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149화: 시체 구이
* * *
『불을 사용한 작전은 다 좋은데 뒤처리가 문제다. 바싹 타버린 시체만 보면 병사들이 구역질하기 때문이다. 특히 겉은 이빨이 보일 정도로 바싹 구워졌는데 속은 안 구워진 경우는 더더욱 그랬다.』
드워프의 유일한 역사서
***
지글지글지글지글….
전쟁터에서 울릴리 없는 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분명 고기가 구워지거나, 무슨 액체가 부글부글 끓는 소리였다.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입맛을 다실만한 따뜻한 소리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소리는 그 따뜻하고 맛있는 느낌과는 180도 달랐다.
"으그으으으으으아아아아악!"
드워프의 끔찍한 비명이 그 지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퍼저나갔다. 왜냐하면 그 드워프 들의 피와 살이 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프레이야, 아직 괜찮아?"
"후우. 조금 더운데, 아직 괜찮은 것 같아."
"그럼 다시 「풀무질」을 사용해 줘. 숨이 끊어지지 않은 드워프들이 있어."
내가 그리 부탁하자 프레이야는 머리카락으로 전방을 가리키며 입으로 룬 문자를 중얼거렸다. 그러자 다시 한번 거대한 열풍이 쓰러진 드워프들을 덮쳤다.
"...으, 으으…."
이젠 비명마저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오로지 고기가 구워지다 못해 타는 소리일 뿐, 그 어떤 생명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싹 다 구워진 것이었다.
"아, 씨 냄새 뭐야."
어느 정도 시체가 타오르자 역겨운 냄새가 우리 쪽까지 풍겨 왔다. 고기를 굽는 것 같은 향기로운 냄새가 중간중간 섞여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이 고기가 타거나 가죽이 타거나 하는 끔찍한 냄새였다.
"우웩, 진짜 개 같네."
"어쩔 수 없어. 드워프 숫자가 워낙 많으니까 말이야."
유스티아는 그녀답지 않은 거친 말을 내뱉으며 그 타오르는 시체들을 노려보았다.
원래 「풀무질」을 사용할 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드워프의 숫자가 많으므로 유독 이번만 그런 것 같다. 거의 천 명이 넘어 보이는 시체들이 산을 이루며 구워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숲속에 숨어 한 장소에 계속 있다 보니까 냄새를 피할 수 없는 것도 한몫 한 것 같다.
"메르세데스, 혹여나 살아 있는 드워프는 없어?"
"제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방금까지 살아 있던 드워프 들은 프레이야 마님의 2차 마법으로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좋아."
나는 메르세데스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작전 결과만 놓고 보았을 때는 확실히 성공이었기 때문이다. 좁은 곳으로 드워프를 몰려오게 만들고 한 번에 해치운, 마치 살수대첩과 같은 압도적인 전투였다. 그것도 우리 측 손실 하나도 없이 말이다.
"웬즈데이 씨. 들어가서 싸울 거야?"
"조금만 더 기다려 보고, 혹시라도 병력이 더 있을 수도 있으니까."
"알았어. 그럼 나 바람 좀 쐬고 와도 될까? 저거 너무 개 같은데…."
유스티아는 저 구워진 시체에서 떨어지고 싶었는지 간절한 눈으로 내게 부탁했다. 그 마음이 절실하게 이해되는 나는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거면 모두 자리를 옮기자."
"그래도 돼?"
"시체가 주위에 널려 있어서 추가적으로 지원 오는 드워프 놈들도 못 보고, 우리 기분도 나빠지니까 딱히 못 옮길 이유는 없지."
내가 그렇게 말하자 모두 기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어지간히도 저 구운 시체가 싫은 것 같았다.
"웬즈데이 님. 숲을 가로질러 가시겠다면 제가 길을 열겠습니다."
"고마워요. 그럼 다리아 씨, 성벽을 따라 쭉 내려가죠."
"...성벽을 따라 가는 거야?"
"응. 놈들을 관찰하기 위해서 성벽 근처에 있긴 해야돼."
이곳이 드워프들을 관찰하기 딱 좋은데다 성벽과 몸을 숨길 수 있는 숲과의 거리가 가장 짧은, 최적의 장소였으나 못 쓰게 되었으니 차선책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성벽을 따라 숲을 가로질러 가면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는 게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다. 내가 자세히 설명하자 프레이야도 납득한 듯 머리카락을 빙빙 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카락과 턱 끝에 맺힌 프레이야의 땀방울이 바닥으로 툭툭 떨어지는 게 순간 눈에 들어왔다.
"많이 더워?"
"...응."
"그럼 천천히 걸으면서 쉬어."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프레이야에게 바람을 쐐게 해주었다. 그러자 프레이야는 은근히 내 바람에 몸을 맡기며 땀을 털어내었다.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이곳저곳의 땀을 닦아내더니 어깨에 있는 브래지어 끈을 만지작거렸다. 아무래도 전투 도중 끈이 이상하게 되어서 불편했던 것 같았다.
"주인님! 어디까지 내려가는 거야?"
"으음…. 일단 저 시체 더미와 그 주변을 감시할 수 있어야 하고, 숲과 성벽 사이 거리가 나름 가까워야 하니까…. 아마 조금만 더 내려갈 것 같아."
너무 많이 내려가면 기껏 시체를 바싹 구운 보람이 없어진다. 그러니 조금 냄새가 역겹고 광경이 끔찍하더라고 저거 주위에 있어야 한다.
"서방님. 이 주위가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 잠시만…."
내려가던 도중 메르세데스가 그리 말했기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확실히 몸을 숨기는 곳이 많고 시체 더미가 잘 보이는 곳이 분명했다.
"모두 멈춰. 여기서 아까처럼 다시 작전을 수행할 거야."
"...저 성벽도 뚫어야 되지?"
"힘들면 이따 해도 돼."
다시 작전을 수행한다는 말은 성벽을 다시 잘라 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프레이야도 그걸 깨닫고 투덜대며 물었다.
"...쳇, 할게. 안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녀도 책임감은 있었던 듯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성벽을 잘라 내었다. 아까보다 성벽이 살짝 두꺼웠기에 「흐르는 검」의 세기를 훨씬 세게 했어야 해서 프레이야가 더 힘들어했다. 주위로도 조각난 돌과 공기가 많이 튀어서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성벽을 다 잘라 내었을 때, 건너편이 너무 잘 보여서 아무도 이후 불평을 말하지 않았다.
"보여?"
"아니, 아직 아무도 안 보여."
성벽 너머로 오직 잘 정돈된 흙길만 보였을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드워프도 없었으며 시체 더미를 보고 달려오는 드워프는 더더욱 없었다.
"...병력이 천 명이나 희생되었는데 없는 게 당연하겠지."
"그런가? 여기에 병력이 더 있을 수도 있잖아. 피나르핀은 대도시라고."
"지금 엘프를 최전선에 몰아 넣고 있는데다 머메이드를 멸종시키기 위해 해군까지 풀어놓은 난쟁이들이야. 병력이 그렇게 많이 모여 있겠어?"
아무것도 안 보인다는 말에 프레이야가 더 병력이 없다는 의견을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일정 부분 동조하는 분위기었다. 내가 생각해도 프레이야의 생각에는 일리가 있어 보였다.
일단 천 명 정도면 꽤 많은 병력이므로, 다수의 적을 만들고 전선을 늘린 드워프 처지에서는 이런 곳에 주둔시키기는 너무 아깝다는 말은 매우 타당했다. 그 병력을 최전선에 집중해서 후딱 전쟁을 끝내는 게 그들 처지에서는 최선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천 명 정도면 충분한 병력이기도 했다. 아무리 엘프들이 모두 전사의 자질을 갖추고 있고 교육을 받았다 한들 드워프의 총 앞에서는 일반인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천 명 정도면 10만 명이 넘는 민간인들을 감시하는 일은 그렇게까지 어렵지 않다. 적당히 강하고 위험한 사람들을 가두고, 일반인들을 총으로 위협한다면 순식간에 치안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다리아 씨. 몸은 괜찮으신가요?"
"전혀 문제없습니다."
"로제, 너는?"
"속이 조금 안 좋지만 문제 없어!"
"유스티아?"
"멀쩡해."
다들 그 끔찍한 시체 더미를 보았는데도 뜻밖에 멀쩡했다. 전투 경험이 나름 풍부해서 그런가, 딱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해가 거의 없어 보였다.
"그러면 다들 준비해. 나와 메르세데스가 앞으로 5분 이상 드워프를 발견하지 못하면 바로 진입할 거야."
"응!"
슬슬 승기가 우리 쪽에 넘어오는 느낌이다.
***
"아리엘, 큰일이야!"
"무슨 일인데?"
그 시각 벌레 요새, 부상당한 몸을 정돈하고 있던 아리엘에게 동료 처녀 기사단원이 찾아왔다. 한눈에 봐도 다급해 보이는 태도가 아리엘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피나르핀이 공격당하고 있대!"
"뭐?"
그 이상한 말에 아리엘은 바로 얼빠진 소리를 내뱉었다. 피나르핀이 공격당하다니, 대체 저 말도 안 되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싶었다.
"저, 정찰 갔던 애들이 그러던데, 피나르핀 쪽에서 뭔가 매연 같은 게 피어올르고…. 게다가 시체 타는 냄새도 난다 그랬어."
"...그게 가능해?"
아리엘이 생각하기에 이건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우선 피나프린은 드워프가 꽉 잡은 도시다. 드워프가 지혜의 이빨 반도를 침략할 때 가장 먼저 공격한 대도시었으며, 병력을 많이 주둔시켜 우리 엘프의 탈환 작전을 모두 깨부숴 버릴 정도로 그들이 중요시하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공격할 존재가 있다고? 드워프가 모조리 점령한 이 지혜의 이빨 반도에서?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아리엘은, 이내 조금 엇나간 답을 내놓았다.
"...동포들의 반란인가?"
이것이 지금 생각하기에 가장 타당한 판단이었다. 피나르핀에는 수많은 엘프 동포들이 포로로 잡혀 있으니 말이다. 물론 전투력이 높은 남성 엘프 전사들을 먼저 대피시키느라 피나르핀 안에는 여자들과 어린이들밖에 없었으니 반란의 위력이 그리 크지 않겠지만, 그래도 저항을 한다면 충분히 기회는 있었다.
"이건 기회야, 지금이야말로 피나르핀을 해방시킬 수 있어."
"가, 가능한 거야? 너무 무모하지 않을까?"
"적어도 동포를 몇 구출하는 건 가능해. 그러니 부디 함께해 줘."
이미 아리엘의 머릿속에는 피나르핀으로 가는 길만이 떠올랐다. 그 집중한 모습을 보자 처녀 기사단원은 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밖으로 몸을 돌렸다.
"알았어, 그럼 분대장들을 모아올게."
곧이어 엘프의 열셋 분대장 모두가 아리엘의 거처에 모였다. 아리엘이 사는 공간에 모두 들어가자 좁아서 그런지 다들 불편하게 바닥에 앉았다. 아리엘이 아무리 제1분대장이자, 처녀 기사단의 우두머리 격 존재임에도 좁은 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과연 검소하고 순수한 그녀다웠다.
"...아리엘. 무슨 일인데."
"지니에, 지금 피나르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어."
"들었어. 막 시끄럽던데."
지니에를 비롯한 분대장들은 이미 그 소식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이 있는 듯했다. 그걸 알아챈 아리엘은 모두를 바라보며 비장하게 말했다.
"가자, 피나르핀으로."
"...제정신이지?"
"물론 제정신이지. 동포들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거기에 동참하는 게 제정신이 박힌 엘프겠지."
"거기 있는 드워프 병력은 최소 천 명이야. 게다가 벌레 요새에 있던 허접한 놈들이 아닌 정예병일 가능성이 커."
"상관없어, 어차피 싸우려고 여기까지 온 거잖아?"
아리엘의 열정이 불타오르는 말에 다른 분대장들도 다 고개를 끄덕였다. 워낙 영향력이 큰 아리엘의 말이라 거스를 수 없다고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아리엘과 거의 맞먹는 존재감을 자랑하는 지니에는 그런 아리엘의 말에 계속 딴지를 걸었다.
"그럼 병력 구성은, 모두 다 나갈 거야?"
"그러곤 싶지만 여기 벌레 요새도 지켜야 해."
"둘로 나눠야겠네. 그럼 피나르핀에 가는 병력도 줄어들 테고, 조금 위험할 수도 있어."
"괜찮아, 피나르핀에는 내가 갈 테니까."
부상당한 몸으로 그리 자신 있게 무모한 말을 내뱉는 아리엘의 모습에, 다른 분대장들은 모두 크게 놀랐다. 평소에 무덤덤한 표정으로 지내던 지니에도 마찬가지었다.
"지니에, 너는 벌레 요새를 지켜. 피나르핀에는 나를 포함해서 6분대까지 출격한다. 화살과 식량을 넉넉히 챙겨서 말이야."
아리엘의 그 말에 지니에는 경멸과 걱정이 반반 섞인 오묘한 눈빛으로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참 멍청하네."
"애초에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멍청한 선택이었어."
"...야, 부상자를 제외한 6분대까지의 병력 숫자는 100명이 안 돼. 가능하겠어?"
"내가 있잖아."
"니도 부상자잖아."
"이 정도야 별거 아냐."
지니에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리엘의 계획에 딴지를 걸었다.
"...나도 갈 거야."
"뭐?"
"벌레 요새에서 당분간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 확률도 크고, 다른 분대장들도 다들 실력이 좋아. 그러니까 내가 가도 상관없겠지."
지니에의 그 말에 아리엘은 걱정보다는 환희와 기쁨이 더 느껴졌다. 친구가 내 무모한결정을 지지해주는 게 너무도 든든했기 때문이다. 본인과 거의 맞먹을 정도의 실력을 가진 지니에라 더더욱 그랬다.
"그럼 6분대까지 부상당하지 않은 인원을 전부 모아줘. 군장을 싸고 준비하자."
"...남는 애들은 교대근무표 다시 짜고."
그렇게 아리엘과 지니에는 100명이 좀 덜되는 동료들을 이끌고 피나르핀으로 향했다. 그것도 아주 신속히 말이다. 저 정도의 속도라면 거의 반나절 만에 피나르핀에 닿을 것 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