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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5화 〉 빛으로 향하는 길 (8) (185/207)

〈 185화 〉 빛으로 향하는 길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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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 희망자들만 모아놓은 게 아닌 이상, 저 전투기들이 무력화된 시점에서 전투를 포기하고 후퇴를 시도할 게 명백했다. 기선을 제압당했고, 따라서 무리한 돌격을 시도하였으며, 그 와중에 총력을 쏟으면서 내보인 게 저 전투기였으니까.

당연히 대비는 되어 있었다. 수많은 대공 초계함과 어뢰정들이, 함열 곳곳에서 자신보다 더 큰 함의 그림자에 숨어서 전투기들이 접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본래 용도로 쓰인다 한들, 근접할 때까지 어느 한쪽에서 전투를 포기하지 않았을 때 구축함을 상대로나 간신히 효용을 발휘할 함선들을 개조한 대공함선.

“평화유지군 함대의 속도가 예상보다 더 빠릅니다. 일단 접근하려는 모양입니다.”

“적 주력함 무장 구성은?”

“원거리보단 근접거리에서의 교전에 더 유리하더라도, 어디까지나 우리의 구성에 비해서입니다. 접근하더라도 갑작스러운 화력 열세에 처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와중에 위협적일 것이 근접전에서의 화력 차이였으나, 그것도 성공적으로 근접했을 때의 이야기였다. 평화유지군 함대가 딱히 근접전을 노리는 구성도 아니었고, 러쉬모어 함대가 근접거리에선 아무것도 못하는 깡통 함대도 아니었다.

“전투기들을 아끼는데, 저게 뭘 할 수 있다고 저렇게 아끼는 거야. 애니, 전투기 무장 확인할 수 있겠어? 혹시 겉보기로는 알 수 없는 뭔가 있다거나.”

전투기의 외양은 그리 특별한 게 없었다. 굳이 꼽으라면 끝부분이 뾰족하다는 것 정도였는데, 그게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소행성지대나 데브리가 많은 지대에선, 저런 형태의 개인 우주선이 제법 많았으니까.

“미사일은 아니고, 레이저로 보입니다. 저 기수 부분의 뾰족한 부분이 레이저 집진기일 겁니다. 순간적인 초과출력으로 기체 크기 대비 강력한 레이저를 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자세한 성능이나 위력은 저 기체를 직접 뜯어야 알 수 있겠지만, 이렇게 겉으로만 봐도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게 애니였다. 그런 그녀가 그리 말했으니, 아마 저 전투기의 공격 방식이 크게 다르진 않으리라.

다만, 저것도 그렇게까지 특이하거나 이상한 건 아니었다. 소규모 주둔지에서의 국지 방어용으로 유인이건 무인이건 전투기를 운용하는 경우가 있긴 했고, 그럴 때 가장 흔히 사용되는 무장이기도 했다. 기체의 작은 크기로 인한 출력 제한을 어떻게든 극복해보려는 안타까운 몸부림인 것이다.

“대공 대응은 구축함 위주로 진형이 편성되어 있으니, 큰 문제는 아니겠네.”

“어차피 전투기입니다. 예상치 못한 바도 아니고요.”

그렇다. 그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바도 아니었다. 넋을 놓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렇게 사전에 예상하여 대비하고 현장에서 파악하기까지 했다면 큰 위협거리도 아니었다.

함대전은 게임이 아니다. 방어력이 아무리 단단해도 1씩 피해가 들어가서, 체력이 5만쯤 되더라도 5만 대 맞으면 터지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저런 전투기가 아무리 몰려들어 봐야, 어차피 본격적인 순양함에는 제대로 된 타격조차 주기 어렵다.

거기에 구축함과 대공방어 목적으로 개조된 초계함 이하 함선까지 있는 마당에야. 천 기가 넘는 숫자는 얼핏 대단해 보였으나, 실제로 러쉬모어 함대 규모에게 본격적으로 위협이 되려면 그에 열 배는 되는 숫자가 필요했다.

뭔가 특별한 수단이 아니라면 별 위협도 안 되는 전투기들이었고, 지금까지 모습으로 보자면 고작해야 그 과출력 레이저로 기껏해야 구축함 한두 척에 치명타를 입히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일 것이다.

­ 언니, 제독, 뭔가 이상해요. 평화유지군 함대가 내려가고, 전투기들이 상승합니다. 어, 전투기들이 우리 화력에 노출되고 있어요. 어떡하죠?

그런 와중에, 평화유지군 함대가 러쉬모어 함대를 기준으로 아래쪽 방향, 전투기들은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게 뭘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유진이 판단할 방향은 확실했다.

“전투기에 다른 무장이 발견되진 않았지?”

“그렇습니다, 유진. 전투기의 위협은 어디까지나 제한적입니다. 적 함대를 공격할 너무 좋은 기회라 오히려 의심이 들긴 합니다만.”

평화유지군 함대는, 러쉬모어 함대에게 자신의 상면을 노출하고 있었다. 그렇게까지 약한 부위인가 하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농담으로라도 강력한 부위는 아니었다. 주력함은 함선 하단에 주포를 장착하는 경우도 많았으므로, 화력 면에서도 오히려 열세가 되기 쉽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오히려 수상할 정도로 러쉬모어 함대에 유리하긴 했다. 마치 전투기들이 무엇인가를 하도록, 함대로 화력을 돌리라고 유도하는 것처럼.

하지만, 별다른 무장이 없는 전투기가 여전히 근접하지 못한 거리에서, 러쉬모어 함대가 상면을 노출한다고 뭘 할 수 있겠는가? 함체의 상면은 분명 강력하진 않았으나, 그렇다고 약점이라 할 곳도 아니었다. 고작 전투기 따위에 원거리에서 위협을 느낄 부분이 아니다.

“목표는 적 주력함대.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우랄과 라 말린체는 같은 함선을 노려서 포격. 나머진 아이다의 화력 통제하에 시간차 포격 개시.”

노리는 바가 있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평화유지군의 함대를 격멸할 기회를 그냥 보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전투기가 뭘 한다고? 하라지 그래. 아무리 과출력을 활용한다고 해도, 전투기의 화력으로는 러쉬모어 함대에, 특히 이런 원거리에선 도저히 치명타를 날릴 수 없었다.

그러므로, 러쉬모어 함대의 전면은 평화유지군 함대의 주력으로 향했다. 자연스럽게 전투기 집단은 함대의 위, 점차 수직에 가깝게 위치했고, 그쯤해서 전투기 집단도 러쉬모어 함대를 향해 기수를 돌렸다.

“애니, 대공 방어 함선들 대형을 함대 상면으로 재조정해줘.”

“알겠습니다, 셀린.”

셀린의 말에 따라 애니가 함대 진형 조율에 개입하여, 그런 전투기들이 위치한 상면에 대공 구축함, 초계함 이하 소형 함정을 배치했다. 오히려 러쉬모어 함대로서는 상대하기 편해진 상황이다. 전투기들이 접근할 방향이 너무나도 명백한 건 둘째 치고, 주력함대의 접근 방향과 완전히 분리되었으므로 화력을 집중하기도 쉬웠다.

­ 포격 개시!

아이다의 외침과 함께, 러쉬모어 함대의 주포란 주포는 죄다 평화유지군 주력함대로 향했다. 레이저, 레일건 탄자, 하나씩 섞인 플라즈마 탄자까지, 일제히 발포된 탄자들이 노리는 바는 겉보기에도 명백했다.

가장 위쪽으로 돌출된, 연계된 방어막의 중심이 된 게 분명한 평화유지군 전함은, 그렇게 증폭된 방어막으로 순간 집중된 라 말린체와 우랄의 연속 타격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방어막의 중심이 깨지다시피 하여 해당 전함이 그대로 노출되었으며, 후속하는 다른 포격을 장갑만으로 받아내야 했다.

어지간하면 장갑만으로도 치명타는 면했겠으나, 그 전함 한 척에 러쉬모어 함대의 거의 모든 화력이 쏟아졌다는 게 문제였다. 평화유지군 함대의 제한된 화력이 히말라야를 중심으로 한 방어막을 긁거나 두드리는 수준으로 타격하는 사이, 평화유지군 전함은 동력 전달 체계가 붕괴했는지 엔진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부위의 불빛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사거리가 닿는 주포는 죄다 평화유지군 주력함대로 향했을 때, 전투기들도 뭔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투기들의 기수가 죄다 열리고 있습니다. 위성 패널처럼 생겼군요. 아직 대공화망이 닿을 거리는 아닙니다.”

전투기의 뾰족한 기수가 열리면서, 천 기가 넘는 그 전투기 모두가 러쉬모어 함대를 향해 마치 위성 안테나라도 향한 양 모양이 바뀌었다.

“전파 방해? 아니면 저게 다 빔 집진기인가?”

“저걸 저렇게 준비할 바엔 차라리 전문적인 전자전 함선을 준비하는 게 더 효율이 좋습니다. 빔이라기엔, 저렇게 해도 빔이 제대로 증폭되진 않을 겁니다. 오히려 구조적 취약점만 생겨서 작은 함체에도, 큰 함체에도 문제가 생겨서 취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위성 안테나 형태의 집진기라면 분명 빔의 위력이 강화되긴 하나, 전투기 정도의 크기엔 별로 의미가 없는 강화였다. 애초에 상륙정, 어뢰정, 초계함까지 올라가도, 출력이 거기서 거기인지라 차라리 집진기 활성화에 걸리는 시간에 몇 번 더 쏘는 게 나을 정도.

구축함 이상으로 올라가면 위력 자체에는 유의미한 상승이 있지만, 그 정도를 위해서 감수하기엔 방어력의 약화 정도가 너무 컸다. 순간적으로 출력을 잡아먹느라 생기는 방어막 출력의 약화, 위성 안테나 형태 자체가 전부 약점이 되어 생기는 물리적인 방어력 자체의 약화까지.

그런데 그런 걸 전투기가 펼치고 있으니, 도저히 감을 못 잡는 게 당연했다. 이런 건 딱히 전투 기록에도 없었고, 현지 세력에서 증언이 나오지도 않았다.

“평화유지군 기함으로부터 일방 통신!”

“미친놈들, 뭐 어쩌려고!”

그 와중에, 전함 한 척을 순식간에 잃으면서 뭐가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을 것 같은 상황에서, 평화유지군 함대로부터 일방 통신이 들어왔다. 화면에 뜨는 아까와 같은 얼굴. 다만 표정은, 뭔가 대단한 걸 한다는 양 근엄했다.

­ 계몽에 복종하라, 야만스러운 자들이여.

그 통신과 함께, 러쉬모어 함대 상방의 전투기 집단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러쉬모어 함대 구성원들은 그게 무엇인지 반사적으로, 본능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평화유지군 함대는 스스로 계몽이라 이름 붙인 저 빛의 세뇌 기능을, 함대전 차원에서 아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함대전다운 함대전을 겪은 이들은 죄다 저기에 넘어갔을 테니, 증언이 없을 수밖에.

“함열 유지! 포격 계속!”

유진이 반사적으로 외쳤고, 순간 멈췄던 러쉬모어 함대의 포격도 계속되었다. 포격은 멈춰도 아이다가 포격 통제는 계속하고 있었으므로, 이어지는 포격의 화망이 흐트러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상방에선 빛이 뿜어지고, 전방으론 계속 주력함대를 타격하길 수십 초가량.

­ 뭐지? 어째서? 왜 멈추지 않지? 계몽에 복종해라!

“저 일방통신 끊어버려. 병신들, 뭘 노리나 했더니.”

당황해하는 평화유지군 제독의 표정을 끝으로, 해당 통신은 완전히 끊어졌다. 그러는 사이에도 평화유지군 전함 한 척이 추가로 치명타를 입어, 이번엔 동력원 자체에 문제가 생겼는지 평화유지군 함열 한가운데에서 핵폭발을 일으켰다.

­ 제독 각하! 함대 전체에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보고합니다! 천사님을 향한 믿음에 흔들림은 없습니다!

­ 새삼 부끄러운 말인데, 어, 그래도 잘 된 거 맞죠?

히말라야 함장의 보고와 함께, 하니엘의 목소리가 곧장 이어져 들렸다. 그 계몽이라는 것의 활용이 분명 대단했고 여태까진 효과도 좋았겠으나, 러쉬모어 함대에는 여태까지 평화유지군이 겪어보지 못한 요소가 있었다.

“적 전투기가 빛을 거두고 접근합니다, 유진.”

“그쪽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냥 대공 화망에 들어오면 철저하게 격추해버려.”

“함대 상황 점검! 방금 빛에 영향 받은 승무원 없는지 철저히 확인할 것!”

하니엘. 현재까지 러쉬모어 함대에서 접한 우주에 걸쳐, 그녀보다 더 특이한 건 없었다. 계몽을 저런 식으로 활용하는 게 특이하긴 했으나, 그건 러쉬모어 함대도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쪽에는 이미 하니엘의 빛에 노출될 대로 노출된 이후여서인지, 딱히 효과도 없었고.

­ 전 승무원 문제 없음 보고! 괜찮습니다!

보고는 빠르게 올라왔다. 계몽이 통하지 않자 평화유지군이 당황하고 있는 와중에도, 전투기 집단이 무리하기 접근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랬다. 엉망이 된 연계 방어막을 재정비하는 틈에 평화유지군 함대의 순양함 두 척이 거의 동시에 불타오르면서도, 대응 포격에 마침내 방어막 일부에 구멍이 생긴 러쉬모어 함대의 구축함 세 척이 치명타를 입고 함열을 이탈하는데도.

평화유지군 함대가 숨기고 있었던 건 확실히 의표를 찌르는 일이었다. 단순히 빛에 노출된 것만으로도 하니엘과 관련된 비밀을 자발적으로 감췄을 정도이니, 계몽에 노출된 이들도 그 계몽에 관련된 사항을 외부에 발설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쩐지, 세력을 확장하는데 아무리 좋은 조건이더라도 그 ‘보호령’ 형성이 너무 평화적으로 이루어졌다 싶더니, 이런 비밀이 있었다. 단지 이번엔, 러쉬모어 함대에도 그에 결코 뒤지지 않는 비밀이 있었을 뿐.

“전투기들이 대공화망 범위에 들어왔습니다. 대공 화망 작동합니다.”

대기하고 있던 레이저와 파편형 레일건 탄자가 대형을 이룬 채 접근하는 전투기 집단을 향해 쏘아졌다. 몇몇은 운이 좋아 방어막으로 첫 사격을 방어해냈으나, 운이 좋지 못한 기체는 그대로 무력화되거나 폭발하고 말았다. 방어율은 고작해야 구시대의 단순 철모로 총알을 방어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저 충실하게 계몽된 평화유지군 전투기 집단은, 다시 한번 기수를 펼쳐서 빛으로 계몽을 시도했다. 당연히, 첫 번째에도 안 됐던 게 두 번째에 될 리가 없었다.

­ 저기 터져나가는 것 좀 봐요! 불꽃놀이 같아요!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아이다가 자각을 가진 인공지능이라는 건, 이미 러쉬모어 함대 내에선 딱히 감출 일도 아니었다. 그러므로, 그녀의 그런 표현해 각 함선의 함교에선 잔잔한 웃음이 흘렀다. 하니엘을 위해서라면 어떤 상황도 받아들이게 된 이들에겐 눈앞의 평화유지군 함대가 한 척씩 격침되는 것도, 전투기 집단이 빛을 뿜는 것도, 어디서 나타난 인공지능이 함대 수석 시스템 관리자를 언니라 부르면서 협력하는 것도 그저 좋은 일일 뿐이었다.

“평화유지군 함열, 붕괴합니다. 순양전함 한 척, 추가로 동력원 유폭. 저쪽에 정상적인 함선은 여전히 후방에 남은 세 척의 모함을 제외하면 순양전함 한 척, 순양함 다섯 척뿐입니다. 나머지 함선은 함열에서 이루어진 동력원 유폭에 초광속 항행이 불가능할 정도의 손상을 입었습니다. 아니면 이미 격침됐거나.”

“전투기들은?”

“숫자가 빠르게 줄어듭니다. 1초에 수십 기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1분이 더 지나기 전에 정리되겠군요. 빠져나가기엔 너무 가까이 왔습니다. 반면 우리의 피해는 고작 구축함 네 척이 대파된 게 전부입니다. 초계함과 어뢰정은 대공 방어를 위해 함열 위에 위치한 덕분에 오히려 피해가 없었습니다. 유진, 대승입니다.”

운이 좋았다. 상대를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건 러쉬모어 함대만이 아니었고, 그 와중에 러쉬모어 함대가 가위바위보에서 이긴 게 전부였다. 날카로운 통찰, 허를 찌르는 전술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일단, 첫 함대결전은 러쉬모어 함대의 대승으로 끝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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