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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3화 〉 혁명분쇄 (4) (173/207)

〈 173화 〉 혁명분쇄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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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것은, 일단 그 정보 단말이 어딘가의 외부와 연결되진 않았는지 다시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일전에 확인하긴 했으나, 다시 확실히 해둘 필요가 충분해졌으므로.

“각 행성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연방 기밀 프로젝트가 들어있는 정보 단말이라니, 연방도 급하긴 급했군.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았어.”

“한 바구니에 담지 않았다면 지구에서 다 깨졌을 계란입니다, 아이브스.”

“알아, 알아. 그래서 급하게 주워 담아서, 초광속 항해 준비 도중에 기습당하지 않을 위치까지 나왔다가, 우리한테 고스란히 뺏긴 거지.”

“내용물 중에 말도 안 되는 것들이 정말 많습니다. 하나하나가 치명적이군요.”

말 그대로, 계란이 한 바구니에 담겨있었다. 각 행성계에서 벌어지는 연방의 기밀 프로젝트들이 모두 담겨있었으니, 이 자체만으로도 현재 내우주에서 가장 중요한 정보가 된다.

하지만 이들이 이렇게 모여서, 이미 확인한 보안을 다시 확인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정말 여러 행성계에서 하나하나 가치가 매우 큰 프로젝트들이 진행되는 와중에, 유독 더 눈에 띄고 유독 더 치명적이며, 유독 더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

“가장 말도 안 되는 건 여기, 히페리온 성계야. 이것 때문에 여기에 모인 거고.”

“맞아, 히페리온. 거기가 우리 꼬맹이 복제체 데이터 예비 보관소고, 이후로 다시 만들고 있었을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

특히 히페리온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름의 성계에서는 복제체 데이터를 예비로 보관하고 있었고, 하니엘을 빼앗긴 이후에는 같은 특성을 가진 복제체들을 만들고 있었다. 하긴, 아무리 하니엘이라는 핵심 요소를 빼앗겼다고 한들, 연방이 그 중요한 것들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아마 시간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 연방은 또 다른 하니엘을, 이번엔 수십 명씩 만들어내어 진짜 중흥을 시작했으리라. 제5 전략 기동함대의 제독이 이러한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정말 기가 막힌 시기를 골랐다 할 수 있겠지.

그런 점을 하나하나 돌아보면, 그 꼴이 났음에도 전략 기동함대 다수가 멀쩡할 때의 연방이 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는지가 설명됐다. 그냥 기다리고만 있으면 그 많은 복제체들이 떡하니 나타나 하니엘에 맞서 연방을 다시 다질 텐데, 굳이 전력을 깎아 먹을 필요가 뭔가.

“그것도 히페리온에서 말입니다. 연방이 반란군 수도 성계에서 그런 일을 추진했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연방과 반란군의 협력이라니, 좀 더 깊게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그런 일이 외우주에서만 벌어졌을 리가 없어요.”

“맹점이지. 수백 년 동안 서로 총을 겨눈 사이라, 그런 협력이 전면적으로 이루어졌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한 게.”

“그렇습니다. 당연히 생각했어야 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서로 총을 겨누면서, 밑으로는 이미 악수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 설명이 되는군요. 서로 절대 공존할 수 없을 것처럼 굴면서 어떻게든 서로 전력을 다하진 않고 상대방이 전력 강화, 상황 안정에 쓸 시간을 줬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리고 최후에는 뒤통수를 쳤군. 이번 생물 병기는 애초에 연방에서 괜히 방해되는 반란군을 치워내기 위해 만든 거였고, 반란군은 빛을 이용한 통합 계획이 틀어졌다가 자기 핵심 성계에서 자리를 잡는데, 그걸 완전히 빼앗아서 주도권을 강탈하려 그랬고.”

“여기, 이 부분이 그 증거입니다, 유진.”

거기서 공유 화면으로 띄우는 것이, 바로 이번 생물병기 프로젝트와 반란군 수뇌 측의 대응이 고스란히 기록된 보고서. 그리고 거기에서, 유진은 꽤 낯익은 이름, 정확히는 누군가를 가리키는 명칭을 찾을 수 있었다.

“잘 칼라마스.”

“아는 사람이야?”

“내가 킬리만자로를 몰고 4인 팀을 이끌고 있었을 때, 이 꼬맹이와 완성된 복제체들이 화물로 적재되어 있던 무장 화물선 습격을 의뢰했던 용병 중개상이야. 반란군과 관련이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이어질 줄이야. 아마 이 작자도 자세한 정보는 모르고 그냥 이용당했겠지만…….”

잘 칼라마스. 유진이 하비에르라는 이름으로 구축함도 아닌, 고작 네 명뿐인 인원으로 킬리만자로라는 이름의 초계함 하나를 몰고 용병업을 하던 시절에 여러 의뢰인들과 중개를 서줬던 외계인 용병 중개상이었다.

이젠 머나먼 이름으로만 남아 다신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식으로 얽힐 줄이야. 그나마 용병 중개상 중에서도 어중간한 그 작자가 반란군과 연방의 가장 깊은 치부와 닿아있을 리는 없었으므로, 그저 중간에서 이용당한 입장일 테지만.

“그럼 어떻게 된 거예요? 아저씨?”

“반란군은 혹시 잘못되더라도 중간에서 잘라버리고 흔적을 끊을 수 있는 수단을 이용했고, 그게 잘 칼라마스였다는 거지. 그 의뢰를 받은 건 나였고, 그래서 네가 그렇게 돼서 나와 함께 있게 된 거야. 뭐, 이렇게 되길 바란 사람은 아무도 없었겠지만.”

반란군이 직접 나서서 그 무장 화물선, 델 아스트로를 공격하는 건 논외였다. 그렇게 직접적인 공격을 가했다면 연방에서는 거의 곧장 반란군이 연루되었음을 눈치챘을 테니까.

“여기 이름이 나온 걸 보면, 감추는 건 실패했던 것 같네?”

“시간은 충분히 끌지 않았을까. 의도대로 하니엘을 탈환했다면, 주도권을 잡을 때까지 필요한 시간은 벌었겠지. 예상 내에서 실패했다면, 자기 흔적을 완전히 지울 시간을.”

물론, 그 정도 다리를 건넜다고 연방이 찾지 못할 리는 없다. 실제로 이 문서에 잘 칼라마스라는 이름이 떡하니 나오지 않았는가. 반란군 측에선 어떻게든 감추려 했겠으나, ‘협력’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손을 써놨을 연방에서 못 알아낼 리가 없다.

이는 반란군 또한 당연히 알고 있었으리라. 그 ‘협력’ 과정에서 손을 써놓은 건 연방만이 아니었으므로, 반란군도 연방의 속내를 완전히 모르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고.

그런 결과로, 연방은 반란군을 하니엘과 그 복제체, 생물 병기를 이용해 아예 조져버리려 했을 것이고, 반란군은 기가 막히게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 직전에 선이 닿는 다른 집단을 동원하여 하니엘과 복제체를 수송하던 화물선을 습격했다.

“그럼 그렇게 된 게, 우연은 아니었다는 말이네요?”

“반 정도는. 내가 델 아스트로를 습격한 것, 그리고 반란군 구축함 전대가 그곳에 나타났던 건 우연이 아니었을 거야.”

어쩐지, 유진에게 있어선 반란군 구축함 전대가 너무 일찍 등장했다 싶었다. 다만 그들도 가장 깊은 곳의 치부까지 알진 못했기에, 그렇게 필사적으로 추적하는 것까진 하지 않았던 것이겠지.

“그럼 이제 어떻게 할 거예요? 이거, 그냥 두면 안 되잖아요, 아저씨.”

여기엔 하니엘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자신의 복제체가 있다지 않은가. 안 그래도 이미 아픈 경험을 겪었던 그녀에게 있어서, 또 다른 아픈 경험을 겪을 문제는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연방과 반란군이 협력했다는 증거를 여기저기 뿌리면서, 지나가는 행성계마다 무력으로 압박해서 그 내용을 인정하도록 만들자.”

“인정하면 넘어가는 겁니까, 유진?”

“맞아. 그 내용을 인정하고, 인정하는 내용으로 행성계 전체와 외부에 공식 성명을 내면 그냥 넘어가는 거야. 발이 빠른 친구들은 우리가 도착하기도 전에 알아서 성명을 발표할 거고, 히페리온 성계는 내외적인 압박에 시달리겠지.”

함대의 방해는 누구도 생각지 않았다. 조약 결성 함대에 이런저런 손실이 있었던 건 사실이나, 대신 연방 최신예 전함을 두 척이나 함대 전력으로 손에 넣었으니 실질적인 함대 전력의 차이에 관해선 말할 필요도 없었다.

두 척 모두, 이 우주에서 맨카인드에만 남아있는 중요 정보를 지키기 위해 항복했었다. 맨카인드는 그 자체로 문제였고, 피테쿠스도 맨카인드와 너무 근접한 위치에 있었기에 자칫 유폭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갈 거예요?”

“그럼. 잘 되면 우린 총알 한 발 쏠 필요조차 없을 거고, 나빠 봐야 우린 함선 선체에 난 생채기 가지고 수리하느냐 그냥 영광의 훈장으로 남겨두느냐로 떠들고 있을 거야.”

여기서 반란군에게 문제는, 연방이 반란군이 했던 수작질을 알아내고 그 보복으로 생물병기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는 점에 있었다. 반란군은 성계 하나하나씩 철저하게 와해되었고, 함대 전력도 반 토막에 났다가 거기서 또 반 토막이, 거기서 다시 한번 더 반 토막이 난 다음 또 반 토막이 나고 나서도 태양계 습격에서 또 반을 날려먹었지.

물론, 그래도 반란군에겐 여력이 있었다. 연방만큼은 아니지만, 연방은 잔당이 곧 내전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므로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지면, 반란군은 어느 순간엔가 함대 전력을 복구하고 확충하게 될 것이다.

시간만 주어진다면.

“바로 출발합니까?”

“일단, 필요한 자료를 연방 잔존 세력 전체에 뿌리고 나서. 히말라야가 있으니까, 그건 할 수 있겠지?”

“물론입니다, 유진. 적당히 위험하면서 적당히 자극적이고 적당히 치명적인 정보들을 선별해두겠습니다.”

너무 위험하고, 너무 자극적이며, 너무 치명적인 정보는 곤란하다. 예를 들면 하니엘의 복제체를 히페리온 성계에서 새로 만들고 있다는 정보는 단순히 연방과 반란군을 망치는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외에, 반연방 조약이 내우주 대부분을 집어삼키고 연방이 내전을 겪으며 반란군이 콩가루가 될 정보는 차고 넘쳤다. 연방이 가지고 있던 모든 기밀이 집대성된 단말이 아닌가.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연방의 모든 기밀은 아니었다. 많은 적당한 기밀은, 연방의 여러 중심 행성계에 걸쳐 있을 테지. 하지만 가장 치명적인 것들은 여기에 모여있었다. 연방 잔존 세력 사이에서 불신이 팽배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그러는 사이, 조약 결성 함대는 반란군 성계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순회하면서 이미 반란군이 기치로 내세웠던 혁명 따윈 허구에 불과하다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면 된다. 그러면 이 내우주에서 연방은 이미 갔고, 그나마 남은 부분도 더 잘게 쪼개질 것이며, 반란군도 같은 처지가 되리라.

“어? 그럼 나 빛 뿌리기 할 필요는 없는 거예요?”

“그래, 빛 뿌리기는 안 해도 돼. 거기까지 우리 사람들로 만들 생각은 아니니까. 거기에, 그러려면 시간이 좀 걸리잖아.”

“어, 당장 급한 일도 없지 않아요?”

“없긴 왜 없어. 히페리온 성계에서 했던 일이 끝나면, 우리 스테이션으로 돌아가서 함대에 전투순양함 넣고 인피니로 출발해야 하잖아.”

“바로 가요? 진짜로요?”

말은 안 했어도, 인피니로 언제 떠나느냐가 하니엘의 머릿속에 없을 리가 없었다. 이 근처에서의 일이 워낙 복잡하고 심각하게 돌아갔기에, 그에 관해 이야기를 꺼낼 틈을 못 찾았을 뿐이다.

“진짜로. 전함도 세 척이나 생겼겠다, 좀 떼어주고 가도 구축함 숫자로 완벽할 정도로 많고, 스테이션으로 돌아가면 순양전함까지 생기겠지. 출발할 준비는 다 끝나.”

“좋아요! 그럼 빨리 가요! 빛 뿌리기도 하지 말고, 빨리요!”

그러니 드디어 출발 일정이 구체적으로 잡혔다는 점에서, 하니엘이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여태까지 중요한 다른 일이 많았으므로, 말도 못하고 억눌려 있던 기간이 제법 답답도 했겠지.

얼마나 기쁜지, 유진을 끌어안은 하니엘의 등 뒤로 곱게 접힌 날개가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인피니에 뭐가 있건 있을 것이고, 그게 그녀 자신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을 건 명백했으니. 본래 그 존재가 무엇이건, 자신의 근원을 찾으려는 건 당연하고, 정말 중요한 일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미리 정하고 가야 하니까, 꼬맹이 넌 가서 쉬고 있어.”

“음, 알았어요! 이번엔 특별히 봐줄게요!”

드디어 인피니로 향하는 제대로 된 출발선에 섰다는 사실에, 하니엘은 아주 너그럽게도 다소 석연치 않은 부분은 넘어가 주기로 했다. 무엇보다, 여기서 그 내용을 정하는 게 조금이라도 빨리 끝나는 만큼, 인피니로 향하는 여정도 조금이라도 빨리 시작될 테고.

그렇게 하니엘이 완전히 사라진 후, 유진은 정보 단말을 좀 더 조작하여 새로운 파일을 띄웠다. 애니가 일부러 계속 숨겨놓았던 내용.

“그럼, 나도 인피니로 향한 여정의 동반자가 된 건가?”

“안 갈 생각이었어?”

“아, 물론, 그 잘난 연방 대가리들이 과연 뭐 얼마나 중요한 걸 숨기고 있는지 궁금하던 참이었어. 이런 것까지 나왔는데, 그래서 안 된다고 할까 봐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알아?”

정말 구시대적인, 종이로 된 문서를 보관하는 노란색 파일철 모양 홀로그램으로 표시되는 파일의 겉면에는, 누가 봐도 알아볼 수 있도록 ‘프로젝트 인피니’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곧 열리는 듯한 효과가 나더니, 어지간히 동체 시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내용을 확인하기 어려울 정도의 빠르기로 종이 형태로 표시되는 내용물이 후루룩 넘어갔다.

“뭐 나오는 거 있어, 애니?”

“인류 역사상 걸작으로 평가된 오페라의 모든 변주 형태가 담긴 파일입니다. 입수한 연방 암호 해독 프로젝트를 당장 적용해보면, 하니엘을 데리고 인피니에 도착하면, 우주의 근원에 해당하는 힘을 통해 전 우주를 지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나오는군요.”

그 내용에, 유진과 메리­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진심이야? 연방이 그런 걸 진심으로 믿었다고?”

그런 거대한 계획이 있었다는 면이 아니라, 그런 허황된 걸 실제로 믿었다는 면에서.

“하니엘의 빛은, 보기 전에 이렇게 쓰였다면 믿었을 겁니까?”

“……아니, 아니지. 그래, 이것도 진지하게 믿어봐야겠군. 일단, 꼬맹이한텐 나중에 알리고.”

애니의 말이 그럴싸했으나, 유진은 그 부분에 관해선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일단, 이게 다 끝나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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