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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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그거였을 겁니다. 그 이전에도 도시 단위의 시위는 제법 있었지만, 그래도 아직 연방 정부는 인류를 위하며, 지위고하와 재산 유무와 무관하게 인류 종족이라면 보호하기 위해선 뭐든지 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심각하게 번지진 않았었으니까요.”
반연방 조약에, 정확히 말하자면 러쉬모어 함대에게 항복한 연방 우주군 장교가 그렇게 운을 뗐다. 본래 전함이 포함된 전대를 지휘하기엔 지나치게 젊고, 계급도 고작해야 대위로 상당히 낮았으며, 그 전함이란 것도 살펴보니 여기저기 손상을 당한 정도가 제법 컸다. 누가 봐도 전투를 치르면서 나온 상태.
다른 구축함들은 그나마 상태가 양호했는데, 정황상 전함이 상대의 이목을 끌고 화력을 받아내는 사이 구축함들이 먼저 초광속 항행으로 도망쳐왔다는 논리 전개가 떠오르기 충분했다.
“하지만 그 믿음이 깨진 거군.”
“그렇습니다. 같은 인류 사이에서도 빈부격차와 수명 격차는 점점 벌어져만 가지, 특히 변방 행성이나 거주지는 아예 자원이나 조달하는 반식민지 찬밥 취급이지. 그나마 거기까진 어쩔 수 없다, 숭고한 희생이라는 말이 통해왔는데, 그런 일이 벌어진 겁니다. 봉쇄 대상에 같은 인류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연방이 만든 생물병기인 만큼, 연방에겐 그 대응책이 있었다. 비록 인류에게만 통하는 물건이긴 하나, 그래도 그쪽에도 치료제가 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연방 측에서 작정하고 생산력을 집중하면, 적어도 연방 방향으로 퍼지는 생물병기 정도는 어렵지 않게 통제할 수 있었다.
“그게 그렇게 심각했나? 체계적인 치료를 위해서라도, 환자군을 격리하거나 일정 지역을 봉쇄하는 건 당연한 절차인데.”
“제독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리고 처음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처음 당분간은 그런 목적이었답니다. 그런데, 감염이 그 봉쇄를 뚫고 퍼지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죠.”
실제로도 연방은 생물병기의 전파 경로를 통제하여 반란군 구역을 휩쓸도록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변수가 생겼으니, 바로 유진이 보낸 내우주 원정함대의 위장 치료제들이 바로 그것.
물론, 외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치료제만 잔뜩 싣고 있었고, 현지에서 파악한 결과 그 내부에 숨겨진 의도는 여전히 들키지 않은 채였다. 그리고 유진이 직접 이끌고 온 러쉬모어 함대에서는, 바로 그 부분을 이용했다.
“그래도 여전히 연방은 연방이었을 텐데.”
“이전이라면 그랬겠죠. 하지만 그 폭로가 터진 이후부턴 아니게 됐습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연방에서 제작한 생물병기가, 연방에서 의도한 대로 외계인과 반란군을 비롯해 평소 ‘밥이나 축내는’ 변방까지 정리하기 위해 이용됐다는 부분을요.”
연방 구역에서의 생물병기 피해는,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는 이른바 변방 행성계에서 주로 일어났다. 사실 연방 정부는 중요한 곳을 우선으로 보호했던 것일 뿐이겠으나, 피해를 받는 변방 행성계에선 생각이 다를 것이다.
러쉬모어 함대가 찌른 부분은 그쪽이었다. 빛 뿌리기로 순식간에 감염이 해결되는 영상과 함께, 연방이 변방을 고분고분하게 만들려고 의도적인 감염 확산 제어를 하고 있다는 내용. 치료제가 있는 연방이 갑자기 그 방역선이 뚫렸는가 싶더니, 정작 중요한 곳은 어떻게 막아내고 변방 행성계만 곤욕을 치르고 있다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만했다.
“그게 연방 구역 전체로 퍼지고…….”
“그것을 기점으로 연방의 다른 변방 행성계에서, 도시가 아니라 대륙, 행성, 거주지 단위의 거대한 소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쯤 되면 소요 사태가 아니라 반란이었고요. 안 그래도 평소에 불만이 많던 변방 행성계가 드디어 폭발한 겁니다.”
그걸 보면서, 연방 구역 내의 다른 변방 행성계가 어떻게 느꼈을지는 명백했다. 그리고 거기에 이전에 감내하던 여러 차별이 더해지니, 변방 행성계에서 반란에 가까운 소요 사태가 일어났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연방은 인류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세운 세력이다. 그런데 연방인데, 같은 인류를 길들이겠답시고 일부러 감염되도록 만든 것이다. 신뢰가 얼마나 크게 금이 갔을까.
“그래서 곧장 반란이 시작된 건가?”
“곧장은 아닙니다. 반란에 가까웠지만, 그 이전까진 그래도 분명 소요 사태였단 말입니다. 시민들이 길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나 무장하지 않았고, 각 행성계나 거주지의 지방 정부가 시민들을 아슬아슬하게 제어하면서 연방 정부에 그 사태를 진정시킬 조치를 요구하고, 연방 외의 선택지가 더 없었다 여겼기에 아직 연방에서 빠져나갈 의도를 가진 곳은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쩌다가?”
연방 내에서 꽤 괜찮은 가문 출신이었을 젊은 대위는, 유진의 그 물음에 목이 타는지 물을 거칠게 들이켰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답답했던 건지 잠깐 사레가 들릴 정도로 급하게 마신 그는, 몇 번의 기침 후 숨을 가다듬곤 말을 이어갔다.
“전략 기동함대 하나가 스테이션급 거주지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렸습니다. 현재 파악한 바로는, 해당 스테이션에 접근하는 전략 기동함대를 향해, 시위대가 항의의 의미로 일제히 쏘아 올린 폭죽을 스테이션 측에서 계획한 매복 공격으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전략 기동함대 측에서는 스테이션 지방 정부에서 도움을 요청한 것 자체가 함정이었다고 판단한 겁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군.”
“예, 여처구니없고, 정말 말도 안 될 정도로 한심스러운 일이죠.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사실이 어떠하건 간에, 전략 기동함대가 그날 여전히 연방에 충성하던 변방의 스테이션 하나를 완전히 불태웠습니다. 생존자는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스테이션이 갑작스런 공격을 받으면서 주변에 되는대로 구원을 요청하면서 상황이 일파만파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변방 행성계의 다른 행성과 거주지에선 환장할 노릇이었을 것이다. 기껏 시위대를 아슬아슬하게 진정 상태로 두면서 연방 정부에 도움을 요청했더니, 그 연방 정부가 전략 기동함대씩이나 동원해선 거주지를 순식간에 불태워버린 상황 아니었겠는가.
“원래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는 사실도 함께 퍼졌나?”
“그러긴 했습니다만, 그걸 누가 믿었겠습니까? 순식간에 변방 행성계에서 연방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본래라면 전략 기동함대가 곧장 동원되어 거기에 연방을 탈퇴하려는 움직임을 막아야 하겠으나…….”
힐끔. 말 끝을 흐리면서 일시적으로나마 자신이 총 책임자로 지휘했던 전함을 살피는 그. 그리고 이 전함은, 애니의 분석 결과 본래 연방 우주군 전략 기동함대 소속의 함선이었다.
“전략 기동함대라고 이런 상황에서 무조건적인 충성을 보이진 않았고.”
“말씀 그대롭니다. 당장 저도 출신지가 그 변방 행성계 중 한 곳이고, 저와 함께 온 함선들도 대부분 승무원이 변방 행성계 출신입니다. 물론, 중앙 행성계를 두고 정 반대편의 변방 출신이지만, 그렇다고 거부감이 없겠습니까?”
“연방이 그런 면에선 미묘하게 허당이지. 유사시 진압에 거부감을 줄이겠다면서 다른 구역 출신을 배치했으면, 거기서 공통분모를 만들진 말았어야 할 거 아냐.”
다른 지역 출신자들로 이루어진 부대는, 유사시의 진압 활동에서 같은 지역 출신자들로 이루어진 부대보다 더 적극성을 보인다. 이는 진압의 강도가 크면 클수록 두드러지며, 특히 사살 명령이 떨어졌을 땐 극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것도 그거 나름이지, 지역만 달랐지 같은 변경 행성계 출신자들이 잔뜩 포함된 부대를 진압군이랍시고 보내선 안 되는 일이었다. 그나마 그 변경 행성계의 반항으로 전략 기동함대의 사상자가 생기거나 그만큼 고생해보기도 전에, 다짜고짜 전부 죽이는 식으로 진압하라니 거부감이 안 느껴지는 게 이상한 일.
“시작은 11기동함대였을 겁니다. 전함 한 척에서 선상 반란이 일어나 함장이 바뀌었죠. 하다못해 순양전함 정도였다면 통째로 격침하는 걸 고려해보았겠지만, 하필 전함이라 강습 해병대로 탈환을 시도했습니다. 결과는, 강습 해병대가 집결하자마자 11기동함대의 제독이 타고 있던 전함에서 또 선상 반란을 일으켜 제독을 사살했고요.”
“그렇게 기동함대 하나가 날아갔고, 나머지는?”
“제가 파악했던 것만 6기동함대, 8기동함대, 10기동함대 셋에서 선상 반란과 내분이 일어났고, 5기동함대는 기동함대 통째로 명령을 거부하고 연방의 관할을 벗어났습니다. 일이 그렇게까지 되고 나서야 우리 9기동함대에서도 일이 터졌어요. 1기동함대부터 4기동함대까진 중앙 행성계 출신이라, 아마 반란이 일어나진 못했을 겁니다.”
대위의 증언에, 유진은 머릿속으로 연방의 기동함대가 어떤 꼴인지 하나씩 세어보았다. 1부터 4까지는 반란이 일어나진 않았고, 7기동함대는 감염 때문에, 17기동함대는 프로스트 테라에서 전멸했으며, 5기동함대는 통째로 이탈, 6부터 11까지는 반란으로 조각난 상황.
“함대 부호가 비지 않나? 12부터 16은 있어야지. 프로스트 테라에서 17기동함대가 전멸하는 걸 봤는데.”
“12부터 17번까지의 여섯 개 전략 기동함대는 상설이 아닙니다. 보통 지방 함대에서 차출한 함선들을 재조직하여, 일반적으로 외우주나 그 경계로 파견하는 용도입니다.”
그래서 프로스트 테라에서 그런 꼴이 났던 건가. 연방군 관점에선 그만큼 공적 올리기는 좋은 배경이나, 상설 편제보단 조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정형화, 일원화된 지휘 체계 및 교리 덕분에 평균 이상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게 괴물 같은 점이었고.
“그러면 지금 연방에 남은 전략 기동함대는 넷뿐인가?”
“반란이 모두 성공하진 못했을 겁니다. 반란을 진압한 후 합류하여 재조직할 기동함대까지 고려하면, 여섯 개는 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여섯 개. 그래도 그게 어딘가. 본래는 11개 전략 기동함대를 상대로 생고생을 해야 했을 일은, 그 절반으로 줄인 셈이었다. 그나마 남은 전략 기동함대도 그만큼 담당 구역이 늘어났을 상황이라 온전한 전력이라 평가할 수 없고, 거기에 반란 끝에 살아남아 이쪽에 합류할 함선들도 있으니 반연방 조약의 전력 강화도 기대해볼 만했다.
결정적으로 함대 전체가 통째로 반기를 들었다는 5기동함대.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는 아직 모를 일이나, 적어도 연방 편을 들지는 않을 것이므로 연방에게도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 분명하다.
“연방에 반기를 든 변방 행성계와 접촉해야겠는데. 변방 행성계들이 어떤 상황인지는 아는 바가 있나?”
“다른 곳은 다 모르지만, 여기 이곳은 현재 감염 사태로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연방군이 격리 과정에 있었는데, 일이 터져버리니 그대로 철수했죠. 지방 정부는 감염을 감당해내지 못했습니다. 애초에 치료제 자체 생산조차 안 되니까요.”
그렇다. 애초에 이런 일이 터진 것도, 변방 행성계에서 감염 사태가 터졌을 때 대응을 잘못했기 때문이다. 인류를 위한다면서 인류를 그렇게 잘라냈으니, 그 인류를 위한다는 명분 하나만 남아있던 연방의 곪고 곪아왔던 모순이 터졌다.
그런 시점에서, 묘하게 현실감각이 없는 듯 있는 연방 정부의 판단은, 변방 행성계의 회유를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스테이션 하나를 통째로 날려버린 일은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으나, 그 오해를 풀 길이 막연해진 이상 아예 포기해버린 것이다.
사실 중앙 행성계만 따지더라도 인구가 수천억에, 산업 능력은 대부분 거기에 몰려있었고, 농업력도 산업형 농업으로 충분한 식량을 조달할 수 있었다. 유일하게 문제가 되는 게 인비지늄인데, 그래도 연방이니 뭔가 방법이 없진 않을 테고.
그러므로, 사실 중앙 행성계는 생존과 무력 유지만 목적으로 보자면 변방 행성계의 도움이 필수적이지는 않았다.
“그러면 그쪽으로 빛 뿌리기를 가야겠군. 거기에 아는 사람 있나?”
“몇 명은요. 그 부근이 작전구역인지라, 가볍게나마 인맥은 있었습니다. 이미 날아가진 않았을까 걱정이기도 합니다만.”
하긴, 그의 계급은 고작 대위였다. 물론 전략 기동함대 소속이니 대위 중에서도 제법 무게감이 있긴 했겠으나, 그래도 대위는 대위다. 가진 인맥이라고 해 봐야 그렇게 대단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그 대단하지 않은 인맥이 아직 살아있으리라는 보장이 없었다. 기껏해야 지방정부 하급 공무원 정도일 텐데, 혼란이 이어지는 도중에 무슨 일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은 지위가 아닌가.
“그래도 빛 뿌리기에 전함과 동행하지. 당장 그 전함을 운용할 수 있는 인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그 말씀은…….”
“당연히 전체적인 지휘는 이쪽에서 하겠지만, 운용 인원은 기존 인원을 중심으로 하겠다는 말이야. 연방을 배신했다며?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인원을 제외하면 모두 승무원으로 받아주지. 연방이 외계인보다 증오하는 게 배신자니까, 다시 돌아가기도 어려울 거고. 전부 변방 행성계 출신자들만 남았을 테니 연방으로 복귀할 이유도 없잖나.”
변방 행성계 출신이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반란에 참여하기까지 했는데, 다시 그런 연방에 복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만약 상황이 극한에 몰려 그런 사람들을 받아주더라도 나중에 숙청할 게 분명했으며, 삶의 터전을 버려가면서까지 복귀할 이유도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전 연방 출신입니다.”
“그래서 뭐? 이쪽에서 연방 출신이 얼마나 많은데. 아이브스, 들어와.”
유진이 말하자, 토머스 재퍼슨 내에 갖춰져있던 취조실에 아이브스가 들어왔다. 그러더니, 들어오자마자 넉살 좋게 말한다.
“말도 텄는데 이름 부르지? 메리앤이라는 좋은 이름이 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자기 이름을 그렇게 칭하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네.”
“뭐, 그만큼 자신 있으니까. 어디 한번 보자고. 아이브스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딱 느꼈지? 메리앤 아이브스, 반연방 조약 용병 파견 연합 스테이션 함대, 3전대장이야.”
그녀가 특유의 마이페이스로 밀어붙이며 대위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정작 그 대상이 된 대위는 멍청하게 입을 벌린 채 넋이 나가 있었다. 이상하진 않은 게, 연방에서 아이브스라는 이름은 그만큼 컸다.
“아이브스? 그 아이브스 맞습니까? 하지만 대표적인…….”
“중앙 군인가문이지. 알아, 알아. 그 정도로 알고 있으면, 나도 들어봤겠네? 외계 종족 우호주의자, 실천하는 이상주의자, 집안에 반기를 든 반항아. 어떤 쪽이 가장 유명해?”
“시, 실천하는 이상주의자로, 가장 유명하십니다…….”
“들었지? 이렇게 말하는 사람 치고 겉도는 외곬수 아닌 사람이 없어. 인류니 뭐니 하는, 연방의 진짜 존재의미를 왜곡하는 꼴통들과는 아예 천적이지. 어때? 따라오겠어? 대위?”
연방의 유명인사였다더니, 그만큼 추종자들도 있는 모양이었다. 실제로, 대위는 여전히 멍하니 넋을 놓은 채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간신히 대답을 대신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더 뭘 어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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