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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6화 〉 끝 (1) (206/207)

〈 206화 〉 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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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함선을 설계하면서 이렇게 길게 이어지는 복도를 설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고, 온전히 전투 목적인 함선에서는 할 수 있어도 안 하는 게 불문율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히 특이한 구조라 할 수 있겠다.

물론, 지금의 하니엘에게는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었다. 아무리 그녀에게 빛이 있고 이 함선이 그 빛에 반응하더라도, 일단 길이 완전히 트여있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그런 복도가 대충 보기에는 끝이 없는 것처럼 이어졌으나, 하니엘의 느낌은 목적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알려주고 있었다. 그리고 여태 경험했듯이, 단순히 느낌에서 끝나진 않았다.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내 아이. 아직도 내게 맞설 건가요?”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문 앞에서, 마마의 홀로그램이 다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니엘의 빛을 코앞에서 쐬고 있음에도 형상을 멀쩡히 유지하는 것으로, 이번 홀로그램은 뭔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여긴 당신의 우주가 아니에요. 당신이 마음대로 할 곳이 아니라고요.”

“이런, 어쩌다 이렇게 잘못된 길로 물들었는지. 내 아이, 이곳에선 자신도 낯선 존재라는 걸 모르나요? 여기까지 오면서, 그렇게 많은 야만인을 지배했잖아요?”

그렇긴 하다. 비록 복수에 눈이 멀어서 벌인 짓이기는 했으나, 하니엘은 자신의 빛으로 사실상 신정 국가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 국가라는 것도 행성 하나나 성계 하나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었고, 사실상 이 주변 성계를 완전히 장악하기까지 했다.

마마가, 그리고 하니엘이 가진 힘은 그 정도로 이 우주엔 이질적인 것이다. 존재 하나가 낼 수 있는 빛에 억 단위의 사람들이 휩쓸린다면, 그만큼 ‘다른’ 게 또 있겠는가. 명백히, 마마도 그녀도 이 곳에서는 ‘다른’ 존재였다.

“말장난으로 날 조종하려 들지 말아요. 난 당신의 아이도 아니고, 당신과는 엄연히 다른 존재니까요.”

“뭐, 좋아요. 그러면, 이제 뭘 어쩔 거죠? 절 죽이기라도 할 셈인가요? 그럴 작정이라면, 어떻게 죽일 건가요? 지금 이 모습은, 그저 형태에 불과하답니다? 이 배를 부수려고 해도, 이미 바깥의 그 야만적인 함대는 대부분 내 손에 떨어졌는 걸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니엘이 이 배 안에서의 일에 집중하는 사이, 마마는 외부의 함대를 차근차근 손에 넣고 있었다. 이는 빛의 힘만으로 하니엘을 직접 제압할 수 없음을 에둘러 시인하는 것임과 동시에, 유사시 유진을 찾아 빠져나간 후에 이 함선을 격파하려는 시도가 저지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이 배를 장악할 거예요.”

“아무리 그런 힘을 가졌어도, 이 배를 장악하려면 멀었답니다. 기껏해야 문이나 몇 개 열겠죠? 저 통로를 여는 것도, 내 힘이 있어야 열 수 있는 걸요?”

“반대겠죠. 내 힘이 있어야, 당신도 통로를 열 수 있어요.”

이번엔 마마가 입을 다물었다. 하긴, 인피니를 혼자서 열 수 있었다면, 굳이 하니엘이 오기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었다. 당장 전력이야 마마가 장악하고 있는 쪽이 더 강력하고, 빛을 활용한 힘싸움에서도 아직까진 마마가 좀 더 위에 있었으나, 하니엘이 없으면 애초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이 상황이다.

“어쩔 수 없네요. 일단 제압하고 나서, 정신을 차릴 때까지 감금하겠어요. 이게 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랍니다.”

하니엘의 빛이 있더라도, 이 함선을 장악하고 있는 건 자신이라는 걸까. 마마의 어조에서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마치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듯이, 당연하게 그 ‘감금’을 기정사실화했다.

“내가 그냥 당해줄 것 같아요?”

“어떻게 하게요? 방법이 없을 거랍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당장은 마마의 말이 맞았다. 하니엘이 빛을 아무리 잘 다뤄도 마마와 비교하면 아무래도 모자랄 수밖에 없었고, 그렇다고 이 함선을 뒤집어놓을 수 있는 무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사격이야 조종과 함께 유진에게서 틈틈이 배우긴 했으나, 그것만으로 헤쳐나가기에는 상황이 너무 거대했다.

그런 와중에, 마마가 자신감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하니엘이 빛을 쓰는 방법을 대충 알기는 했어도, 일단 이 함선의 통제권은 대체적으로 마마에게 있었으니까. 다른 변수가 없다면, 하니엘에게는 뾰족한 대책이 없었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 꼬맹아, 애니가 해냈다. 잠깐 열어줄 테니 들어가.

이 순간을 위해 벼르고 별렀던 자들이 있었다. 바로 유진과 애니로, 특히 하니엘의 빛에 대응하느라 마마의 시스템적 장악력이 조금 떨어진 덕을 톡톡히 보았다.

“이게 무슨, 미개한 당신들이 어떻게!”

­ 당신이 말했지 않습니까? 유진의 빛을 가장 많이 담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로 인한 영향은 가장 적게 받았다고. 그 덕을 받았습니다.

애니의 목소리도 들렸다. 확실히, 유진에게 하니엘의 빛이 가장 많이 있다고 했었다. 마마가 직접 한 말이었으니,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 힘들었지. 나는 꼬맹이가 아니니까. 하지만 내게 주어진 걸로, 필요한 일은 할 수 있게 됐어. 이렇게.

우우우웅. 마치 금속이 공명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언제까지고 굳게 닫혀만 있을 것 같았던 거대한 벽이 문처럼 열렸다. 아니, 벽 같았던 문이 천천히 올라갔다. 그러자 곧장 안에 보이는 건, 일단은 빛.

“역시 아저씨예요. 금방 끝낼게요.”

하니엘도 이런 상황을 어렴풋이 예상했다. 유진이 자신과 가장 가까이에, 가장 오래 있으면서 빛을 가장 많이 쬐기도 했고, 시간이 제법 흘렀더라도 그저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으니까. 거기에 애니도 있었고.

당연히, 유진과 애니는 하니엘의 그런 어렴풋한 기대를 정말 멋진 모습으로 충족해냈다. 이 이상으로 멋진 게 뭐가 있겠는가. 하니엘은, 닫혀있던 빛을 향해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니, 다른 자들은 몰라도, 당신은 내게 이래선 안 돼요. 당신은 내 아이라고요.”

그 빛으로부터 들려오는 마마의 목소리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 당혹감이 담겨있었다. 하긴, 연방에 억지로 침입해서 이런 상황이 되도록 만든 와중에도, 끝내 침입하지 못했으니. 그런 곳을 다른 사람이 열어서, 마마를 해할 목적으로 하니엘이 들어오는 것이다.

하다못해 빛을 이용한 정신 개입이 통하는 상대라면 강제로 막을 수라도 있지, 하니엘은 일단 그게 통하는 상대가 아니었다. 오히려, 시간이 조금만 더 지나면 그 빛을 다루는 것마저 더 뛰어나질 잠재력마저 가지고 있지 않은가.

“난, 당신의 아이가 아니에요.”

뚜벅, 뚜벅. 눈으로는 오로지 빛만이 보이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 그녀에게 정신 개입이 통하지 않는다고 마마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아니었으나, 하니엘은 그저 고개를 두어 차례 흔드는 것으로 그 수작을 떨쳐냈다.

여태까진 그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유진이 아니었다면, 하니엘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연방에 의해 죽었을 테고, 구한 게 다른 사람이었다면 아마 얼마 가지 못해 붙잡혔을 테니까.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하니엘은 단순히 운이 아닌 무엇인가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력한 빛을 다룰 수 있었고, 연방이 인피니라 불렀던 이 블랙홀에는 인류를 까마득히 뛰어넘은 문명도 닿을 수 없는 우주를 이어줄 정도로 강력한 힘이 있었다. 둘이 서로 이끄는 힘이 없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걸 의심해볼 일이다.

그렇다면 여기까지 온 것도 다 정해진 일인 것인가. 유진에게 준 영향만큼이나 그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하니엘은, 여기까지 온 것이 자신의 의지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자신의 의지로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직 남아있음 또한.

“이곳의 생명체들은, 비록 야만인들일지라도, 우리의 통치 아래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을 누리게 될 거예요. 나의 아이여, 내가 바라는 건 또 다른 전쟁이 아니랍니다. 모두가 훨씬 대단한 삶을 누를 거예요.”

“우리의 질서 아래에 말이죠.”

“맞아요. 우리의 질서 아래에서.”

“그래서 안 된다는 거예요. 이 우주의 일은 이 우주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지가 거세된 채 평화를 누려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있다고 한들, 그 진의가 ‘우리’의 군림을 위해서라면 말이 안 돼요.”

정말 올곧게 자랐다. 유진이 이 상황을 봤다면 그렇게 말했을 테다. 하지만 마마에게는 다른 이야기.

“어째서, 멸망의 기로에 선 우리 종족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에요. 내 아이여, 당신은 지금 종족 하나를 멸망시키려는 거랍니다.”

“무슨 수를 써도 다른 종족을 압제하지 않고서 멸망을 피할 수 없다면, 망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압제할 종족이 하나도 아니고 말이에요.”

그렇게 서로 차이가 좁혀지지 않을 대화를 끈질기게 이어지는 사이, 하니엘은 어느새 그 빛의 근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공에 살짝 뜬, 말 그대로 순수하게 하얀 빛무리. 그 빛무리를 헤치고 안을 볼 수 있는 하니엘의 눈에도, 응당 있어야 할 발광원이 보이지 않는, 정말 허공에 덩그러니 놓인 순수한 빛덩이였다.

“정말 이렇게까지 할 건가요?”

마마의 말이 울릴 때마다, 그 빛덩어리가 작게 일렁거렸다. 그것이 마마의 본체겠지. 하니엘이 보기엔 그랬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여기서 물러날 생각도 없고, 물러난다고 해도 언젠간 다시 돌아올 생각이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신을 배제하는 수밖에는 없겠군요.”

이후, 말 그대로 순수한 힘과 힘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다른 곳은 모두 뒤로 하고, 오로지 한 곳에 집중된 빛과 빛. 하니엘의 날개가 활짝 펼쳐지면서 깃털과 빛이 휘날렸으며, 순수한 빛 그 자체인 마마도 거기서 더 밝게 보일 거라고 생각하기 어려웠던 빛을 더욱 밝게 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 밝기가 변하는 순간 눈이 머는 것은 물론, 빛의 위력만으로도 시신경이 타버릴 강력함이었다. 그래도 하니엘을 어떻게든 살려서 함께 하려는 여태와는 달리, 지금부터는 아예 죽일 작정으로 달려드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애초에 모성애보다는 수단으로써의 소중함이 더 앞섰다. 모성애의 편린조차 없었다고 한다면 틀린 말이겠으나, 거기에 희생이 차지하는 비중은 아예 없는, 그래 봐야 그저 그런 수준에 불과했다.

차라리, 유진과 하니엘의 관계가 더 상호 희생적이고 헌신적이리라.

“자, 포기해요. 내 일부가 되는 거예요. 영원히, 함께 살아가요.”

마마의 속삭임의 하니엘의 머릿속을 찔러댔다. 상대의 정신력과는 별개로, 물리력과 정신력의 중간 어디쯤엔가 존재하는 힘이므로 하니엘이라고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그만두고, 저 따스한 빛에 안기고픈 유혹이 시작된다.

하지만 거기에 굴복하기에는, 아무리 마마가 큰 힘을 쏟더라도, 하니엘은 너무 많은 길을 거쳐왔다. 그녀가 죽을 뻔했고, 그녀의 복제체들이 이용당할 뻔했다가 죽어갔으며,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많은 사람을 구했다. 자신도,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도, 죽을 뻔했고, 하니엘 자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도중에 저 마마가 지향하는 방향과 같은 행동을 했던 적도 있었다. 거의 빠져들 뻔했지. 하지만 마지막 순간 유진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리면서, 자신이 겪고 배워온 것을 다시 상기했다.

“나는 나예요. 내 생각대로, 내가 선택한 결과를 만들 거예요.”

빛을 향해 한 걸음 더. 다시 한 걸음. 처음 출발했을 땐 그저 자신의 능력과 출생에 관한 진실을 알기 위함이었으나, 어쩌다 보니 이 우주를 구하기 위함이 되었다. 물론, 하니엘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부분은 유진을 비롯해 동료들을 구하기 위함이었고.

“나는 내 종족을 위해 행동하고 있어요. 고작 개인의 관계 때문에 시작한 당신과는 달라요.”

마마도, 몰락한 종족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는 대의가 있었다. 오로지 자신만이 마지막으로 남은, 종족 모두의 희망이라는 점.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었고, 현재 그녀의 최우선 목표이기도 했다.

그녀도 상당한 역경을 겪었다. 필사적으로 빠져나오고 나니 함선의 에너지는 통로로 이용한 블랙홀에 다 빼앗겼지, 그렇게 무력해진 틈을 타 현지의 야만적인 세력에게 그녀의 ‘아이들’이 거의 죽고 말았지. 모성애의 정도가 무한히 깊은 건 아니다뿐이지,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었던 이상, 창자가 끊기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고통이었으리라.

그런 와중에 유일하게 살아남은 마지막 아이가, 자신을 적대하면서 결국 서로 죽여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 그녀도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누군가를 짓밟기 위해 필사적인 자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자의 싸움이었다.

“나는.”

“아니, 안 돼.”

하니엘이 손을 뻗으면 빛무리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왔다. 빛이 수없이 반복하여 파장을 뿜었으나, 그리하여 하니엘이 조금 비틀거리긴 했지만, 반 발자국 정도 물러나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멈추거나 포기하진 않았다. 고개를 흔드는 것으로는 부족하자, 아랫입술을 피가 날 정도로 깨문 그녀가, 눈을 지긋하게 감았다가 뜬다.

“나는, 하니엘이에요. 이 우주의 하니엘.”

“안 돼!”

마마의 절규와 함께, 빛무리의 중심을 하니엘의 오른손이 감쌌다. 잠깐의 그림자. 그리고 그 공백을 하니엘의 빛이 다시 채우면서, 마마의 빛이 완전히 가려진다.

“한때는 내가 당신의 아이였겠죠. 어쩌면, 당신을 엄마라고 부르면서 만났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이 우주의 모든 걸 발아래 두면서까지 당신의 종족을 살리겠다고 한 시점부터. 그걸 지금, 내 손으로 끝낼게요.”

하니엘의 빛이 꺼졌다. 아니, 마마를 쥔 주먹 안으로 모여들었다. 그렇게, 일순간 모든 주변이 조용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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