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역사 영웅이 되었다-80화 (80/160)

〈 80화 〉 79화: 세 개의 생각

* * *

『인간 놈들의 음식을 먹어봤다. 의외로 맛있었다. 그런데 화살은 왜 이렇게 형편없는건지』

­누군가의 공책

***

"주인님. 주인니임."

누군가 나를 애타게 부르며 볼을 꼬집자 눈이 절로 떠졌다.

눈을 뜨자 로제가 바로 앞에 있었다.

게다가 팔과 다리에서 따끈따끈한 살결이 느껴지는 것을 보아 아마 그녀를 안고 있는 것 같다.

...그것도 알몸으로.

"로, 로제. 옷차림이 그게 뭐니."

"으응? 옷이 왜? 주인님이랑 나 부부 사이잖아. 그러면 안 돼?"

"아직 정식으로 부부 사이도 아니고, 저, 그게…."

"아까는 잘도 아기만들기 했으면서!"

로제는 뾰로통하게 볼을 부풀리며 내 몸에 얼굴을 마구 비볐다.

생각해보니 로제랑 거사를 끝마치고 바로 기절하듯 잠들어서 다 벗고 있는 게 당연한 건가.

으음, 그럴 수도 있겠다.

"로제. 그만하렴. 다 벗고 있어도 괜찮으니까."

"응. 헤헤, 고마워."

나는 로제를 꼭 안아주며 머리를 쓰담 쓰담 해주었다.

그러자 로제도 기분이 좋은지 내 품으로 더 밀고 들어와 몸을 밀착했다.

으으, 그녀의 여러 가지 몸 부위가 느껴져서 어딘가에 피가 몰리는 듯했다.

아까 그렇게 했는데도 벌써 이러….

"으악!"

그 순간, 갑자기 아래쪽에서 형용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져 그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내가 그러자 로제도 놀랬는지 눈을 큼지막하게 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주인님? 왜 그래?"

"아, 아랫도리가…."

"아랫도리? 아, 주인님 자지 말하는 거야?"

"로제! 마, 만지지 말렴!"

로제가 내 거기를 만지자 순간적으로 극도의 근육통이 거기와 그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아까 사정을 거의 10번 정도 했으니 그만큼 반동이 오는 것 같다.

너무 아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다.

"웬즈데이 님. 왜 그러시죠?"

"뭐야! 갑자기 왜 그래? 웬즈데이 씨!"

"어디 다치기라도 한 거야? 웬즈데이?"

"웬디! 무슨 일인가요?"

내 비명에 침대에서 자고 있던 모두가 깬 건지 다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어, 어제 너무 사정해서 그런지 자지가 너무 아파…."

내가 솔직하게 털어놓자, 몇몇은 어떡하느냐며 호들갑을 떨었고, 몇몇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어제 발정이 나서 그렇게 박아대니까 아프지! 네 책임이잖아!"

"우…. 생각해보면 웬즈데이 씨 자지를 너무 꽉 문 것 같기도 하구…."

"웨, 웬디! 설마 그, 아, 아기즙을 더 못 만드는 건 아니죠?"

"혹시나 걱정되신다면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주인님! 이제 더 이상 아기 못 만드는 거야?"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냥 근육통이에요."

이 여자들 나를 고자로 만들고 있어.

좀 시간 지나면 나을 것이다.

그러니 당분간은 섹스 생각도 하지 말아야겠다.

"스카이히어로 백작님."

그 순간, 갑자기 누군가 방의 문을 똑똑 두드리며 나를 불렀다.

목소리만 들으면 별채에서 일하는 시녀인 것 같은데….

문제는 지금 침대 위에 있는 모두가 옷을 벗고 있다는 거지.

어쩔 수 없이 나는 목소리만 사용해서 대답했다.

"무슨 일 있습니까?"

"백작님. 폐하로부터의 서신이 와 있습니다."

"뭐?"

레오폴드 왕으로부터? 서신이?

이건 아무리 지금 내 몸 상태가 안 좋고 모두가 알몸이더라도 꼭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대충 벗어놓았던 옷을 걸치고 문 앞으로 다가가 살짝 열었다.

"무슨 서신인데요?"

"여기 있습니다. 최대한 빠른 시일 내로 읽으라 하셨습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문틈으로 서신만 후딱 받고 문을 닫았다.

음, 어떤 내용의 서신일까. 그것도 우리에게 직통으로 보낸 서신이라.

타이밍 상 사과 같은 그리 중요하지 않을 내용일 수 있지만. 그래도 서신이니 꼼꼼히 읽어보자.

편지 봉투의 밀봉을 풀고 내용물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으음. 첫 줄부터 `이 밑의 내용을 읽는 즉시 나에게 찾아와라.`라니.

이럴 거면 차라리 만나서 이야기하는 편이 낫지 않았….

나는 그다음 생각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정도로 충격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

"이 정도면 문제없겠죠?"

"네, 아버님도 그 정도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을 거예요."

"예법에는 어긋나나 그 정도가 크진 않습니다."

우리는 아직 성교의 비린내가 가시지 않은 채 옷을 대충 차려입고 레오폴드 왕에게 찾아갔다.

원래 같았으면 약속 시각을 잡고 정갈하게 채비를 해야 했으나, 사안이 급한 만큼 어쩔 수 없었다.

서신을 보여주자 시종이 안내를 해 주어 빠르게 레오폴드가 머무는 방으로 닿을 수 있었다.

문을 열자, 평상복을 입고 있는 중년의 남자가 우리를 바라보았다.

"스카이히어로 백작, 스카이헤로인 백작, 그리고 내 딸과 그 시녀들인가."

"그렇습니다. 말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저희의 무례를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폐하."

"아닐세. 이리 앉게."

로제도 있었지만 명목상 내 시녀니까 문제는 없겠지. 메이드 복도 입었고 말이야.

우리는 레오폴드가 가리킨 소파로 다가가 차례대로 앉았다.

가장 상석에 엘리자베스, 그 다음이 나, 다음으로 유스티아, 프레이야, 다리아, 로제 순으로 앉았다.

우리의 그런 사이 좋은 모습을 보자 레오폴드가 미심쩍게 웃었다.

"다들 사이가 좋아보이는구만. 많이 친해졌나?"

"영웅분들이 친하게 대해 주셔서 친분을 다지는 데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아버님."

엘리자베스는 침대 위에서 앙앙거리던 천박한 모습과는 달리 우아한 몸놀림으로 레오폴드에게 대답했다.

저런 여자가 변태에 마조라니, 정말 사람은 외모만 보고서는 모른다.

"그렇군, 그나저나 프레이야 스카이헤로인 백작, 전의 만찬회 일로 채벌리 자작을 잡아 가뒀네. 어찌 하는 게 좋은지 묻고 싶다만."

"내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청혼한 남자가 그리고 싫은가?"

"남자가 남자로 보여야 말이지. 뭣도 안 되는 날파리가 나한테 감히…."

프레이야는 그 남자 때문에 씩씩거리면서 나를 흘깃 쳐다보았다.

그 눈빛을 읽은 레오폴드는 재밌다는 듯 껄껄 웃었다.

"하핫. 그렇군. 벌써 임자가 있었군."

이 왕, 그걸 벌써 간파하다니. 눈치 하나는 빠른 것 같다.

그, 그러면 설마 나와 엘리자베스의 관계도 알면 어쩌지?

벌써 아다는 커녕 입보지 처녀도 따버렸다는 걸 눈치채면 어떤 반응을 할지 무서웠다.

"...폐하. 지금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본론을…."

"아, 그렇지."

내가 중간에 살짝 태클을 걸자 레오폴드가 수염을 만지며 얼굴을 가다듬더니, 이내 중후하고 진중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았다.

"서신의 내용은 다들 읽었나?"

"네. 분명…."

"그래, 엘프 놈들이 우리에게 서신을 보냈네."

엘프, 용 머리 대륙 중에서도 윗잇몸 산맥 주변에 널리 분포하는 종족.

숲이라면 어디든 살 수 있는 그 생존력과 숲이 많은 산맥의 기후가 결합해, 꽤 번성한 종족이다.

우리 시대에서도 번식력이 뛰어난 인간 못지않게 엘프도 많았는데, 지금 상황이라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숫자일지 상상도 안 간다.

분명 드워프 놈들과 호각을 이루는 이 세계의 두 축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뭔가 이상하다.

엘프는 그 특유의 배타적, 고립적 성향이 강해 종족 간의 연락을 취하는 경우도 없는데.

게다가 이런 일은 역사책에도 안 나오는 일이라고?

도대체 뭐야?

"내 자네들에게 묻겠네. 그 귀쟁이 놈들이 우리에게 왜 연락을 한 것일까?"

"음…. 가장 가능성이 큰 추측은 말이죠. 저희가 드워프와의 싸움에서 이긴 것을 보고 쓸모가 있다 판단한 것 같습니다."

도저히 이 이유 말고 합리적인 근거를 찾지 못하겠다.

으으, 근데 원래 역사에서도 우리가 드워프를 물리쳤는데, 왜 역사책에서는 연락을 안 하고 지금은 연락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렇구먼. 그러면 엘프 놈들이 파견한다는 사신은 무슨 의미일까?"

"사신의 격에 따라 다를 것 같습니다. 사신의 엘프 중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라면 우리와 진지한 거래를 할 것이고, 급이 낮은 인물이라면 그냥 짧게 이용하다가 버릴 것 같습니다."

"흠. 그렇군.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우리 인간이 이용당하는 건 같지 않나?"

"그렇습니다."

레오폴드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은 그 귀쟁이 놈들의 사신을 봐야지 계책이든 뭐든 생각할 수 있겠지."

"과연 그렇습니다. 뭐 저희도 최대한 그 엘프 놈들을 이용한다는 뼈대는 변하지 않겠지만요."

"역시 하늘이 내린 영웅일세. 답변이 시원시원하구만."

시원시원하다니, 그냥 정론을 이야기한 것뿐인데.

아 참. 여기에는 그것조차 이야기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더 많구나.

내 유능한 면모가 마음에 든 것인지 레오폴드는 갑자기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엘리자베스를 바라보았다.

"딸아. 어떠냐? 이런 남자는."

"네, 네엣?"

"청혼 때문에 생각이 났는데, 너도 이제 곧 결혼할 나이잖느냐. 왕녀로서 빨리 적당한 남자를 만나서 후계자도 낳고 그래야 왕실이 살고 나라가 바로잡히고……."

레오폴드의 그런 갑작스러운 말에 엘리자베스의 얼굴이 한계까지 빨개지더니 눈에 눈물이 찔끔 맺혔다.

으, 이, 이미 결혼한다고 선언까지 했는데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렇다고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안 되겠다. 여긴 남자인 내가 치고 나간다.

"폐하. 전하의 의중은 모르겠으나 저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런가? 딸아, 영웅분께선 괜찮다는데 어떠냐?"

"그, 그으…."

레오폴드는 엘리자베스의 반응이 웃긴 것인지 내가 마음이 든 건지 호탕하게 몇 번 깔깔대며 웃더니, 내 주변을 슬며시 바라보며 무언가 중얼거렸다.

"으음, 근데 자네 말일세. 여자관계가 조금…."

"네?"

"엘리자베스가 그릇이 작은 여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좀…."

레오폴드가 뭘 말하는 건가 싶어 내 옆쪽을 살펴보자, 프레이야랑 유스티아랑 다리아랑 로제 모두 나를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내가 레오폴드에게 한 말 때문에 그런 건가.

으으, 설마 우리 관계를 들키지는 않… 았겠지?

"뭐 됐네, 그건 천천히 생각하세. 이만 물러가 보게."

"아, 알겠습니다."

나는 레오폴드의 눈치를 살피느라 땀을 뻘뻘 흘리며 방을 빠져나왔다.

여러모로 지옥의 시간이었다.

"웬디. 설마 아버님께 드, 들킨 건 아니겠죠?"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엘리자베스의 성벽까지 들키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것만은 나만이 알고 싶었다.

***

"뭐라! 그 귀쟁이 놈들이 원숭이에게 접촉했다고?"

"네. 방금 첩보가 들어온 바로써는 그렇습니다."

"이 망할 놈들!"

드워프 왕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앉은 난쟁이는 안 좋은 소식이라도 들었는지 갈갈이 날뛰며 소리쳤다.

그도 그럴 만했다. 근래에 좋은 소식이라곤 들리지 않았으니까.

"이게 다 그 망할 수군이 원숭이 놈들에게 패배해서 그런 거 아니냐! 게다가 어렵게 구한 드래고니안도 빼앗기고! 당장 귀쟁이 놈들이 원숭이 놈들과 손을 잡아서 우리를 위협한다면, 이를 어찌할 것인가!"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그 주둥이는 음식만 들어가는 곳인가? 빨리 말하지 못해!"

드워프 왕의 그 일갈에, 거의 모든 신하가 벌벌 떨었다.

하지만 그중 유일하게 당당한 모습을 하는 신하가 앞으로 나오더니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폐하.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오오, 화이트비얼 경. 계책이라도 있나?"

"귀쟁이 놈들의 성격은 온 대륙이 아는바. 게다가 원숭이 놈들도 한 성깔 하니, 그 둘이 섞일 수 있겠습니까? 설령 섞이려고 한다 해도 많은 잡음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군! 그럼 우리는 어찌해야 하는가?"

"그 둘이 붙어먹으려 한다 해도 서로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아 갈등이 벌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그 갈등이 일어나는 시간 동안 힘을 다시 기르면서 적절히 치고 빠지면 됩니다. 여차하면 저희도 사신을 보내죠."

"역시 자네밖에 없구먼!"

그렇게 세 개의 생각이 송곳니 반도에서 충돌한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