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화 〉 분열(3)
* * *
베아트리체는 당당히 서있었지만.
등 뒤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좋지 않군.’
어깨와 손목 부상.
약간 접질렸거니 했지만, 생각보다 통증이 컸다.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어째서 이런 방법을 선택했는가? 안전한 길도 있었다.]
솔리드는 질책했다.
이건 개인전이 아닌 팀 게임이다.
굳이 혼자서 무리할 필요가 없었다.
‘이게 더 재밌으니까.’
[…역사상 비극은 항상 오만에서 비롯되었다. 어리석다.]
물론, 단순 재미 때문은 아니었다.
‘혼자서 전멸 시킨 것이랑, 그저 유리한 상황만 만든 것. 둘 중 어느 것이 임팩트가 크겠는가?’
쉽게 말해.
밥상 다 차려 놓고 남 주기 싫다 이거였다.
베아트리체는 파괴적인 임팩트를 원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업신 여기지 않을 정도의 업적, 조금의 의구심도 들지 않는 강한 힘.
기왕 태어난 김에 최고가 되어야지, 최고가 되지 않을 거라면 당장 목숨을 끊는 게 나았다.
그녀가 검황이란 타이틀을 얻을 수 있는 신념이었다.
그렇기에 베아트리체는, 실제론 검 한 자루를 제대로 쥘 힘도 없는 주제에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들은 어떤 액션도 보이지 않았다.
설득이 부족하단 소리겠지.
베아트리체는 이유를 알았다.
5명.
이 중 패자는 셋.
그나마 가레스가 강할 뿐이지, 나머지 패자들의 실력으론 아르고스와 타르에게 감히 대적도 할 수 없었다.
즉, 가레스의 변심이 중요했다.
다행이었다.
베아트리체가 판단한 가레스는, 야망이 크고, 간사한 자였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 신념 따윈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자.
이런 이들은 곁에 두긴 불안해도, 설득하긴 쉽다.
“전쟁, 아니 인생에선 실질적인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다. 그건 라인이다.”
그녀는 가레스를 똑바로 쳐다봤다.
가레스는 슬슬 뒤로 물러섰다.
마나를 모으고, 공격할 준비를 했다.
“나는 강하다. 여기 있는 그 누구보다. 그대들이 설령 배신을 보이지 않더라도, 스스로의 온전한 힘으로 모두를 제압할 자신이 있다. 그래서 나타난 것이기도 하지.”
그녀는 매혹적이게 웃으며, 검을 들었다.
“그러니 선택하라. 아르고스인지, 나인지. 길게 봐야할 것이다. 단순 이딴 모의 전쟁이 아니라, 이 훈련. 더 앞서나가 전쟁까지.”
줄을 대라는 소리였다.
적어도 이 공간에선 못 알아먹은 자는 없었다.
“아무것도 얻지 못 하고 이 게임을 끝낼 것인가? 아니면, 최고는 아니어도 차선은 얻을 것인가. 모두 그대들의 뜻에 달려 있다.”
“현혹 되지 마라! 베아트리체는 지금 지쳤어! 우리가 합심하면 쓰러트릴 수 있다!”
가레스의 손에는 얇고 가늘지만, 강한 빛무리가 서렸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아르고스를 향해 던졌다.
콰앙!
‘성공이군.’
가레스의 공격이 시작이었다.
눈치만 보단 패자 두 명도 움직였다.
“젠장, 가레스!”
“내가 아르고스를 맡겠다! 너희 둘이 타르를 제압해!”
방금까지 감정 소모를 한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빠른 태세 전환이었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온갖 병기가 부딪히는 소리, 배신 당한 아르고스의 분노. 모든 것이 느껴졌다.
베아트리체는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지금까지 애들 장난이었지만, 비로소 전장다워지지 않았는가.
그녀는 검을 축, 내렸다.
가레스와 아르고스. 둘 다 마법사 답게 수많은 마법 뭉치들이 격돌했다.
그녀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아르고스를 향해 걸어갔다.
“너무 미워하지 마라. 아르고스.”
“베아트리체! 오래는 못 버틴다.”
가레스는 다급하게 외쳤다. 아르고스는 기습에 당황한 것도 잠시, 빠르게 침착을 되찾고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오고 있었다.
둘의 실력은 비교할 수 없었다. 아르고스는 그만큼 강했다.
이대로라면 가레스는 금새 제압 당할 터였다. 빠르게 해결해야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여유로웠다.
아니, 정확히는 여유로운 척이었다.
‘검은 무리겠군.’
검을 잡기 위해선 손목이 꺾일 수 밖에 없었다.
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고통인 베아트리체였다. 평소처럼 강한 힘으로 휘두르기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그냥 검을 놓았다.
탁.
“…!”
그 광경을 본 아르고스는 크게 눈을 떴다.
“어딜 한 눈을 파느냐!”
가레스의 빛의 광선이 아르고스를 향해 맹렬히 다가갔다. 지금까지 쐈던 공격 중 가장 강했다.
마법사는 마법을 보다 수월하게 쓰기 위해 전도체를 사용한다. 특수한 물질로 만들어진 무기인데, 이것이 없으면 마력은 반감된다.
즉, 가레스는 방금 자신의 마나를 대부분 소진한 최후의 공격을 한 셈이었다.
‘어째서 검을 놓았는진 모르겠지만.’
아르고스는 눈을 뜨기도 힘든 강렬한 빛의 광선을 보며 생각했다.
‘실수다. 베아트리체.’
이 싸움의 승자는, 자신이라고.
그는 주먹을 쥐었다.
베아트리체가 다가오기 전, 그리고 가레스의 빛이 닿기전.
아르고스는 주먹을 휘둘렀다.
꽝!
분명 아무것도 없을 허공일지언데, 마치 망치라도 내려친 듯한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아르고스의 주먹이 닿은 공간은 무너져 내렸다.
그건 보고도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무너져 내린 공간은 딱 사람 머리만한 크기였다.
크르르.
그 안에서, 어떤 포식자의 소리가 들렸다.
베아트리체는 소름 끼치는 소리에 미간을 찌푸렸다.
‘저건…?’
황금빛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파충류의 눈이었다. 꼭 도마뱀의 눈동자와 닮아 있었다.
상당한 크기였다. 사람 머리통만한 눈동자라니. 전신의 크기가 어느 정도일지 가늠도 되지 않았다.
[영령의 기운이 느껴진다. 도망쳐라. 네 실력으론 감당할 수 없다.]
쌔하다.
베아트리체는 지금 이 순간이 슬로우 모션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눈동자는 베아트리체를 한 번 쳐다본 다음 사라졌다. 이제 공간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물들었다.
싸아아.
그때, 그 검은색 기류로 인근에 존재하는 모든 마나들이 흡수됐다.
나무가 흔들리고, 땅이 반쯤은 뒤집힐 정도의 엄청난 압력이었다.
가레스의 공격도 소용 없었다. 오히려 저 이상한 공간은 가레스의 빛무리마저 탐욕스럽게 삼켰다. 마나의 결정체이니 당연할 지도 몰랐다.
문제는 저 어마어마한 양의 마나를 머금고 쏟아질 공격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힘을 가졌군.’
[괜히 아르고스인 게 아니겠지. 그나저나, 베아트리체. 지금 네 몸 상태론 저 공격을 막을 길이 없다. 피할 수도 없다. …계약하겠나?]
‘계약하면, 막을 수 있나?’
[내가 더 격이 높은 영령이다. 저 정도 쯤은 찍어 누룰 수 있다. 나, 전신 솔리드를 무시하지마라.]
‘방금은 솔깃했군. 솔리드. 앞으론 잔소리 말고 이런 창의적인 방법을 써라.’
시간은 다시 돌아왔다.
이제 그 공간은 마나를 빨아들이는 걸 멈춘 상태였다.
폭풍전야라고 했던가, 베아트리체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제 저 구멍 안에선 말도 안 되는 것이 나올 것이다.
합.
그녀는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하체에 모든 힘을 집중했다. 한 줌이 안 되는 마나도 모조리 사용했다. 이게 마지막이다. 여기서 남은 모든 힘을 쏟아붙는다.
아르고스와의 거리는 대략 1m.
딱, 현재의 베아트리체가 수용할 수 있는 거리감이었다.
그녀는 씨익, 웃으며 생각했다.
‘죽은 부랄도 살리는 신관이라던데, 어디 솜씨 좀 봐야겠군.’
정확히는 ‘죽기 직전’이었지만, 아무렴 어떤가.
베아트리체의 신형은 총알처럼 사라졌다.
목표는 오직 하나.
아르고스가 아닌.
깃발이다.
“브레스!”
아르고스의 영창과.
베아트리체가 그런 그의 지척까지 다가온 것은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
그녀는 깃발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검은 공간에선, 붉은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닿는다.’
베아트리체는 이대로라면 브레스가 손에 닿는다는 것을 인지했다.
여기서 멈춘다면 피할 순 있었지만.
깃발을 빼앗을 순 없었다.
방전 직전의 상황, 그럴 순 없었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없다.
‘여기서 승부를 봐야한다.’
베아트리체는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아마, 크게 다치겠지만.
상관 없었다. 승리할 수만 있다면야.
탁!
“…!”
베아트리체는 깃발을 낚아 챘다.
그와 동시에, 붉은 브레스는 베아트리체의 왼팔을 삼켰다.
“이런 미, 미친…!”
설마 이 브레스를 보고도 멈추지 않을 줄 몰랐던 아르고스는 경악에 찬 표정을 지었다.
아르고스는 방금, 자신을 스치고 지나간 그녀를 보기 위해 뒤를 돌았다.
비록 제대로 된 전도체를 사용하지 않아 위력이 반감 된 브레스였지만.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로, 어떤 방어구도 착용하지 않았다.
…분명 크게 다쳤을 것이다.
헌데.
베아트리체는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감싸쥐고 있을 뿐.
어떤 이상도 없었다.
‘내가 조금 더 빨라서 다행이군.’
브레스를 약간 스치기만 했기 때문이었다.
정통으로 맞았다면 훨씬 크게 다쳤을 것이다. 빗겨 맞은 덕분에 큰 부상은 면할 수 있었다.
베아트리체의 스텝은 약간 특이한 편이라, 아르고스가 제때 타이밍을 맞추지 못한 듯 했다.
[결과가 좋으니 다행이지만, 위험했다. 어린 베아트리체여.]
‘잔소리 좀 그만해라 솔리드. 쫑알 쫑알 시끄럽다. 확 녹여버리는 수가 있어.’
[…….]
피식.
아무렴 어떤가 자신은 승리했다. 그게 중요했다.
“아르고스. 이번엔 좀 따끔했다.”
이번 게임은.
베아트리체의 원맨쇼로 막을 내렸다.
**
“전하, 어떠십니까.”
크라포스의 왕궁.
보좌관 세바스찬과, 왕세자 루엘이 수정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
일명 ‘모의 전쟁’은 단 하나도 빠짐 없이 촬영되고 있었다.
그 광경을 루엘은 모두 지켜보았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 아르고스는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하더라도 후계자였다. 맞나?”
“예. 맞습니다.”
“굉장히 특이한 이유로 박탈되었던 걸로 알고 있고. 그대의 보고에 따르면 이번에 온 귀족파 자제 중 가장 강하고, 뛰어나지.”
“그런 보고를 올렸었습니다.”
“그런데.”
루엘은 재밌다는 듯이 호선을 그리며 웃었다.
“아닌 거 같군. 훨씬, 뛰어난 자가 있다.”
“베아트리체 첸치. 그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저 말도 안 되는 성과를 봐. 난, 성인도 되지 않은 소녀가 보인 일이라곤 도저히 믿기지 않는군.”
베아트리체가 보인 행동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 힘들었다.
무력도 무력이다. 이건, 밸런스가 아예 맞지 않는다.
그녀 혼자서 모든 걸 다 했다.
나머지 생도도 의외의 실력을 가진자가 다수 보였지만.
베아트리체가 보인 위력에 비교하면 새발의 피였다.
“특히 마지막 장면에선 할 말을 잃었다.”
“…저도 굉장히 놀랐습니다.”
아르고스 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마법인 ‘브레스’.
이 브레스의 파괴력을 모르는 이는 적어도 크라포스 내엔 없었다.
워낙에 유명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아르고스 가와 계약한 드래곤이 마왕의 모가지를 날렸다는 전설은 세자도 자라면서 귀따갑게 들었을 정도이니.
“두려움이 결여되어 있었다. 마치, 죽음을 모르는 자 같더군.”
브레스의 시전을 보고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수정구 너머에서도 움찔거릴 정도였다. 실제로 보았다면, 더 위압감이 서렸겠지.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두려워하긴 커녕, 오히려 피할 생각도 안 했다.
이건 실전도 아닌.
게임이었을 뿐인데.
“그러나 전하. 라이제르에게 물어본 바로는, 그녀가 영령과 계약된 흔적은 찾아 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익히 들었다.”
“…외람된 바오나, 이번 모의 전투는 생도들에게 페널티를 걸고 이루어진 게임입니다. 실전은 다를 것입니다. 영령의 힘은, 결코 거스를 수 없습니다.”
이 시대 사람들이 영령에 그토록 목을 메다는 이유가 있었다.
바보라서가 아니다.
단순 ‘마나 유저’와, 영령과 계약한 자의 차이는 감히 비교하는 것만으로 실례일 정도다.
단 한 단계만 차이나도 압도적인 차이일지언데, 비 영령 계약자와, 영령 계약자와의 차이는 신생아와 성인 수준의 격차다.
“안다.”
그러나 루엘은 흥미로운 시선을 거두지 못 했다.
영상 속 베아트리체는 지친 건지, 대자로 뻗어 손을 휘적휘적 저으며 말했다.
아르고스. 아파 죽겠다. 빨리 날 그 죽은 부랄도 살린다는 신관에게 데려다줘.
“그런데 말이야. 그대는 본 적이 있나?”
“…어떤 걸 말입니까?”
“비록 전도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비영령 계약자가 영령 계약자 열댓명을 홀로 상대해 승리했다는 소식을. 난 듣지 못 했다. 설사 소문으로도.”
“…그건.”
“…정말, 저 소녀가 비 계약자 같나?”
세바스찬은 눈을 크게 떴다.
루엘은 소리죽여 웃었다.
“재밌어, 아주 재밌어. 세바스찬.”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베아트리체 첸치를 데려오라. 내 직접, 그녀를 봐야겠다.”
“명을 받듭니다.”
여전히 루엘은 웃고 있었다.
베아트리체 첸치.
그녀의 이름은 이미 세자의 머리속에 깊게 각인 되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