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68화 (68/229)

〈 68화 〉 집 밖은 위험해 (1)

* * *

“네에네에, 커피 마시러 가자!”

“커피…… 말이오? 아직 점심도 들지 않았소만.”

이른바 ‘쇼핑’을 마치고 나오자 양복자가 커피를 먹으러 가자고 제안했다. 끼니조차 챙기지 못했는데 차를 마시자는 말에 이유하는 의문을 제기했지만,

“원래 밥은 걸러도 커피는 마시는 거야!”

라는, 마치 진리라도 설법하는 듯한 양복자의 당당한 말에,

‘이것이 ‘근대’인가……’

하고 납득한 이유하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카페’를 가는 것이오?”

“응응! 하지만 요사이엔 헨나 카페도 많으니까 조심을 해얄걸!”

“이상한 카페?”

“뭐어, 이상하달까, 데까당스 하달까…… 그런게 있어! 분은 짙고 옷은 짧은 오네상(언니)들이, 사내들한테 커피랑 같이 ‘써어비스’를 파는 곳이…… 그러니까 그런 곳은 그만두고, 깃사뗀(끽다점)으로 가면 돼!”

양복자는 말을 흐렸지만 이유하 역시 천치는 아닌 바, 양복자가 말하는 퇴폐 카페가 대강 어떤 곳일지 짐작했다.

‘신식 기생집 같은 곳인가.’

이유하는 생각했다. 그런 곳에 구태여 가볼 필요는 없겠지. 백철연 역시 아무리 모던보이일지언정 올곧은 사내인 만큼 그런 해괴한 곳은 발도 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양복자와 함께 ‘깃사뗀’이라는 곳을 찾아와, 테이블을 끼고 앉았다. 자리에 앉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막 끓인 커피와 함께 나온 것은, 각설탕이 든 조그만 종지그릇.

‘설탕을 넣는 것 쯤은 내 아오.’

이유하는 양복자에게 또 무시당하기 전에 자신의 잔에 설탕을 넣었다. 그런데 한 모금 마셔보니 그만, 실수로 설탕을 너무 많이 넣고 만 것이었다.

‘달아……!’

이유하의 표정을 보고 눈치껏 상황을 파악한 양복자가 웃으며 말했다.

“설탕 너무 많이 넣었구나? 다이죠부다요! 난 아직 안 넣었으니까, 내 꺼랑 반반씩 섞으면 문제없지!”

양복자는 그렇게 말하며 두 잔의 커피를 공중으로 띄웠다. 잔은 그대로 테이블 위에 있고, 액체 상태의 커피만을.

흔들흔들…….

마치 무중력 공간에 흘러나온 물처럼, 공중에 떠 있는 커피 덩어리. 양복자는 테이블 위의 공중에 뜬 커피를 이리저리 굴리며 말했다.

“흐흥! 이런 건 아무나 못 한다고!”

“솜씨가 대단해졌구려. 그야말로 괄목상대요.”

“아따시 유­도­세­다까라네(난 우등생이니까)!”

고체는 손으로 물건을 집듯이 어느 한 부분만 잡고 들어올리면 되는데, 액체는 전체를 받쳐야 하기 때문에 훨씬 고난이도라고.

그런데, 양복자가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공중에 커피를 띄우는 묘기를 부리던 중,

툭­!

“아앗!”

양복자의 뒤에서 누가 툭 치고 지나가는 바람에, 그만 집중력을 놓치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공중에 띄워졌던 커피의 덩어리는 이유하에게 쏟아지고 말았다.

촤악­!

“……!”

“어머! 도오시요(어떡해)!”

양복자는 급히 냅킨으로 이유하의 얼굴을 닦아주려는데,

“앗 차가!”

하고 놀라고 말았다. 냅킨으로 닦아주려고 보니, 이유하의 피부가 놀랍도록 차가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제 보니 이유하의 맨살은 전혀 화상을 입거나 젖지도 않은 것이다.

“뭐, 뭐야?”

“아, 이것은……”

이유하가 설명했다. 뜨거운 것이 닿자 자기도 모르게 방어기제로 피부 위로 빙결이 발동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유하의 옷에는 뚜렷하게 커피 얼룩이 지고 말았다. 게다가 흰 색에 가까운 연분홍 블라우스였던지라 빨래를 해도 어지간해서는 잘 지지 않을 듯 했다. 그것도, 하필이면 오늘 산 옷에…… 양복자는 합장하듯 두 손을 맞대고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미안! 고멘고멘!”

“괜찮소. 그대 탓도 아닌 것을. 그대가 염려할 것 없소.”

“우웅…… 그나저나, 뭣 하는 양반들이야?”

양복자는 뒤를 흘겨보며 말했다. 그녀의 뒤를 툭 치고 지나간 사람에 대한 화풀이였다. 하지만 정적 당사자—이제 보니 한두 사람이 아니었다—들은 자신이 한 짓도 모르는지, 그저 바쁘게 끽다점을 나서고 있었다. 무기같은 것을 가진 행색을 보니 엽사인 모양이었다.

그러고 있자니, 옆 테이블에서 일본인 엽사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까의 녀석들, 뭐야? 급히 나가고…… 마문이라도 나왔나?』

『녀석들 전화받는 것을 들었는데, 모찌넨도가 나타난 모양이야.』

『뭐야, 모찌넨도? 별거 아니잖아. 잡아봤자 수지도 안 맞는다고. 어차피 비 그치면 자연히 말라죽을 것을 뭐……』

『그렇지. 게다가 위치를 들어보니까, 조선인들만 사는 곳이더란 말이지.』

『아아, 알겠구만. 하여간 모찌넨도라니, 그러면 그렇지. 선인들은 본래 비위생적인 놈들이니까……. 애초에 위생적인 곳이면 모찌넨도가 서식하지도 못한다고.』

그런 대화를 들으며 이유하가 양복자에게 말했다.

“우리 말이오. 이대로 있어도 괜찮겠소?”

“우리? 왜?”

“마수가 나타났다지 않소? 우리도 힘을 보태야……”

“마수고 나발이고, 어차피 우리는 생도 신분이라서 엽사활동은 못하잖아? 현직 엽사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걱정 말자고!”

하긴, 맞는 말이었다. 아직 엽사 면허가 없는 학생 신분으로는 마문에 들어가지도, 자발적으로 마수를 사냥하고 다닐 수도 없었다. 그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자위권만 행사할 수 있을 뿐.

“뭐,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오늘은 이만하고 집에는 돌아가는 것이 낫겠지…… 그나저나, 저 옷은 어쩐담.”

양복자는 여전히 이유하의 옷에 커피를 쏟은 것을 미안해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말했다.

“네에네에! 있지, 오늘 자고 갈래?”

“……?”

“우리 집에서! 비도 쏟아지고 길도 험한데 너어, 다시 학교 돌아가려면 고생이잖아? 우리집 저어기 새로 생긴 주택단지로 여기서 금방이니까, 와서 저녁도 같이 하고, 옷 세탁도 하고……”

양복자는 그렇게, 미안하다면서 오늘은 자기 집에서 묵을 것을 제안했다. 저녁도 먹고 세탁도 하고 가자면서. 아닌게 아니라, 기껏 자신의 능력 자랑을 하다가 이유하의 새로 산 옷을 망쳤으니 정말로 미안해하기는 한 것이었다.

“……!”

이유하로서는, 오늘 한나절동안 양복자와 더불어 장안을 구경하고 또 즐기기도 했지만, 솔직히 양복자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신경써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 점이 의아하면서도, 또한 고마워서, 이유하는 생각했다.

‘혹여 내 재주가 쓸모가 있다면……’

엽사들을 따라 마수를 사냥하러 가느니, 또 학교 기숙사에 돌아가느니, 차라리 양복자와 함께 있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혹시라도 위급한 때가 온다면 서로 힘을 합쳐서 지킬 수 있을 테니까.

이유하는 그제서야 오늘 돌아다닌 중의 처음으로,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눈 앞의 벗에게 말했다.

“좋소. 내 실례가 되지만 않는다면.”

***

‘치이! 그 동무분은 아주 눌러앉아서 입 벌릴 량이면 돈이나 내놓지 않구.’

함서주는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언덕길을 내려가고 있었다. 요 앞의 길전(??)상점으로 찬거리를 사러 나온 길이었다.

이렇게 비가 오지만 밥을 안 할 수는 없었다. 학생 손님도 요즈음에는 밖에서보다는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늘어났고, 아버지 함원삼도 다쳤으니 집에서 세 끼를 해결해야 한다. 더욱이 일시적이라고는 해도,

‘그 안경잽이 동무분은 아주 눌러앉아서는……’

입이 한명 더 늘어난 마당이니 찬거리가 빨리도 줄어드는 것이었다. 함서주는 언덕길을 쫄래쫄래 걸어내려가며 생각했다.

‘이렇게 비두 오는데, 오늘은 파전이래두 내놓아 볼꾸? 그래 아부지두 손님두 어차피 술을 자실 거, 소주나 비­루보다는 차라리 막걸리라두 한 주전자 사다가……’

그렇게 언덕배기를 내려가서 마악 모퉁이를 도는데,

가게 안에서 우당탕, 하고 소란이 들려오기에, 어차피 들어서려던 가게이기도 하고, 함서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서니,

“에그머니나!”

웬 끈적한 진액 덩어리처럼 생겨서는, 흐느적거리지만 움직임은 잽싼 조그만 놈이 가게 안을 마구 헤집어놓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 바람에 늙은 요시다 부부는 불쌍하게도 가게 안쪽의 단칸방으로 밀려나,

『고이쓰, 가에로(돌아가)! 가에로!』

남편 쪽은 구마데(복을 부르는 의미로 걸어놓는 나무 갈퀴)를 휘젓고 있었고,

『게사쓰 단나(경찰 나으리)! 게사쓰 단나!』

부인 쪽은 전화를 붙잡고 연신 경찰을 부르고 있었다.

바닥에 있던 놈이 또 어딘가로 튀어오르려는 찰나, 함서주는 급한 마음에 장바구니를 뒤집어 놈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 장바구니의 대나무 살 틈새로 진액이 빠져나오기 전,

『요시다 오바상(할머니!)! 호쬬(식칼!) 호쬬!』

『여, 여기……!』

식칼을 받아 든 함서주는 역수로 쥐고 장바구니를 마구 찔러내렸다.

“에잇! 에잇!”

그렇게 서너 번 내리찍었을까, 장바구니 안에 갇힌 녀석은 갑자기 그 움직임과 탄력을 잃더니, 물 채운 풍선처럼 푸확, 하고 터져흐르고 말았다. 함서주는 바로 뒤로 고꾸라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햇, 해애……”

함서주는 살면서 처음 마수를 잡아 본 경험에 심장이 두근두근 뛰는 것을 느끼며, 그대로 식칼을 두 손으로 붙든 채 주저앉아서 생각했다.

‘내가 마수를 어떻게 잡았을꾸?’

집에 하숙 손님으로 엽사전문 학생을 들이더니,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마수 엽업(?)의 이치를 깨달은 것일까?

하지만 함서주가 학생 손님이 하는 공부를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아니었고, 학생 손님을 들인지 삼년은 커녕 끽해야 삼, 사주 밖에 되지 않았다.

이것이 ‘모찌넨도’라는 이름의 마수라는 것은 함서주도 주워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이름을 안다고 처치법까지 아는 것은 아니었고, 그럴 능력도 없었다.

그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쥐라도 잡듯이 뭐라도 덮어놓고 칼로 찌른 것 뿐이었는데, 운 좋게도 조그만 녀석이었어서 식칼 끝이 핵을 찌를 수 있었기에 처치에 성공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요행으로 성공한 처치일지라도, 생전 처음으로 마수를 잡아 본 함서주로서는 스스로도 놀랍고 신기한 첫경험인 것은 당연지사.

함서주가 그렇게 주저앉은 채로 놀란 심장을 진정시키며 숨을 고르는데, 가게 안으로 누군가가 불쑥,

『주인장! 전화를 좀……』

하고 들어오더니,

“어? 서주야?”

하고 이쪽을 보고는 물어온다. 사내는 뭔가 끈적한 체액과 빗물 따위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서주는 잠깐 놀랐으나 다시보니 익숙한 얼굴이었고, 그 사람의 뒤에도 함서주가 이전날 본 얼굴이 둘이 더 있다. 함서주는 그들을 알아보고 반색하며 외쳤다.

“손님!”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