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179화 (179/229)

〈 179화 〉 부활전 (3)

* * *

『시라바야시 상에게는, 내 도움이 필요해. 오직 나만이 그를 구할 수 있어.』

렌까는 탁자 위의 전화기에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어올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를 도와줄, 약간의 변수만 있다면……』

물론, 렌까가 지금 당장 800 킬로미터의 거리를 뛰어넘어 경성으로 달려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다면 렌까가 백철연을 위해 줄 수 있는 도움은 무엇이 있을까. 렌까의 생각은 자신이 이끄는 엽사조합, 시마즈구미 경성분조에 닿았다. 자신의 부재 동안 경성분조를 대신 지휘하고 있는 부분조장, 다까히로에게 명령해볼까?

‘경성분조의 정예 몇 명만 투입되어도……’

전황은 크게 바뀔 것이다. 렌까는 바로 다이얼을 돌려, 국제전화 교환대를 거쳐 경성 황금정에 있는 시마즈구미 경성분조의 사무소로 전화를 걸었다. 이런 늦은 시간에도 당직을 서는 조합원은 있을 터.

하지만,

『어째서, 어째서 전화를 받지 않는 거얏……!』

렌까는 수화기를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외쳤다. 수화기 너머로는 그저 뚜­ 하는 연결음 뿐. 경성 황금정에 위치한 경성분조 사무소의 전화도, 조합원들의 숙소 전화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

렌까는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나지막히 내뱉었다.

『……그렇구나.』

경성분조의 최고 총지휘자는 시마즈구미 본조(??)의 수장이자 당주인 시마즈 다다노부. 일반 조합원들은 물론이고 아무리 충성스러운 다까히로라고 해도, 시마즈구미에 몸담고 있는 이상 감히 당주에게 거역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미 개입하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졌을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하겠지.

렌까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경성분조를 쓸 수 없다니, 이래서야 손발이 잘린 것이나 마찬가지인 렌까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어쩌지?’

머릿속이 하얘진 렌까는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어쩌지? 어쩌지? 까뜨린느! 나는 어쩌면 좋아? 아오끼 소좌가 시라바야시 상을 죽이면, 나는, 나는……』

떨리는 손으로 까뜨린느를 붙들고, 고개를 숙이곤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까뜨린느어떡하지까뜨린느어떡하지까뜨린느어떡하지……』

그렇게 한참을 불안하게 중얼거리던 렌까는, 문득 까뜨린느를 흔들며 다른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나쁜 일이잖아! 나쁜 사람은 경찰에 신고하는게 어때?』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입에서나 나올 법한 천진난만한 해결책이었지만, 렌까는 고개를 들고 되물었다.

『……경찰?』

렌까에게는 그것이 오히려 솔깃하게 생각되었다.

‘그렇지. 경찰이 출동하는 것도 외부로부터의 변수. 예상 외의 변수가 있다면, 시라바야시 상이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높아져.’

렌까 본인도 시마즈구미 경성분조의 수장으로써 사소한 법 따위는 종종 어기는 일이 다반사라지만, 일본은 기본적으로 법치국가고, 일본의 다스림을 받는 조선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을 경찰이 묵과할 수는 없는 법이다.

『네 말이 맞아, 까뜨린느. 경찰이라면, 두고보지만은 않을테니까…… 그럼, 정말로, 경찰에 신고해보면?』

하지만, 전화기에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어올리려던 렌까는 멈칫했다.

시마즈구미 경성분조라는 엽사조합을 이끄는 렌까로서는 경찰의 도움을 받는 것은 위신이 몹시 상하는 일이었고,

그런 자존심은 내려놓더라도, 경찰의 도움을 받아 백철연을 돕는다는 것은 대놓고 아버지에게 반기를 드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그래서, 차마 수화기를 들지 못하고 주저하던 렌까였으나—

『……잠깐.』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렌까는 아주 살짝,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경찰에게의 신고만 아니면 되는 것이겠지요.』

렌까는 수화기를 집어들고, 다이얼을 돌렸다.

***

달도 뜨지 않고 별빛도 흐릿한 밤하늘.

그 아래, 다 허물어진 북한산성 행궁의 한 가운데에 서 있는, 주변의 풍경과는 사뭇 이질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까지 보이는 은빛 사무라이.

그리고, 칼을 높게 치켜든 그의 주변으로, 다시 일어난 좀비들의 모습을 본 나는 경악했다.

‘좀비들을 조종할 수 있는 건가!’

죽었던 놈이 살아돌아온 것도 어처구니가 없는 일인데, 게다가 방금 안테나가 그랬듯이 좀비들을 조종하기까지 하다니. 아오끼 소좌는, 전신을 뒤틀며 일어서는 시체들을 비웃으며 말했다.

『큭큭…… 조선인, 조선인, 죽어서도 멍청한 조선인들이로군. 조선인은 사람이 시키는대로 이리저리 휩쓸릴 뿐, 줏대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지. 일어나라, 자아, 일어나라—!』

그렇게 좀비들을 모두 일으킨 아오끼 소좌는, 여전히 검을 치켜든 채로 말을 이었다.

『그래…… 교수들이 뭐라고 했던가. ‘군인에게 복수를’?』

그 말과 동시에, 이제 막 일어난 좀비들이 일제히 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만세에……]

[만세에에……!]

아까처럼 만세 소리를 울부짖으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리고, 점점 속도를 높여서 거의 뛰는 듯한 속도로. 그런 좀비들의 눈과 얼굴은 아까처럼 우리를 향한 적의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군복을 보고 공격하는 거였어!’

비록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교복이 군복은 아니었지만, 남학생의 가꾸란은 과거의 육군 제복에서 변형된 것이고, 여학생의 세라복은 해군 제복에서 온 것이었다.

복잡한 사고를 할 수 없는 좀비들은, ‘군인에게 복수를’이라는 명령에, 자신들의 뇌리에 각인된 군복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우리들에게 적의를 불태우는 것이다.

저 아래 아오끼 소좌가 서 있는 주변의 좀비들과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들이 있는 옥상에서도,

[만세에에……]

[만세에에……]

—쿵!

—쿵! 쿵!

옥상 문 너머로 시체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다시 옥상 문이 두들겨지기 시작했다. 아까 이유하가 빙결을 퍼부어 얼어붙여놨건만, 따뜻한 5월 하순의 밤공기에 이미 반쯤은 녹아내린 문은 금방이라도 열릴 듯 했다.

“꺄아악! 도오시요! 어떡해!”

“양가 복자! 그대도 어서 밀어내시오! 어떻게든……!”

“아, 알겠어! 아이까와, 다스께떼!”

여학생들은 부족한 마력을 쥐어짜내서 각자의 능력을 방출해 옥상 문을 막아섰다. 하지만 이미 한계에 가까웠던 상태였기에,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며, 다시 난간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우선 좀비들부터 다시 멈춰야 해.’

나는 마력 감응을 끌어올려 마력의 흐름에 집중했다. 아까는 막사 옥상에 있던 안테나로부터 느껴지던 마력파가 지금 나오고 있는 곳은,

‘저 검!’

아오끼 소좌가 높게 치켜든 검. 그것이 안테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막사 옥상에 있던 5­6미터나 되는 안테나에 비한다면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범위는 그리 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주변, 이 막사에까지 영향력을 끼치는 데에는 충분하리라.

결국, 좀비들을 멈추려면 아오끼 소좌부터 제압해야 했다. 나는 분대원들에게 말했다.

“조금만 버텨. 저 놈은 내가 상대할게. 그리고 송병오.”

“말하게!”

“옥상 문이 뚫리면, 네가 좀비들을 제압해.”

문을 막는 데에 전력을 쏟아부었던 여학생들과는 달리 좀비들을 향해 견제사격만 했던 송병오 녀석에게는 마력이 많이 남아 있었고, 그나마 좀비들에게 직접적으로 물리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녀석이었다. 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쏠 때는 정확하게 머리를 쏴.”

아까 송병오의 견제사격에 어쩌다가 머리를 맞은 좀비들은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흔히 매체에서 접하는 좀비들처럼 머리가 약점이리라. 하지만 머리를 대놓고 쏘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송병오가 투덜거렸다.

“제기랄, 꼭 머리를 쏴야 하겠나? 암만 강시가 되었다지만 그래도 저들은 죄 없는 조선인이고, 또 우리 학교 선배지 않은가……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네그려!”

그렇게 망설이는 송병오에게 나는 덧붙였다.

“지금은 아니야. 오히려, 일본 놈들에게 조종당하는 속박에서 풀어주는 것이야말로 지금같은 상황에서는 옳은 길이니까,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제기랄, 알겠네! 내 어떻게든 해 봄세!”

송병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는 그런 녀석에게 마주 끄덕이고는, 다시 난간으로 향했다.

『조선인, 여기로 와라! 너는 내 손으로 죽이겠다!』

아오끼 소좌가 외쳤다.

그렇잖아도 놈을 상대할 생각이었기에, 나는 2층 막사의 옥상에서 바로 뛰어내렸다. 아무리 고지가 중요하다지만, 이 거리에서 놈을 공격할 수는 없었으니까.

바닥으로 뛰어내려 낙법을 이용해 바닥을 구른 뒤 일어서자, 막사로 향하던 좀비 몇 마리가 내 쪽으로 다가왔지만 나는 가볍게 목을 베어내어 무력화시켰다.

‘젠장. 좀 찝찝하긴 하네……’

신체란 부모가 내린 것이니 훼손하면 안 된다는 유교사상이 깊게 베어있는 조선인들에게 있어서, 목을 베어내는 참수는 대역죄인에게나 어울리는 불명예스러운 죽음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머리를 쏘라는 말에 송병오가 꺼림찍해 했던 것던 것도 그런 인식 때문이리라.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설득하듯 마음을 다졌다.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

아까 송병오에게도 말했듯이, 지금같은 상황이라면 일본에게 조종당하지 않도록 안식을 가져다주는 것이야말로 이들을 위한 최선이었다. 나쁜 것은 어디까지나, 죽은 자를 이용하는 놈들인 것이다.

대동아공영회의 교수들이나, 내 눈앞에 서 있는 저 놈처럼.

—철컥, 철컥……

내가 대여섯 보 거리까지 다가가자, 놈은 높게 치켜들었던 칼을 나를 향하여 비껴들고 천천히 옆으로 발을 밟았고, 나 역시 놈에게 칼 끝을 향한 채, 천천히 옆으로 움직이며 놈을 노려보며 생각했다.

‘팔다리를 잃었던 놈이, 지금은 멀쩡히 사지를 움직이고 있어. 기계로 대체한 건가?’

21세기에서나 볼 법한 의수·의족 기술이 이 시대에 존재하리라고는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그런 안일한 생각은 지금껏 몇 번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깨지지 않았던가.

인공 마문을 만들어낸 동양척식주식회사 마문개발부, 진공관 컴퓨터를 만들어낸 히가시노리 연구소, 게다가 이 학교의 일부 교수들까지 속해있는 대동아공영회라는 거대 비밀 집단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이 대체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니, 저 아오끼 소좌라는 놈이 팔다리를 기계로 대체했다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은 아닐 터.

나는 칼 끝을 놈에게 향하고, 놈의 전신갑주와 몸의 움직임을 파악하며 생각했다.

‘불리해.’

상대는 전신에 갑주를 두르고 있다. 그것도, 겉모양은 일본 전통 갑주의 모습이지만 서양의 풀 플레이트 갑옷처럼 금속으로 온 몸을 감싼 형태였다.

그리고 내 무기는 검.

본래 도검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가장 범용성이 높은 무기이지만, 금속 갑주를 두른 상대에게는 애매한 무기였다. 아무리 튼튼하고 예리한 검이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금속을 베어낼 수는 없다. 마력으로 강기를 둘러도 어지간해서는 힘들다.

중세 서양의 도검이 곧고 가늘어진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전신을 금속 갑주로 무장한 기사를 제압하려면 틈새로 찔러넣는 수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찬가지로 눈 앞의 아오끼 소좌를 제압하려면 나도 틈새로 찔러넣는 수밖에 없는데,

지금 내가 들고 있는 무기는, 본래 렌까가 쓰던 것으로 타치(太?) 양식의 일본도. 일본도처럼 검신이 휘어진 곡도는 찌르기에는 알맞지 않았다. 검신이 휘어져있어 베기에는 특화되어있지만, 좁은 틈새에 찌르기에는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쉽지 않겠는데.’

물론, 다만 베기에 특화되어있다 뿐이지 일본도라고 해서 아예 찌르지 못할 도검은 아니었고, 그나마 적이 전신 갑주를 전신에 두르고 있어서 속도는 느릴 것이라는게 다행인가.

‘그래. 놈이 속도만 느리면 어떻게든 해볼만 해.’

그런데, 이렇게 서로의 칼끝을 서로에게 향하고 의중을 파악하는 것도 잠시,

『후우—! 너의 목을 내놓아라! 그것을, 렌까 아가씨와의 혼인을 위한 유이노오(??; 결혼 예물)로써 취하겠다!』

먼저 땅을 박차고 달려드는 놈의 움직임은,

‘빨라?’

전신 금속 갑주를 둘렀다기엔 믿기 힘들 정도의 날렵한 움직임이 아닌가. 저 금속 갑옷만 해도 엄청난 무게일텐데, 저걸 입고도 이런 기민한 움직임이라니.

그렇다는 것은, 한 가지 가능성 뿐이었다.

‘설마…… 강화복(powered suit)?’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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