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 자작가 영애가 되다-46화 (46/248)

〈 46화 〉 수상한 소녀(2)

* * *

베아트리체는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대체 그 꼴들은 뭐였단 말인가?’

전투 중이어서 제대로 지적하진 못했다. 추한 꼴을 보이는 생도들을 말이다. 심지어 그 믿었던 아르고스 마저 잠시 한 눈을 팔지 않았는가.

단연컨대, 생도들이 조금이라도 얼을 덜 탔다면, 그랬더라면.

­찌릿.

베아트리체의 손목이 이토록 통증을 호소하진 않았을 것이다.

“전부 모여라. 내, 긴히 할 말이 있다.”

베아트리체는 적당한 크기로 말했다. 금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다.

­꿀꺽.

‘올게 왔구나.’

‘젠장, 그냥 넘어가나 싶었지.’

생도들은 각자의 생각을 하며 서로를 쳐다봤다.

**

“너희는 대체 생각이 있는 건가?”

“…….”

“전투에 한 눈을 판 것 그렇다 치자. 아예 참가하지 않은 놈은 뭐지?”

“…….”

“이게 곧 전쟁을 할 이들의 정신 머리야? 도무지 이해가 안 돼.”

“훌쩍.”

“거기 너! 질질 짜지마라! 몇 살이야?”

“여, 열 입곱……”

“난 열 여섯이다 이 빌어먹을 자식아!”

물론 실제론 50줄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그딴 건 아무 상관 없었다.

그녀는 17살에 검을 잡자마자 마물을 죽였고, 18살 때는 처음 사람을 죽였다.

‘능력이 없다면 아무 말도 안 해.’

심지어 이들은 능력치만 본다면 자신보다 강했다. 베아트리체는 일개 소녀에, 마나량이 늘어난 것도 마나 하트를 먹은 최근이었다.

고블린은 고사하고 오크 정돈 때려 눕힐 수 있다는 것이다.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 베아트리체. 우리는 너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했어.”

아르고스가 자책하며 말했다.

이 중에서 그나마 활약했던 게 아르고스였다. 그는 못 해도 열은 되는 마물을 죽였다.

그에 비해 단 하나의 마물도 잡지 못 한 게 여기 대부분이었다.

생도들은 입을 열었다.

“미안해.”

“…다음부턴 꼭. 도움이 될 게.”

“죽을 죄를 지었다. 나도 나 자신이 한심하군.”

베아트리체는 한숨을 쉬었다.

‘정녕, 이들과 전쟁을 치러야하는 게 맞는가?’

이곳의 신분 구조 상 지휘관을 맡게 될 이들이었다.

그런데 지휘관이, 불리한 전장도 아니고 마물 좀 모였다고 쫄아서 오줌을 지린다?

적팀 입장에선 그야말로 땡큐였다. 단연컨데, 이런 머저리들한테 기사 몇 명을 쥐어주든 홀라당 다 까먹을 것이다.

그녀는 이죽거리며 말했다.

“사과는 필요 없다. 알아서 뒤지든지, 말든지 해라. 난 이제 신경도 쓰지 않을 테니. 사람 새끼라면 이번 일로 깨닫는 게 있겠지.”

생도들은 더 깊게 고개를 숙였다.

활발하던 클론도. 늘 자신감에 차 있던 아르고스도. …조금 건방져도 나름 능력은 있던 가레스도.

전부 베아트리체의 체념한 듯한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현장은 생각보다 두려웠고. 무서웠다.

안정이 보장되어 하던 장난 같던 마물 사냥과는 결이 달랐다.

정말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공포. 그 공포가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어떤 핑계가 필요하랴. 정작 가장 당당했던 건 외견 상 제일로 약해보이는 베아트리체였는데.

이 중에 멀쩡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자는 딱 두 명 뿐이었다.

세리아, 그리고…

‘미야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으로 눈만 꿈뻑이는 소녀 하나.

‘…그러고보니 라이제르가, 수상하다 했지.’

베아트리체는 지난 일을 떠올렸다. 아니뗀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뭔가 이상하니 한 소리일 것이다.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는 어리석은 부류는 아닌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미야를 한 눈에 담다—.

­찌릿.

다시 한 번의 손목 통증이 느껴지는 걸 보고 세리아를 향해 말했다.

“세리아. 치료가 가능한가? 부상을 입었다.”

“…손목, 아프신거죠?”

세리아의 시선은 베아트리체의 손목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가 굳이 아프단 소리를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빨갛게 부어 올라 있다는 것을.

“응.”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봐서, 차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문제는…

“저, …당장은 치료가 불가능해요.”

“…왜? 나 아파 죽겠는데.”

물론 통증은 참을만한 수준이었다. 다만 그녀는 검사라서, 손목에 느껴지는 약간의 통증도 너무나 거슬렸다.

세리아는 곁눈질로 생도들을 흘기며 말했다.

“오늘 치료할 수 있는 횟수를 전부 써버렸어요. 다른 급한 생도들 때문에……”

베아트리체는 사정이 어찌 됐는지 이해했다.

저 병신 머저리 엄살쟁이들이 세리아의 횟수를 거덜낸 것이다. 그녀의 기억으로 중상을 입은 생도는 하나도. 정말 단. 하.나.도. 없었다.

그녀는 땅이 꺼져가라 한숨을 쉬었다.

‘도움이 안 되는군.’

마음 같아선 한 대씩 때리고 싶었다. 같이 전장만 나가는 사이가 아니었더라면, 오줌을 한 번 더 지리게 했으리라.

­으득.

베아트리체는 어금니를 깨물며 화를 삭힐 수 밖에 없었다.

그녀는 한 차례 눈을 감으며 몇 명의 이름을 불렀다.

“아르고스.”

“…응?”

“가레스.”

“…무슨 일인가.”

“클론.”

“…내 이름은 클론이 아니다. 겁쟁이로 불러다오.”

“타르. 루스.”

베아트리체는 말했다.

“따라와라.”

**

베아트리체가 이름을 부른 기준은 단 하나.

그나마 쓸만한 놈들. 적어도 오줌을 지리진 않은 놈들이었다.

그녀는 화는 나지만, 이들을 어떻게든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 마물 사냥이 끝난 건 아니다. 불의의 습격을 당했지.

‘이건 기회다. 아마 교육 과정에서 있는 유일한 실전 테스트일 것이야.’

즉, 실전을 경험할 수 있는 건 이번 한 번이었다. 베아트리체는 어떤 의무감을 느꼈다. 자신이 전장에서 편하기 위해선, 이들의 능력치를 어느 정돈 끌어올려야 했다.

다른 이들까진 시간이 없으니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몇만 부른 것이다.

“베아트리체. 어떤 일로 우리를.”

­멈칫.

베아트리체는 적당한 곳에서 멈췄다. 목소리가 캠프까지 들리지 않을 만한 위치였다.

“너희가 제일 강한 5명이다. 그래서 따로 불렀다.”

“…!”

베아트리체는 말 몇 마디로 사람을 변화 시킬 순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놈은 진작에 바뀌었거나, 굳이 말하지 않아도 바뀔 놈 뿐이다.

다만.

경험은 다르다고 여겼다. 그건 어떤 것으로도 뒤집을 수 없는 차이였다.

베아트리체는 이들을 성장 시키려면, 경험을 해봐야한다고 여겼다. 적어도 이들은 두려움의 문제보단 경험의 문제였으니까.

‘이들을 중심으로 변화시킨다.’

“정확한 서열은, 아르고스, 가레스, 루스, 타르, 클론. 이 순서다. 불만 있으면 말해라. 내가 직접 검을 섞어본 토대로 말한 서열이니까.”

이들 말고는 고만고만했다. 차이가 있더라도 근소했다.

호명된 다섯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다들 속으로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었기에.

다만 궁금할 뿐이었다.

베아트리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불만은 없는 걸로 알지. 이제 너희를 부른 이유를 말해주겠다.”

경쟁. 그것은 인간을 발전하게 만든다.

인간은 ‘차별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말이 있다.

누군가를 차별하면, 차별하는 당사자나 방관자는 생각하기 마련이다.

‘너무나 즐겁다.’라거나, ‘저렇게 되진 말아야지.’라거나. 차별 받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기에 당연한 말로였다.

이 원동력은 생각보다 크다. 베아트리체는 직접 경험해봤다. 단순한 차별로 인해 벌어지는 전략적 가치를, 정치적 이득을.

기본적으로 토르즈 사관학교에 깔린 사상이기도 했다. 세자도 아마 이걸 노렸으리라.

‘내가 완성해주마.’

베아트리체는 그런 세자의 전략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현대의 지식을 이용해서.

철저하게.

비록 양심에 찔리지만­.

전장에서 개죽음 당하는 것보다야, 이쪽이 백만배, 천만배는 낫다고 판단했다.

“나는 이번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적을 앞에 두고도 정신을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애들에게. 너희는 그나마 한 팔을 걷어 올리기라도 했지, 쟤들은 정말 누워서 오줌만 지렸다.”

베아트리체는 우선 반으로 갈랐다. 너희는 저들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라는 것을 인지 시킨 것이다.

“그래서 걱정이 들더군. 전장에서 내가 저들에게 등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

“…그건. 우리도…”

“아니.”

베아트리체는 단호했다.

“너도, 너도, 너도.”

그녀는 한 손으로 다섯을 전부 가리켰다.

“전부 최선을 다하는 게 눈에 보였다. 다만 조금 서툴렀던 것 뿐이지. 그에 비해!”

­쾅!

베아트리체는 옆에 있는 나무를 검으로 찍었다. 그저 화가 났음을 표현한 제스쳐였다.

“다른 이들은 어떤가? 가레스. 하나만 묻지.”

베아트리체는 굳이 가레스를 지목했다. 일부러였다.

‘박쥐도 잘 쓰면 보약이지.’

그라면, 원하는 답을 내놓을 거 같아서.

가레스는 진중한 눈으로 베아트리체를 쳐다봤다.

“우리는 귀족이다. 아닌가?”

“…맞다.”

“귀족은 명예를 지켜야한다. 맞나?”

“…그것 역시 맞다.”

“그럼, 적을 앞에 두고 오줌을 지리는 건, 명예로운 행위인가?”

“아니. 결코.”

“명예롭지 않은 자는 귀족이라고 말할 수 있나? 아니, 인정을 해야하는 건가?”

“적어도 나는, 인정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 그거야.”

베아트리체는 이번엔 모두를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저들을 같은 귀족으로 취급하고 싶지 않다. 내가 지금껏 모두를 존중해왔다는 걸 여깄는 너희라면 알 것이다.”

물론 그냥 하는 말이었지만.

생도들은 크게 공감했다.

베아트리체는 저리도 강한 힘을 가졌으면서 누군가를 업신여기거나, 크게 무례한 행동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대놓고 차별하라고 주어진 룰 속에서도 나름대로 조용한 이유도 베아트리체 때문이었다. 가장 강한 그녀가 차별을 하지 않으니까.

그건 베아트리체 본인도 몰랐던 사실이었다. 생도들이 진즉에,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건.

그건 그녀의 강함도 있지만, 그녀 자체에서 오는 특유의 분위기 탓도 있었다.

왠지 모르게 따르고 싶게 만드는 분위기.

지금처럼 말이다.

“더는 그러고 싶지 않군. 아니, 그래선 안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가레스는 베아트리체가 죽으라면 죽을 기세였다.

그는 실리주의자에, 이성적인 인간 군상.

베아트리체가 하는 말은 단 하나의 단어도 빠짐 없이 그의 심금을 울렸다. 그야말로 취향저격이었다.

“모욕해라. 대놓고 모욕해라. 귀족 대우, 아니. 인간 취급을 애초에 하지 말아라.”

“…베아트리체! 그건 너무 심하다.”

기본적으로 정의로운 성미를 가진 아르고스가 반발했다.

가레스는 차가운 눈으로 아르고스에게 말했다.

“일단 끝까지 들어보지 그래. 베아트리체가 아무 생각이 없을 거라 생각하나 넌?”

“…….”

“마물 토벌은 이제 시작이다.”

베아트리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토벌이 시작되면, 적어도 너희 다섯은 선두에 서라. 기사들과 함께.”

“…!”

“차별을 하려면 자격이 있어야하는 법이다. 안 그러면 모두가 반발할 터이니. 명분을 갖추란 소리다.”

사실 이게 핵심이었다. 그들에게 경험을 쌓게 하는 것.

하지만 베아트리체가 단순 다섯의 능력 증진으로 만족할 리 없었다.

“괴롭히는 기준은 단순하다. 마물을 사냥하는 자와, 그렇지 아니한자. 되도록 심하게 굴어라. 가레스. 특히 네 몫이 중요하다.”

그녀가 볼 때 이런 건 가레스가 전문이었다. 이미 저번에 본 전적이 있는데, 바가지 긁는 솜씨가 예술이었다.

악역도 어울리는 놈이 해야된다고, 아르고스 같은 놈은 성정이 여려서 이런 건 제대로 못한다.

“알겠다.”

“좋아. 나머지는, 심하게 굴기 싫다면 마물을 사냥하는 것에 열중해라. 특히 아르고스 너.”

아르고스는 잠시 고민하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안 것이다. 이게 현실이고 합리적인 방법임을.

“그리고, 내가 아까 불러준 순서를 기억하는가?”

“…기억한다.”

“그걸 애들에게 티내라. 보는 앞에서 작은 거라도 시키고, 군말 없이 따르는 걸 보여줘라. 어느 정도 인지를 시키고, ‘서열’이란 걸 정해줘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가레스.”

가레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최대한 빨리 승자로 올라와라. 복귀하자마자 바로 아무나 붙잡고. 결투를 이겨. 할 수 있겠지?”

­피식.

가레스는 한 쪽 입꼬리를 올리며 고개를 재차 끄덕였다.

“쉬운 일이다.”

“좋아. 그리고, 명심해야할 것이다. 이 계획의 특징은 아무나 차별하란 말이 아니다. 능력 없는 놈을 차별하란 말도 아니다. 겁쟁이. 아무 쓸모도 없이 공기만 축내는 암덩이를 차별하란 소리야. 용기 있게 나선다면, 띄워주고 칭찬해라. 그럼 알아서 옆에 있는 놈보다 하나라도 더 잡으려고 할 테니까. 알겠는가?”

베아트리체의 말은 결국 하나를 말하고 있었다. 바로 그건.

그녀의 사전에, 이제 무임승차는 없다는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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