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 7화
* * *
베아트리체는 몸집만한 거대한 검을 들고 요리조리 살펴보고 있었다.
하인리히는 그 모습을 보며 상념에 빠졌다.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하인리히는 베아트리체에게 매료되어 있었다.
처음 이 검을 만들어오라고 할 때만 해도 느꼈다.
그 당시 명령하던 베아트리체에겐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렇기에 하인리히는 그 당시엔 다소 말도 안 되는 명령을 홀린 듯 이행했다.
하인리히는 가렌의 모습에 회의를 느껴, 함께 전장에 참가하겠다 알린 그 날의 선택을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있었다.
후회하기엔 베아트리체의 능력이 너무 뛰어났다.
‘설마 그런 판단을 할 줄은…… 무력 뿐만이 아니야. 아가씨께선 지략 또한 출중하다.’
베아트리체는 자신의 능력을 아예 숨기기보단 일부에게는 알렸다.
최측근이라 할 수 있는 자신, 그리고 전속 시녀 리리스.
…곧 측근이 될 수도 있는 기사단.
첸치 가문에서 단연 핵심 인재를 뽑으라면 녹스 기사단 소속이었다. 문관 가문 답게, 유일하다시피한 무력에는 투자를 아끼지 않는 편이었으니까.
빠르고 정확한 판단이라고 하인리히는 생각했다. 곧 전장에 나가야하니, 이보다 좋은 수는 없었다.
그때, 검을 만지작거리던 베아트리체가 말했다.
“이 검, 누가 만든 것이지?”
하인리히는 퍼뜩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영지 내 최고의 대장장이에게 부탁했습니다.”
“내가 쓸 거라 알렸나?”
하인리히는 고개를 저으며, 긴장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가주께서 쓰실거라 언급했습니다.”
“왜지?”
“…아가씨께선 최고의 검을 원했습니다. 외람되오나, 아가씨께서 쓰실 검이라면 제대로 된 검을 만들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아가씨에게 신뢰를 줘야할텐데.’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은 이미 베아트리체의 편에 서기로 결심했다.
그 사실을 베아트리체는 모른다.
그러니 여기서 필요한 건 신뢰이다.
자신이 가주의 편이 아닌 온전히 베아트리체의 편이라는 것을 증명해야했다.
‘어쩌면, 시험일 수도 있겠군.’
하인리히는 지난 날 베아트리체에게 우호적이었던 자신을 칭찬하고 싶었다.
사실 그는 어느 정도 신뢰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과거부터 그는 베아트리체의 능력을 높게 샀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건 ‘능력’이었다.
자신이 과연 베아트리체의 편에 설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그래…?”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베아트리체의 표정은 전과 달리 좋은 표정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 없을 텐데.’
하인리히는 조바심이 났다.
그가 했던 말 중에 거짓은 없었다. 가주가 쓸 것이라 했었고, 첸치 가문의 전속 대장장이는 실력이 좋기로 유명했다.
“아니, 됐다.”
검은 베아트리체의 도안대로 완성됐다.
처음 그 도안을 받은 대장장이는 말했다.
무슨 오우거가 휘두를 검이라도 됩니까?
인간이 사용하기엔 대단히 비효율적이라 했다.
검을 이루는 기본 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건 무게 중심이었다.
이 무게 중심이 어디로 향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검과, 그렇지 못한 검이 갈린다.
하인리히는 그 사실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연히 아가씨께서 다 계획이 있다고 생각되오나… 대장장이가 말했습니다. 그 검은 비효율적이라고.”
“뭐, 틀린 말은 아니지.”
베아트리체는 중얼거리며 검을 자세히 살폈다.
검날을 만져보기도 하고, 한 번 휘둘러보기도 했다.
검의 크기는 베아트리체가 휘두르기엔 커보였다.
“그래도 제법 신경써서 만든 태가 난다. 하인리히, 명령은 충실히 이행했군.”
“…당연한 일입니다.”
하인리히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자신의 노고를 베아트리체가 알아줬다.
그거면 됐다고 판단했다.
“이제 가보게.”
“수련에 임할 생각이십니까?”
“그래. 한동안… 아니, 어쩌면 오래 걸릴 거야. 그동안 그대가 막아줘. 다른 사람 못 들어오도록. 특히……”
“리리스, 말씀이시군요.”
하인리히는 빙그레 웃었다.
“그래, 리리스. 걔는 절대 들여보내지 마.”
“직접 통제할테니, 아가씨께선 전혀 걱정하지 마십시오.”
“믿음이 가네. 좋아.”
베아트리체의 계약 사실은 어디까지나 비밀.
홀로 수련에 임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실수도 없어야한다.’
하인리히는 생각했다.
여기서 한 치의 실수라도 한다면 자신은 아웃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임해야했다.
단순하나, 매우 중요한 업무였다. 반드시 이행해야만 하는.
하인리히는 굳은 표정으로 허리를 깊게 숙인 뒤, 사라졌다.
**
“이거 참. 뭐라 할 수도 없고.”
하인리히가 사라진 후.
베아트리체의 미간엔 깊은 주름이 패였다.
그토록 고대하던 검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곳의 기술 수준으로는 이게 최대인가?’
도안까지 직접 그려서 줬다.
제법 외형은 비슷했다. 그러나, 문제는 강도였다.
한평생을 검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슬쩍 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팅.
베아트리체는 인근에 있는 벽에 가볍게 검을 부딪혀봤다.
퉁명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듣고 확신했다.
“금방 부러지겠군.”
어떤 소재로 만든지는 모르겠지만, 금속의 비율이 구려보였다.
몇 번 강하게 부딪히면 부러질 거 같은 직감이 있었다.
그거 뿐만이 아니다.
베아트리체는 검을 그대로 바닥에 떨어트렸다.
쾅!
너무 무거웠다.
베아트리체는 미간을 좁히며 자신의 가녀린 팔을 바라보았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현재 그녀의 근력으론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베아트리체의 검술은 특이한 부분이 있었다.
기본 뼈대는 ‘카운터’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검을 쓴다.
손 잡이 부분으론 상대방의 검을 막고, 동시에 타격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선 검의 강도와 무게가 아주 중요했다.
너무 무거워도 안 되고.
너무 가벼워도 안 된다.
문제는 이 검이 그랬다.
지나치게 무거웠고.
심지어 강도마저 미심 쩍다.
확실한 건 이대론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차라리 그 대장장이 실력이 형편 없었으면 좋겠군.’
검이야 다시 만들면 되는 거니 말이다.
최악은 이 세계의 기술 수준이 낮다는 가정이다.
베아트리체는 대장장이가 아니었다.
그 말은 즉, 평생 원하는 검을 들 수 없다는 뜻.
검에 모든 걸 바친 그녀에겐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었다.
베아트리체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확인은 해봐야겠지.”
마나를 느낄 수 있는지 테스트를 해야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다시 검을 들었다.
지나치게 무거운 무게가 느껴졌다.
베아트리체는 눈을 감고, 그 무게를 의식 속에서 지웠다.
그녀는 다시 눈을 떴다.
검을 양 손으로 단단히 잡고, 정면으로 들어올렸다.
양 손의 위치는 가슴 정도에 있었고, 그녀의 두 눈 정면에는 십자 모양의 검이 위치했다.
이건 그녀 특유만의 검술 자세였다.
수 천, 아니 수 만번 잡았던 자세이기도 하다.
그녀는 언제나 이 자세에서 마나를 느꼈었다. 처음도, 마지막도.
“…….”
…느껴지지 않았다.
베아트리체는 순간적으로 약간 손목을 뒤튼 뒤, 허공을 횡으로 베었다.
훙!
공기를 가르는 깔끔한 검술.
들기조차 힘든 검으로 행했다기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흔들림 없는 일격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느껴지지 않아.”
마나의 ‘마’자도 느낄 수 없었다.
베아트리체는 덩그러니 검을 내려놨다.
쨍그랑!
허리 춤에 손을 가져다대며 단말마를 뱉었다.
“좆됐군.”
**
농담이고, 베아트리체는 선택지가 하나 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인위적인 마나를 만들어야해. 심법으로.”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빠른 길이 있는데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먼 길을 돌아가야한다니.
말 그대로 베아트리체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이대로 전쟁터에가면 개죽음이겠지.’
털썩.
그녀는 무모한 스타일은 아니었다.
어떤 능력도 없는 한낱 소녀의 몸으로 전장에서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실력과 증명. 오직 그게 법인 곳이 전장.
비록 먼 길을 돌아간다하더라도, 당장에 무시를 받는 건 그녀 스스로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베아트리체는 선택했다.
단전에 고리를 만들겠노라고.
베아트리체는 가부좌를 틀었다.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마나를 내부 단전에 쌓는 건 전생에 검황이었던 그녀에겐 어렵지 않은 일이다.
‘외부의 마나’를 느끼기 전까지, 그 또한 내부에 마나를 쌓았으니.
다른 세계이니만큼 이곳에도 새로운 마나 심법이 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예 새롭고 창조적인 방법으로 힘을 사용할 수도 있었다. 이런 세계일지라도, ‘영령’에 선택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을 테니까.
그 사람들은 찾았을 것이다. 새로운 길을.
그러나 이 모든 건 베아트리체의 알 바는 아니었다.
그녀는 확신했다.
자신이 가진 마나에 대한 지식이 최고이며, 설사 조금 후달리더라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녀는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 최고에 위치를, 최고의 힘을.
파지직.
다섯 번.
단, 다섯 번의 호흡을 했을 뿐이었다.
그녀가 앉은 자리 주변엔 기류가 묘하게 요동쳤다.
베아트리체는 때가 됐다고 판단했다.
자신의 주위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마나’
느낄 순 없지만, 존재할 것이다.
베아트리체가 사용한 마나 심법의 원리였다.
이 호흡법을 이용하면 마나가 주위에 고인다.
그리고 그것을.
한 번에 삼킨다.
“하압.”
베아트리체는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어찌나 가득 삼켰는지 두 볼이 빵빵해졌다.
복어처럼 말이다.
겉모습은 굉장히 자존심이 상하는 모습이었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호흡법의 효과는 상당하다.
“콜록.”
베아트리체는 몇 번의 기침을 했다.
그리고 자신의 배를 만지작거렸다.
미간을 좁혔다.
눈을 감고, 이번엔 더 제대로 느끼기 위해 오감을 집중했다.
그때.
꼬르륵.
“…크흠. 배고프군.”
일단 밥부터 먹어야겠다.
베아트리체는 자리에서 일어서 총총 걸음으로 식당을 향해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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