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5화 〉 A Good Deed (2)
* * *
나는 씩씩하게 대답하는 하루조를 뒤로 한 채 몸을 돌렸다.
인형 까뜨린느를 내 가방에 넣고, 바닥에 누운 렌까를 들춰업고 저택의 본채로 돌아와, 렌까의 방 침대에 렌까를 눕혀놓았다. 그리고는……
“좋아. 나한테 전할 말이 있다고 했지.”
나는 인형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말했다. 곧 머리에 쓴 영혼 라디오에서 방숙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그려. 애초에 그럴라고 이 집에서 탈출할라고 했던 거니께…… 근디, 저 년이 있는디 말해도 되나……]
방숙자는 렌까를 가리키며 불안한 듯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차피 방숙자의 목소리는 렌까에게 들리지도 않을 뿐더러, 렌까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장갑의 스턴 효과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몇 시간은 가기 때문에, 방숙자와 이야기를 나누기에 충분한 시간은 될 터.
내가 그렇게 말하자, 방숙자는 잠시 주저하다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그려. 어떻게 된 거냐면……]
***
[……그렇게 된 거여.]
“……잠깐 생각 좀 할게.”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나는 방숙자로부터 모두 전해들었다. 대동아공영회, 그 놈들이 꾸미는 계획을 말이다. 그것을 전부 들은 나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새끼들인가?’
욕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놈들은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더 미친 짓거리를 꾸미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을 마수화시켜 병사로 만드는 마수화 계획.
영혼을 응집시킨 에너지로 만드는 령자폭탄.
조선을 중심으로 일본과 중국 일부를 둘러싼 대동아공영권 결계.
그리고 말법시대라고 하는건 카타스트로피 얘기겠지. 인위적으로 마문을 무분별하게 만들면 초래되는 대재앙.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앞으로 있을 전쟁에서 미국에 의한 패망을 막기 위한 계획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원자폭탄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미국과 전쟁이 나서 원자폭탄으로 패망한다는 것을, 벌써부터 알고 있다고?’
대동아공영권 안에 미래예지가 가능한 놈이라도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처럼 미래에서 온 녀석이라도 있으려나?’
아니, 그것도 말이 되지 않는다. 아무리 일본인일지라도 미래에서 왔으면 지금의 일본제국이 패망하는 것이 미래의 일본을 위해서라도 낫다는 것을 알 텐데, 저런 미친 계획을 구상하다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저들이 말법시대라고 부르는 것, 즉 카타스트로피였다. 인공 마문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그 연쇄작용으로 전 세계에 대재앙이 일어나는 것.
‘저번의 동소문 마문도…… 그걸 알고서도 일부러 했다는 거겠지.’
그렇게 전 세계를 지옥으로 만들어놓고, 일본이 지배하는 권역만 대결계로 보호해 천년만년 살아남겠다는 계획.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계획이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보고 겪은 것만 해도 벌써 증거가 여럿 있었다. 마수화는 물론이고 영혼 응집기라든가, 인위적 마문, 또 쇠말뚝으로 만든 결계까지.
이건 현실이고, 놈들은 진심이었다.
“하……”
나는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흡연자였더라면 담배라도 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망했네, 시발.’
처음 이 시대에 떨어졌을 땐, 그저 학점 채우고 학교 졸업장만 따면 될 줄 알았는데……
그리고 어떻게든 미국만 가면 될 줄 알았는데……
미국에서 헌터 일을 하든가 아니면 세탁소라도 할 작정이었는데……
전쟁 때문에 아슬아슬하긴 해도 어떻게든 미국은 갈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골든 에이지의 미국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살아가길 바랬었는데……
이런 나의 장밋빛 플랜이 한순간에 어그러지고 말았다. 왜냐면 이래서야, 대동아공영회 놈들을 저대로 놔두면……
‘미국런을 못하기 때문에!’
21세기에서도 전 세계가 엄청난 희생을 치루고서야 겨우 이겨낸 것이 카타스트로피였는데, 지금의 인류가 대응할 수 있을리 없었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말이다.
‘안돼.’
이 계획만큼은 막아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꾹꾹 누르며 생각했다.
‘목표를 바꿔야겠어.’
학교 졸업장을 따고 미국에 가서 헌터 일을 하고자했던 원래 목표에서, 대동아공영권을 저지하는 것으로.
‘할 수밖에 없어.’
전 세계 사람의 수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서라든가 그런 도의적인 이유도 물론 있지만, 무엇보다 내 인생을 위해서였다.
어떻게 얻은 두 번째 인생인데, 점점 더 럭키 북한이 되어가고 있는 일본 제국에게 지배당하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니. 그런 꼴은 절대로 못 본다.
이렇게 된 거, 무슨 수를 써서라도 놈들의 계획을 저지할 것이다. 아니, 해야만 한다. 그러고 나서야 원래 목표였던 미국런이든 뭐든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러나 역시 방법이 문제였다. 지금의 나는 일개 개인이요, 학생에 불과했다. 저런 놈들을 나 혼자서 상대할 수는 없었다. 나를 따르는 분대원들이 있다고 해도 무리다. 몇몇 고위층 인맥도 큰 도움은 되지 않을 터였다.
‘어떻게, 어떻게 해야……’
고민하던 나는 문득, 침대 위의 렌까에 시선이 닿았다. 지금은 세상 모르고 잠들어있지만, 저번주 내내 나를 포섭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쓰던 렌까를.
‘그렇지.’
대동아공영회는, 그곳의 시마즈 당주는 나를 포섭하려고 제 딸도 이용해먹고 있었다. 나를 위협으로 놔두느니 포섭해서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해서였겠지.
‘그래…… 원하는 대로 해 주마.’
놈들이 원하는대로,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가자. 어차피 놈들은 나를 포섭하려고 했으니, 놈들이 원하는 대로 들어가 주는 것이다. 계획을 듣고 감화되었다고 구라를 치면서.
‘그리고, 내부에서부터 방해공작을 벌이는 거야.’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인 내가 대동아공영회를 저지할 방법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나는 잠들어있는 렌까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려면 렌까를 한 편으로 만들어야 해.’
렌까의 도움은 필수적이었다. 대동아공영회에 들어간 뒤, 렌까를 설득한다. 렌까를 온전하게 나의 편으로 만들고, 렌까의 지위와 힘을 이용해서 대동아공영회를 조금씩 방해하는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으리라.
‘우선 렌까의 사상을 고쳐야 할텐데……’
렌까가 나를 따르도록 하려면 렌까의 사상을 조금씩이나마 고쳐야 할 터. 사실, 비벼볼만한 틈이 없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렌까도 제 아버지를 완전히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고, 방숙자의 말에 따르면 렌까는 대동아공영회의 계획을 들었을 때도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 같다.
하긴, 렌까 얘가 딱히 성격 자체가 모질거나 악한 녀석도 아니고, 아무리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가 적이라고는 해도 몰살시킨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겠지.
그리고 얘가 은근히 서양 문물을 좋아한다는 것도 뭔가 비벼볼만한 포인트였다. 방 꾸며놓은 것도 그렇고. 금발 인형을 아끼는 취향도 그렇고. 인형에다가 까뜨린느라고 프랑스식 이름을 붙인 것 하며……
어쩔수 없이 제 아버지의 뜻을 따르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서양 문물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니 충분히 시간을 들이면 어느정도 사상을 고쳐놓고, 내 편에 서도록 만들 수 있으리라고, 나는 확신했다.
‘……생각하고보니 조금 미안하네.’
나는 잠든 렌까를 조용히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가혹한 운명을 타고나긴 했지만, 사실은 친구가 필요한 상처 많은 아이일 뿐인데.
그런 불쌍한 녀석을 이용한다는게 마음아프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대동아공영회를 상대할 방법이라고는 내부에서 방해공작을 벌이는 것 뿐이었는데, 대동아공영회 안팎으로 렌까의 높은 지위는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나도 렌까를 이용만 할 셈은 아니었다.
렌까가 나에게 보여준 호의는 물론 나를 이용하려던 목적도 있었지만, 일부는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호의였다. 나도 고마움을 모르는 짐승은 아니었으니, 그런 렌까의 호의에 충분히 ‘보답’해 줄 생각이었다.
“후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맞다, 숙자야.”
문득 생각난 듯이 테이블 위의 인형, 아니 그 안의 방숙자에게 말했다.
[응? 생각 다 끝났남? 이제 어떻게 할겨?]
“생각은 대충 끝났어. 그보다 너 말야, 뭔가 달라졌다고 했었지.”
[어……? 응!]
방숙자는 신난 듯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는 내가 미쳐서 악귀 될랑말랑할 때만 몸 밖으로 힘을 쓸 수 있었단 말여?]
“그랬지.”
[근디 지금은 봐바. 일케, 일케……]
인형의 몸에서 눈에 보일 정도의 혼령 에너지가 일렁이더니, 촉수처럼 길게 뻗어나와 테이블 위의 컵을 휘감았다. 혼령 에너지는 컵을 조금 들어올리더니 다시 내려놓았다.
“그거 아까 하루조한테도 그렇게 했었지.”
[그려! 그때 그 중대가리가 달려드는 바람에 급해서 글케 했는디 되더라고! 그때 얼마나 신났는디……]
원래는 악귀 상태에서만 물리적인 영향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을, 지금은 왠지 모르겠지만 제정신일 때에도 가능해졌다는 거였다. 뭐, 좋은 일인가……
나는 생각하고 있던 것을 물었다.
“그래? 그럼 목소리도 낼 수 있어?”
[엥? 어빠 머리에 쓴걸로 들을수 있잖애?]
방숙자는 인형의 손을 들어 내가 머리에 쓴 영혼 라디오를 가리키며 말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으며 대꾸했다.
“영혼으로 말고 물리적으로. 저번에 너 인체모형에 들어있는채로 폭주했을 때는 이거 없이도 네 목소리가 들렸었거든.”
[어…… 듣고보니께 그랬던것도 같네잉. 되긴 할건디. 잠만……]
방숙자는 잠시 말을 멈추고 가만히 섰다. 인형의 주변에서 혼령 에너지가 눈에 보일 정도로 뚜렷하게 꿈틀거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케 말여?”]
하고 말하는 방숙자. 영혼 라디오를 벗고 들어보니, 뭔가 이질적이지만 실제로 내 귀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째 잘 들리는가 몰겄네.”]
“어, 잘 들려. 좋아……”
[“근디 굳이 이럴 필요가 있는가? 일케 소리내서 말허면 금방 기운빠지는디……”]
방숙자는 이렇게 물리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도 힘이 든다고 투덜거렸지만, 일단 가능한 것이 어딘가.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영혼 라디오 없이도 소통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 말인 즉슨, 이런 물건따위 없이도 렌까 역시 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렌까야. 나도 너에게 보답해줄게.’
잠들어있는 렌까를 잠시 바라보던 나는 영혼 라디오를 가방에 집어넣고,
“숙자야. 잘 들어.”
진지한 목소리로, 테이블 위의 방숙자에게—아니, 금발에 푸른 눈과 푸른 드레스를 지닌 셀룰로이드 인형에게 말했다.
“네 이름은 이제 까뜨린느여.”
[“뭐여……?”]
미안, 숙자야. 너는 이제부터 렌까를 위해 까뜨린느로 살아가야만 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