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혁명분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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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화재가 일어난 곳이 제어실 쪽은 아니었으므로, 화재 진압은 금방이었다. 통제실을 먼저 장악한 후, 화재가 일어난 구역을 밀폐하고 산소 공급을 일시 중단하는 것만으로 진압은 금방이었다.
애초에 화재가 일어난 구역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곳이 아니었다. 거주구와 편의시설이 밀집된 곳으로, 시설 유지 측면에선 모르겠으나 당장 유진과 조약 결성 함대에게 있어선 가장 쓸모없는 곳이었다.
오히려 그 화재 자체보다는, 다른 부분에서 신경 쓸 게 더 많았다.
“이건 어떻게 된 거야?”
글쎄, 내부에서 서로 싸운 건 확실한데 왜 싸웠는지, 어쩌다 한쪽만 강화복을 입는 일방적인 싸움이 됐는지는 모르겠네. 어쨌건 마지막 생존자가 통제실 제어 콘솔에 닿으려고 안간힘을 썼던 것 같긴 하다.
통제실로 가는 길목은, 화재는 없었어도 제법 치열한 교전의 현장이었다. 대부분의 시신이 강화복을 입지 않은, 전술적으로 보자면 간소한 복장이었다. 그렇다고 강화복을 입은 시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시신의 숫자로 보면 입지 않은 쪽이 훨씬 많았다.
시신 중에 장교의 숫자는 극히 적습니다. 하사관도 얼마 안 됩니다. 강화복을 입지 않은 시신은 거의 일반 사병입니다.
“그럼 강화복을 입은 시신은 다 장교들이고?”
그렇습니다. 마지막 생존자로 추정되는, 치명상을 입고 통제실 제어 콘솔에 닿으려 안간힘을 쓰던 강화복 시신도 장교입니다.
아이다가 분석을 내놓긴 했으나, 거기에서 뭔가 새로운 사실이 도출되는 건 아니었다. 안에서 내분이 있었다. 그래서 서로 총질을 했으며, 강화복을 입은 쪽이 그렇지 않은 쪽을 아주 압도적으로 밀어붙였으나, 끝내 양측에 생존자는 없었다.
그저 강화복 없이 쓰러진 쪽은 사병들이 절대다수이고, 강화복을 입은 쪽은 장교라는 것만이 유일한 구분점일 뿐. 그들이 왜 싸웠는지, 어떻게 갔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제어 콘솔 작동한다. 어, 이것 봐라. 진짜 날 아직 연방군 취급해주네.
“지구권 방위사령부라면서 업데이트는 느린가봐?”
아니, 말이 지구권 방위사령부지, 여긴 그냥 은퇴하기 직전에 머물다 가는 한직들이 오는 곳이란 말이야. 딱히 보강할 것도 없어서 예산은 안 나오지, 지구권 방위 목적이라 함대를 제대로 지휘하는 것도 아니지, 그렇다고 이런 일이 생기기 전까지 실전을 겪을 거라고 생각한 곳도 아니지. 사령관이 어지간히 의욕적이지 않으면 이것저것 구식이기 딱 좋아.
가주 등록을 위해 내려간 메리앤의 평은 꽤 현실적이었다. 확실히, 연방에서 이 지구권 방위사령부가 실제로 기능하는 상황을 상정한 마지막이 과연 몇 년 전이었을지 짚어내는 것조차 어려운 게 사실이다. 비록 쇠퇴하고 있었다지만, 태양계에 5함대가 나타나는 그 순간까지 지구가 정말로 공격받으리라 예상하긴 어려웠으리라.
애초에 그런 곳까지 빡빡하게 굴러가는 집단이 이상한 일이지. 실제로 수도를 위협하는 적성세력이 있거나, 수도가 공격, 혹은 점령당한 경험이 있는 집단이라면 모를까, 연방의 역사에 걸쳐 지구와 태양계가 공격당한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과거 기계의 반란 때에도, 기록상 태양계는 공격받지 않았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건 둘째고, 일단 가주 등록부터 확실히 해둬.”
바로. 일단 다른 가문 사람들 생존 여부부터 확인해야 하니까, 시간은 좀 걸릴 거야. 진행 상황 공유할게.
직후, 우랄의 화면에서도 저 아래의 제어 콘솔에서 진행 중인 작업 내용이 보이기 시작했다. 일단 지구를 비롯하여, 통신이 닿는 곳에서 아이브스 가문의 누군가가 살아남았는지에 관해 살피는 것.
현재 태양계에 남은 기반시설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문제가 있었으나, 그건 맨카인드의 보조로 어떻게 해낼 수 있었다. 전문적인 통신 시설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손색이 있겠으나, 맨카인드 수준의 출력과 연방 우주군 총기함으로의 기능 덕분에 일단 초광속 통신으로 주변의 탐색은 가능했다.
다만 여기서 유진을 비롯한 조약 결성 함대에서 다소 염려하는 것은, 과연 이 신호를 받은 연방 구성원들이 이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점이었다. 아마 처음에는 맨카인드가 살아서 연방의 새로운 중심이 되리라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합류하지 않고 조약 결성 함대와 행동을 함께 하는 것으로 뭔가 이상함을 느끼겠지.
다음은, 맨카인드의 정보 단말에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겨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 정도로 중요하다면, 그리고 자살한 고위 관리자들과 장교들의 속내처럼 탈환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정말 무슨 수를 써서건 맨카인드를 탈환하려 들겠지.
연방이 이젠 완전히 몰락했다고 봐도 괜찮을 정도라고 하나, 그들에겐 아직 태양계 방위에 참여하지 않은 제3 전략 기동함대라는 전력이 남아있었다. 제5 전략 기동함대를 비롯한 반란군 주력 함대가 이미 걸레짝이 된 이상, 상대할 단일 전력이 조약 결성 함대밖에 남지 않아서 오히려 움직임은 상당히 자유로워진 편.
“초광속 통신이 되돌아오는군요. 연방 잔존 행성계에서 맨카인드의 최고 사령관에게 향후 방침과 지침을 문의하는 통신이 꽤 많습니다. 개중에는 제3 전략 기동함대도 있습니다, 유진.”
아니나 다를까, 맨카인드의 신호가 연방 곳곳으로 퍼지자, 그 신호를 받은 곳곳에서 맨카인드에 여러 회신을 보냈다. 아마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찾아낸 기분이겠지.
물론, 그들이 본 건 빛이 아니었다. 오히려 연방에겐 질이 정말 안 좋은, 반연방 조약이라는 집단이 노획한 전함일 뿐이었다.
“그대로 전달해. 여긴 반연방 조약의 조약 결성 함대이고, 맨카인드는 우리가 장악하여 이제부턴 히말라야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아, 피테쿠스는 로키고.”
“히말라야? 로키? 진심입니까? 유진?”
“왜? 뭐가 문젠데?”
“몰라서 묻나요? 이름이 그게 뭡니까? 뭐만 하면 산으로 붙이더니, 이젠 좀 큰 거 얻었다고 아예 산맥을 가져다 붙이는군요. 알프스 건부터 이미 예상은 했습니다만, 실제로 이러다뇨.”
“아, 빨리 해줘, 애니.”
애니가 한숨을 내쉬었으나, 여기선 그를 이길 사람이 없었다. 글쎄, 하니엘 정도라면 모르겠으나, 그녀는 무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는지 셀린과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이쪽엔 관심도 없어 보였다. 사실, 관심이 있더라도 딱히 유진의 네이밍 센스에 불평을 하는 쪽도 아니었고.
“돌아오는 반응이 폭발적이군요. 대부분은 불신과 의문이고, 나머지는 저주입니다. 한 건, 당장 내놓지 않으면 함대로 공격하겠다는 경고도 있군요.”
“그게 그 제3 전략 기동함대인가?”
“맞습니다, 유진.”
“좋아, 그 정도면 됐어. 이제 제3 전략 기동함대가 어디에 있는지는 확실히 알게 됐네.”
“그건 전략적 이점입니다. 대신 모든 연방 전력이 우릴 목표로 하겠군요. 음, 생각해보니, 어차피 맨카인드가 우리 손에 들어왔다는 사실은 퍼질 거였고, 원래부터 연방의 최우선 목표는 우리 반연방 조약의 조약 결성 함대였군요.”
그랬다. 어차피 누군가 맨카인드를 알아볼 테고, 그러면 소식이 퍼져나가는 건 순식간이었다. 연방에 맨카인드, 아니, 히말라야를 되찾을 이유가 충분하다면 그때라도 할 것이고, 굳이 그게 아니더라도 연방에게 조약 결성 함대는 최대의 골칫거리이자 최우선 공격 대상이었다.
현재 이 내우주에서 제3 전략 기동함대와 맞설 수 있는, 유일한 함대 전력이 바로 조약 결성 함대였다. 조약 결성 함대만 없으면, 연방도 어떻게든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인증 획득했어. 회신 많이 왔지? 그런데 그중에 우리 집안 사람은 한 명도 없네.
“한 명도?”
어, 한 명도. 뭐 집안 행사라도 있어서 죄다 지구에 모여있기라도 했나. 그렇게 나를 가문에서 떼어놓고 싶어 하더니만, 가문이 나 빼고 다 떨어져 나갔네.
메리앤의 어조는 매우 냉소적이었다. 하긴, 아무리 마이페이스에 이러니저러니 해도, 가문이 자신을 버리려 했는데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그러면서도, 어쨌건 자신의 가문이고 집안이기에 아무런 감정이 없을 리도 없다.
그런 복잡미묘한 상황에서, 그 가문이 먼저 날아갔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을 리가. 물론, 유진은 굳이 거기서 그녀의 속내를 들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그럼 바로 돌아와. 히말라야의 정보 단말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
그래. 몇 명 남겨서,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도 확인하게 해볼게. 혹시 모르니까.
그래, 혹시 모르는 일이다. 아무리 그 이름에서 오는 중요성에 비해서 대단치 못한 지구권 방위사령부라 할지라도, 여기서 저런 일이 벌어졌다면 문제가 있을 것이다.
“그건 천천히 해도 돼. 우리 목적은 달성했잖아.”
그래도 그리 중요한 건 아니리라. 유진은 그렇게 생각했고, 메리앤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다르지 않았다. 자기들끼리 쏘고 죽이는 일이 그리 흔한 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아예 없는 일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그들의 상황이 극한에 처했었으니까.
“지구는 정말 전멸이네. 그 어떤 신호도, 그 어떤 징후도 보이지 않아. 생명의 근원이던 곳이, 이젠 죽음의 땅이 됐어.”
“예전엔, 인류가 우주 진출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을 때, 지구를 저렇게 만들 수 있는 무기를 서로 겨누고서도 마지막 방아쇠를 안 당겼습니다.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바로 저런 꼴이 날 상황에서 말이죠. 저는 그게 기적이라고 봅니다.”
“아, 정말 그래.”
그러므로, 우랄의 함교 요원들 모두가 잠시 그런 감상에 빠질 수 있었다. 잿더미가 된 지구. 이젠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연방. 그 와중에, 그 지구를 지킨다는 의무를 가지고서 마지막 순간에 내분이 일어난 달의 기지.
참 여러 가지 생각을 들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하물며, 지구가 저렇게 된 것도 본래는 그 지구의 가장 강력한 단일 함대 전력인 전략 기동함대였다. 자신이 휘두르던 가장 큰 칼에 목이 베인 꼴이니.
“연방 잔존세력 내전도 기대해볼 수 있나?”
“아저씨가 도발했잖아요. 아마 안 되지 않을까요?”
하니엘의 말처럼, 사실 유진이 거의 대놓고 지르다시피 하긴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맨카인드로 이름을 바꾸겠다는 선언을 통해 ‘니 전함 쩔더라’를 시전하지 않았는가. 투철한 연방 군인이라면, 열이 안 받을 수가 없다.
“제3 전략 기동함대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이제 내우주에 남은 대규모 함대는 단둘, 제3 전략 기동함대와 조약 결성 함대뿐이니까요. 그리고 곧 반연방 조약 내에서 두 번째 대규모 함대가 생길 겁니다. 지금은 제3 전략 기동함대는 움직이지 못하며, 시간이 지나면 더욱 움직이지 못합니다.”
“지구랑은 상황이 달라, 꼬맹아. 여긴 명백히 연방의 중심이고 여기가 이 꼴이 나면서 연방도 엉망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반연방 조약은 딱히 어디에 이런 중심지가 없어. 굳이 중심지라면 우리 용병 파견 연합 스테이션이 되겠지만, 거기가 날아간다고 반연방 조약에 문제가 생기진 않아.”
연방은 인류가 중심이고, 그 인류의 고향인 지구야말로 최우선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구를 비롯한 태양계에 핵심적인 행정기능이 밀집되어 있기도 했다. 태양계 전체가 일종의 행정처였고 고위직의 집결지였으므로, 마비되고 나니 연방 전체가 무너지다시피 했다.
하지만 다른 곳은 달랐다. 아니, 애초에 연방이 그 연방이라는 이름값을 못하고, 지구와 태양계에 모든 기능을 지나치게 집중한 게 문제였다. 하다못해 반란군만 되더라도, 수도 성계가 작살났다고 곧장 연방처럼 무너지진 않을 것이다.
유진, 나 지금 맨카인드, 아니, 히말라야야. 정보 단말에 도착했어.
“금방 도착했네?”
그렇지. 바로 왔거든. 그럼 인증 획득했고, 준비 됐으니 바로 시작한다?
“좋아. 애니, 자료 받을 준비 해.”
정보 단말에서 무슨 내용이 나올지 몰랐으므로, 유진과 애니는 일단 히말라야의 정보 단말을 둘의 개인 단말로 연결해두었다. 바로 공개하긴 곤란한 정보일 가능성이 컸고, 그렇다고 메리앤 혼자 보는 것도 맞는 게 아니니까.
“이건 아무래도 예상외입니다, 유진.”
“왜? 뭔데? 뭔데요? 아저씨 나도 좀 같이 봐요!”
애니는 애초에 자신만 볼 수 있는 화면으로 보고 있었으므로, 하니엘은 유진에게 매달렸다. 유진이라고 주변에서 그냥 눈만 돌리면 볼 수 있는 화면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딱 붙었을 때 못 볼 정도는 아니었다.
“꼬맹아, 이따가 보여줄게, 이따가.”
“아, 진짜!”
예전 소녀일 때의 하니엘이 아니었으므로 얼굴이 곧장 훅 들어왔으나, 적어도 완력 면에선 유진이 밀어내는 것에 저항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유진은 내용을 천천히 살펴볼 수 있었다.
“애니, 메리앤, 같은 거 보고 있지?”
“그렇습니다, 유진.”
어, 맞아. 어디서 볼까?
“메리앤이 거기 그대로 있어. 나랑 애니가 갈 테니까. 지상팀은 이제 철수시키고, 바로 출발 준비하자고. 장소는, 음, 테라노바.”
좋은 생각이야, 유진.
“뭐야? 뭔데요? 나도 같이 가는 거죠?”
글쎄, 어쩔까. 유진은 잠깐 고민하다가, 그래도 하니엘이 같이 움직이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일단 우랄보다는 히말라야가 훨씬 더 강력한 전함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애니가 직접 가서 혹시 정보 단말의 내용이 다른 곳으로 새어나가진 않았는지 확인할 필요도 있었다. 그걸 염려할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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