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 자작가 영애가 되다-99화 (99/248)

〈 99화 〉 가짜와 진짜(1)

* * *

검은 배경, 금빛 실로 디자인 된 제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와인을 마시고 있었다. 붉은색 와인이었다. 남자의 머리색과 같은.

“각하.”

어두운 방, 아르고스 후작은 고개를 들었다.

“세자가 심문관을 파견 했습니다.”

“…….”

“듣기로는 이번 서부 전선에서 큰 공을 세웠다고 알려진, 베아트리체 첸치라고 합니다.”

올 게 왔구나.

아르고스 후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유는 알아 냈는가.”

“예.”

“쉽지 않았을 텐데.”

보좌관은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록펠러의 정보원 한 명을 세뇌 시켜 알아냈습니다.”

“은폐는.”

“세뇌 시킨 자와, 당한 자 모두 사살 했습니다.”

“그래, 심문관이 오는 이유가 뭐라고 하던가.”

보조관은 마른 침을 삼켰다.

“다행히, ‘그건’ 눈치채지 못 했습니다.”

아르고스 후작의 표정이 한층 풀렸다.

“그렇겠지. 그걸 눈치 챘다면, 심문관이 아닌 왕실 기사단이 왔을 테니.”

“…작은 도련님에 관한 일 때문이라고 합니다.”

“…레이센 때문인가?”

“예.”

보좌관은 품 속에 간직하던 서류를 건넸다.

아르고스의 신상 정보와, 다소 자극적인 문구가 적혀 있었다.

­아르고스의 후계자가 영령 솔리드와 계약한 것이 거짓이면, 즉각 처분하라.

아르고스 공작의 붉은 눈이 한층 진해졌다. 그는 서류를 가볍게 쥐었다. 그러자 화르륵, 불꽃이 치솓으며 까만 재가 되어 떨어졌다.

“감히, 아르고스의 목을 가져가려 하는 건방진 이가 있군.”

“…처리 할까요?”

아르고스 후작은 고개를 단호히 저었다.

“계획이 막바지다. 심문관을 죽인다면 다음에 올 건 왕실 기사단이겠지. 조용히 넘어가야한다.”

“예. 알겠습니다.”

어떤 미사여구도 붙이지 않고 보좌관이 경례했다. 그러나 표정엔 의구심이 가득했다. 그걸 읽은 아르고스가 물었다.

“궁금하느냐.”

“…솔직히, 예. 그렇습니다.”

“무엇이.”

“도련님이 전신 솔리드와 계약을 한지에 대한 진실 여부는 이미 검증이 끝난 사안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들이 왜…”

전신 솔리드의 이름은 그 무게가 상당하다.

솔리드는 기본적으로 크라포스에서 믿는 유일신에 가까웠다. 다른 신들도 있지만 모두 솔리드 아래에 종속 된 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신과 계약을 하다니 당연히 아무도 안 믿었다. 그러나 ‘아르고스’라는 이름 때문에 검증할 기회는 얻을 수 있었다.

전신 솔리드의 신관 백여명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 같이 말했다.

­위대하신 전신 솔리드의 신성력(??力)이 틀림 없습니다! 오오! 이 안에 주께서…….

보좌관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찾아오는지. 그게 궁금합니다. 각하.”

“아니다.”

“…예?”

아르고스 후작은 싸늘하게 말했다.

“레이센은 솔리드란 신과 계약을 맺지 않았다. 애초에 그 재능 없는 아이에게 최상급이나 되는 영령이 붙을 리 없지.”

**

[실망이다 베아트리체!]

‘알았다고.’

[아무리 그래도 그동안 같이 한 정이 있다고 봤거늘! 어찌 이 전신 솔리드보고 짝퉁이라는 소리를 할 수가 있나!]

‘알았으니까 조용히 좀 하라니까?’

베아트리체는 후회했다. 괜히 말 한 번 잘못했다가 극심히 피곤해지고 있었다. 가짜라는 말이 솔리드에겐 발작 버튼이었나보다.

솔리드는 벌써 일주일 내내 이어오던 한탄을 지속했다.

[서럽다, 서러워! 저어기 조무래기 영령도 계약하는데, 신인데도 계약 한 번 못하고 크흑, 이젠 이런 대우까지 받다니.]

이젠 정신병에 걸릴 지경.

베아트리체는 티르빙을 버린 것이 급 후회됐다. 숯돌로 열심히 갈아주면 당분간 조용했더랬는데. 왜 그때 흥분해가지고.

“이야, 여기가 아르고스 후작가야? 처음 와보는데, 확실히 고위 귀족 영지는 다르네. 수도랑, 아니. 수도보다 더 좋아보여. 안 그래 루스펠트?”

“백성들의 표정이 좋아. 듣던대로 후작의 능력이 뛰어난 가보군.”

루스펠트와 엘은 느긋하게 걸으며 말했다.

“근데 대장. 전하 명령을 이렇게 쌩까도 돼?”

엘이 장난스럽게 물었다. 베아트리체는 고고한 표정으로 말했다.

“응. 친하니까 봐주실거다.”

“…! 역시 대장은 대단해.”

본래 세자의 의도는, 영지를 돌아다니며 사기를 올리라는 것이었다. 서부의 영웅이란 타이틀을 이용해서.

겸사겸사 이 일도 처리하라는 것인데, 베아트리체는 중요도를 다르게 봤다.

아이돌보단 암행어사가 훨씬 멋있지.

그렇다. 그녀는 아이돌보단 검사. 검사보단 암행어사가 좋았다. 멋있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풀 수 있고.

그리하여 베아트리체는 독단적인 결정을 내렸다. 신분을 속이고 잠입하기에 이르른 것이다.

“대대장님. 바로 영주성으로 가시겠습니까?”

루스펠트가 말했다. 엘은 워낙 성격이 게으르고, 낙천적이어서 평소와 같았지만.

루스펠트는 아니었다. 그는 마치 하나의 잘 벼려진 검처럼 날카로운 기세였다.

“아니. 일단 여기부터 가자.”

베아트리체는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세우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둘이 먹다가 하나 죽여버리는 주점? 무슨 주점 이름이 이렇게 살벌해.”

엘은 살짝 입을 벌렸다. 그가 본 황당한 주점 이름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간판이었다.

“여긴 어째서…?”

루스펠트가 묻자, 베아트리체는 당당히 말했다.

“어리석긴. 우린 잠입 수사 중이다. 우선 정보를 얻어야한다.”

“…….”

루스펠트는 말 없이 베아트리체의 옆에 있는 리라를 쳐다봤다.

리라는 서류를 돌돌 말아 품에 안고 있었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술주정뱅이의 말보다야, 크라포스 최대의 정보 기관인 록펠러의 정보가 신뢰성이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미간을 좁혔다.

“뭐, 불만 있느냐?”

그러나 루스펠트는 신하였다. 까라면 까야했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없습니다.”

“그럼 가지.”

“크큭. 대장. 그냥 뭐 먹고 싶어서 그런 거 아니야?”

“…….”

­빠악!

“아악! 존나 아프네!”

새된 비명을 지르는 엘을 무시하며 주점의 문을 열었다.

중후한 분위기의 내부. 큰 목소리로 떠드는 덩치 큰 남자들이 사뭇 인상적이다. 꽤나 투박하고 다양한 무기를 소지한 걸 보니, 아마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용병인가 싶었다. 이 세계에 빙의한지도 꽤 됐지만 용병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그들은 꽤나 호탕하게 마시고 있었다. 큼지막한 고기와 빵을 쑤셔 넣으며 맥주로 시원하게 삼켰는데, 베아트리체의 목이 꿀꺽 하고 넘어갈 정도로 맛있어 보였다.

베아트리체는 그들은 환하게 바라보며 생각했다.

‘벌써 꽤 많은 정보를 획득했군.’

[…어딜봐서?]

역시 첩보전의 기초는 주점이 틀림 없다. 그러나 거슬리는 점이 하나 있었다.

“저런 쯔쯧. 빵엔 소금인데. 뭣도 모르는 애송이들이군.”

그들은 이상한 스튜처럼 생긴 것에 빵을 찍어서 먹고 있었다. 그게 거슬린 것이다.

엘과 루스펠트는 경악했다.

기본적으로 소금은 이 시대에서, 귀한 사치품이었다. 이런 평민들이 주 이용객인 주점에 소금 같은 사치품이 있을 리 없었다.

그건 둘 째치더라도 빵은 스튜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소금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딴지를 걸어야할지도 모르는 베아트리체의 발언. 그러나 이거 하난 확실했다. 엘이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장은 다 좋은데 가끔 이상한 신념이 있다니까? 그치. 루스펠트.”

“…동감이다.”

­찌릿.

베아트리체가 살벌하게 노려봤다. 기사 두 명은 헛기침을 하며 거리를 벌렸다. 그때, 종업원이 헐레벌떡 뛰어나오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어, 어서오세요. …고귀한 분들이시여.”

종업원은 잔뜩 당황했다. 이곳, ‘둘이 먹다 한 명 죽여버리는 주점’은 천박한 이름답게 용병들이 주로 오는 곳이었다. 가격도 싸고, 맛도 평균 이상이다보니 아르고스의 영지에서 꽤 유명한 곳이었다.

그러나 귀족이 올만한 곳은 단연코 아니다. 여긴 가성비로 음식을 먹는 곳이기 때문이다.

‘근데 왜 날 귀족이라고 보지?’

‘고귀한 분’이라는 명칭은 귀족 말곤 부르지 않는다. 베아트리체도 그건 알았다.

[몰라서 묻냐?]

솔리드는 황당하다는 듯이 말했다. 베아트리체는 생각했다.

…괜히 기사 두 명을 데려왔어. 수사 시작도 전에 들키겠군.

그녀는 당당히 말했다.

“나는 귀족이 아니다.”

“…네?”

종업원의 얼굴에 쓰여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그러나 루스펠트는 사나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검으로 향했다. 종업원이 기겁을 하며 말했다.

“네, 넵! 귀족 아니십니다. 죄송합니다. 오해… 했습니다.”

베아트리체는 몰랐다.

…자기 자신이, 지나치게 귀족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그녀는 평민으로 볼래야 볼 수 없을 정도로 기품 있는 외모였기 때문이다. 특히 베아트리체가 가진 선명한 금발과 금안은 평민에게선 찾아볼 수 없는 색이다.

누구보다 귀족답게 생긴 귀족이 베아트리체였다. 오랑우탄이 아닌 이상에야 귀족이란 걸 모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종업원은 당황했지만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이따금씩 있다. 소설을 보고 철 없는 영애나 영식이 어설프게 신분을 숨기고 이런 곳에 오는 일은 말이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베아트리체는 손가락을 세 개 피며 말했다.

“음. 맛있는 걸로 사인분 주게. 아, 하나는 어린이용으로 주고.”

‘…평민들의 음식은 처음 먹어보는데. 맛있겠지?’

전생에서도 샥스핀이나 캐비어보단, 라면이랑 돈까스가 더 맛있었다. 베아트리체는 이곳도 같지 않을까, 하며 설레발을 쳤다.

­동동동.

“어… 대장.”

엘은 잔뜩 설레하는 베아트리체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왜냐면.

‘저거 맛 없는데.’

고기는 그렇다쳐도, 심각할 정도로 맛 없는 게 이 세계의 빵이었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이 빵과 스튜를 가져왔다. 베아트리체는 빵을 들었다.

“크군.”

딱 베아트리체의 얼굴만한 거대한 빵이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빵을 한 입 베어물었다. 옆에 앉은 리라도 냠, 하고 물었다. 입이 작아서 얼마 물진 못했지만 말이다.

“…!”

베아트리체의 동공이 확장됐다.

믿기지 않는 일이 일어났다.

‘딱딱하다.’

이건 빵이 아닌 돌이었다. 어찌나 단단한지 조금도 이빨이 들어가지 않았다.

딱딱하기에 스튜에 찍어 먹는 이유였지만, 그녀가 알 리 없었다.

엘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잠깐 본 다음, 스튜에 빵을 적셔 먹었다. 그래도 여전히 딱딱하지만 이러면 좀 먹을만 하다.

“대장. 거, 고집 부리지 말고 찍어 먹어.”

“…….”

흐물거리는 빵을 먹으라고?

상상만 해도 끔찍한 식감이지 않은가. 음식을 좋아하는 베아트리체였지만 그녀도 호불호는 있었다. 대표적으로 흐물거리는 파, 익힌 당근, 기타 등등 야채, 조개. 그녀는 이런 것들을 끔찍히 싫어했다.

베아트리체는 그런 것들을 먹을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내 기필코 먹고 마리라.’

[쓸데 없이 비장해지지 마라!]

베아트리체는 비장하게 빵을 들고 안간힘을 다해 뜯기 시작했다. 그녀는 먹는 것에 대해선 언제나 진심이었다.

그때였다.

“…엘. 느껴지는가.”

“좀 많네.”

엘과 루스펠트는 동시에 식기를 내려놓았다. 마나의 냄새가 났다. 꽤 강한 이들이 이곳을 향해 오고 있었다.

문제는 그 기운이 패도적이었다는 것이고, 명백한 적의를 띄고 있는 색이었다.

“대장……”

본능적으로 베아트리체를 부르려던 엘은, 처음 보는 베아트리체의 열정적인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작게 한숨을 쉰 뒤, 그들은 일어섰다.

이 정도면 굳이 우리 대장이 나설 필요도 없지.

그렇게 생각한 엘은 옆에서 빤히 보고 있는 리라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꼬맹아. 여기서 대장이랑 놀고 있어. 아저씨들 어디 좀 다녀올게.”

“네에.”

리라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빵을 베어 물었다. 그녀야 평민이어서, 빵을 스튜에 찍어 먹는 게 상식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베아트리체의 말이 곧 법이라 생각해 따라하고 있었다.

루스펠트와 엘은 주점에서 나갔다. 불청객을 미리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잠시후.

한참 동안이나 베아트리체의 모습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리라.

그녀는 문득 쌔한 느낌이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딸꾹.

어느새, 다른 테이블에 앉아 있던 용병들이 베아트리체의 주변을 둘러 싸고 있었다.

대충 세어봐도 열은 넘었다.

“어이, 예쁘장한 아가씨들. 합석 좀 해도 되나?”

그들은 누런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술냄새가 자욱한 걸보니, 취해 있는 듯했다. 리라는 딸꾹질을 하며 생각했다.

‘안 되는데… 대쟝님 밥 먹는 중인데. 엘 아저씨가 절대 밥 먹을 땐 건들지 말라고 알려줬는데…’

리라는 오들오들 떨며 말했다.

“아, 아저씨들 그러다 다 죽어요. 빨리 도망가세요.”

리라는 순수하게 걱정했다.

베아트리체가 아닌, 용병들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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