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9화: 컨션스 관문 전투(2)
* * *
『맑은 날에는 놀지 말고 폭풍 대비를 해라.』
부러진 이빨 섬의 격언.
***
그 시각, 컨션스 관문 남쪽 숲
"전하, 척후로부터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어떤 특별한 정보라도 있나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무런 오크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엘리자베스는 의외의 상황에 눈 사이를 찌푸렸다.
"다리아, 출정한 후 오크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말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믿기지 않습니다만, 오크와 마주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우리 국토를 짓밟은 짐승 놈들이 사라졌다라, 과연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대량의 배를 건조하지 않는 한 북쪽으로 나아가 송곳니 반도를 빠져나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북쪽, 북쪽이란 말이죠."
엘리자베스는 손에 먹으려다 만 불린 건빵을 이리저리 부수며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고 나선 갑자기 놀란 듯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 그렇다면! 오크 놈들은 컨션스 관문으로 향하는 거네요?!"
"그렇게 되겠습니다. 전하."
"영웅분들이 컨션스 관문에 머물러 있을 텐데, 영웅분들이 위험에 처하시겠어요!"
"그럴 가능성이 크겠습니다. 전하."
"그런···. 이제 어떡하죠?"
눈이 커지고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는 엘리자베스와는 다르게, 다리아는 단 하나의 흔들림 없이 주인이 떨어뜨린 건빵을 치웠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건빵을 떨어뜨렸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전하, 외람되지만 감히 진언해도 되겠습니까?"
"...부탁합니다."
"만약 전하께서 예상하신 오크 놈들이 무리를 지어 북쪽으로 간다는 사실이 맞는다면 지금 저희가 보유하고 있는 병력으론 상대되지 않습니다."
"그렇겠죠. 분명 왕실 호위 기사단이 정예 중의 정예라 한들, 고작해야 오백이 안 되는 병력으로 놈들을 이기기는 무리에요."
"따라서 저희에겐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집니다."
다리아는 엘리자베스의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장식이 새겨진 가죽옷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털어내곤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시선을 맞추었다.
"첫 번째로 이대로 퇴각하는 일입니다. 싸움에 이길 수 없다면 도망치는 것이 상책입니다."
"...이대로 헛수고를 한 채 왕도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요."
"하지만 가장 안전한 방법입니다."
엘리자베스는 다리아의 시선에 고개를 떨어뜨리고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다리아, 내가 왜 왕도에서 여기까지 왔는지 알잖아요?"
"네,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일단 두 번째 방법을 들려주세요."
"두 번째는 이대로 컨션스 관문으로 진격하여, 영웅분들과 합세하여 오크를 몰아내는 방법입니다."
"그 방법, 가능성이 어느 정도 될까요."
"영웅분들의 전투력을 잘 모르겠으나, 높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엘리자베스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막 바깥으로 나갔다.
다리아도 그녀를 따라 천막 밖으로 따라 나갔다.
그녀들은 반짝이는 보석들이 수 놓인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안전하게 돌아간다고 해서, 뭐가 바뀔까요?"
"..."
다리아는 잠시 입을 다물고 주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고작해야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인간들의 인형이 되어서, 언젠가 전리품이 될 자신을 기다려야 할까요?"
"..."
"오크 놈들이든 드워프 놈들이든 끌려가서 물건 취급을 받는다니, 정말 싫네요."
"..."
"다리아, 기사단에 전하세요. 내일 새벽부터 전력으로 이동합니다."
"어느 쪽입니까?"
다리아가 묻자 엘리자베스는 당연한 듯이, 그러면서 약간은 체념한 듯이 말했다.
"북쪽이요."
***
그날 밤
어마어마한 오크 무리가 멧돼지를 잡아 만찬을 벌이고 있었다.
동족 포식이라니, 세상이 말세야 말세.
상당히 들뜬 모양새인데, 앞으로의 전투를 준비하는 건가?
아직 모르는 게 너무 많다.
하지만 확실한 건 놈들은 이 관문으로 향한다는 것이다.
"웬즈데이씨, 여기 나무로 된 건 전부 모아왔어."
"수고했어."
유스티아가 나무판자를 가득 들고 와 놓고는 이마의 땀을 닦았다.
"웬즈데이, 여기 활에서 아교를 녹여왔어."
"양이 꽤 많네."
"아무래도 여기서 활을 직접 만드는 공장이 있어서 양이 많은 것 같아."
"웬즈데이씨, 이걸로 뭐하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만한 걸 할 거야."
나는 나무판자들을 파괴된 문에 덧대었다.
"문을 만들게?"
"응, 적어도 지금보다는 낫겠지. 프레이야? 아교 좀 녹여줄래?"
"뭐야, 네가 직접 해."
"나는 불 마법 잘 못 쓰거든."
"쳇, 마법 한두 가지만 쓰면 뭐가 좋아? 좀 다양하게 써보는 게 낫지 않아?"
"어쩔 수 없다고, 배워 놔도 쓰던 것만 쓰게 된다고."
프레이야는 내 옆에 앉아 아교를 녹이며 나무판자를 문에 열심히 붙여나갔다.
"...이걸로 될까?"
"그러게, 거의 천명 가까이 된다며."
"그럼 도망칠까?"
내가 작업 중이던 손을 내려놓고 둘을 돌아가며 바라보았다.
둘 다 복잡한 표정이었다.
"여기서 도망치면 다시 녀석들과의 난전을 해야 하고, 시간이 끌리겠지. 결국, 손해를 보는 건 인간들이야."
"확실히 시간이 끌릴수록 불리해지긴 해."
"그러니까 지금이 최선의 기회일 거야, 원군도 온다 했으니까."
그런데 원군이 출발했다면 벌써 도착할만하지 않나?
좀 불안한데···.
얼마나 병력을 많이 보내길래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좋아, 이제 아교가 굳으면 볼만 하겠네."
나는 나무판자가 덕지덕지 붙은 문을 닫고 자물쇠로 단단히 잠갔다.
"그럼 이제 뭐 해?"
"내일 어떻게 싸울지 생각해야겠지."
"전략이라도 짜게?"
"전략···. 이라고까지 거창한 건 아니고, 그냥 계획 정도는 세우자는 거야."
나는 바닥에 산과 관문, 우리와 오크 무리를 나무 막대기로 그렸다.
"이 졸라맨은 뭐야? 이거 나야?"
"응."
"웬즈데이씨 그림은 잘 못 그리네?"
난 미대생이 아니라고.
"하여튼, 우리는 오크 무리가 몰려올 때 만약 우리가 관문 위에만 있다면 어떻게 될까?"
"오크 놈들이 문을 노리겠지. 성벽을 무식하게 오를 정도로 멍청한 놈들은 아니니까."
"그렇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기껏 수리한 문이 버티질 못할 거야."
"문이 뚫리면 관문의 이점을 살릴 수 없어!"
"그러니까 우리의 제1 목표는 문을 지키는 거야."
"어떻게?"
"문 위 성벽에서 마법을 쏘거나 바위를 굴리는 거지."
"...지금 우리가 가진 마법으로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프레이야가 어이없는 듯이 나를 노려보더니, 탁구공만 한 파이어볼을 허공으로 날려 보았다.
거의 2m도 못 간 것 같다.
"물론 안 되는 건 알지. 그래서 이걸 준비했지."
나는 내 허리춤에 묶여있던 보따리에서 마법서를 하나 꺼내 내밀었다.
프레이야는 그 마법서를 받아들고 훑어보기 시작했다.
"이건 뭐야?"
"따끈따끈한 신상 마법이야."
"벌써 완성된 거야?"
"뭐, 아직 최적화가 덜 되긴 해서 마나 소모량이 좀 많지만···. 적어도 그 쓰레기 마법보다는 낫겠지."
프레이야는 마법서를 한번 읽더니 허공에 사용했다.
타오르는 듯한 열기가 주위를 휩쓸었다.
마법서를 한번 읽어보고는 완벽하게 사용하다니, 와이드 캐스터다운 훌륭한 마법 이해도가 놀랍다.
"파이어볼을 만들어 달랬는데, 누구 취향이 강하게 묻은 모양이네."
"뭐야, 그래서 싫어?"
기껏 만들었더니 표정이 생각보다 무표정하다.
이러면 만든 사람 보람이 없는데?
"아니, 완전히 만족해."
프레이야는 자신 있게 말하곤 만족한 듯 웃었다.
음, 아까 발언 철회.
"그래서, 이 마법 이름이 뭐야?"
"음···. 단순하게 말하면 파이어 윈드? 파이어 스톰?"
"뭐야 그거, 촌스러워."
"그렇지?"
영어 기초단어로 마법 이름 짓기를 좀 그렇다.
좀 더 세련된 이름이 필요해···.
바람, 불. 이 두 개가 연관된 것이 뭔가 없을까?
"풀무질."
"응?"
"「헤파이스토스의 풀무질」 정도면 어떠려나?"
"음, 아까보단 낫네. 좋아, 그걸로 하자."
프레이야는 오랜만에 좋은 마법을 받아서인지 즐거워 보였다.
그러자 옆에서 유스티아의 시선이 느껴졌다.
"부럽다아···."
유스티아는 뭔가 실망한 듯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예상한 바다.
"자, 여기 유스티아꺼야."
나는 보따리에서 마법서를 하나 더 꺼내 들어 유스티아에게 내밀었다.
유스티아의 눈이 크게 커지더니 마법서에 홀린 듯 시선이 꽂혔다.
"이, 이건?"
"네 마법이야. 아쉽게도 신체를 직접 강화하는 마법은 아니지만 쓸만할 거야."
신체 강화 마법은 알고리즘이 복잡해서 어려운 룬 문자를 활용해야 하기에 단시간에 만들기는 무리였다.
유스티아가 마법을 사용하니 팔 주위로 강한 바람이 감쌌다.
거기에다 팔을 움직이는 데 공기의 저항이 거의 없는 듯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오히려 팔의 움직임을 조금 도와 주먹이 더욱 위력적으로 내질려지는 듯 보였다.
음···. 조금 만족스럽지 않은데.
너무 바람이 과하지 않나?
깔끔하지 않아 보여.
"좀 무리하더라도 역시 신체 강화 마법이 좋았으려나?"
"아냐! 완전 좋아!"
유스티아는 진심으로 고마운 듯 보조개까지 보이며 웃었다.
아름다운 얼굴이 웃는 걸 보니 보람차다.
게임에서 마법 만들면 베껴가는 놈들이랑 성능 따지는 놈들밖에 없었는데.
"그럼 이름을 정할까? 뭐 좋은 이름 같은 거 있어?"
"음···. 나 이름 짓는 거 잘 못 하는데."
"나만 하겠냐, 내 이름을 생각해봐라."
정확히 말하면 관심이 없는 것에 가까우려나?
핑계는 절대 아니다.
"음, 적당히 떠오르는 거 아무거나 생각하면···. 순풍?"
"순풍? 그거 괜찮네."
"좋아, 그럼 이 마법은 「제피로스의 순풍」이라고 하자."
두 마법 모두 내 이름 짓는 센스치고는 잘 지은 것 같다.
이름은 만족.
"이거면 내일 가능성이 있을 것 같은데?"
"완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렇게 생각하면 다행이고."
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땅바닥에 그린 그림을 다시 고쳐 그리고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프레이야는 「풀무질」로 놈들이 문에 접근하는 걸 막아."
"알겠어."
"나는? 나는 뭐해?"
"유스티아는···. 일단 성벽 위에서 바위 같은걸 던져."
"나가서 싸우지 않는 거야?"
"오크에게 둘러싸이고 싶으면 나가도 되고."
"그건 싫어."
"그럼 일단은 성안에 있어. 놈들의 손해를 최대한 누적시키고 싸울 거니까, 때를 봐서 싸우라고 할게."
"좋아."
아까까지만 해도 그다지 좋지 못한 분위기였으나 지금은 자신만만한 분위기가 흘렀다.
뭐 사기는 높은 것이 좋으니까 다행인 거겠지?
"그럼 이제 슬슬 자자."
"적 앞에서 자다니···. 좀 무섭다."
"내가 망을 보고 있을게. 먼저 자."
"웬즈데이씨는 안자?"
"그래, 너도 자. 트랩 같은걸 설치해두면 놈들이 오는지 알 수 있을 거야."
"아냐, 내 눈으로 감시하는 게 확실하니까. 그리고 내일 너희가 힘내줘야 하고."
저놈들이 밤에 우리를 기습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내 『미미르의 눈』은 밤에도 아주 잘 보이므로, 내가 깨어있다면 분명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괜찮아. 이게 최선이니까. 먼저 자렴."
"...알았어. 그치만, 바로 일어나서 싸울 수 있도록 성벽 위에서 자자."
"그래 그러자!"
유스티아는 바닥에 깔 지푸라기를 모아 성벽 위로 가져갔다.
내가 성벽에 몸을 기대고 바깥을 바라볼 수 있도록 자리를 잡자, 그 옆에 지푸라기를 깔아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그럼 부탁해!"
"이번에는 꼭 말해."
둘은 지푸라기에 몸을 뉘이고 눈을 감았다.
"...잠이 안 와."
"내일 있을 일이 긴장돼서 그래."
"마치 수학여행 전날과 비슷한 거네"
"지금 우리 상황만 보면 수학여행 이상인데?"
"그건 그렇지, 수학여행은 가던 곳만 거니까···."
"그치만 음식은 아냐···. 건빵 싫어···."
"돈가스나 먹고 싶다."
"많은 거 안 바라고 라면에 밥 한 공기···."
"난 치킨에 맥주가 땡기네."
"맥주 좋지. 너희는 어떤 맥주 좋아해?"
"흑맥주 먹고 싶다 아···."
"야, 나 스무살이거든?"
"응? 프레이야 스무살이었어?"
"진짜? 분위기만 봐선 웬즈데이씨랑 비슷한데···."
"뭐야! 나랑 저 아저씨랑 비교하는 거야?"
"아저씨라니, 나 아직 팔팔한 이팔청춘인데?"
"스물 여덟? 역시 아저씨였어···."
"그럼 너는? 너는?"
"여자한테 나이 묻는 거야?"
"네가 먼저 시작했잖아."
"그럼 대학교 다닌다는 것만 알려줄게."
"너무 범위가 넓은데···?"
그렇게 아무런 내용도 영양가도 없는 이야기도 시들해질 때쯤, 규칙적인 숨소리가 두 개 들리기 시작했다.
프레이야랑 유스티아 모두 곤히 잠든 모양이다.
아름다운 여자들이 잠든 걸 보니 뭔가 본능적인 충동이 솟아오르는 기분이지만, 오늘만큼은 좀 참자.
내일을 위해서.
부디 내일은 아무런 일도 없기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