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 한풀이 (1)
* * *
『아레? 목에, 뭔가…… 켁!』
『켁……! 코호, 윽!』
두 여학생은 자신들의 목을 붙잡은 채 공중에서 버둥거렸다. 눈에 보일 정도로 구체화된 혼령 에너지가 두 여학생의 목을 조이고 있었다.
“꺄악! 힉, 왜, 왜 그래?”
괴롭힘을 당하던 조선인 여학생은 그 광경을 보고 놀라 주저앉더니,
“어, 엄마야! 저게 뭐야……! 사람 살려!”
멀리서 우뚝 서 있는 인체모형을 보고는 이내 비명을 지르며 도망갔다. 나 역시 방숙자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하필이면 이런 공동묘지에서, 방숙자가 화를 내게 되다니……’
이곳은 공동묘지. 흩어져있는 혼령 에너지가 가득한 것은 당연했다. 방숙자가 분노해 잠시 이성을 잃은 틈을 타, 흩어져 있던 혼령 에너지가 달라붙은 것이다.
마치 학교 지하에서 봤던 영혼의 응집체처럼, 방숙자가 빙의된 인체모형을 중심으로 일렁거리는 혼령 에너지는 눈에도 뚜렷하게 보일 정도로 응집되어 있었다.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 때문에 사또미는 아직도 괴로워해! 너희들 때문에 나도 왕생하지 못하고……!』]
일본어로 말하는 방숙자의 목소리는, 영혼의 소리를 듣는 라디오 없이도 귀에 뚜렷하게 들려왔다. 응집된 혼령 에너지가 물리적인 영향력을 확실하게 끼치고 있다는 뜻이었다.
『켁……!』
두 여학생은 공중에 뜬 채로 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러운 듯이 버둥거렸고, 치마 아래로 소변이 지려져 흘러나왔다.
방숙자에게 달라붙은 혼령 에너지는, 이미 자아가 흩어져 스스로가 누구인지도 잊고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잊은, 그저 에너지로만 남은 혼령들이었지만,
끈적한 원한의 질감만큼은 그대로 남아있었기에, 그 어두운 기운의 혼령 에너지를 모조리 흡수한 방숙자는 이미 정상적인 혼령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악귀(??).
나는 그런 방숙자를, 인체모형을 향해 외쳤다.
“숙자! 방숙자! 멈춰!”
[가.]
잠식되어 악귀가 된 방숙자였지만, 아직 남아있는 일말의 이성이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시방 지금의 나는, 나도 멈추지를 모대. 그러니, 살라면 너라도 가.]
하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멈춰야 해.’
이대로 놔두다간 저 여학생들은 죽을 것이 뻔했다. 아무리 다른 학생들을 괴롭혀온 녀석들이라고는 하지만, 더 이상 나쁜 짓을 못하도록 교육을 시켜줄 망정, 이렇게 살해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나는 시선을 돌려, 방숙자가 빙의된 인체모형을 바라보았다. 방숙자만 빙의되어 있을 때 흰 빛이 나던 본래의 모습과는 달리, 어두운 기운이 두껍게 둘러진 인체모형.
‘저것 때문이야.’
흩어져 떠돌던 혼령 에너지가 저렇게 인체모형을 중심으로 뭉친 것은, 방숙자가 이성을 잃고 분노에 휩싸인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저 인체모형에 영기가 깃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저 인체모형만 없애버린다면 뭉쳐있는 혼령 에너지는 구심점을 잃고 흩어질 것이다.
물론 그렇게 하면 방숙자도 인체모형에서 벗어나 아이까와도 없이 떠돌다 또다시 악귀가 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었다.
스르릉!
나는 허리에 찬 검을 빼어들었다. 렌까로부터 받았기에, 시마즈구미의 문장이 있어 열차에 들고 탈 수 있었던 그 검이었다. 칼자루의 버튼을 누르면 검신을 따라 불이 뿜어져 나오는 검.
‘불은…… 젠장, 무리다.’
저 인체모형은 불에 잘 타는 재질인 셀룰로이드로 만들어졌으니만큼, 불을 붙이기만 하면 금방 무력화시킬 수 있을 터.
하지만, 비가 쏟아지는 탓에 불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물론 검에 내장된 토치 자체의 화력이 약한 탓도 있었지만, 이렇게 쏟아지는 비라면 아마 이 자리에 렌까가 있었더라도 무리였을 것이다.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손 놓고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나는 칼을 빼어든 채 인체모형을 향해 달려나갔다. 불은 붙이지 못하더라도 어떻게든 베어버리면 될 터. 하지만,
“……큭!”
엄청난 중압감이 느껴져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든 데다가, 인체모형을 중심으로 휘몰아치는 영기는 마치 칼날처럼 날카롭게 벼려져,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옷이 찢어지고 칼에 베인 듯한 상처가 일어났다.
‘젠장, 수트를……’
가방 속에 전신 타이즈 수트를 챙겨오긴 했지만 입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옷이었으니, 입고 나면 저 여학생들은 이미 숨이 끊어진 뒤일 것이다.
불을 붙일 수도, 가까이 다가갈 수도 없었다.
‘젠장, 어쩔 수 없어.’
안됐지만 두 여학생의 목숨은 포기하고, 인체모형 가까이 다가가 공격이라도 가능케 하기 위해 수트를 챙겨입으려는 그 때……!
『요, 요시꼬 쨩, 맞지?』
공동묘지의 언덕배기를 올라와 외치는 한 여학생. 베이지색 머리를 양갈래로 땋은 그녀는—
나와 같은 분대의 치유 담당이자, 방숙자의 어린 시절 친구, 아이까와 사또미였다. 나는 교복을 벗으려다가 멈추고 생각했다.
‘아니, 쟤가 여긴 어떻게 알고 왔지?’
분명 내가 양복자에게 부탁해서 학교 기숙사에서 쉬고 있어야 할 아이까와가, 어떻게 알고 바로 이곳에 찾아온 것일까?
나도 놀랐지만, 아이까와를 알아본 방숙자 역시 놀라며 일본어로 말했다.
[『사또미……? 네가 이곳엔 어떻게……?』]
『요시꼬 쨩, 맞구나!』
아이까와는 그야말로 괴물같은 인체모형의 모습에 겁을 먹은 얼굴이었지만, 다가오며 덜덜 떨리는 두 손을 모아잡고 용기를 내어 다가오며 외쳤다.
『다 알았어……! 네가 요시꼬라는 걸! 하지만 요시꼬! 사람을 해치면 안 돼!』
[『……!』]
순간 당황한 방숙자는 혼령 에너지로 붙들고 있던 두 여학생을 놓쳤고, 방숙자가 잠시 주춤하는 그 틈을 타, 아이까와는 쓰러진 두 여학생에게 다가가 생력을 주입했다.
『……!』
아이까와는 그제서야, 쓰러져있는 여학생들이, 과거 소학생 시절 자신과 방숙자를 괴롭혔던 그 여학생임을 알아보고는 살짝 눈썹을 찌푸렸지만,
『…….』
별 말 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여학생들을 치료해 주었다. 아직 정신은 잃은 상태였지만, 목의 상처와 호흡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여학생들을 치료하고 나니,
[『용서하는 거야……?』]
그렇게 묻는 것은 방숙자였다. 방숙자의 목소리가 말을 이었다.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 거야……?』]
아이까와는 일어서서는, 인체모형을 향해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나는 아무도 원망하지 않아, 요시꼬.』
그렇게 말한 아이까와는 침을 꾹 삼키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더 이상 네가 두렵지도 않아.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
아이까와는 인체모형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렇잖아도 먹구름이 잔뜩 껴 어두운 하늘 아래로, 휘몰아치는 검은 영기(??)를 전신에 두르고 우뚝 서 있는 인체모형.
그런 어둠 속에서 유리 눈알의 안광이 뿜어져 나오고, 셀룰로이드와 고무로 만들어진 장기에서 꼬마전구가 점멸하는 인체모형의 모습은,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똑바로 바라보기도 무서운 광경이었지만,
그 안에 깃들어있는 것이 자신의 옛 친구라는 것을 알아서일까, 아이까와는 용기를 내어 인체모형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방숙자의 목소리가 외쳤다.
[『가까이 오지 마!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니야! 너를 해칠 수도…… 크윽!』]
그 말과 동시에, 어두운 기운의 혼령 에너지가 촉수다발처럼 뻗어나와 아이까와의 목을 졸랐다.
『흐읏……!』
[『괴롭힘』 『죽어』]
인체모형을 통제하고 있는 것은 이미 방숙자의 이성이 아닌, 방숙자에게 흡수된 수많은 혼령들이었다.
[『너도 결국』 『일본인』 『빼았겼어』 『원망해』 『빼앗겼다』 『묫자리를』 『조선인들의』 『분해』 『너도』 『나빠』 『죽어』]
방숙자의 목소리로 나오는 말들은, 공동묘지에 있던 여러 혼령들의 파편화된 원망이었다.
뻗어나온 혼령 에너지가 아이까와의 숨통을 조르고, 인체모형를 중심으로 두껍게 응집된 영기도 다시 휘몰아치기 시작해, 날카로운 영기가 아이까와의 교복을 찢고 생살에 생채기를 내었다.
그럼에도, 아이까와는 인체모형을, 아니 옛 친구를 향해 나아갔다. 그런 아이까와의 몸에서는 은은하게 빛이 발하고 있었다.
‘……생력!’
아이까와로부터 방출되는 생력을 만나 상쇄되며 그 기세가 꺾이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매서운 바람처럼 휘몰아치는 영기와의 힘겨루기가 이어지며 한 걸음, 한 걸음, 인체모형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아이까와는,
『요시꼬.』
인체모형의 가슴에 손을 얹고, 생력을 주입하기 시작했다.
“……!”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인체모형에 생력이 주입되면, 주변의 혼령들이 더더욱 깃들기 쉬울 텐데?’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인체모형을 둘러싸고 있던 어두운 기운들은 오히려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니…… 아니야.’
나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셀룰로이드로 이루어진 인체모형에 주입을 하는 것이 아닌, 방숙자의 혼령을 향한 주입이었다.
지난밤에 인체모형이 불타며 생력을 잃고 힘을 잃었던 방숙자의 혼령에 생력을 보태줌으로써, 여기에 달라붙은 다른 어두운 혼령들을 밀어내는 것이었다.
『요시꼬가 언제나 내 주변에 있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았어.』
『나, 친구도 많이 생겼어. 저기 서 있는 시라바야시 군도 있고, 다른 아이들도 많아. 그 중에서 도미꼬라는 아이는, 너도 학교에서 봤지? 너와 참 비슷한 아이인데, 이제는 나와 단짝이 되었어.』
『나를 괴롭히던 아이들도 이젠 두렵지 않아. 나는 이제 그런 것 따위로 상처받지 않고, 친구들도 있는 걸.』
[『사또미……』]
스르르……
방숙자에게 달라붙어있던 어두운 혼령 에너지가 모두 흩어지고, 사방을 휩쓸던 거센 바람도 멎었다. 쏟아지던 거센 비도 어느샌가 멈춰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