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 도사리는 위험(2)
* * *
고품격스러운 분위기의 저택.
그곳 집무실, 베아트리체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사각사각.
중세 시대 치곤 꽤 필기감이 괜찮은 펜이었다. 그녀는 완전히 몰입하여 쉼 없이 글자를 적었다.
‘…이걸 믿어줄진 모르겠다만.’
의문의 세력이 있다.
그 세력은 크라포스의 핵심적인 인물들을 노렸다.
아이리 아르반체코.
그리고 이번엔 왕실기사단.
하나만 없어져도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흉계가 벌어졌다면.
이 사건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이 범인이라는 건 워낙 유명한 말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없어졌을 때, 이득을 보는 자는 누구란 말인가?
베아트리체는 크라포스가 반란군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반란군이 머리에 총을 맞지라도 않은 이상 저들을 죽이려 할리가 없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국가의 핵심 기반을 아무리 반란군이라 할지라도 노릴 리 없다는 것이다.
즉, 의문의 세력이 반란군일 확률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경우의 수는 하나로 줄어든다
바로.
적군인 센트럴.
이들이 엘프가 말하는 쥐새끼였다.
‘틀림 없다. 처음부터 이상하긴 했지. 이건 적군의 음모야. 핵심적 인물을 제거해, 전쟁에서 유리한 고점을 확보하려는.’
그러나 쥐는 먹이를 먹지 못했다.
아직 배가 고플 것이다. 만족할리 없으니, 가장 맛있는 먹이를 노리지 않을까?
가장 맛있는 먹이.
그거 하나는 분명하다.
‘…세자.’
그렇다.
베아트리체는 그들이 노리는 다음 타깃이 세자라는 것에 배팅했다.
지금 적고 있는 것은 그를 막기 위한 보고서였다.
물론…
이걸 믿을지, 믿지 않을지는 세자 루엘의 판단이겠지만.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탁.
마지막 문단까지 적은 베아트리체는 단호히 펜을 내려놨다.
**
라이제르는 심각한 표정으로 베아트리체의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베아트리체는 느긋한 표정으로 차가운 차를 한 입에 삼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루하다 생각될 무렵, 라이제르가 입을 열었다.
“이게… 사실입니까? 아니, 정녕 이렇게 믿고 있단 말입니까? 센트럴이라뇨. 게다가 세자 전하를 노린다니 이건… 순, 말도 안 되는.”
센트럴에서 온 첩자들은 크라포스의 세자, 루엘을 노리고 있다.
보고서에 쓰여진 내용이었다.
“확률은 높다. 미리 들어서 그대는 알고 있잖아. 내가 근거 없는 소리를 하는 게 아니란 거.”
베아트리체는 알프스 산맥의 작전을 끝낸 그 날, 라이제르에게 설명했었다.
사건의 진상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날 믿기 때문에 내 부탁을 들어준 게 아닌가. 왕실 기사단의 단장이, 주군인 세자에게 거짓말을 하는 대담한 행동을 할 정도로.”
베아트리체는 라이제르에게 한 가지 부탁한 사실이 있었다.
미야가 죽었다는 거짓말을 해달라고.
“그건… 이 보고서의 진실 여하를 떠나, 그 소녀가 죽지 않았을 경우 베아트리체를 노릴 확률이 크다는 걸 인정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결코, 이런 억측과 과대 망상의 시나리오 때문이 아니라!”
“…….”
라이제르는 다소 격양된 어조로 말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다면, 전하께 거짓을 고하는 어리석은 짓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베아트리체가 굳이 소녀를 죽였다는 거짓말을 부탁한 이유가 있었다.
아르반체코 사건 때도.
이번에도.
세력의 거창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 의문의 세력 입장에선 베아트리체가 눈엣가시일 것이다.
제거하려 들 가능성이 컸다.
그 때문이었다.
‘미야를 죽이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건 자살 행위다.’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게된 것은.
다른 건 재껴두더라도,‘강함이 측정 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어느곳에 듣는 귀가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세자에게 보고하는 순간 적들은 알게 될 것이다.
‘소녀에게 죽을 실력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압도할 실력도 아니다.’라고.
포커랑 비슷했다.
상대의 패를 알고 있다면, 자신의 패의 유무에 따라 승부를 거는 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 만약, 의문의 세력이 베아트리체보다 스스로의 패가 더 높다는 판단을 한다면?
그들은 패를 던질 것이다. 승부를 거는 것이다.
하지만 베아트리체는 소녀를 죽였다는 거짓된 결과를 보고함으로써.
자신의 패를 숨길 수 있었다.
의문의 세력은 부담을 느낄 것이다. 상대의 패가 확실하지 않은데 조급히 승부를 거는 건 리스크가 너무 크다.
더군다나 단순한 카드 게임이 아닌.
실제 목숨을 건 전투라면 더욱.
그렇기에 베아트리체는 라이제르를 꼬셔서 구라핑을 찍게 만들었다.
청렴결백한 기사한테 말이다.
조금 미안하긴 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였고. 이건 이거였다.
그녀는 말했다.
“그땐 믿어 놓고, 왜 이건 믿지 못하나? 개연성 있는 추측인데도 그대는 전부 부인하는군.”
“…어느 정도 현실 가능성이 있다는 건 인정하겠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세자 저하를 노릴 ‘혹시 모를’ 가능성이 있다는 문장만. 그러나 그 의문의 세력이 센트럴이란 생각은 동의 못하겠군요.”
그러면, 이 전쟁은 크라포스에게 승산이 없으니까요. 제어구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될 테니까.
그는 뒷말은 삼켰다. 차마 입에 담는 것조차 불길하여서. 그대신 다른 트집을 잡았다.
“무엇보다 이게 사실이라고 한들.”
라이제르의 눈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목숨을 잃기 두려워 세자 전하에게 화살을 돌린 거 아닙니까?”
불경한 일이었다. 어떻게 신하된 자가 자신으로 향한 화살을 돌리기 위해 세자를 미끼로 던질 수 있는가.
“그래야만 쥐새끼들을 한 번에 소각할 수 있을테니까.”
물론, 궤변이었다.
‘…손목 아픈데 어떡하냐?’
화살을 돌린 건 단순히, 그 화살을 쳐낼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설사 쳐낸다해도 상처 밖에 남지 않는다.
왜냐면 베아트리체는 슬슬 똥줄이 타고 있었다.
자신의 손목 연골이, 생명을 다해 끊어지기 직전이란 것을 느끼고 있었다.
잦은 전투로 인한 피해 누적.
그리고 이번 미야를 잡을 때 전력으로 검을 휘두른 점이 컸다. 여기서 목숨을 건 전투를 한 번 더 한다면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솔직하게 ‘손목 아파서 그랬음.’이라고 답할 순 없었다. 그랬다간 반란죄로 즉결 사형 당해도 할 말 없다.
“내 목을 노린다면, 그들이 과연 모든 병력을 쏟을 거 같나? 난 일개 자작가의 영애다. 세자 저하완 비교도 할 수 없는 가격이지.”
포장을 해야하지 않겠나. 멋드러지게.
그녀는 리본을 묶기 시작했다. 예쁘게.
“생각해봐라. 쥐새끼가 한 마리라도 남아 있는 상태로, 전쟁이 벌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크라포스의 상황은 좋지 않아. 병력이 부족하니 왕실 기사단을 전진 배치 해야 하는 상황 아닌가? 그렇다면 병력이 빠져 있는 상황에서, 남아 있는 쥐새끼 몇 마리가 세자 저하를 노린다면 그대는 감당할 수 있나? 심지어 그들은 제어구를 가지고 있는데.”
“…!”
“그러니 신속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지금이 적기다. 그러려면 화력을 모아야해. …그게 설사, 세자 저하를 미끼로 쓰는 한이 있더라도.”
“베아트리체! 불경합니다!”
“마음껏 욕하라. 그러나 생각해야 할 거야. 진심으로 세자 전하를, 아니. 이 크라포스를 생각하는 인물이 누구인지.”
베아트리체는 두 손을 모으며, 강렬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떤 흔들림도 없는 강인한 눈빛.
그렇다.
그녀는 포장은 꽤 잘하는 편이었다.
라이제르의 눈이 흔들렸다.
베아트리체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선택은 네 몫이다. 라이제르 경. 이 보고서를 그대에게 맡기지. 이걸 가지고 세자 전하에게 전달할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찢어버릴지는 자유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쓴 이 보고서가,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하고 찢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것을.
**
만약, 이 보고서의 내용이 틀렸다면. 그들이 정체가 센트럴의 첩자가 아니라면 어떡할 겁니까?
내 목을 내놓지.
그녀는 방금 있었던 라이제르와의 마지막 대화를 떠올렸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지 않나, 어린 베아트리체여.]
솔리드는 경솔했다며 질책했다.
“그러게나 말이야.”
베아트리체는 피식 웃으며 나무에 기대었다.
적당한 높이의 동산은 저택이 한 눈에 들어와서, 운치가 좋았다.
[대책 없군. 그대는 가끔 무모할 때가 있어.]
‘부정하진 않지.’
목을 내놓겠다라.
인권 의식이 매우 부족한 세계.
만약 틀린다면, 말한 그대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그 정도는 걸어야한다고 생각했다. 판돈으로 목숨 정돈 걸어야, 일개 자작가 영애의 말을 듣지 않겠나.
“그래도 가능성 높은 배팅이다. 조만간, 그들은 세자를 노릴 테니까.”
[일국의 세자를 암살하는 건 쉽지 않다. 그리고… 그들이 암살을 한다고 한들, 그게 어찌 센트럴의 짓이라 단언할 수 있나? 가능성 높은 배팅이라기엔 너무 많은 걸 단정지었다.]
“왜, 반군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피식.
베아트리체는 웃으며 답했다.
“악역도 다 나름의 사정과 사연이 있는 법이다.”
[…뭐?]
“반란군이라고 해서 어찌 이 나라가 망하길 바라겠는가.”
[흠.]
솔리드는 말했다.
[그대는 이해할 수 없는 부류의 인간이 의외로 많다는 걸 간과하고 있군.]
“그럼 뭐.”
그녀는 느긋하게 하품을 하며 답했다.
“죽는거지.”
[…! 어린, 베아트리체여! 아직 20년도 안 살았으면서 세상 다 산 말투 좀 하지마라! 무섭다!]
“그리고 그대는 영원히 도태되는 것이고. 왜냐, 죽기 전에 꼭 유언을 남길 것이거든. ‘이상한 검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그 검을 내 시체와 함께 묻어라.’”
[이런 못난 후손을 봤나…!]
솔리드는 그녀의 인성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장난이다, 장난. 세상에 죽고 싶은 인간이 어디있다고.”
베아트리체는 일어나며 스커트를 툭툭 털었다.
‘근데, 후손이라니? 그런 말은 듣지 못했던 거 같은데.’
갑작스런 의문이 들 때.
저벅.
인기척이 들려 시선을 돌렸다.
아르고스였다.
“참고로 말하지만 너네들의 그 멍청한 공놀이에 참가할 생각은 없어.”
“…그거 때매 온 게 아니야. 베아트리체.”
토벌의 결과가 마음에 들었던 세자의 명령으로 생도들은 자유 시간을 얻었다.
기껏 얻은 자유 시간. 생도들은 신나서 축구를 했는데.
베아트리체는 질색을 하며 이곳으로 튀었다.
왜냐, 그녀는 세모발이었다.
곧 죽어도 웃음 거리가 되고 싶지 않은 베아트리체였다.
“뭐 때문에? 오랜만에 쉬는데 방해하지 마라.”
휘적휘적 팔을 저으며 답하는 베아트리체.
그녀는 문득, 밑에서 공을 차며 놀고 있던 생도들이 어느 순간부터 없다는 걸 눈치챘다.
“…우리끼리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
“이야기? 나만 빼고?”
“그래.”
“…그건 왜?”
베아트리체는 한 쪽 고개를 기울였다.
‘뒷담이라도 깠나?’
실 없는 생각을 했지만, 눈 앞의 아르고스는 꽤 진지해보였다.
그는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에게.”
우리라 칭할 때 쯤, 뒤에 있던 생도들이 몰려왔다. 전원이었다.
‘서, 설마 반란인가?’
심각한 표정으로 검을 들고 일어서는 베아트리체.
그러나, 아쉽게도(?) 그런 종류의 말은 아니었다.
“전투를 가르켜 줘. 부디, 네가 그토록 강할 수 있었던 비법을 알려줘.”
아르고스는 결심한 듯, 어금니를 깨물며 허리를 숙였다.
“뭐든지 할 테니.”
**
“이걸? 베아트리체가?”
“예. 꼭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착.
루엘은 일단 대충 훑어보았다.
…거의 지렁이가 굴러가는 필체라, 잘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집중해서 읽어야 간신히 해독이 될 정도.
그래도 제목은 큼지막하게 적혀 있어서 잘 보였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제목 : 도사리는 위협.
부제 : 크라포스의 위기.
“…베아트리체가 소설도 쓸 줄 아나?”
“…소설이 아닙니다 전하.”
“그런데 이건 뭔가? 굉장히, 불길한 단어군. 자극적이고.”
루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도사리는 위협이라니.
게다가 부제엔 크라포스의 위기?
그게 무슨 뜻이란 말인가.
“예. 전하의 말처럼 그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진 않습니다. 제가 미리 읽어보았으나, …이번 건 만큼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 정도인가?”
“부디, 전하가 노하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의 나이가 이제 고작 16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인재도 부족함은 있는…”
루엘은 손을 들었다.
“뭘 그렇게까지 말하나.”
“너무 그 보고서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진 않았으면 해서 하는 말입니다.”
“흠.”
루엘은 미소지으며 보고서를 정리해 서류의 맨 위에 놓았다.
“걱정이 지나치군. 내가 보고서 좀 잘 못 썼다고 누군가를 질책할만한 인사로 보이나? 그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심히 썼을 걸 생각하면, 기특하기만 한데. 열심히 보겠다 전하게.”
“예, 전하.”
언제나처럼 예법을 지키며 나가는 라이제르. 그 모습을 잠깐 지켜보던 루엘은 보고서로 시선을 돌렸다.
‘그나저나, 지렁이도 이것보단 잘 쓰겠군. 읽는데 힘들겠어.’
그래도 최근 관심을 가지는 베아트리체가 크라포스를 위한 보고서를 썼다 생각하니 흐뭇한 루엘이었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여유롭게 보고서의 첫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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