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 123화: 애로우헤드 관문 전투(3)
* * *
『악마의 첫 번째 발명품은 죽음이요, 두 번째 발명품은 역병이요, 세 번째 발명품은 전쟁이다.』
어금니 반도의 격언
***
"막사 전체에 불을 질렀어."
"다리아 씨. 지금 바람 방향은 어떻게 되나요?"
"남향입니다. 이쪽으로 불이 옳겨붙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프레이야가 불을 잘 질렀는지 바깥에서는 계속 나무 타들어 가는 소리와 드워프들이 내지르는 비명밖에 들리지 않았다. 몸에 불이 붙은 드워프들이 많았던지 고기 타는 냄새도 계속 났다. 하지만 그것만 빼면 우리는 완전히 안전했다. 바람 방향도 그렇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드워프들을 모두 유스티아가 처리했기 때문이다.
"머리 부서지고 싶으면 이리로 와!"
유스티아는 두꺼운 보급고의 벽 뒤에 몸을 숨기면서 한놈씩 처리했다. 아마 총을 맞지 않으려는 심산인 것 같다. 조금 불안해 보였지만, 그녀의 순발력이라면 문제없을 거라 여겼다. 나는 뒤로 돌아 프레이야에게 다가갔다.
"이쪽으로 오는 드워프 셋을 처리했어. 그쪽은 어때?"
"불에 다 타는 모양이야. 다들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 보여."
"놈들의 무장은 어때? 무슨 이상한 걸 들고 있지 않아?"
"별로, 맨손이 대다수에 칼을 들고 있는 놈이 몇 있어."
그 총으로 무장한 드워프는 더 이상 없는 건가.
혹시나 해서 나도 살펴보니 정말로 총이나 그와 유사한 무기가 없었다.
이건 기회다. 놈들이 제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틈을 타서, 싹 쓸어버려야 한다.
"다리아 씨. 놈들이 무장해제된 틈을 타 소탕하려 합니다. 괜찮아요?"
"문제없습니다."
우아하게 칼에 묻은 피와 살점을 닦고 있던 다리아는 내가 말하자마자 바로 일어나더니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녀의 큰 가슴이 눌리면서 옷이 꽉 조여졌다.
"유스티아. 너는 계속 여기로 오는 놈들을 막아. 프레이야, 「흐르는 검」으로 귀찮아 보이는 놈들을 계속 요격해."
"응! 알겠어!"
"...조심해, 괜히 다치지 말고."
나는 다리아와 함께 보급고 문을 박차고 나왔다. 놈들은 그런 우리를 보고 당황해하며 소리를 질렀지만, 몸에 옳겨붙은 불을 끄지 못한 대다수의 드워프 들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했다. 다리아는 그런 드워프의 심장과 목을 연신 꿰뚫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앞쪽에 드워프가 넷 더 있습니다!"
"다리아 씨. 열기가 심하니 더 접근하지 말고 뒤로 물러서세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빠르게 룬 문자를 외며 적당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일으킨 바람은 먼저 불타는 나무에 다가가더니, 그곳에서 타오르는 불씨를 실어 드워프들에게 날랐다. 드워프들이 입고 있는 가죽옷에 불씨가 닿자 순식간에 불이 번지기 시작했다.
"아, 아아악! 뭐야!"
"저놈이다! 저놈이이이이이!"
내가 한 짓임을 알아차렸지만 그놈들은 이미 온몸이 화염으로 뒤덮인 상태였다. 나는 고기가 타는 냄새를 애써 무시하며 다리아와 함께 근처 나무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 딱 불타는 막사의 열기를 막을 수 있는 곳이었다.
"저희가 처리한 건 일곱 명…. 타오른 드워프들도 많을 테니, 숫자는 이제 정말 얼마 없겠네요."
"다리아 씨 덕분입니다. 그치만…."
나는 막사의 상태를 계속 흘겨보며 걱정했다. 관문이 나무로 된 이상, 저대로 놔뒀다가 바람의 세기나 방향이라도 바뀐다면 관문이 통째로 날아갈게 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 남쪽 관문에 불이 옳겨불을랑말랑 하고 있었다. 기껏 점령한 관문이 불타버린다면 드워프들이 지원을 왔을 때 또다시 고생을 해야 할 것이다.
어쩌지.
"다리아 씨. 체력 괜찮으세요?"
"멀쩡합니다. 여차하면 지금 웬즈데이 님을 업고 저희가 지나온 강까지 걸어갈 수 있을 겁니다."
"그럼 다행이네요."
일단 빠르게 놈들을 정리해야 한다. 그래야 저 불을 끌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우선 놈들이 지금 얼마나 남아 있는지 객관적으로 체크하고 상황판단을 해야 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리아 씨. 따라와주실래요?"
"기꺼이 따르죠. 어디입니까?"
"잠시 저 건물 가까이 가야겠습니다."
여기서는 아무리 내 오른쪽 눈이 효력이 좋아도 화염의 불빛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적어도 나무가 다 타버려서 연기만 나오는 쪽으로 가야 뭐가 보일 것 같았다.
내 무리한 부탁에도 다리아는 한점 망설임 없이 일어나더니 검을 고쳐쥐었다.
"제가 호위하겠습니다. 그러니 맘 편하게 살피시지요."
"알겠습니다. 이번에도 믿겠습니다."
다리아가 너무도 든든했기에 나는 일단 주위 상황에 신경을 끄고 막사만 살피기 시작했다. 오른쪽 눈을 과부하시켜 막사를 살펴보니 슬슬 안쪽에 드워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 때문인지 살아 있는 놈들이 별로 없었고 그중에 숨이 붙어 있는 놈들도 연기 덕에 곧 죽을 듯 보였다.
하지만 아직 막사 전체를 훑은 건 아니라서 속단할 수 없었기에, 나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자 했다. 저 안쪽은 좀 방이 커보였으니까, 그러니 저기에 뭐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저기 놈이 있다! 죽여라!"
"놈을 씹어먹어라! 년은 겁탈해라!"
드워프들이 우리를 보고 달려들기 시작했지만 나는 조금의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온갖 연기와 불빛으로 가려진 막사를 살피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다리아를 마음속 깊이 믿었기 때문이다.
"어림없어요. 난쟁이들, 목을 내놓으세요."
"가슴만 큰 머저리년 따위가 어딜!"
"역겹네요. 꺼지세요."
다리아는 간결하게 스텝을 밟으면서 드워프들을 일격에 처리해나갔다. 첫 번째 걸음으로 드워프의 팔을, 두 번째 걸음으로 드워프의 심장을, 세 번째 걸음으로 드워프의 목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드워프는 뭐 할 틈도 없이 그저 달려 나가다가 최후를 맞이했다.
"계속 달려 나가세요. 웬즈데이 님."
"응."
나는 막사 주위를 계속 돌며 안쪽을 살펴보았다. 아직 숨이 붙어 있는 드워프 몇을 발견했다. 그중에서는 팔팔한데다 전투 의지를 불태우고 숨어 있는 드워프도 몇 보였다. 아무래도 직접 부딪힌다면 저항히 심해지겠지.
여기서 처리해야겠다.
"다리아 씨! 이쪽으로!"
나는 순간적으로 룬 문자를 외워 주위의 공기와 물을 내가 가리킨 방향으로 끌어당겼다. 순식간에 도착한 차가운 바람과 물은 우리 주위에 열기를 식히더니 이내 불까지 끄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와 그 팔팔하게 살아 있는 놈 사이에 다가갈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딱 그 부분만이 불이 붙지 않았다.
"저 벽 뒤에 위협적인 놈이 있습니다. 바로 다가가 처리할 테니 주위를 봐주세요."
"네!"
나는 그 벽으로 달려가 벽 뒤로 열풍을 날렸다. 비록 불이 활활 타오를 정도로 뜨거운 열은 아니었지만, 사람의 피부와 내장을 익힐 수 있는 충분한 정도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정교하게 조작한 열풍은 내 의도대로 그 드워프를 향해 다가갔다. 이내 쿨럭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더니 바닥에 쓰러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됐어요. 이제 가죠."
"이 주위에 적이 얼마나 있나요?"
"없어요. 방금 쓰러진 놈이 마지막이예요."
놈은 벽 뒤로 완전히 쓰러졌는지 팔과 다리가 벽 옆으로 삐져나왔다. 축 늘어진 걸 보아 아마 의식을 잃거나 죽은 것 같다. 뭐 확인사살같은 건 필요 없겠지.
그렇게 우리는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가나 싶었다.
"웬즈데이 씨!"
근데 그 순간, 갑자기 천지를 울리는 굉음이 들렸다. 그와 동시에 다리아의 비명도 들렸다.
그리고 내 몸에서 갑자기 피가 튀는 소리가 났다.
"으, 으으윽…!"
왼쪽 어깨에서 피가 철철 흘러내리더니 극심한 고통이 느껴졌다, 정신이 맑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흐려질 정도의 엄청난 극통이었다. 나는 그만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또다시 굉음이 들려왔다.
"아. 아악!"
이번에는 다리였다. 왼쪽 종아리 즈음에도 피가 흐르더니 정신이 멍해질 정도의 통증이 밀려왔다. 정상적인 사고는커녕 지금 상황조차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머리가 이상해졌다.
지금, 이게 뭐지? 모르겠어. 그, 급소를 안 맞았으니 다행인 것 같은데….
"으, 윽…."
너무 밀려드는 고통에 주위 상황이 머리에 안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의식이 흐려졌다. 눈을 떴는데도 앞이 어두워졌다. 몸에서 힘이 절로 빠져나갔기에 나는 그만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의식이 꺼지기 직전, 다리아의 다급한 비명만이 살짝 메아리쳤을 뿐이었다.
***
"웬즈데이 님! 웬즈데이 님!"
다리아는 갑자기 피를 튀기며 쓰러진 그를 보고 당황해했다. 주위에 적이 없다고 그가 말했는데, 그리고 본인 눈으로도 주위에 적이 없음을 확인했는데, 갑자기 공격을 받다니.
"사, 상처가 깊어…. 이건…?"
순간 메르세데스와 로제가 입은 상처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작지만 깊은 원형 구멍, 그리고 그 안에 박힌 쇠구슬. 분명 아까 그가 말했던 「총」이라는 물건의 공격이 틀림없었다.
"쳇, 머리를 못 맞췄군."
다리아가 어디에서 총이 발사되었는지 찾으려는 순간, 멀리서 어느 드워프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화약 냄새와 재장전에서 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는 덤이었다. 그곳에는 쇠막대기 두 개를 들고 있는 드워프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
"이…. 이 난쟁이 새끼가…."
다리아는 순간적으로 마음속에서 끝없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토해냈다. 백작가 영애 출신이자, 이젠 백작이 된 그녀답지 않은 천박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런 귀족답지 않은 말을 계속 뱉으며 그 드워프에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우아하게 전장을 휘날리는 귀족이 아닌, 분노와 슬픔에 몸을 맡긴 짐승이었다.
"어, 어떻게 여기를!"
"죽어!"
드워프는 달려오는 다리아를 보고 당황해하며 자리를 옮기려 했으나, 고삐풀린 말처럼 파고드는 다리아에게 그만 따라잡혔다. 다리아는 입에서 극도로 험악한 말을 계속 뱉으며 드워프를 난도질했다.
"이 개새끼, 원숭이 새끼, 머리에 술밖에 안 들어 있는 미개한 개새끼."
"아, 아아아악!"
다리아는 일부러 치명적인 부위를 노리지 않고 아픈 부위를 노렸다. 우선은 발목을 잘랐고, 그다음은 손가락을 하나하나씩 토막 냈다. 그 드워프의 신체부위를 자를 때마다 왠지 모를 쾌감과 환희가 느껴졌기에 다리아는 계속 드워프에게 검을 휘둘렀다.
"팔은 세토막, 다리는 다섯토막. 아, 썅. 키가 작아서 다섯토막이 안 나오네."
"으. 윽…."
드워프의 팔다리는 이미 몸에서 분리되었고, 이제는 거의 죽어 가는 몸통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다리아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남아 있는 몸뚱이마저 적어도 스무토막은 내지 않으면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우에 따라서는 머리도 쪼갤 생각도 하고 있었다.
"역겨워, 역겹다고!"
그렇게 다리아는 드워프의 배에 칼을 들이대려 했다. 근데 그 순간, 무언가 그녀의 정신을 확 맑아지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파…."
그 다급한 목소리에 돌아보니 그가 고통을 호소하면서 바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웬즈데이 니임!"
그걸 보자 다리아는 바로 드워프는 돌아보지도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지금 역겨운 드워프 고기를 손질하는 것보다, 그가 더 소중했기 때문이다.
"아아, 어떡해…."
그는 상처 두 군데에서 피를 계속 흘리고 있었다. 다리아가 옷을 벗고 가슴을 묶는 압박붕대를 풀어 감아주었지만, 이미 흘린 피가 너무 많아서 걱정이었다. 게다가 가슴골에 흐른 땀이 묻은 붕대가 상처에게 해가 되지 않을지도 걱정되었다.
"빨리 모두와 합류해야 해요. 그러니까…. 웬즈데이 님. 조금만 참아주세요…."
다리아는 어쩔 수 없이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공주님안기로 안고 보급고로 데려갔다. 지금껏 싸운 여파 덕분에 다리는 납처럼 무거웠고 그는 거의 쌀가마 다섯 개 수준으로 버겁게 느껴졌지만, 다리아에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더 중요한 건 그를 살리는 일이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빠져나가는 일이었다.
"드워프 들은 모두 죽은 것 같아! 이쪽에서 확인해봤는…. 어? 웬즈데이 씨?"
마침 마중을 나온 유스티아가 쓰러진 그를 보고 달려들었다.
"뭐, 뭐야! 왜 이래!"
"그 총이라는 것에 맞은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방심하다가…."
둘이서 워낙 목소리크게 대화하자 보급고 안에서 프레이야가 얼굴을 빼꼼 내밀며 상황을 살폈다.
"야. 목소리 좀 줄여. 여기 전장이라…."
프레이야는 피가 범벅된 그를 보고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미친 듯이 달려와 그의 상태를 살폈다.
"...야, 웬즈데이 왜 이래?"
"어깨와 다리에 총을…."
"...그러게 조심하라니까, 이 병신새끼…. 조심하라니까…. 으흑, 으흑…."
"웬즈데이 씨 괜찮은 거지? 그렇지? 그렇다고 말해 얼른!"
그렇게 싸움은 끝났다. 모두 피투성이인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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