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52화 (52/229)

〈 52화 〉 냉혹 속의 열기(??) (1)

* * *

『오, 오이! 봐라! 저 경비원들을! 귀신이 되었다!』

무라사끼의 외침에 경비원들의 시신을 돌아보니, 쓰러져 누운 두 구의 시신으로부터 백색의 투명한 기운 같은 것이 마치 번데기가 우화(?化)하듯 빠져나오고 있었다.

아직은 경비원의 형상을 이루고 있는 그것은, 대형 진공관 위에 떠 있는 영혼의 응집체와 결이 같은 기운이었다. 즉 경비원들의 고스트, 즉 영혼이 육신을 빠져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평상시라면 저런 것은 눈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공간은 컴퓨터에 의해 무언가가 증폭되어,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상황.

육신을 빠져나온 영혼은 마치 빨려들어가듯 영혼의 응집체로 이끌려 나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아직 고스트는 손상되지 않았어!’

육신에서 벗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고스트는 아직 그 형체가 흩어지지 않고 제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늦기 전에 육신으로 되돌려보낼 수 있다면 되살릴 수도 있을 터.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지만, 멀쩡한 육신이 일시적인 심장마비 따위로 숨이 끊어진 것이라면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경비원의 시신 앞에 꿇어앉아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배, 백철연이! 그만두게!”

내가 두 손에 깍지를 끼고 경비원의 명치를 압박하고 있자니, 곁에 다가온 송병오가 외쳤다.

“제길, 자네도 눈이 있으면 좀 보게! 이미 늦었어!”

송병오의 말대로 경비원의 시신을 제대로 보니, 얼굴에 난 구멍들에서 뜨거운 김과 매캐한 연기가 새어나오고, 귀에서 끈적한 뇌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두피를 만져보니 데일 듯이 뜨거웠다.

‘두뇌가 타버렸어?’

단순히 심장이 멎은 것이 아니라, 두뇌가 타버린 뒤였으니 더 이상 되살릴 수단은 없었다. 다른 경비원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대체……!’

스스로를 지키는 방어 프로토콜로써, 자신을 공격하는 대상에게 어떤 일종의 고주파(高??) 따위를 발사해 두뇌를 태워버리는 것인가.

더 이상 손 쓸 도리도 없이, 경비원들의 영혼은 어느새 응집체에 빨려들어가 융화되고 말았다.

‘젠장……!’

다행히 지금은 방공호 안의 공기도 덥지 않고 쾌적했지만, 이러한 곳에 결코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당장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출구는 강력한 결계로 막혀 있었고, 결계를 없애려면 컴퓨터를 파괴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러다가는 방금의 저 경비원들처럼 뇌가 타버릴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저 영혼의 구에 흡수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가, 가야 해……”

두 귀를 막고 있던 홍옥례가 벌떡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나는 홍옥례를 붙잡고 외쳤다.

“홍옥례! 정신 차려!”

“저 경비원들이 날 부르고 있단 말야! 우리 때문에 죽은 거라면서……”

그들은 이미 죽고 그들의 고스트는 응집체에 융화되었지만, 아직 채 융해되지 않은 자아의 흔적이 발현되어 홍옥례를 부르고 있는 것이었다.

마치 거대한 별사탕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영혼의 응집체를 쳐다보고있지 않아도 계속 응집체가 보내는 환청이 들려왔다. 지금의 이 홍옥례처럼 조금만 방심해도 현혹되어 홀려버리는 것이다.

“무시해! 환청이야!”

“하지만…… 죽을 이유가 없던 사람들이란 말야! 일제의 부역자라고는 해도 말단이었고,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들이었고…… 가, 가족도 있었을텐데…… 따지고 보면 우리 때문에 죽은 게 맞으니까……”

젠장, 누가 누굴 걱정하는거야?

독립운동을 하는 녀석이라 마냥 굳셀 줄로만 알았더니 의외로 마음이 여린 녀석이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감수해가며 테러를 하려고 했던 녀석인 주제에, 타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그 누구보다 크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인가.

하긴, 아무리 굳세다고 해도 저 녀석 역시 이제 열일곱에 불과한 나이였으니까. 아무리 간접적이었다고는 해도 자기 때문에 무고한 사람이 죽었는데 죄책감을 가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겠지.

하지만, 저 영혼의 응집체는 교활하게도 그 부분을 파고들어 홍옥례를 현혹하고 있던 것이다. 나는 두 손으로 홍옥례의 얼굴을 붙잡고 외쳤다.

“네가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잡생각 하지 마!”

“그, 그렇지만 목소리가 계속 들려…… 들린다고……”

그래. 아무리 무시하려고 해도, 귓가에서 계속 소리가 들려온다면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다른 일행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고 읊조렸다.

“마음 속으로 애국가를 불러.”

“뭣……?”

“애국가, 알지? 속으로 애국가를 불러. 그럼 잡념이 사라질 거야. 4절까지 불러. 4절까지 다 부르면 다시 1절부터 부르고.”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잡생각을 끊어내는 데에는 애국가가 최고다. 이것은 21세기에도 널리 통용되는 방법이었다.

“으, 으응.”

홍옥례는 비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동­해­ 물과, 백­두­ 산이, 마­르­고 닳­도­록­……”

노래 ‘작별’의 곡조에 맞춰서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홍옥례의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아니! 시발 속으로! 속으로 부르라고!”

“으읍!”

그때,

“이보게, 백철연이! 마수들일세!”

탕! 송병오가 외치며 권총을 발사하자 공중을 날아오던 곤충형 마수 한 마리가 송병오의 마력탄을 맞고 바닥에 떨어졌다.

‘마수가?’

고개를 들어 저편을 보니, 지하 통로로부터 자잘한 마수들이 쇠창살을 뚫고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축사에 남아있던 하급 마수들이 깨어나서 지하 통로로 온 것이다. 양복자가 잠재워뒀던 그 마수들이.

‘깨어난 건가? 벌써?’

생각해보면 벌써는 아니었다. 양복자는 최면이 기껏해야 한두 시간 정도 지속될 것이라고 했었지. 어느덧 최면에서 깨어날 때가 되었던 것이다.

게다가, 비밀 통로의 입구를 열어놓고 왔으니, 마수들은 깨어나자마자 어떤 냄새를 맡고 바로 이곳으로 이끌려 달려온 모양이었다.

‘젠장.’

그렇잖아도 컴퓨터와 영혼의 응집체만으로도 골치아픈데 마수까지 상대해야 하다니.

하지만 지금의 상황을 한탄하거나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지금 당장은 컴퓨터나 영혼보다는 눈앞에 닥쳐오는 마수를 상대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리고, 마수를 상대하는데에 집중하고 있으면 적어도 응집체의 현혹으로부터는 잠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일행을 향해 외쳤다.

“이유하! 송병오! 분대전술학 때처럼 각자 위치로! 기계에 안 맞추게 조심하고!”

“……알겠소!”

“알았네!”

원거리를 맡은 두 명이 내 뒤로 빠지자 나는 무라사끼에게 외쳤다.

『무라사끼! 너는 나와 함께 정면에서 마수들을 격파한다!』

『명령하지 마라!』

무라사끼는 그렇게 대꾸하면서도 검을 번쩍 빼어들었다.

『귀신은 못 베어도 마수는 얼마든지 벤다!』

검을 든 녀석의 자세는 이전에 비해 많이 나아져 있었다. 지금도 도복 차림인 것을 보면, 전공수업이 끝나고도 늦게까지 훈련을 하다가 여기로 왔던 것일까. 이 녀석 역시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 듯 했다.

‘좋아.’

양복자, 그리고 아이까와가 빠졌기에 분대원은 부족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진형을 갖추었다. 양복자와 아이까와는 어차피 보조였으니 지금 당장은 없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그 대신 추가인원인 홍옥례를 돌아보며 외쳤다.

“홍옥례! 너는 이유하랑 송병오를 지키고! 렌까도 안전한 곳으로 끌어 와!”

“알았어!”

“온다! 준비해!”

마침내 마수들이 몰아닥쳤다. 미리 검신에 피를 먹여 신속성을 끌어올린 나는 곧바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내 옆에서도,

『우랴아아앗! 죽어라!』

하며 무라사끼가 연거푸 검을 휘두를 때마다 붕, 붕 하는 소리와 함께 마수가 퍽, 퍽 맞으며 내팽겨쳐졌다. 검의 예리함이 녀석의 힘을 따라가지 못해, 벤다기보다는 거의 두들겨 팬다는 느낌이었다.

뒤에서는 송병오 역시 바쁘게 교총(?)의 총구를 놀렸다. 총구가 불을 뿜을 때마다 공중을 날던 작은 마수 한 마리씩 바닥으로 떨어졌다. 송병오가 구식 리볼버 형태의 교총을 꺾어 빈 탄피를 쏟아내며 외쳤다.

“홍옥례! 내 장전 좀 함세!”

“알았어! ……이크!”

홍옥례 역시 이리저리 스텝을 밟고 발질을 날리며,「게다마」따위의 작은 마수들을 때려잡았다. 고압의 전격이 실린 택견의 발질에 맞은 조그만 마수들은 곧바로 즉사했다.

몰려들어온 마수들은 대부분, 입학식 때 사전체험실습에서 시험용으로 잡았었던 자잘한 하급 마수들이었다.

녀석들이 각자 혼자서도 대응할 수 있을 만큼 약한 하급 마수뿐인 것은 다행이었다. 하지만, 문제라면 그 수가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무라사끼든 송병오든 홍옥례든 한 번에 한 놈씩 상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국 가장 바쁜 사람은 속도가 빠른 나와, 그리고 광역 공격이 가능한 이유하였다.

“하앗……!”

이유하는 바닥에 넓게 빙결을 방출해 얼어붙게 만들어 마수들의 발목을 붙잡거나, 날아다니는 곤충형 마수의 날개를 얼려 떨어트리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방출 계열의 능력은 범위가 넓고 강력한 만큼 여러 계열의 각성능력 중에서 마력 대비 효율이 가장 떨어지는 능력이었다. 효과에 비해 마력과 체력의 소모가 심하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싸움이 길어지자 이유하가 가장 먼저 지쳐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이유하는 안색까지 창백해진 채 두 다리에 힘이 풀려 겨우 서 있는 지경이었지만, 그럼에도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 영혼의 응집체와 컴퓨터. 저것부터 어떻게 하지 않는 이상에야 이곳에서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젠장. 그나마 다행인 건 최소한 덥지는 않다는 것밖에 없네.’

이렇게 움직이며 싸우면서도 공기는 쾌적했다. 그렇잖아도 신경쓸 것이 많은데, 덥기까지 했으면 더욱 곤란했을……

‘아니, 잠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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