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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역사 영웅이 되었다-2화 (2/160)

〈 2화 〉 1화: 서론(1)

* * *

『인간들은 약하다. 고로 영웅이 필요하다.』

­케이나인 제국사, 서론

***

모두 자리를 옮기고 시간이 지나자 어느정도 진정이 된 모양새였다.

뭐, 아직 많이 당황하는 눈빛이지만.

"영웅이시어! 저희를 도와주신다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결국 알프레드가 밀어붙인 탓인지, 아직 상황파악이 제대로 안 된 것인지.

모두들 일단 인간을 돕기로 했다.

"일단, 저놈들을 도우면서 우리 상황을 파악하는게 좋지 않겠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다들 동조했기 때문이다.

"그럼, 일단 우리는 저 인간들을 도우면서 상황을 파악해야 하는 거네."

"응, 그렇다 볼 수 있자."

"그런데 어떻게 도와?"

"응? 어떻게 돕느냐니 당연히···."

나는 손을 휘둘러 메뉴 창을 열었다.

그러나 메뉴 창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디

"...설마."

"메뉴 창이 텅 비어있어. 내가 평소에 쓰던 장비와 마법들이 다 사라진 것 같은데···."

"그, 그런?!"

"확실히 나도 마법을 쓸 수 없어."

"그러고 보니 내 장비들이!"

이런 젠장.

이건 예상 못 했다.

게임에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 결과물을 활용해서 승승장구하는 전개를 생각했는데 말이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알프레드 전하!"

"영웅이시어, 무언가 분부가 있으십니까?"

"저희끼리 의논한 결과, 우리는 이 왕국을 돕기로 하였습니다."

"그렇습니까!"

"다만, 저희는 아직 이 왕국의 운명을 짊어질 만큼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디 무기와 마법서를 지원받을 수 있습니까?"

"물론이죠! 바로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이걸로 일단 급한 불은 껐군.

"...저놈이 가져오는 장비나 마법서가 의미가 있을까? 인간은 마법에도 제련에도 특화된 종족이 아닌데."

"맞아, 나도 드워프제 갑옷만 입지 인간제 갑옷은 절대 안 입어."

우리 중 두 남자는 알프레드를 못 미더워하는지 투덜거렸다.

"뭐, 일단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그러면 일단,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없는 거죠?"

"응 그렇지."

"아뇨!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갑자기 청년처럼 보이는 남자가 크게 소리 질렀다.

무, 무슨 문제가 있는 거지?

"저희는 각자 이름을 몰라요!"

응?

"게다가 서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저희가 합심해서 일을 이룰 수 있다 생각해요?"

"화, 확실히 그렇긴 하네."

"그러니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을 하죠"

"자기소개 같은 거?"

"그렇죠! 좀 서로에 관해서 대화를 나눠봐요!"

자기소개인가.

대학교 새내기 이후로 처음인데···.

괜히 긴장된다.

***

"그럼 우선 나부터 할게."

은발의 여자가 자기소개하기 위해 일어났다.

그러자 남자들의 눈빛이 한순간에 집중됐다.

"이름은···. 게임 닉네임이면 되지?"

"일단은 그렇겠지."

"내 닉네임은 `프레이야`라고 해, 원래는 마법사였어."

"어떤 마법사였는데?"

"와이드 캐스터."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은 여러 가지 은어를 만들어 플레이어들의 모습을 세분화했다.

`와이드 캐스터`라는 것은 전투형 마법사의 일종인데. 다양한 종류의 마법을 폭넓게 다루는 것이 특징인 마법사를 뜻한다.

그나저나 와이드 캐스터라니.

보기와는 다르게 게임 좀 많이 했나 보네.

"그, 그럼 다음은 나네."

흑발의 여자아이가 조심스레 일어났다.

아까 프레이야를 뚫어지게 쳐다보던 남자들이 이번에는 이 여자아이를 쳐다봤다.

물론 나도 그랬다.

"내, 내 게임 닉네임은 `유스티아`야. 예전에는 전사였어."

"어떤 전사였는데?"

"피스트."

와, 와이드 캐스터 이어서 피스트라니.

피스트는 전사 중에서 주먹을 주로 사용하는 게 특징이다.

다른 전사들과는 달리 신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에 신체를 강화하는 마법까지 숙달되어야 하는 데다 다치기 쉬운 직업이다.

예쁘장한 외모와는 달리 뜻밖에 터프한 것 같다.

"그럼 나인가."

어딘가 칙칙하고 음침해 보이는 남자가 일어났다.

여자가 둘뿐인 게 좀 아쉽네.

"나는 시리우스다. 마찬가지로 와이드 캐스터였지."

이놈은 딱 봐도 게임 고인물이라 놀라진 않았다.

와이드 캐스터가 두 명이라니, 좀처럼 볼 수 없는 특이한 상황이다.

"다음은 나냐!"

머리가 헝클어져 있고 지저분한 수염을 가진 남자가 일어났다.

딱 보면 전형적인 게임만 하면서 라면만 처먹은 폐인 아저씨처럼 생겼다.

"내 이름은 디카프리오다!"

양심 없는 이름이네, 적어도 커스터마이징은 하던가.

커스터마이징하면 조작이 불편해 본인 모습 그대로 하는 인간이 있다고는 들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좀 꾸미긴 하지 그러니.

"나는 직업 따윈 없다!"

? 뭐냐.

"나는 모든 마법과 무술을 섭렵한 상위 0.0001%의 플레이어다! 직업 따위로 나를 결정지을 수 없다!"

일단 저놈은 패스.

"저는 라인하르트라고 합니다."

아까 자기소개를 하자던 놈이 일어나 소개했다.

"전사이며, 프로텍터였습니다. 가끔 칼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프로텍터는 말 그대로 아군을 보호해주는 전사의 일종이다.

엄청나게 큰 방패를 들고 탱킹을 해서 무척 유용하지만, 재미가 없어서 아무도 하려 하지 않는 희귀직업이다.

여기는 고인물들만 모인 건다 다들 화려하네.

한 명 빼고.

"그럼 마지막으로 나인가?"

나는 나머지 다섯 명을 차례대로 바라보며 일어섰다.

"난 `웬즈데이`라고 해. 잘 부탁해."

"웬즈데이···? 특이한 이름이네."

유스티아가 내 이름에 관심을 가지며 갸우뚱거렸다.

"닉네임 지을 때 수요일이어서 그냥 그걸로 지었어."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갑자기 유스티아가 키득키득 웃었다.

뭐야, 왜 갑자기 웃는 거지.

내 이름이 그렇게 특이한가?

적어도 디카프리오같은 양심 없는 이름보단 나은 거 같은데.

"직업은, 그 뭐라 해야 하지? 일단 마법사긴 한데···."

"와이드 캐스터?"

"아니아니, 와이드 캐스터는 아니었고, 내로우 캐스터에 가깝긴 해."

내로우 캐스터는 다양한 마법이 아닌, 두세 가지의 마법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전투형 마법사다.

보통 좋아하는 마법이 있는 장인들이 주로 가지는 직업이다.

"근데 나는 스콜라에도 약간 가깝단 말이지."

스콜라는 비전투형 마법사를 뜻하는 말이다.

애초에 나는 전투를 많이 한 편이 아니기에 스콜라가 맞지 않나 생각한다.

"그러면 자기소개는 끝났네요!"

"그런 셈이지, 뭐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만."

"그런 건 이제 차차 알아가면 되죠!"

"그, 그러네!"

"...귀찮게."

"그럼 다들! 우리의 목표를 향해 힘냅시다!"

"응, 그러자."

그렇게 다른 플레이어들과 친목을 다지며,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갑자기 문이 부서지듯 열렸다.

"영웅이시어! 부탁하신 것들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알프레드 왕자가 우리가 있는 방으로 헐레벌떡 들어왔다.

드디어 적당한 장비를 구할 수 있겠군.

"감사드립니다. 전하."

"아닙니다! 저희 왕국을 구해주실 분들께 어찌 지원을 아끼겠습니까! 이쪽으로 오시죠!"

***

뭔가 이상하다.

이, 이게 인간의 기술력?

이건 검이 아니라 거의 둔기잖아.

"거, 검이···. 전혀 날카롭지가 않아."

유스티아는 검의 칼날을 자기 손에 갖다 대며 자세히 살폈다.

"갑옷은커녕 가죽조차도 자르게 힘들겠는걸."

"...드워프제 대검이 그립다."

게다가 갑옷들의 상태는 더 가관인 게, 금속으로 된 갑옷이 없었다.

"판금 갑옷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사슬 갑옷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게, 이 가죽 그리 질이 좋지도 못하고,"

프레이야가 가죽을 이리저리 당기며 옷을 살폈다.

"...뭐 없는 것보단 나으니까. 일단 챙긴 건 챙기자."

나는 적당히 뾰족한 창 하나에 가죽으로 된 두꺼운 옷을 챙겼다.

가죽이 너무 꽉 껴서 불편하다.

젠장.

***

마법서는 더 가관이었다.

"...이게 파이어볼이면 내가 쓰던 건 메테오겠네."

프레이야는 마치 운동 못 하는 애들이 던진 피구 공처럼 힘없이 비실거리는 파이어볼을 바라보며 투덜거렸다.

하긴, 파이어볼의 가장 큰 장점은 적당한 위력, 적당한 범위, 적당한 마나 소모량을 두루 갖춘 범용성임을 따져 봤을 때 지금 이 파이어볼은 그야말로 쓰레기라 할 수 있다.

"신체 강화 마법은 더 심해···. 이거 쓰라고 만든 거야?"

"왜? 그건 뭐가 문젠데?"

"`바위의 의지`라는 마법인데···."

유스티아가 `바위의 의지`라는 마법을 쓰자 그녀의 새하얀 팔에 회색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만져보니 피부가 딱딱하게 느껴졌다.

"...이거 그냥 피부가 아주 약간 딱딱해지는 거 말고는 다른 효과가 없어 보이는데?."

"심지어 촉각도 없어져···. 이런걸로 주먹질을 하라니 무리야."

참나.

이딴 마법으로 싸워왔으니 당연히 처발리지.

다른 이종족들이랑 싸워서 질 만 하다.

"그쪽은 어때요?"

다른 쪽 마법서를 살펴보던 라인하르트가 다가왔다.

"글렀어, 우리가 초심자일 때도 안 쓸 거 같은 삼류 마법들뿐이야."

"그런가요. 이쪽도 그다지 쓸만한 게 없어서···."

"그래도 뭐 마법은 괜찮아, 마법서를 조금 고치면 되니까."

"어? 고칠 수 있어?"

"룬 문자로 쓰여 있으면."

이 게임에서의 마법서는 보통 `룬 문자` 같은 특수한 문자로 쓰여있는데, 마법서의 적힌 룬 문자를 활성화하면 마법이 발동된다는 설정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것이다.

마법서에 적힌 룬 문자를 수정한다면 다른 마법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하지만 프로그램에도 버그가 생기는 것처럼 마법이 발동이 안 될 수도 있고, 불필요한 소스코드처럼 마나만 잡아먹는 불필요한 내용이 마법서에 적힐 수 있다.

그래서 마법을 만들거나 수정하는 일은 매우 짜증이 나는 일로 여겨졌다.

그 시간에 전투나 한번 더하지 보통.

나 같은 전투 싫어하고 설정덕후인 변태들이나 하는 일이었다.

"진짜? 그럼 이거부터 고쳐줘!"

유스티아는 아까 썼던 `바위의 의지`라는 마법서를 나에게 들이밀었다.

"아니, 이건 좀···."

"응? 왜?"

내가 거절하려는 의사를 보이자, 유스티아가 나를 노려보면서 점점 다가왔다.

좀 부담스럽다.

"이건 고쳐봤자 쓰레기야, 알고리즘 자체가 글러 먹었어."

"엥, 그럼 나 뭐 쓰라고···. 가뜩이나 적당한 장갑도 없어서 맨손으로 싸울 판인데···."

"조금 기다려. 나중에 좋은 마법 하나 만들어줄 테니까."

"알았어, 쳇."

휴, 얼버무리는 데에는 성공했다.

뭐 나중에 적당히 팔 힘세지는 마법 하나 만들어주면 되겠지.

"그럼, 내 마법부터 먼저 만들어줄 거야?"

이번에는 프레이야가 나에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과거 마법의 놀라운 수준에 질린 듯한 얼굴을 하고서는 나를 바라보았다.

"너는 와이드 캐스터니까, 아무리 약한 마법이라도 조합해서 쓰면 되지 않을까···?"

"물총이랑 선풍기를 조합하면 태풍이라도 생겨?"

"그 정도야?"

프레이야는 내 앞에서 `물대포`랑 `돌풍` 비스무리한 마법을 시전했다.

물대포는 샤워하기 딱 좋은 수압이었고, 돌풍은 우리 집에 있던 선풍기의 강풍과 비슷한 세기였다.

"확실히 심각하네."

"그러니까. 이런 걸로 싸우면 오크 같은 것들은커녕 인간 꼬맹이도 제압하기 힘들어."

"...일단 전체적인 상황을 살펴보고 이야기하자. 아직 뭔갈 결정하기에는 좀 이르다고 생각해"

"음, 일단은 알았어."

내가 또 얼버무리는 데 성공하자 이번엔 시리우스와 라인하르트. 그리고 그 디카프리온가 뭔가 하는 아저씨가 나에게 다가왔다.

"저기, 방패와 관련된 마법이 하나도 없는 데 말이죠. 적당한 마법 하나만···."

"야, 네가 아는 마법 중에서 가장 강한 마법 내놔 빨리. 어쭈? 뭘 꼬라보냐?"

"와이드 캐스터라는 이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3개의 마법을 운용할 수 있어야···."

아, 지랄 났네.

그냥 말 꺼내지 말걸.

오른쪽 눈두덩이가 뻐근거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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