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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7화 〉 혁명분쇄 (8) (177/207)

〈 177화 〉 혁명분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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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 시설은 정말로 히페리온 행성에 있었다. 그 위성이나 궤도 시설이 아니라, 히페리온 지상에 있었다. 사실, 보안 유지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위성이나 궤도 시설을 적당히 마련해두는 게 가장 좋은 데도.

“정말 여기에 있다고?”

“예, 그렇습니다. 저 밑에 있습니다, 제독 각하.”

그럼에도 유진이 더욱 놀란 것은, 그 시설이 바로 히페리온 성계의 행정 중심지인 혁명 의회 건물의 지하였다는 점이다. 사람들의 눈을 가능한 한 피할 필요가 있는 시설인데, 저런 곳에 박아뒀다니.

“아마 맞을 겁니다, 유진. 이 행성의 네트워크 중 물리적으로 한 단계 분리되어 있었던 구역 중 하나입니다. 보안이 최우선이라 치더라도, 상당히 불편하고 번거로운 일이죠.”

물리적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말은, 중간에 아예 손에서 손으로 전달하는 단계가 있다는 뜻이다. 종이 문서로 전달하건 저장장치를 물리적으로 분리해서 다른 위치에 꽂건, 직접 옮기는 단계를 거쳐 네트워크적으로는 완전히 분리된 장소.

확실히 번거로운 방식이나, 보안을 지킨다는 면에선 그만한 조치도 없었다. 거기에 평소에도 보안 유지가 빡빡한 게 전혀 수상하지 않은 시설이니, 생각해보면 꼭 그렇게 말이 안 되는 입지 조건만은 아니었다.

“그럼 빨리 확인하지. 메리­앤, 준비는 끝났나?”

­ 내부 확보는 끝났고, 지하 경로도 확인했어. 이대로 내려오면 돼.

유진과 애니, 하니엘까지 내려갈 예정이었으므로, 메리­앤이 그녀의 강습 해병대를 이끌고 구역을 우선 확보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히페리온 행성은 어차피 항복한 마당이라 매우 협조적이었으며, 강습 해병대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겐 꽤 위협적이기도 했다.

어쩌겠는가. 무력에 항복했으니, 이렇게 은근한 위압을 일삼아도 항의할 힘조차 없었다. 사실, 이대로 핵폭격을 맞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여겨야지.

“여기서부턴 장갑판이 있군.”

“지하는 철저하게 요새화되었습니다. 지상군이 동원할 수 있는 화력으로는 돌파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엔, 개폐가 가능한 장갑판이 있었다. 그 길로 접어드는 과정 자체가 몇 개의 보안문을 지나야만 했으나, 어쨌건 그렇게 요새화되었다는 게 중요했다.

일반적인 행정시설의 경우, 이런 식의 요새화가 이루어지진 않는다. 지하에 중요한 시설이 있는 건 매한가지이나, 애초에 중심 행정시설의 지하가 위험에 노출될 정도라면 이미 행성이 함락된 것이나 다름이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기준으로 이 모습을 보자면, 편집증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대체 뭐 때문에 이런 곳에 장갑판을 깔아두는 수고를 한단 말인가. 어지간히 중요한 게 아니고야 의미가 없는 것을.

“확보한 위치에 이상 없음. 이리로 들어가면 돼.”

그들을 맞이한 메리­앤의 모습은, 낯익은 목소리에 낯선 겉모습이었다. 입고 있는 강화복의 모습 자체는 딱히 이상한 게 없는데, 색깔이 뜬금없는 새하얀 색이었다. 설원 지역에서는 종종 쓰는 색이긴 한데, 그들이 있는 곳은 설원과는 거리가 멀었다.

“눈에 너무 띄는데.”

“눈에 띄려고 이런 거야. 지금은 과시할 때잖아.”

그녀의 말이 맞았다. 확실히, 지금은 과시할 때였다. 뭐, 그걸 몸소 나서서 하는 것에는 아무래도 자신의 인지도나 입지를 생각한 부분이 없진 않겠으나, 그 정도로 뭐라고 하는 것도 웃긴 일이다.

그렇게 적당히 납득하고 좀 더 깊은 지하로 내려가자, 그들이 목표로 하는 시설이 나왔다. 밝고 넓긴 한데, 연구를 위한 시설이라기에는 어딘가 좀 부족한 느낌이 드는 주변.

“연구 시설보다는 거주 시설처럼 생겼습니다.”

“어, 내가 자란 시설이랑도 좀 달라. 거긴 그래도 박사님들이나 이런저런 연구설비가 많아서 꾸준히 검사도 했는데, 여긴 그런게 없어. 아저씨가 보기엔 어때요?”

“전체적인 규모는 봐야 알겠지만, 연구시설보다는 지하 장기간 대피시설처럼 보이는데.”

다른 이들의 평가도 일맥상통이었다. 연구시설이라면 그래도 이런저런 설비가 보여야 했는데, 여긴 지하에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지극히 평범한 거주지역 같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지상에 핵폭격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잠잠해질 때까지 버티도록 만든 그런 대피소겠다.

“위에서 이곳의 실태를 알게 된 건 고작해야 며칠 전입니다. 예산을 받고 보고를 올리긴 해야지만, 시스템에만 의지하는 자들의 눈을 속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죠. 특히 이곳처럼, 물리적으로 한 단계 이상 단절된 곳이라면 말입니다.”

“아, 이 사람이 여기 책임자야, 유진. 이름이…….”

“그냥 박사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어차피 곧 없어질 시설 아닙니까.”

흰색 연구자 가운에 반 대머리를 한 사람이 다가와 말하자, 메리­앤이 그를 소개했다. 이름까지 소개하려 했으나, 그건 그 박사 쪽에서 거부했다.

“뭐, 원하는 대로 불러드리죠, 박사. 그런데 이곳의 실태라니, 무슨 말입니까?”

유진도 그 사람의 이름보다는, 그 박사가 말한 이곳의 실태라는 표현에 좀 더 관심이 갔다. 듣기로는, 위에서도 모르는 사이 이 박사라는 사람의 주도로 뭔가를 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이곳은 본래, 복제체를 배양한 후 어디까지나 보관을 목적으로 하는 시설이었습니다. 냉동보관 시설과 유지, 보수에 필요한 설비면 충분한 곳이죠. 실제로도 그렇게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만 제가 그 빛이라는 걸 접하고 만 것이죠. 그것도 아직 내우주에는 감염이 제대로 닿기도 전의 매우 이른 시기에요. 이곳의 운영 목적과 매우 관련이 클 것이라 예상되는 자료라, 우연히 들어온 자료를 필연적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요컨대, 하니엘이 용병 파견 연합 스테이션에서 막 빛 뿌리기를 시작하던 시점의 자료를 접했다는 말이다. 그걸 접한 사람 중 반란군 소속이 있었던 모양으로, 당시에는 생물병기와 반란군 사이의 접점이 없다시피 했으므로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빛에 감화되었다고 반란군에 적대적인 인상을 받을 때가 아니었으니.

“그걸 전해준 사람은 이 시설의 존재를 몰랐을 거고, 어쩌다 이 시설을 알 정도의 고위인사에게 보고가 올라가서, 그 정보가 당신에게까지 닿았군요.”

“그렇습니다, 제독. 그리고 그건 정말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게 아니었다면, 빛 뿌리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을 때 이곳의 아이들은 여기 이 천사님에게 대항해 무리하게 빛을 뿌렸을 지도 모릅니다.”

복제체가 충분히 완성되었다면 연방에서 진즉 빛을 뿌려댔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으니, 이는 이 시설의 복제체에 곧장 투입할 수 없는 어떤 결함이 있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은…….”

“지성과 인격이 있는 존재는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 법입니다.”

박사의 말이 끝남과 거의 동시에, 그 뒤쪽에서 소녀들이 나타났다. 키와 생김새는 놀랍도록 비슷하면서, 복장과 머리카락은 다 다른 게 인상 깊다.

다만, 주변의 다른 사람들은 거기서 느끼는 인상 깊음보다는 당혹감을 더 강하게 느끼는 듯 보였다. 다름이 아니라, 그 소녀들의 모습이란 게 지금처럼 커지기 전의 하니엘과 매우 비슷했기 때문이다. 머리카락 모양이 다르고 입은 옷만 다른 하니엘들.

“뭐야? 무슨 일이에요?”

“박사님, 나오라고 해서 나왔는데, 이제 괜찮아요?”

“야! 니네 총 들었다고, 어? 우리 박사님 괴롭히면! 어? 어? 어!”

거기에 요란하기까지 했다. 거기서 괜히 하니엘을 쳐다본 유진이었으나, 정작 그녀는 복제체들의 요란한 모습에 온 신경을 빼앗긴 채였다. 하긴, 자기가 작았을 때의 모습이 잔뜩 있어서 떠들고 있는 것 아닌가.

“천사님, 저와 제 동료들은 이 아이들을 지켜냈습니다. 언제 끝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서,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현실을 버텨가면서.”

그 박사라는 사람은, 굳은 표정으로 하니엘의 앞에 선 채 올려다보며 말했다. 딱히 꿇어앉은 건 아니었고, 그저 하니엘의 키가 좀 더 컸기에 자연스럽게 나온 구도였다.

하니엘의 안전을 생각하면 접근을 막았어야 했지만, 상층부를 기만하고 복제체를 이렇게 지켜온 사람이 이제서 하니엘에게 해를 끼칠 리는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게서는 그녀를 신앙하는 사람들 특유의 행동이 보였다.

외려 더 크게 반응하는 것은, 하니엘의 복제체 소녀들이었다. 이 상황이 어떻게 되어가는 건지, 박사님에 왜 저러냐는 둥, 그러고 보니 저기 있는 큰 언니가 우리랑 좀 닮지 않았냐는 둥 하는 소리가 많이 나왔다.

“그, 수고하셨어요.”

처음부터 이랬다면 모르겠는데, 갑작스런 행동에 당황했기로는 하니엘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교단 신자들이 종종 다가왔을 때 하는 것처럼, 반사적으로 날개를 펴고 작은 빛을 뿜어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천사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박사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된 모양이었다. 그때까지 굳어있던 표정에 웃음기가 확 돌더니, 인사하는 목소리엔 홀가분함만이 남아있었다.

생각해보면, 아무리 그의 상부에서 직접 살피러 오는 게 아니더라도 이렇게 계속 감추는 것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었겠지.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을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인가. 지금이야 연방과 반란군이 결탁해서 얽히고설킨 끝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는 게 다 드러났으나,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진 않았다. 언제 그게 드러나서 어떻게 도움이 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며, 애초에 드러날지조차 확실치 않았다.

“이제 어떻게 할 겁니까? 박사가 히페리온 상부를 속였으니, 그렇게 편하게 둘 것 같지는 않는데요.”

“제 역할을 했으니 된 거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빛을 직접 접하기 전까진 빛의 교단을 한심한 족속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내 역할을 다하고 직접 칭찬을 들었으니, 죽는다 한들 무슨 아쉬움이 있겠습니까.”

이런 시설의 유지를 맡길 정도였으니, 그 커리어나 이념적인 면에서 반란군이 극히 신뢰하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연방과 반란군이 협력했다는 가장 큰 치부이기도 하니, 도덕적인 면에서 적절하게 더럽혀진 인물이기도 할 테고.

그런데 그런 인물조차도, 그 빛 앞에선 저런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거기서 유진은 문득, 과연 이 빛의 근원이 어디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름대로 대가가 있는 듯하나, 아무리 봐도 그 위력에 비해선 대가가 싸지 않은가.

“저 아이들이 박사를 따른다면, 박사의 역할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닐 겁니다.”

“……절 받아들이겠다는 말입니까? 제독?”

“저도 이전에 연방의 복제체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오면서 고민도 했죠. 과연 복제체를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러면서 유진의 눈빛이 복제체들을 슥 둘러보자, 소녀들이 잠깐 움츠러들었다. 아무리 성격이 이렇고저렇고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자신들의 목숨을 쥐고 있는 게 유진임을 모를 리는 없었으니까.

“아저씨! 애들 겁주지 말아요!”

여기서 나선 것이 하니엘이었다. 유진이야 딱히 별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저 소녀들이 겁을 먹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거기에 그 누구보다 저 소녀들에게 깊은 동질감을 느낄 하니엘이 나서는 건 당연하다.

“뭐, 사실이 그러니까. 만약 딱히 의식도, 교육받은 적도 없다면 어떻게 할까 했는데, 이렇게 됐으니 우리가 책임져야지. 안 그랬다간 어떻게든 이용해먹으려고 안달 난 놈들이 달려들 텐데. 제대로 빛도 못 내는 애들을.”

저 소녀들은, 모종의 이유로 빛 뿌리기를 수행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그럼에도 하니엘과 닮았다는 것, 하니엘의 복제체라는 것만으로도 이용해먹으려는 자들이 많으리라.

“어? 우리 빛 낼 수 있는데!”

“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

“왜! 저기 저 천사님 언니도 빛 내잖아! 저 언니가 우리 원본 아니야? 원본이랑 친한 사람 같은데 괜찮지 뭐!”

아니, 뭐, 어쨌건, 이용하려 드는 자들이 더 많아질 건 당연한 일이다. 따지고 보면 유진을 비롯한 반연방 조약도 소녀들을 이용할 입장이었으나, 거기엔 결정적인 차이점이 하나 있다.

“빛의 교단에 맡길 거야. 내우주 곳곳에는 빛의 교단이 단독으로 차지한 스테이션도 몇 개 있으니, 거기에 머무르면서 사람들을 돕게 할 수도 있겠고.”

이쪽에는 그 빛을 무조건 신성시하여 우선으로 생각하는 빛의 교단이 있었다. 자칫하면 타락의 길로 빠지기 십상인 일반적인 종교세력과는 달리, 이들에겐 하니엘이라는 실존하는 절대자가 있었으므로 그녀만 멀쩡하면 타락할 위험이 지극히 적었다.

그런 교단이 운영하는 스테이션에서, 나머지 반연방 조약의 세력들이 보조한다면, 적어도 어중간한 놈들이 빛을 가지겠다면서 난리를 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면서 소녀들도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성장하고, 생각하여, 판단할 수 있겠지.

“저기, 우리 떨어져요?”

개중에 가장 용기 있는 소녀가, 박사와 유진 사이에 서며 물었다. 뒤에서 계속 속닥거리는 모습이, 다른 소녀들이라고 딱히 용기가 없어 보이진 않았지만.

“그건 당연히…….”

떨어져야 한다고 말하려던 유진은, 잠깐 말을 멈췄다. 소녀들이 떨어지기 싫다고 한다고 해도 떨어뜨려 놓아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는 유진과, 개중에 가장 용감한 소녀의 천진한 시선이 맞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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