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 9화
* * *
“이곳입니다.”
한참을 걸어간 끝에 마주할 수 있었다.
‘금고라기엔 너무 거대하군.’
이 시대의 건축물이라곤 믿기지 않는 양식이었다.
대리석을 기본으로 사용한 이 건물은, 21세기에 살던 베아트리체가 보기에도 꽤 멋있었다.
“안내해라.”
“예. 리리스, 넌 이곳을 지키고 있거라.”
“넵! 알겠습니닷!”
리리스는 깔끔하게 대답하며 자리를 지켰다.
하인리히가 앞으로 나섰다.
끼익.
금고의 문은 거대했다.
베아트리체는 전생을 통틀어 이렇게까지 큰 문을 본 적이 없었다.
보기만 해도 절로 탄성이 나올만한 문이었다.
그 문을 하인리히는 온 몸으로 밀쳐 밀었다. 괴성을 지르며 서서히 금고의 안이 보였다.
“신기하군.”
베아트리체는 금고의 안을 살피며 가벼운 감상을 뱉었다.
가장 먼저 보인 건 금이었다.
금화, 보석.
거대한 공터에, 값진 것들이 가리지 않고 수북히 쌓여 있었다.
“따라오십시오.”
베아트리체는 하인리히의 뒤를 따랐다.
금은보화들은 산처럼 쌓여 있었는데, 그것들로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일부러 금화를 쌓아 통로를 만들었군. 길을 모르는 자가 들어온다면 한참 동안 헤멜 것이야.’
금고의 크기는 밖에서 봤을 때 어마어마했다.
금은보화들을 미로처럼 쌓아놔, 길을 모르는 자는 필히 이곳에 갇힐 것이라고, 베아트리체는 생각했다.
“이곳을 지키는 자는 따로 없나? 한 번도 사람을 마주치지 못했군.”
값진 재화들이 수북히 쌓인 곳.
그러나 그리 보안이 철저해 보이진 않았다.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하인리히는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지킬 필요가 없다?”
“예, 이곳은 선대 조상들의 마법으로 철저히 보호되고 있습니다. 이 많은 재화 중, 허락 받지 않은 것을 단 1그램이라도 건들면.”
하인리히는 이 대목에서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필히 죽습니다.”
베아트리체는 하인리히의 말을 듣고 놀랐다.
죽는다는 말보단, ‘마법’이란 단어였다.
‘이곳은 마법도 있나보군. 참, 신기한 곳이야.’
어렴풋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직접 마법의 실체를 들으니 놀라웠다.
이런 것도 가능할 줄이야.
“여기서부터, 무기고입니다.”
“무기를 건드렸다가 객사하는 일은 없겠지?”
“당연합니다. 가주께서 무기고를 지키는 마법은 해제하셨습니다. 단, 딱 하나의 무기만 들고 이곳을 나가실 수 있습니다.”
“그렇군.”
금은보화의 미로를 빠져나오니.
끄트머리엔 또 다른 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하인리히는 품 속에서 조심스레 인장을 하나 꺼냈다.
“그건 뭐지?”
“가주의 인장입니다. 무기고에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죠.”
베아트리체는 잠자코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하인리히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굳게 닫혀 있는 문 정 가운데에는 하나의 홈이 패여져 있었다.
그는 인장을 패인 공간에 가져다댔다.
드르륵.
그 순간.
온갖 장치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호오.”
베아트리체는 나직히 감탄했다.
꼭 여러개의 뱀이 꿈틀거리는 것처럼, 긴밀하게 장치들이 움직였다.
철컥, 철컥…
섬뜩한 소리가 여러번 울려퍼지고.
끼이이익.
굉음을 내며 문이 위로 올라갔다.
“기술력이 좋네.”
“그만큼 첸치 가문이 훌륭하다는 증거입니다.”
“…그런 거 같군.”
“가시죠.”
하인리히가 먼저 뚜벅, 걸어갔다.
그 모습은 꼭 주인이 음식을 먹기 전, 하인이 먼저 음용해보는 것처럼 보였다.
“허.”
베아트리체는 무기고의 안 쪽을 들어가자마자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보였다.
“대단하군요. 듣던 것 이상입니다.”
“그대도 이곳에 와본 건 처음인가 보지?”
“예. 가끔 점검을 위해 가주와 금고를 들어온적은 있지만, 무기고는 들어가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 가문은 대대적으로 내려온 문과 가문이라 하지 않았나.”
베아트리체는 터벅 걸어가 날카롭게 벼려진 검 앞에 멈췄다.
“그런데 어찌, …이리도 훌륭한 무기들이 가득한 거지?”
검, 도끼, 심지어는 석궁까지.
가리지 않고 온갖 무기들이 벽에 일렬로 나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베아트리체는 한 눈에 무기들을 판단할 수 있었다.
어느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천하의 병기들이었다.
이곳은 금고 따위가 아니었다.
보고(??)였다.
“마도(??)시대라고 아십니까?”
“모른다. 그나저나, 이거 만져봐도 되는 건가?”
“예. 얼마든지.”
“마도시대가 뭐지?”
베아트리체는 검 하나를 꺼냈다.
그의 취향인 검은 아니었지만, 서슬퍼런 검날이 시선을 끌었다.
약간이라도 베인다면 죽어버릴 것만 같은 섬뜩한 검이었다.
마치, 악마의 검을 보는 것만 같았다.
“크라포스가 건국 될 때의 시대입니다. 정확히 400년 전, 마도 시대라는 것이 열렸습니다.”
“건국 신앙?”
어느 나라든 건국 신앙은 있기 마련.
베아트리체는 그런 것들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계속 말해보라는 눈치로 하인리히를 쳐다보았다.
“예. 그 당시, 대륙은 화마에 휩쌓였습니다. 마물과의 전쟁이었죠.”
“마물.”
눈이 낮게 가라앉았다.
‘이 시대에도 역시.’
베아트리체는 마물을 혐오한다.
그 마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인간이 목숨을 잃었던가.
다만, 이 세상은 조금 더 빨리 그 일을 겪은 듯했다.
“기록으로 보면 악마들이 마물을 통솔해 인간계를 침략했다고 합니다.”
“악마가 실존하는 건가?”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비약적인 기록일 수도 있겠죠. 그때는 워낙 옛날이니, 어떤 마물의 종을 보고 악마라 착각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허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뭔데.”
“유례없던 마물의 침공이라는 것일 겁니다. 대륙의 절반을 마물에게 내주었다고 하더군요. 멸망된 나라만 한 손으로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막심한 피해를 입었다는 거구나.”
“예. 그리고 여기 있는 무기들은, 전부 마도시대의 것입니다. 전부 인류를 걸고 만들어진 무기들이니 좋은 수밖에 없겠죠. 특히 그때의 기술들은 대부분 사장 된지 오래라서, 현재 무기들은 그때의 무기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합니다.”
베아트리체는 그제서야 이해했다.
지금 만지고 있는 검은 상당히 좋은데.
왜 하인리히가 만들어온 검은 구데기였는지.
전부 그런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하인리히를 바라봤다.
“허락을 맡기 쉽지 않았을 텐데. 날 위해 그렇게까지 해준 것인가?”
“…아가씨께서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또 그 마음을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려 하는 모습을 보고.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집사로써, 하나의 신하로써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 충성심 느껴지는 대답에서 베아트리체는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글거리는 걸 싫어하는 베아트리체라서, 그녀는 농담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훌륭하다. 나중에 한 번 죽을 짓을 해도 봐줄게.”
“하하,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곤란하군. …전부 명검이라. 선택하는 것도 일이겠어.”
“시간은 많습니다. 천천히, 신중히 고르면 됩니다.”
상등품의 검들이다.
이 정도의 검이라면, 굳이 형태를 따질 필요도 없었다.
아니, 형태를 따지는 것 자체가 실례일 것이다.
실제로 베아트리체는 이 중 어느 검을 선택하더라도 후회는 없었다.
그렇게 고심하던 베아트리체의 눈에 어떤 검이 하나 눈에 띄었다.
“저건 뭐지?”
양쪽 사이드로 진열되있는 병기들.
그 가운데, 찬란한 크리스탈에 꽂혀 있는 휘황찬란한 검이 있었다.
왜 이제서야 봤나 싶을 정도로 눈에 띄었다.
“이곳에 있는 것 중, 가장 값진 물건입니다.”
“저 검이?”
“그렇습니다.”
“…그리 보이진 않는데.”
‘저렇게 요란한 검이라. 전쟁터에 저걸 들고 있으면 가장 먼저 멱이 따이겠군.’
장식품 같은 검이었다.
한 마디로, 줘도 안 쓰는 요란하기만 한 검.
전생에서도 특이한 취향을 가진 자는 저런 검을 쓰기도 했으나,
베아트리체의 취향은 확실히 아니었다.
“4대 신기 중 하나입니다.”
“신기? 생긴 것만큼이나 이름도 요란하네.”
“전설에 따르면, 마물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인간들이 가여워 신께서 내려주셨다합니다. 그래서 신기이며, 대륙을 통틀어 딱 4개 있는 검이죠.”
“웃기지도 않아. 그런데, 그 4개 중 하나의 검이 이곳에 있는 건 신기하군.”
하인리히는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과거엔, 크라포스 또한 제국이었습니다. 부자연스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군.”
‘웃기는군.’
내색은 안 했지만 이 검에 얽힌 전설을 비웃었다.
뭐? 신이 내려줘?
베아트리체는 그딴 비전문가가 만든 검은 취급도 안 했다.
그래서 다시 다른 검을 만지는데, 하인리히가 입을 열었다.
“저 검에는 또 다른 재밌는 전설이 있는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들어는 보지.”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마도 시대가 끝나고. 저 검을 크리스탈에서 뽑아낸 사람은 없다고 합니다.”
“단단히 박힌 거 같긴 한데… 한 번도 없다고?”
“예.”
“그 치들 힘이 대단해 보였는데.”
“기사들 중 힘이 약한 사람은 없으니까요.”
“바위도 거뜬하게 들어버리는 양반들이 저거 하날 못 뽑아?”
베아트리체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에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집사. 확 내가 뽑아버리는 수가 있어.”
그도 그럴게, 검은 크리스탈 끄트머리에 약간 박혀 있을 뿐이다.
툭, 치면 뽑힐 거처럼 위태로웠다.
하인리히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뽑아보시지요. 절대, 뽑히지 않습니다.”
베아트리체의 미간이 구겨졌다.
‘나를 좆으로 보나.’
어이가 없었다.
그녀는 현생이야 이런 약해빠진 일개 영애였지만, 전생에선 검황이라 불리던 남자였다.
딱 보면 사이즈가 나온다, 이 말이다.
그녀가 보기엔 툭 치면 뽑히는 게 맞았다.
베아트리체는 망설임 없이 검을 향해 걸어갔다.
“지가 엑스칼리버야 뭐야.”
“엑스칼리버 …그게 무엇입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그녀는 말을 얼버무리며 검 앞에 섰다.
“이 검의 이름이 뭐지?”
“티르빙입니다.”
“이름도 촌쓰럽군. 생긴 것처럼.”
“…멋있는 검입니다.”
“아무튼, 내가 이 검을 뽑으면 그대는 뭘 하겠나.”
“예?”
“내기 말이야. 뭐라도 거는 편이 재밌겠지.”
베아트리체는 이 검을 뽑을 수 있다에 모든 걸 걸 수 있었다.
확실하면 승부를 걸지 말라고 했나? 베아트리체가 보기엔 이건 확실한 승부였다.
하인리히는 가볍게 답하려다, 갑자기 진지하게 한 마디 했다.
“평생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베아트리체는 픽, 하고 웃었다.
“마치 지금은 충성을 맹세하지 않고 있다는 듯이 말하는군.”
“…그 뜻은 아닙니다만.”
“됐다. 그거면 충분해. 이런 장난 같은 일에 한 사람의 충성이라. 남는 장사지.”
예로부터 사람의 마음만은 어떤 것으로도 살 수 없다고 했다.
베아트리체는 그것으로 만족하며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시린 느낌의 손잡이였다. 이곳은 분명, 춥지 않았음에도 말이다.
베아트리체는 힘을 주고 검을 들어올렸다.
그 순간.
뽕!
“…?”
검은 너무 쉽게 크리스탈에서 뽑히고 말았다.
턱이 빠질 듯이 하인리히가 입을 벌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