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87화 〉 쇼다운 (1) (187/207)

〈 187화 〉 쇼다운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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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세력의 전격적인 협조로, 러쉬모어 함대의 손실은 빠르게 채워졌다. 성능 면에선 약간 떨어지더라도 어쨌건 구축함다운 구축함 네 척이 합류하였으며, 사실 얼마 소모되지도 않았던 군수품과 보급품은 더욱 풍부하게 들어왔다.

거기서 끝나지도 않았다. 추가 지원이 필요하면 말해달라는 것이, 그저 말뿐인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 압박 정도면 충분합니까?

“유사시 빈틈이 보였을 때 실제로 공세로 나가서 영토를 탈환하는 건 괜찮습니다만, 그러기 곤란하다면 그저 압박하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 알겠습니다, 유진 제독. 마침 우리 함대도 언제든 출격이 가능하도록 대기 중이었습니다. 평화유지군은 보통 상대가 아니니까요.

러쉬모어 함대의 전력이 정말 강력한 건 사실이나, 일단 전체 전력으로 보자면 평화유지군의 함대 전력이 더 강력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의 압도적인 승리가 대단한 것이겠으나, 다른 세력의 관점에선 러쉬모어 함대가 패배하거나 막대한 손실을 당했을 때를 대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는 러쉬모어 함대가 한 번의 대승을 얻어낸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평화유지군 함대 전력은 집중되었을 때 러쉬모어 함대론 역부족인 수준이었으며, 그럴 때를 대비해 각 세력은 함대 전력이 언제라도 출격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했다. 구축함 네 척을 빠르게 선별하여 러쉬모어 함대에 보충해줄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준비가 배경에 있었던 덕택.

“정말 순순히 들어주네.”

“가장 어렵고 위험한 역할을 우리 함대가 도맡았기 때문이겠지요, 셀린. 어차피 클라뉙 연합체도 언젠간 평화유지군과 일전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들에게도 지금과 같은 호기는 놓치기 싫겠죠. 아마 높은 확률로, 클라뉙 연합체 또한 영토 탈환과 확장을 목적으로 실제로 공세를 개시할 겁니다.”

“애니 말이 맞아. 아마 굳이 우리가 부탁하지 않더라도, 알아서 나설 시기만 보고 있었겠지. 우리 부탁으로 명분까지 살았고.”

여태 조사한 바, 클라뉙 연합체를 위시한 군소 세력들도 평화유지군에게 영토를 꽤 잠식당한 상태였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 이상의 진격은 멈췄다지만, 어쨌건 그들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공포스러운 일이었겠지.

생각해보라. 그래도 함대 전력에서는 맞붙을 만했기에 출정을 했을 텐데, 출정한 함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서 어떻게 됐는지조차 모르겠는데 평화유지군은 점점 세력이 커진다. 상대하는 입장에서, 얼마나 공포스러운 일이었을지 생각해보라.

그런 와중에 그런 평화유지군 함대를 상대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외부 함대가, 그대로 평화유지군의 심장부까지 진격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좋은 조건을 또 보기도 어려울 것이고, 이런 시기를 놓치기도 싫을 것이다.

“일단 첫 항로는, 가장 가까운 인피니로 잡았습니다. 중심이 어디인지는 분명하나, 일단 같은 이름으로 표시된 위치를 가볼 필요가 있으니까요.”

든든한 배경을 두고 진격을 시작한 러쉬모어 함대의 첫 목표는, 기록에서 인피니라고 되어 있는 여러 장소 중 가장 가까운 위치였다. 전체적인 구조가 한 장소를 중심으로 몇 군데의 인피니가 둘러싸는 형태였는데,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그게 진짜 인피니만큼 중요한 ‘인피니’라면, 평화유지군 함대가 반응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또 거기서 견제를 하건 일전을 치르건 상황과 조건에 따라 하면 될 일이며, 거기에 러쉬모어 함대에게 대처하지 못할 문제가 생길 일은 없을 것이다.

“유진은 저기 있는 게 뭐라고 생각해?”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꽤 중요할 거겠지. 같은 이름을 쓰고, 연방 자료에 따로 표시까지 되어있는 걸 보면.”

“그래, 그것도 그래. 연방과 평화유지군은 협력적인 관계 아니었나? 왜 거기에 굳이 인피니에 관련된 표시까지 해놓은 걸까?”

생각해보면 그랬다. 연방과 평화유지군은, 동맹은 아니어도 꽤 협력적인 관계였다. 그래서 ‘연방 실험체’의 빛에 관한 내용을 전하고 관련된 정보를 받으며,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내주기까지 하지 않았나.

그런데 굳이 연방 데이터에 그 ‘인피니’라는 것의 좌표가 기록되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현재 평화유지군이 차지한 구역의 상황으로 보아, 기록된 좌표는 비교적 최근까지 갱신된 내용이었다. 이래서야, 마치 유사시 공격 목표를 확인해놓은 것 같지 않은가.

“협력적인 관계이면서, 동시에 잠재적 적대 세력으로 여기고 있던 게 아닐까 합니다.”

협력적인 관계이면서 동시에 잠재적 적대 세력. 얼핏 들으면 그저 모순되기만 한 소리 같겠으나, 실제로 그런 관계인 국가, 세력은 역사적으로도 많았다. 우주 진출 이전에도, 아광속 시대에도, 초광속 항행이 보편화된 이후에도.

“하긴, 연방은 그 정도로 쓰레기들이니까.”

“욕심은 더럽게 많아서, 그러면서 쓸데없이 고집스럽기까지 하고. 음, 내가 몸담았던 반란군도 비슷했지만.”

셀린의 자학적인 평가. 연방의 성향을 생각해보면, 내우주를 통합한 후 다시 확장적인 행보를 걸으려 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애초에 현재 평화유지군이 있는 그 인피니도, 연방의 전성기에 진출했던 위치 아닌가.

“정신 나간 제국주의자들 같으니라고.”

“제국주의에서 끝나면 다행이지. 거기에 종족우월주의까지 있으니까, 우주에서는 완전히 악이야, 악. 반란군이라고 다르진 않았겠지만.”

그렇게 대화하는 사이에도, 러쉬모어 함대는 착실하게 첫 ‘인피니’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전함 히말라야와 알프스, 순양전함 라 말린체, 순양함 우랄과 나로드나야, 러쉬모어, 아이언사이드를 포함한 서른두 척의 구축함, 그 휘하의 초계함, 어뢰정, 상륙정들.

숫자로는 아쉽더라도 같은 전함 두 대는 홀로 상대할 수 있는 히말라야에 화망에만 들어오면 전함 한 척을 순식간에 파괴할 수 있는 화력의 라 말린체, 순양함은 물론 순양전함급에게도 치명타를 먹일 수 있는 우랄의 존재 덕분에 함부로 상대할 수 있는 함대가 없다시피 했다.

평화유지군이라도 감히 정면에서 막을 생각이 들겠는가. 그 ‘인피니’가 얼마나 중요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으나, 그래도 그것보다 더 중요한 진짜가 있는 이상엔 무작정 함대를 동원하기도 곤란했다.

“지금쯤이면 클라뉙 연합체와 다른 세력의 함대도 출격했겠지?”

“그리고 그 소식이 평화유지군에게도 도달했을 겁니다. 아마 그쪽에선 우리를 단번에 제압하겠다고 함대를 집중하기도 곤란하겠죠.”

아무리 그래도 여태까지 평화유지군이 쌓아놓은 기반이 있는데, 그게 다 담긴 영토를 전부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짓을 하긴 곤란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러쉬모어 함대는 다시 비슷한 수준의 적 함대와 마주하게 될 테고, 대치한 채 시간을 조금만 더 끌면 클라뉙 연합체 측에서도 본격적인 공세가 들어오겠지.

거기까지만 가면, 평화유지군 측에서 뭔가 실수를 해도 분명히 할 수밖에 없었다. 사방팔방에서 적이 밀려 들어오는데, 대응할 수 있는 함대는 제한적이다. 러쉬모어 함대가 대놓고 인피니가 목표라고 했으므로 최우선 목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클라뉙 연합체라고 뭐 다르진 않기 때문이다.

아니, 오히려 러쉬모어 함대보다 다른 세력이 평화유지군에겐 더 악질이었다. 러쉬모어 함대는 인피니에서 볼일만 보고 나면 그대로 물러날 수도 있겠으나, 클라뉙 연합체와 다른 세력은 평화유지군의 완전한 해산이 목표일 테니까.

“강습 해병대는 할 일이 없네.”

“아, 또 왜 그래. 중요한 순간에 중요한 일 할 사람이 말이야.”

메리­앤이 괜히 나른한 목소리로 덧붙이자, 유진이 적당히 달래며 답했다. 확실히, 이렇게 함대전이 중심이 되는 상황에선 그녀가 지휘하는 강습 해병대가 할 일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물론, 강습 해병대라고 작정하고 운용하면 함대전에서 쓸 수 없는 건 아니었다. 장갑이 아주 강력한 강습상륙함에 태워서, 함대 간의 거리가 어느 정도 가까워졌을 때 치열한 엄호 아래에 돌격해 강습정을 적함에다 들이박는 식으로는 충분히 쓴다.

“뭐, 어차피 멀리서 포격전만 빵빵 해댈 거잖아? 그럼 난 또 구경만 할 거고. 아니, 구경만 하는 거 좋아하니까 오해하진 마. 가만히 앉아서 승리하는 거 보기만 하는 것만큼 좋은 것도 없다고? 내가 뭐 출세에 전부 건 상황도 아닌데.”

그녀의 말이 맞았다. 러쉬모어 함대 내에서 어디 더 올라갈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피니에서의 일이 끝나고 복귀한 후에 얻을 자리도 그렇게 달라지진 않을 것이다. 러쉬모어 함대의 대규모 원정까지 동행한 실력자를 한직에 앉힐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유진과 동료들쯤 되는 장본인들이라면 모를까, 그들에겐 그럴 생각이 없었다.

“불만이 있어보이길래.”

“필요할 때 필요한 곳에만 잘 써줘. 그냥 두기 아깝다고 마냥 던져버리는 것보단 낫지. 어차피 강습 상륙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현재 메리­앤의 강습 해병대는 토머스 재퍼슨에서 신세를 지고 있었다. 해병대 전체를 수용할 수 있는 함선이 딱히 없기도 했고, 동시에 해병대 병력이 한 번에 출격할 수 있는 숫자가 가장 많은 함선도 토머스 재퍼슨이었기 때문이다.

“하긴, 함대전에서 쓴다고 강습하면 아무리 가까워도 강습 전에 절반은 날릴 각오를 해야 하니까.”

“그러니까 강습 상륙함 하나쯤은 있는 게 좋은데.”

강습 상륙함의 크기라고 해야 일반적인 순양함 수준이다. 그럼에도 그런 근접 강습전에서 필수적인 이유는, 그 순양함 수준의 함체에 전함 수준, 혹은 그 이상의 방어막과 장갑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대신 포기한 것은 대함 무장. 기껏해야 구축함 정도, 그나마 격침보다는 쫓아내는 수준에 불과한 게 일반적인 강습 상륙함의 무장이다. 그렇다 보니, 원거리 포격전을 주력으로 삼는 러쉬모어 함대에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 함선이었다.

“우리가 연방 우주군은 아니잖아.”

“아, 내가 연방 우주군이었다보니 좀 헷갈렸네. 뭐, 함대 하나 없어져도 곧장 하나 더 투입하던 그런 세력은 아니지. 그래서 애초에 근접 난타전을 함부로 못하니까, 아예 컨셉을 원거리 포격전으로 잡은 거고.”

“어, 어. 맞아, 그랬지.”

사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었다. 연방 우주군의 특기가 함대끼리 근접한 근접 난타전인 것도 사실이고, 용병 파견 연합 수준으로는 아직 연방의 그 근접 난타전을 제대로 재현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유진이 러쉬모어 함대의 장기를 원거리 포격전으로 잡은 이유가 그것인 것도 아니다.

그저, 그냥 그렇게 해왔으니까 했을 뿐이다. 어뢰정을 몰 때도 함체 크기에 맞지 않는 과한 화력으로 유명했고, 첫 구축함도 그걸 기준으로 마련했다. 우랄을 손에 넣을 때도 그랬으며, 라 말린체를 건조할 때도 그런 고화력이 필요하기에 그랬다.

물론, 좀 더 따져보면 단기간에 확실한 전력 증강이 필요하기에 그랬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메리­앤의 말처럼, 그렇게 깊게 생각한 건 결코 아니었다.

“곧 목표 성계에 도착합니다. 성계 외부에 도착 후, 곧장 전투 대형으로 재편하겠습니다, 유진.”

“대형 재편 후 성계 진입까진 얼마나 걸려?”

“한 서너 시간쯤 걸릴 겁니다. 아무래도 미리 징조를 탐지해서 대응하는 걸 막아야 하니까요. 이 정도가 딱 적절합니다.”

성계에 대놓고 초광속 항행 목표지점을 잡으면, 일반 우주로 나온 직후의 무력한 순간을 노려 들어오는 기습에 고스란히 당할 수도 있었다. 물론, 맨카인드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듯이 함대 전력 차이가 심각할 땐 또 이야기가 다르지만, 평화유지군 함대는 그 정도로 빈약하진 않은 것이다.

따라서 이런 대규모 함대가 이동할 땐, 본래는 성계 외곽 떨어진 곳에서 나타나 아광속으로 진격하여 공세를 시작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스테이션에서 연방의 전략 기동함대가 갑자기 나타났던 것이야 그렇게 나타나더라도 스테이션 자체 전력으로는 도저히 막지 못할 정도이기 때문이기도 했고, 함대 전체가 감염된 상태라 경황이 없기 때문이기도 했을 테지.

“언니, 곧 일반 우주로 나와요. 아이브스 씨는 어떻게 하시겠어요? 돌아갈 상륙정을 준비해둘까요?”

“어, 지금은 여기에 있어 보려고. 어떻게 싸우는지 보고 싶네.”

메리­앤이 아이다의 말에 대답하는 것과 동시에, 러쉬모어 함대는 초광속 항행을 끝내고 일반 우주로 접어들었다. 그러고선 곧장 함대 대형 편성에 들어가, 여느 때처럼 히말라야가 살짝 돌출되는 진형을 이루었다.

“성계에 탐지되는 반응은 대단치 않습니다. 방위 함대가 집결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 봐야 순양함이 기함인 지역 함대 수준에 불과합니다. 방위 플랫폼을 생각해도 정말 쉽겠군요.”

그런 와중에 장거리 센서로 성계 현황을 파악한 애니의 평가. 아니나 다를까, 평화유지군에선 러쉬모어 함대를 막기 위해 곧장 모든 함대 전력을 모으진 않았다. 어쩌면 그저 못한 걸지도 모르지만, 하여튼 당장 보이진 않는다는 건 확실하다.

“거대 구조물 같은 건?”

­ 어, 아저씨! 아저씨는 느껴져요? 저기, 뭐가 느껴져요!

그렇다면 다음 봐야 할 건 그 ‘인피니’가 무엇인지에 관한 내용. 일단 뭔가 눈에 띄는 게 있으리라 생각한 유진이 묻는 말에 애니가 대답하기도 전에, 하니엘이 호들갑을 떨며 먼저 함내 통신을 해오다.

“무슨 소리야? 뭔가 느껴진다니.”

­ 되게 음습하고 침침한 기운인데, 으, 난 소름이 다 끼치는데, 안 느껴져요?

하니엘은 원하는 대로 빛을 쓸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빛과 관련된 문제가 생긴다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 결론에 이른 유진이, 곧장 함대 통신을 열었다.

“함대 승무원 상태 보고할 것. 이상 현상이나 특이감각을 느끼는 승무원이 있는지, 사소한 부분도 놓치지 않고 보고하도록.”

­ 알겠습니다, 제독 각하.

“성계 방향에서 빛이 탐지됩니다. 일반적인 빛은 아닙니다, 유진.”

뇌리를 스치는 생각에 곧장 보고를 지시하는 사이 들려온 애니의 말. 상황이 심상치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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