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화 〉 수상한 소녀(6)
* * *
“헤헤. 언니는 안 속네?”
‘분명 베었다.’
선명한 손에 감각이 있었다. 그건 무언가를 베었을 때만 나오는 느낌.
그러나.
방금까지 미야가 있던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베아트리체는 무심한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베었다 생각한 건 잔상이었다.
미야는 멀쩡히 살아 있었다.
‘마치 도플갱어 같군.’
베아트리체의 전생엔 도플갱어라는 마물이 존재했다.
그 도플갱어란 마물은, 인간의 겉모습 뿐만 아닌 기억까지 따라해 상당히 곤란한 마물이었다.
도플갱어는 S급에 랭크 된 마물이었다. 본신의 힘은 그다지 강하지 않음에도 이런 높은 랭크를 차지 한 건.
까다롭기 때문이었다.
누가 도플갱어인지 알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고.
주로 도플갱어는 인간들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의심이란 감정을 극대화 시켜, 서로 싸움을 일으킨 다음 자기 혼자만 쏙 빠져나가곤 했다.
인간은 쉽게 현혹 되곤 한다.
그게 같은 인간이든, 도플갱어든. 의심을 만들어 분열하고 그 끝은 자멸 뿐이다.
베아트리체는 미야의 모습에서 도플갱어가 보였다.
정확한 팩트 체크 없이 다짜고짜 베어버리려한 건 그 탓이었다.
‘위험했어.’
위험했거든.
하루. 아니, 반나절만 이런 상황이 지속되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담이 겪었던 일을 자신이라고, 라이제르라고 무사할 수 있을까.
어떤 강한 힘보다 무서운 건 의심이었다. 동료를 의심하게 되는 순간 인간은 끝 없이 잔인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본성은…
베아트리체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녀 또한, 인간이다.
그녀는 알았다.
만약, 눈치채지 못했다면.
그녀는 미야가 아닌 아담을 베어버렸을 것이다.
베아트리체는 검을 겨누었다.
“그런데 언니. 어떻게 안 거야?”
“…….”
“미야 실수하지 않았어. 허술하지도 않았고. 저 맛 없는 성수까지 꾹 참고 먹었단 말이야! 그런데… 어떻게 안 거야?”
굳이 대답해줄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시간을 끌어야한다고 생각했다.
기사들이. 생도들이 패닉에서 빠져나올 시간이 필요했다.
그녀는 친히 설명해주었다.
“…네 몸에 마나를 집어넣었다. 얼마 안가 막히더군. 몇 주전 비슷한 성질을 경험한 적이 있지. 그건 제어구의 느낌이었다.”
아까 전, 베아트리체는 성수를 건내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마나를 주입했다. 혹시 미야가 흑마법사라면 특이한 점이 있을 거 같아서였다.
그런데, 무언가 벽에 가로 막힌 듯이 마나는 나아가지 않았다.
베아트리체는 그 묘한 증상을 겪자마자 한 가지가 떠올랐다.
바로, 제어구.
과거, 습격이 있었을 때 괴한이 사용한 물건이었다.
그때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었다. 무언가에 가로 막혀, 맥아리가 없는 느낌.
그래서 알아챌 수 있었다. 미야란 소녀는 스스로에게 제어구를 걸어 마나를 제한하고 있었다. 성수에 반응하지 않은 이유였다.
아무튼.
“대, 대체 무슨 일이…!”
“내가 말했지 않나! 저 년이 범인이라고!”
결국 아담은 진실을 뱉고 있었다는 거였다. 기사와 생도들의 표정엔 일순간 죄책감이란 감정이 떠올랐다.
“…아하. 그거 때문이었구나. 쳇, 결국 그 아저씨가 준 것 때문에 실패해버렸네. 이래서 이상한 아저씨가 주는 건 함부로 받는 게 아닌데!”
“흑마법사를 찾았다! 왕실 기사단 전원은 공격하라!”
상황 파악이 끝난 기사들은 일제히 검의 방향을 돌렸다. 아담에서, 미야로.
“헷. 오빠들. 날 상대할 때가 아닐 걸?”
크오오.
그런데 그때.
…분명 죽었을 터인 라이칸이 살아났다.
“…이, 이런.”
그로써 미야가 흑마법사란 사실은 공교해졌으나. 그들은 곤란한 상황에 빠질 수 밖에 없었다.
미야가 도망쳤거든.
“라이칸을 부탁한다.”
“베아트리체! 혼자는 위험합니다!”
죽고 살아난 시체는 살아 있을 때보다 강한 힘을 가진다. 생명체라면 있을, 죽음에 대한 공포심이 없기 때문이다.
라이칸은 강한 괴수가 아니지만 상대하면 미야를 놓칠 가능성이 컸다.
베아트리체는 깔끔한 것을 좋아했다. 그러니 미야를 이곳에서 살려서 보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녀는 전력으로 달렸다.
미야의 육체 능력은 형편 없어서, 금방 베아트리체의 사정 거리까지 따라잡혔다.
‘죽인다.’
베아트리체의 금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쐐애액!
베아트리체의 팔이 흔들리는 순간.
동시에 나무 몇 그루가 깊게 패였다. 잘리진 않았지만, 한 뼘은 될 정도로 깊은 자상이었다.
미야는 여유로운 표정에서, 크게 당황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2미터는 이르는 거리였다.
검으론, 절대 벨 수 없는 거리.
“마, 말도 안 돼.”
미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크게 뜨며 목을 매만졌다. 도망가는 것도 잊은 채.
그 모습을 보며 베아트리체는 생각했다.
‘내 예상이 맞았군.’
아까, 그녀가 벤 건 환영이 아니었다. 미야였다.
다만, 너무 빠른 재생 속도 때문에 티가 나지 않은 것 뿐.
“왜, 당황스럽나? 벌써 두 번이 나 죽어서.”
“…!”
왜냐면 방금 전, 미야의 목을 확실히 베었거든. 겉으로 티는 나지 않지만 손 끝의 감각이 말해주고 있었다.
“얼마나 버틸진 몰라도, 계속 죽인다면 죽겠지.”
신이 아닌 이상에야 말이야.
베아트리체는 땅을 박차고 달려갔다. 미야는 당황하며 마법을 영창했다. 곧이어 검은 기류가 그녀의 몸을 보호하려는 순간…
“컥…!”
어느새 당도한 베아트리체가 가로로 검을 그었다.
3.
베아트리체의 머릿속에 카운터가 새겨졌다.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까가강!
미야가 한 차례 죽음을 맞이함과 동시에 결계가 완성 되었다.
그러나 딱히 당황하지 않은 베아트리체였다.
까앙! 깡!
단단한 구슬 같은 베리어를 수차례 두들겼다.
미야는 필사적으로 도망갔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순간 이동을 하는 그녀를 조금의 오차도 없이 따라잡았다.
“소, 소용 없어! 미야의 결계는 무적이야!”
‘조금만 더 가면…! 모두 혼내줄 수 있어!’
미야는 생각했다.
조금만 더 가면 무수히 많은 마물들의 시체가 나온다.
시체를 눈에 담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어제 이들이 수 없이 베었던 마물들은 되살아 나리라. 살아 생전보다 배는 강하고, 배는 빠른 마물이 되어서.
다만.
누구나 그럴싸한 계획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죽기 전까지는.
콰지직!
“어떻게!”
검은 결계에 금이 갔다.
미야는 단 한 번도 결계가 깨지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우웅.
그 비밀은 베아트리체의 마나 구사 방법에 있었다. 그녀는 오러를 전기톱처럼 미세한 ‘흐름’을 만들어 놓는 버릇이 있었다. 그 탓에, 저런 결계 같은 건 효율적으로 부술 수 있는 것이다.
“죽어라.”
쨍그랑!
결국 거센 마찰을 버티지 못하고 깨어진 결계.
하압.
베아트리체는 짧은 호흡을 후, 수 없이 많은 검격을 만들어냈다.
미야를 난도질 하기 시작한 것이다.
5, 6, 7, 8, 10… 20.
베아트리체의 머릿 속 카운터는 쉼 없이 올라갔다.
찌릿.
그리고 그 순간.
손목에 느껴지는 통증이, 더는 한계라고 말하고 있었다.
‘이걸 마지막으로 좀 쉬어야겠군.’
마침 라이칸을 제거한 기사들이 뛰쳐오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베아트리체는 마지막 일격을 준비했다.
선명한 금빛의 오러가 금에 감겼다. 그 오러들이 미세하게 떨렸다.
“자, 잠깐!”
“…?”
“말, 말할 게. 미야, 저, 전부 말할 테니까, 그, 그만…. 미야, 너무 아프단 말이야.”
미야가 울먹이면서 말하는 게 아닌가.
세기의 악당처럼 행세했으면서, 꽤 모양 빠지는 꼴에 베아트리체의 오러도 매가리를 잃었다.
“…근데.”
베아트리체는 인상을 찌푸렸다.
“뭘 말 한다는 것이냐?”
“배, 배후! 배후 말이야. 그거 때매, 미야한테 이렇게 심하게 하는 거잖아. 저, 전부 말할 게. 단 하나의 거짓말도 없을 거야. 맹세해.”
‘배후가 있었어?’
영문도 모를 소리였다.
그녀는 그저, 도플갱어와 닮아서 빨리 제거하려던 것 뿐이었다. 이리저리 귀찮아지니까.
“배후라…”
합리적인 말이었다. 배후가 있는 건 몰랐지만, 어쩌면 큰 수확이 될 수도 있었다.
허나.
“또 구라치려고?”
두 번은 안 속는 베아트리체였다. 그녀는 다시 검에 오러를 불어 넣었다.
“사, 살려줘…. 항복… 항복 한다고오오!”
미야는 정말 살고 싶은 모양이었다. 엉엉 울며 삶을 구걸하고 있었다.
게다가 겉모습이 어린 아이여서, 어지간한 사람은 차마 그녀를 보고 죽일 수 없을 것이다. 아무리 잔인한자라도 일말의 동정심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불쌍하군.]
‘불쌍해? 그게 뭔데?’
그런 단어는 적어도 30년 전에 셀프로 없애버린 그녀였다.
베아트리체는 냉철한 눈으로 검을 들었다. 전력으로 내려칠 생각이었다.
“…베아트리체!”
멀리서 천둥 같은 소리가 들렸다. 라이제르의 목소리였다.
“죽이면 안 됩니다!”
‘이것들이 아까부터 왜 이렇게 방해하는 거야?’
가히 필사적이기까지 한 라이제르의 목소리.
베아트리체는 당장 미야를 베고 싶었지만—.
그래도, 라이제르의 간절한 외침을 존중하기로 했다.
**
“…미야는 행복한 사람이었어.”
“…그래?”
“응. 특히 오물렛을 좋아했어. 내가 살던 곳 주변엔 친절한 엘프가 사는데… 그 엘프가 맨날 밥 해줬거든. 참고로 엘프 아저씨는 잘 생겼어!”
“…….”
“그 엘프가 만들어준 오믈렛은 최고야! 아마 오빠들도 먹으면 좋아할 거야. 헤헤.”
“라이제르.”
“…예.”
“그냥 죽일게.”
뭐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하나 했는데.
주구장창 오믈렛이 좋다느니, 존재 자체도 궁금하지 않은 엘프가 잘 생겼다는 이야기만 들으니 짜증이 밀려왔다
“차, 참아주십시오.”
“이거 놔라!”
“아가씨! 보고, 보고 해야 돼! 안 그러면 라이제르 전하한테 죽어!”
기사들은 필사적으로 베아트리체를 말렸다. 그녀는 한 손에 검을 들고 휙휙 휘둘렀다.
“꺄악! 사, 살려줘! 미야는 아는 게 많아! 죽이면 후회할거야!”
미야가 기겁을 하며 도망갔다. 그러나 묶여 있어서 데굴데굴 굴러다닐 뿐이었다.
탁.
그때.
온 몸이 묶여 있는 미야의 몸을 발로 캐치한 사람이 있었다. 팔콘이었다.
그는 씨익 웃으며 엄지로 난리를 피우는 베아트리체를 가리켰다.
“저 아가씨 화가 잔뜩 났어. 미야라 했나? 꼬맹이, 제대로 말하는 게 좋을거다. 안 그러면 저 어마무시한 아가씨가 네 멱을 따버릴 거야.”
울먹울먹.
팔콘의 살벌한 말에 미야의 눈가에 눈물이 잔뜩 고여버렸다.
어느새 진정한 베아트리체는 살기를 꾹꾹 눌러 말했다.
“한 번 더 질질짜면 그땐 진짜 죽이겠다.”
뚝.
마법처럼 눈물이 쏙 들어간 미야였다.
“칫, 누가 말 안 한댔냐고. 하지만 이야기에도 기승전결이란 게 있잖아. 아무튼, 행복한 삶을 살아가던 미야에게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찾아왔어.”
“…이상한 아저씨?”
드디어 이야기는 본론으로 향했다.
“웅. 이러어케 눈만 보이는 두건을 쓴 이상한 아저씨여써. 전부 시꺼맸어!”
미야는 자신의 마나를 이용해 얼굴에 검은 복면을 그렸다.
“완전 음침했어!”
“그래, 그래서 그 아저씨가 뭐라 하든?”
팔콘은 무언가 아는 게 있는지, 긴장된 눈빛으로 라이제르를 쳐다보며 물었다.
미야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예의, 그 이상한 아저씨의 말을 따라했다.
“‘아래 마을에 가서 며칠 있으면, 나쁜 사람들이 찾아올거다. 그들을 모조리 죽여라.’”
“…!”
‘검은 복면을 쓴 남자라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수도에 올 때 마주쳤던 그 무리들. 아르반체코를 습격했던 이들이었다.
동일한 집단의 사람이라고 확신할 수 없지만.
‘…다르다고 생각할 순 없군.’
묘한 직감이 들었다. 한 마디로, 촉이 왔다.
“미야는 나쁜 사람이 싫어. 그래서 알겠다고 했어. 그랬더니 이상한 아저씨가 이걸 줬어! 이게 있으면, 나쁜 사람들한테 들키지 않을 수 있다고 했어. …거짓말이었지만.”
미야는 마나를 이용해 자신의 머리끈을 풀어서 보여주었다.
머리끈이 둥둥 떠다녔다. 끈에는 아주 작은 보석이 하나 박혀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제어구군.’
그녀가 미야의 마나를 읽을 수 없었던 원인이었다. 아마 모종의 방법을 이용해 마나의 향기만 숨긴 듯했다. 제대로된 제어구라면 미야 역시 마법을 쓸 수 없을 테니까.
라이제르가 싸늘하게 물었다.
“결국 우리를 죽이려 했다는 것이군.”
“하지만, 오빠들은 나쁜 사람이 맞잖아.”
“…뭐?”
“우리를 죽이려 온 거잖아!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있었어. 그런데, 오빠들이 위협했어. 미야는 지켜야했어!”
“…….”
그렇게 나오면 할 말 없었다. 마물의 입장에서 인간은 적이니까.
그러나.
“그건 네가 마을 사람들을 죽였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몇 백년이 지나더라도 알프스 산맥을 건들 일은 없었다.”
마물이 마을을 쓸어버렸기에 토벌단을 꾸린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마물은 흑마법사인 미야의 지시일 것이 뻔했다.
“…무슨 소리야?”
그런데, 미야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끔뻑였다.
“미야는 단 한 명의 사람도 죽인 적 없는 걸.”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