 없었다. 스테이션의 수장으로서, 굳이 연방 출신이 아니더라도 바깥에서 굴러들어온 돌에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되는 일이기도 했고.

“좋아요. 그러면 같이 돌아봅시다. 애니 양도 함께 내려오나요?”

“자동화 방어 시설의 최종적인 무력화를 확인하고, 재생해서 써먹을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애니만한 적임자가 없으니 말입니다.”

애니가 인비지늄 채광 시설의 자동화 방어 설비를 장악하면, 만일의 경우 3전대가 채광 시설을 장악하고 일을 벌이려 해도 최소한의 제동장치로 작동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애니의 능력이 이전 같지가 않아 작정하고 일을 벌인다면 할 수는 있겠으나, 손실이 생기는 것은 물론 일을 벌이는 것 자체가 굉장히 빠른 시기에 드러나고 말겠지.

“그럼 말 나온 김에 곧장 내려가죠.”

“좋습니다. 셀린, 돌아올 때까지만 제독 대행 부탁할게. 애니는, 준비 됐지?”

“됐습니다, 유진. 이미 상륙에 필요한 인선도 선발해놓았으며, 방금 상륙을 결의함과 동시에 연락을 보내놓았습니다.”

애니의 일처리는, 항상 그렇듯이 빠르고 신속했다. 다른 네트워크를 멋대로 침범할 수 있었던 예전의 능력은 억제되고 있더라도, 일단 장악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건 따라갈 사람이 없었으니.

“그럼 됐네. 뭐해요? 갑시다.”

“역시, 유진 제독은 시원시원해서 좋군요.”

그렇게 함께 내려가는 인선에는, 당연히 코울슬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사실상 애니의 개인 경호원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는 그는, 일단 그 큰 덩치와 외형에서부터 어지간히 심각한 사태도 폭력 없이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열쇠였으니까.

일단, 우랄은 스테이션 직속함대와 함께 대기권 바깥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강하하는 건 상륙정 몇 척과 초계함 한 척. 거기에 유진과 애니, 코울슬로를 비롯하여 스테이션 직속함대 소속의 육전대 병력이었다.

“지상 장악은 성공적입니다, 전대장님. 현재 통제실에서 방어 시설의 통제권 장악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고생했어. 방어시설 통제권 장악은, 여기 애니 양이 마저 하게 될 거야. 스테이션의 수석 시스템 관리자이니, 얌전히 넘겨드려.”

“예, 전대장님!”

일단 실제로 사상자를 내면서 이곳을 점령한 사람들이니 꽤 반발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강습 해병대 지휘관은 너무나도 순순히 아이브스의 말을 따랐다. 문제아들만 모아놓았다더니, 아이브스도 그 ‘문제아’에 들어가는 터라 죽이 잘 맞는 걸까? 유진은 실없는 생각을 했다.

“그럼 통제실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힐끗. 유진과 애니를 훑는 3전대 강습 해병대 지휘관의 눈빛은, 딱히 어떤 감정이 담겨있진 않았다. 그저그런, 사무적으로 그저 한 번 살펴보는 눈빛.

“의외로 단촐한 규모입니다.”

“반란군은 연방만큼 자원이 충분하지 않으니까요. 연방이 다른 건 몰라도 건축물이나 구조물 하나만큼은 큼직큼직하게 잘 지었는데, 반란군은 좋게 말하면 효율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너무 비좁네요.”

아이브스의 능청스런 대답. 애니는 그 대답을 들으면서, 제어 콘솔에 자신의 단말기를 연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어 콘솔에 전원이 들어오며 통제권을 장악했다는 표시가 빠르게 들어왔다.

“빠르군요. 정말 빠릅니다.”

그 신속함이 강습 해병대 지휘관의 감탄을 자아낼 정도였으나, 그 감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탄식으로 덮였다. 통제실의 감시화면을 작동하자, 가장 가운데 화면에 가장 크게 나타난 무엇인가 때문이다.

“저거, 그 생물병기 보관용기 아닙니까? 연방 함선에서 발견했던 것과 똑같군요.”

화면에 비친 모습에는, 어째선지 연방의 생물병기 보관용기가 잔뜩 쌓여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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