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성의 헌터 아카데미-193화 (193/229)

〈 193화 〉 잡았다, 요놈! (4)

* * *

아지트에? 태극단의 아지트에 같이 가 보자고? 내가 대답을 않고 머뭇거리자, 홍옥례는 눈을 빛내며 재촉했다.

“내가 경성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백 동지는 우리 태극단 안에서 유명인사였다고! 무려, 백범 김구 선생님의 특명을 받는 요원이라니…… 게다가 우리 태극단을 도와준 지금은 더 영웅이 되었겠지!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도 많아!”

그렇게 나를 영입(?)하기 위해 열성적인 태도가 눈에 보였지만, 나는 그런 홍옥례의 호의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독립운동이랑 엮이긴 싫은데……’

홍옥례의 제의를 승낙해 태극단의 아지트에 가면, 홍옥례의 말마따나 나는 환영받을 것이 분명했다. 어쨌든 태극단의 안전에 일조한 것은 사실이니까.

거기까진 좋지만, 문제는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나는 종로경찰서장을 비롯해 나름대로 유력자들과 친분까지 있으니, 태극단은 내 힘을 빌리고 싶어하겠지.

‘그건 곤란해.’

하지만 그렇다고 홍옥례의 초대를 거절하면, 뭔가 캥기는 것이 있어서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고 도망치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다.

‘젠장……’

회피할 방법이 없는 가불기였다. 그럼에도 나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말했다.

“잠깐. 그래도 나는 외부인인데, 너희 아지트의 위치를 아무에게나 알려줘도 되는 거야?

“피차 우리 조선 민족을 위해 힘쓰는 사이에, 외부인이 어디 있어?”

통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에게나 아지트의 위치를 알려주진 않아. 백 동지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백 동지와 함께하는 송 동지는 물론이고.”

“허어, 부끄럽네그려. 그래! 나도 믿을만한 사내이긴 하지!”

송병오는 더벅머리를 긁으며 머쓱해하더니, 나를 향해 말했다.

“어떤가, 백철연이. 홍옥례도 저렇게까지 권하는게 거절하는 것도 예의는 아닐세그려!”

“으음……”

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런저런 생각 끝에 결국 홍옥례를 따라 태극단 아지트에 가보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뭐, 별일 있겠어.’

태극단과 안면을 터 두는 정도야 별 문제 없을 것이다.

혹시라도 태극단 쪽에서 나에게 독립운동을 위한 뭔가를 부탁해오면 또 김구 핑계를 대면서 완곡히 거절하면 되는 것이고,

완전히 태극단에 가입해서 어디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만 아니라면, 혹시라도 경찰이 태극단을 잡아들이는 만일의 사태에 책잡힐 일도 없다.

‘그리고……’

얼마 전 종로경찰서장으로부터 신분증명서를 발급받긴 했지만, 태평양전쟁이 터진 이후에는 미국행 배표를 합법적으로 구하기란 어려워지겠지.

독립운동 세력과 안면을 터 두면, 어쩌면 미국으로의 밀항에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좋아. 가 보자.”

내가 결국 홍옥례의 부탁을 승낙하자, 홍옥례는 쾌활하게 앞서 걸으며 외쳤다.

“좋아! 이 쪽으로 나를 따라와!”

우리는 홍옥례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난장판이 된 공사판을 빠져나와 다시 본정(??; 혼마찌) 번화가 거리로 접어들었다.

앞서 걷는 홍옥례를 따라 걷던 중,

“그런데 자네, 이제야 묻지마는 자네가 김구의 특명을 받았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아직도 내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는 겐가!”

송병오가 내 옆에 붙더니 작게 소근거리며 물어왔다. 아까 내가 홍옥례와 나누었던 얘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나는 대충 둘러댔다.

“그건 나중에 설명해줄게.”

“허어! 자네란 사람은 대체…… 그리고, 저 여자 말일세!”

송병오 녀석은 문득 상기된 얼굴로 말을 이었다.

“태극단이라면 그…… 조선 독립운동을 하는 단체가 아닌가? 내 일전에 신사 지하에서 마수들을 상대할 적에 저 여자랑 잠시 합을 맞춰본 적도 있건마는, 저 여자가 태극단이었다니 그건 이번에 처음 알았네그려!”

“뭐, 그거야 당연하지. 독립운동이란 건 남들에게 함부로 말할 것은 못 되니까.”

내가 그렇게 대꾸하자, 송병오 녀석은 안경을 슥 올리고 씨익 웃으며 문득 이렇게 말했다.

“후후. 설레는군.”

“설렌다고?”

“그래. 그렇잖아도 우리 말일세…… 어젯 밤에는 당장 큰 일을 위해 목숨까지 바치네 뭐네 했건만, 정작 아침이 되니 싸울 일이 없어지지 않았겠는가.”

“뭐, 대동아공영회가 당장은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니까.”

“내 말이 그것일세. 그래서 적잖이 맥이 빠졌는데…… 태극단이라니! 어쩌면 나도 사내로서 큰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흐음…….’

이 녀석, 그냥 빨갱이인 것이 아니라, 옳은 길을 위해 싸우는 것에 대한 열망도 있었는 것일까. 전부터 하는 얘기를 보면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그동안 사회주의에 심취했던 것도 그 쪽이 옳은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지도.

“그리고 말일세. 내 보기엔 무엇보다, 저 홍옥례라는 여자가 참 대단허이!”

“그래?”

“참으로 그렇지! 글쎄, 요즈음 여자들이야 어디 돈 많고 잘생긴 남자에게만 매달릴 줄이만 알지, 큰 뜻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있는 여자가, 어디 흔하냔 말일세!”

그런 얘기를 나누면서 하면서 홍옥례의 뒤를 따라 걷는데, 저 앞에서 걷던 홍옥례가 문득 멈춰섰다. 여전히 본정 번화가 거리 한가운데였다.

“왜 그래?”

“후우…… 긴장되네.”

홍옥례는 가만히 선 채 고개를 숙이고,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동지들한테, 만에 하나라도 무슨 변고가 생겼다면……그래서 두려워. 후우……”

“뭐, 아무 일도 없을 거라니까.”

“그래도……”

그런 홍옥례의 곁으로 송병오가 다가와 말했다.

“이보게! 적잖이 긴장되는 모양인데, 내 잠깐 재미난 유모어를 들려주지!”

그러고는 홍옥례에게 자신있게 ‘유모어’를 시전하는데, 아까 나에게 들었던 틀딱개그였다. 그걸 들은 홍옥례도 눈물을 찔끔 낼 정도로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후, 하하, 푸핫…… 고마워. 좀 나아졌어.”

“언제든지 말만 하게 그려!”

……홍옥례 얘도 이런 유머가 먹히는 건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생각했다.

‘하여간 1922년생이란……’

다시 표정이 밝아진 홍옥례는 고개를 번쩍 들고 심호흡을 크게 하고는,

“후우…… 좋아. 이쪽으로.”

하더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 다른데를 가는게 아니라 바로 옆의 건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송병오가 얼굴에 의문을 띄우며 중얼거렸다.

“음? 아지트에 간다더니……”

홍옥례가 들어간 건물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리에 접한 허름한 2층 건물. 2층 창문에 ‘객풍(客風) 마작 구락부’ 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송병오가 간판을 보더니 내뱉었다.

“허어! 마작 구락부라니. 그래 아지트에 가기 전에 마작이라도 좀 치면서 긴장을 풀고 갈 생각인가? 옳아, 내가 마작도 좀 치지!”

우리는 홍옥례를 따라 계단을 타고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홍옥례는 마작 구락부 입구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채로 얼굴 표정이 굳어 있는 것이 아닌가.

송병오는 마작 구락부 입구에 걸린 ‘영업 중지’ 팻말을 보더니 말했다.

“저런! 영업을 안 하는 모양이군!”

나는 뭔가를 눈치채고, 굳은 얼굴의 홍옥례에게 말했다.

“여기가 아지트구나.”

“응……”

홍옥례는 어두운 낯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태극단 경성본부는 마작 구락부로 위장 영업중이거든. 동지들이 있다면 열려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홍옥례와 내가 이야기하는동안, 송병오는 여전히 입구 문을 붙잡고선 중얼거렸다.

“으응? 안에 인기척은 있는 듯 한데…… 이보게! 객이 왔는데 장사 안 하쇼! 허어, 참!”

송병오가 그렇게 외치며 문을 두들기자,

—불쑥!

문이 열리자마자 안쪽에서 권총의 총구가 불쑥 튀어나온다. 자신의 목에 총구가 겨누어지자 송병오는,

“어엇! 뭐, 뭔가!”

어찌 저항할 겨를도 없이 두 손을 들고 말았다.

“누구냐!”

그렇게 일갈하며 좁은 문 틈으로 총구만 빼꼼 내밀고 있는 것은, 담배를 물고 있는 중년의 아주머니. 홍옥례가 그 모습을 보더니 외쳤다.

“동지!”

그 말에, 송병오에게 총구를 겨누던 아주머니가 놀란 표정이 되며 되묻는다.

“옥례? 홍옥례?”

“네! 저예요!”

“무사했구나! ……이 사람들은?”

“제가 데려왔어요!”

“그래. 네가 데려왔다니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겠지…… 일단 들어오렴.”

아주머니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완전히 의심을 거두지는 않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가니, 불 꺼진 실내엔 열댓명쯤 되는 사람들이 제각기 앉거나 선 채로 모여 있었다.

‘이 사람들이…… 태극단 단원들이겠지.’

단원들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었고, 심지어 우리 또래의 여자애들도 몇 있었다. 단원들을 눈에 담은 홍옥례는,

“동지들!”

하고 바로 달려가 단원들을 껴안으며 물기 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다들 죽은 줄 알았잖아요! 구락부 문은 왜 닫았어요?”

아까 문을 열어줬던 중년의 아주머니 단원이 대꾸했다.

“이 구락부야 원래 목요일마다 쉬고 우리들끼리만 정기회의를 하지 않았겠니? 원산에 오래 있다보니 잊어먹었나 보아!”

“아차! 그랬지…… 헤헤……”

홍옥례가 머쓱하게 웃고, 다른 나이 지긋한 아저씨 단원이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우리야말로 걱정했지 뭔가. 원산지부야말로 어째서 연락이 닿지 않았나? 원산으로 사람을 보내봐도 아지트에 아무도 없다는 말만 들었네.”

“원산지부도 급히 아지트를 옮기느라…… 산속의 절에 들어가 있었어요.”

“고생 많았네. 참으로 고생 많았어. 그런데, 저쪽은?”

단원들은 여전히 경계심을 품은 채 나와 송병오를 의심스럽게 바라보았다. 일부 단원은 손이 자켓 안주머니로 향했다. 아마 언제든 권총을 꺼낼 준비를 하는 것이리라.

홍옥례는 단원들에게 나를 소개했다.

“전에 말했죠? 김구 선생님의 특명을 받는 동지가 있었다고. 이쪽이 바로 그 백철연 동지예요.”

“오오! 백철연 동지라면!”

중년 단원 한 명이 마작 탁자에 걸터앉은 채 껄껄 웃으며 말했다.

“흐하하! 우리를 죽인 사람이로군! 그래 자네 덕에, 경찰은 우리 태극단 경성지부가 모두 죽은 줄로만 알고 있지. 자네 덕분에 경찰의 감시가 많이 줄었네.”

다른 단원 한 명도 거들었다.

“백범 선생님의 인상착의와, 최측근에게만 하셨던 말까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면서? 아직 어린 나이인데 참으로 대단한 동지로군, 대단한 동지야! 그래 백범 선생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아아, 예. 어쩌다보니 인연이 닿게 되었습니다.”

나는 뒤통수를 긁으며 대답했다. 실은 그저 21세기의 삶에서 어릴 때 백범일지를 좀 읽어본 것 뿐이었지만.

홍옥례는 이번에는 송병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이쪽은, 백 동지와 한편인 송병오 동지. 사격 실력이 일품이고, 재치도 좋은 동지예요.”

“오오! 반갑네!”

“하핫…… 그, 이렇게 뜻있는 분들을 뵙게 되어서 저도 참으로 반갑기 그지없는 기분이올시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그려.”

그렇게 송병오가 무수한 악수를 받으며 머쓱하게 웃는 동안—

홍옥례는 오랜만에 만난 단원들을 보고 뿌듯하게 웃으면서도, 마치 누군가를 찾는 듯이 이리저리 시선을 옮겼다.

‘흐음.’

특별히 찾는 사람이라도 있는 걸까, 아니면 없어진 단원이라도 있는 걸까?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너, 옥례 아니니? 돌아왔구나.”

마작구락부 실내의 방 한쪽이 열리고, 20대 중반의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 크고 짙은 눈썹에 서글서글하니 훤칠하게 생긴 사내였다.

옆구리에는 성경을 끼고 있었는데, 아마 교인이려나.

아무튼 사내가 웃는 눈으로 홍옥례를 향해 인사를 건네자, 홍옥례는 자신의 이름을 부른 그곳을 향해 곧바로 몸을 돌리며,

“염 동지!”

하고 바로 활짝 웃는 것이었다. 염 동지라고 불린 사내는 여전히 눈웃음을 지으며 다정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원산으로 간 이후에 연락이 닿지 않아서 걱정이 많았어. 사람을 보내도 소식이 없더구나.”

홍옥례는 염 동지라는 사내를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답했다.

“네에……! 저도, 염 동지를 수없이 걱정했어요……!”

홍옥례의 시선은 염 동지라는 훤칠한 사내에게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고, 입가에는 그간 볼 수 없었던 미소가 걸려 있었다.

……저거, 아무래도 존경을 넘어선 눈빛 같은데.

“크흠! 커흐흠, 어흠!”

송병오가 노인네처럼 노골적으로 기침을 콜록거리자, 그제서야 홍옥례는 염 동지를 향한 시선을 거두고 나와 송병오를 보며 말했다.

“아! 소개할게. 이쪽은 염안호 ‘베네딕도’ 동지셔!”

베네딕도? 옆구리에 성경책을 끼고 있길래 교인일까 짐작했던대로, 아마 세례명인 듯 했다.

“아, 예. 반갑습니다. 백철연이라고 합니다.”

나는 꾸벅 목례를 했고, 송병오도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홍옥례는 다시 염안호라는 사내를 눈짓하며 의기양양한 어조로 외쳤다.

“염 동지는 무려 특고에게 잡혔다가 탈출한 적도 있어! 우리 태극단 내에서는 정말, 전설적인 선배 동지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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