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황, 자작가 영애가 되다-104화 (104/248)

〈 104화 〉 가짜와 진짜(6)

* * *

“대장. 진짜 안 죽이게?”

결투가 끝난 이후.

엘과 루스펠트가 달려와 흥분한 기색으로 말했다.

기절한 레이센을 본 베아트리체는 한 마디를 남겼다.

“죽이긴 아까운 놈이다.”

지금도 그 생각은 여전했다.

[어린 베아트리체여. 이상하다. 저건, …틀림 없는 내 권능이다.]

‘네 권능이 뭔데?’

[…시공간을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신이니까.]

그리고 궁금증이 생겼다.

자신보다 훨씬 당황한 솔리드의 반응 때문이다.

그는 자신 이외의 비슷한 존재는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시공간을 움직이는 건, 오로지 신만이 가능하니까.

레이센은 솔리드의 권능인 ‘시공간’을 다루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그의 검술이 증거였다.

‘비현실적이군.’

베아트리체는 상상해보았다. 시공간을 움직일 수 있는 권능이라.

…너무 인외의 경지에 가는 거 같아, 왠지 모를 거부감만 들었다.

‘계약 안 하길 잘 했어.’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쐐기를 박게 되었다. 과연 신 답게 대단한 권능이지만, 자신이 쓰기엔 꺼려졌다.

정말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되는 느낌이어서.

“리라. 서류 좀 주거라.”

“네!”

리라는 폴짝 다가가 서류를 건넸다.

­아르고스의 후계자가 거짓된 영령과 계약 했다면 사살하라.

­아르고스 후작이 배신자면 죽여라.

‘레이센은 인재다. 어디까지 클 지 그 미래가 궁금한. 그런 새싹을 내 손으로 쳐내라고?’

베아트리체는 가능성을 보았다. 레이센 아르고스의 실력은 보잘 것 없었다. 그러나 훗날 기대가 촉망되는 자였다.

마스터?

시공간을 움직이는데?

겨우 그 따위 유치한 단어로 규정할 수 없다.

세계는 마스터 이상의 경지를 또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죽여야 한다.]

‘뭐?’

[저 자를 죽여야 한다. 어린 베아트리체여.]

솔리드는 강하게 주장했다.

[하나만 묻지. 그대는 저 자가 악감정을 가졌을 때, 막을 수 있겠는가?]

[유일하게 위협이 되는 존재다. 변수는 제거한다. 이게 그대의 신념이 아니었나.]

[지금이면 죽일 수 있다. 아르고스 후작도 아닌, 레이센이라면 명분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저 권능을 가진 채로 마스터에 오르면.

상당히 강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저 자를 아군으로 끌어 들일 수 있을 지도 미지수였다. 우선 첫 인상도 나쁘게 심어졌고, 평생을 독불장군으로써 살아온 베아트리체였다.

그런 거 할 줄 모른다.

그런데, 이거 하난 알았다.

‘그댄 신이 정녕 맞나.’

[…베아트리체?]

‘점점 추해지는 것 같군.’

전혀, 당당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

베아트리체의 눈이 싸늘해졌다.

“베아트리체 첸치님.”

누군가 들어오며 말했다. 가슴 팍의 훈장과 착장을 보니 보좌관으로 보였다.

“각하께서 부르십니다.”

**

“무슨 연유로 절 부르셨습니까.”

아르고스 후작은 베아트리체를 앞에 두고, 다리를 천천히 꼬았다. 손에는 파이프를 들었다. 그는 손가락을 퉁겨 불을 만들어내 담배를 피웠다.

‘칙칙한 놈.’

베아트리체의 인상이었다. 칙칙한 뱀 같은 남자.

옷은 검었고, 방도 어두웠다.

다만 그의 붉은 눈은 소름 끼칠 정도로 뱀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레이센과 결투를 했다고.”

“…내, 작은 실수를 해서. 그가 무례하다며 결투를 신청했습니다.”

“단 한 방에 쓰러트렸던데. 레이센은 기절 했고.”

“수사의 과정이었습니다. 불편하신지.”

엘은 얼굴이 빨개지며 기침을 간신히 참았고.

루스펠트는 언제라도 검을 뽑을 수 있는 위치에 손을 올려놨다.

긴장감과 적막함이 동시에 흘렀다. 아르고스와 베아트리체는 서로를 바라볼 뿐 한참을 말하지 않았다.

툭, 하면 펑, 하고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 둘은 살벌한 분위기로 기싸움하고 있었다.

“그럴 리가. 서부의 영웅이 그렇게 감정적이진 않겠지. 다 이유가 있을 거라 믿네.”

아르고스는 미묘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단번에 불쾌해지는 미소. 베아트리체는 이 순간 직감했다. 차라리 프란체스코랑 친해지고 말지, 아르고스 후작이랑은 겸상을 못하겠다고.

“그럼 왜 부르셨습니까.”

“중요한 정보를 주기 위해서.”

“…중요한 정보?”

“그래. 자네, 수사에 꽤나 애먹고 있지 않나.”

“…전혀.”

베아트리체는 부정하며 살짝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수사를 시작한지 반나절. 베아트리체가 알아낸 거라곤 점점 자신의 솔리드가 거짓이라는 증거 뿐이었다.

구린 내는 레이센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나고 있었다. 베아트리체는 그걸 계속 느꼈다.

“서부의 영웅은.”

아르고스는 불쾌하게 말했다.

“의외로 귀여운 구석이 있군.”

­후.

아르고스 후작의 담배 연기가 베아트리체의 얼굴을 때렸다. 그녀의 예민한 하얀 피부에 연기가 자욱히 묻었다.

베아트리체의 미간에 힘이 들어가며, 순간적으로 아르고스 후작을 베어버릴 뻔했다.

“…무슨 짓입니까.”

베아트리체의 눈이 깊게 가라 앉았다. 그녀의 금안이 탁했다.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정자세에서, 당장에라도 앞으로 뛰쳐나갈 듯 테이블에 팔을 올려 당겨 앉았다. 아르고스와의 거리가 가까웠다. 숨 닿으면 엎어질 거리. 베아트리체의 표현 방식으론, 숨만 쉬어도 죽일 수 있는 거리였다.

“아르고스 후작. 내가 당신의 목을 가져갈 수 있는 심문관이란 걸 잊은 겁니까?”

“그 건방진 말을 잊을 리가 있나.”

“애 취급을 하길래. 잠시 잊으신 거 같아 말씀 드렸습니다.”

“중요한 정보를 주겠다고 하는데도 자네는 공격적이군.”

‘…대체 무슨 의도인가.’

베아트리체는 생각했지만,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중요한 정보를 주겠다는 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자신은 아르고스 후작과 그의 아들을 죽이기 위한 명분을 찾으러 온 사람이었다.

어디 놀러 온 게 아니라.

“중요한 정보란 게 뭡니까.”

“내 아들을 죽일 중요한 정보를 주겠다는 소리다.”

“…!”

아르고스 후작은 무심히 내뱉었다. 베아트리체는 어이가 없어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정말 기분 나쁜 자야.’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베아트리체는 일단 들어보기로 했다.

“…그거 참.”

그녀는 살기를 담아 말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요. 후작 각하를 베어버릴 절호의 기회니.”

“무섭군. 그리 노려봐도 되나.”

“말씀하십시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니까.”

아르고스 후작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레이센은 솔리드란 영령과 계약한 적이 없다.”

“직접 검을 겨루어본 결과.”

베아트리체는 단언했다.

“솔리드가 아니더라도 최상급 영령과 계약한 건 틀림 없습니다.”

“헛소리.”

그러나 아르고스 후작은 단 번에 부정했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이지?’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자기 아들을, 그것도 후계자를 죽이려 하는 후작.

가짜인지, 진짜인지도 모르겠는 레이센의 영령.

본인 가문에서 솔리드의 계약자가 있다고 공표 했으면서, 이제와 ‘그런 적 없다’라고 말하는 후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오히려 알면 알수록 혼란만 가중 될 뿐이었다.

“그 아이의 검을 본 적 있나.”

“…성검 라임을 말하는 거라면 봤습니다.”

“그럼 이게 뭔지는 알고 있겠군.”

“…!”

아르고스 후작은 테이블 밑에서 무언갈 꺼냈다.

검이었다.

베아트리체가 아까 전에 본 것과 완벽히 일치하는 검.

“레이센이 가지고 있는 성검 라임은 가짜다. 그러니, 영령도 거짓되었겠지.”

“하.”

베아트리체는 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답답해서.”

그녀는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답답해서 도저히 못 있겠군요. 대체… 의도가 뭡니까?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닙니까.”

“흐음.”

아르고스 후작은 태평하게 다리를 꼬았다. 어느새 다 핀 곰팡대를 안정적인 곳에 올려 놓은 그는, 나지막히 말했다.

“이해해. 당혹스럽겠지. 왜 내가 자네를 도우려고 하는지.”

“…….”

“그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건 진작에 알았다. 처음부터 성검 라임은 그 아이가 태어나 지금껏 단 한 번도 잡아보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밝히지 않은 이유가 있다. 그걸 지금부터 알려주지.”

아르고스 후작은 검을 흘겼다.

“…그 아이는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

여기서 악마라 함은.

“…제국?”

제국을 칭하는 은어였다.

엘이 급격히 굳은 표정을 보여주었다.

“안 그래도 죽이려 했는데, 수고를 덜어준다니 고마울 따름이군.”

“죽는 건 당신 아들 뿐만이 아닐 텐데.”

베아트리체의 말이 점점 짧아졌다.

그러나 동시에 직감했다.

‘…뱀이 아닌 도마뱀이었나.’

전생에도 많이 봤다.

뱀 같은 자 답게, 자신의 꼬리만 짜르고 도망치려는 모양이었다.

무슨 수를 마련하긴 했나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가 이리도 당당할 순 없었다.

“유감이지만. 그대는 아직 내 목을 가져갈 순 없을 듯하군.”

아르고스 후작은 무감각하게 말하며 누군가를 불렀다.

“보좌관.”

중후한 그의 음색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베아트리체를 이곳으로 부른 보좌관이었다. 그는 어떤 종이 조각을 가져와 정중히 후작에게 내밀었다.

후작은 한 손으로 그걸 잡으며 테이블에 내려놨다.

“…….”

베아트리체는 말 없이 시선을 내려 읽었다.

­일이 생겼다. 어느 정도 마무리 한 뒤 속히 수도로 복귀하거라 베아트리체. 그리고 아르고스 후작 건에 대한 건 내가 오해한 거 같으니, 만약 거짓된 영령이더라도 당시자만 처리하거라.

­꿈틀.

베아트리체의 눈썹이 구겨졌다.

“이리도 훌륭한 영웅과 오랜 시간 함께 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군.”

아르고스 후작은 전혀 안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어쩌겠나? 전하가 부르시는데.”

그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무슨 수를 썼을까.’

분명 이곳에 오기 전, 세자의 얼굴은 확고해 보였다. 다소 출혈이 있더라도 상처 부위를 도려내고 싶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바로 말이 달라질 줄이야.

“꼭 누군가를 죽이지 못해 안달인 표정이군. 그게 그렇게도 분한가?”

“…….”

­드르륵.

이야기는 끝이었다.

베아트리체는 일어섰다. 그러자, 동행 했던 엘과 루스펠트도 일어섰다. 그들은 베아트리체의 표정을 살폈다.

아르고스 후작은 싸늘하게 말했다.

“어서, 내 아들 놈을 죽이고 꺼지게.”

그녀는 화도 내지 않고 무신경하게 아르고스 후작을 쳐다봤다.

“그런 표정.”

베아트리체는 느긋한 어조로 말했다.

“내, 많이 봐왔습니다.”

“…아직도 할 말이 남았는가? 꽤 긴 대화였던 거 같은데.”

“온 세상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며, 마치 신이라도 되었다는 표정.”

“…뭐?”

아르고스 후작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는 귀를 후비며 말했다.

“이런 말까진 안 할라 했는데, 상당히 천박한 화법을 쓰는군.”

“그러나. 그들의 말로는 하나 같이 같았습니다.”

“그래. 어떻던가?”

아르고스 후작은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고, 베아트리체 역시 아무렇지도 않게 답했다.

“죽었습니다. 전부.”

­콰아앙!

베아트리체는 검을 휘둘렀다.

굉음과 함께, 아르고스 후작의 뒤편이 통째로 날아갔다.

베아트리체는 검을 다시 집어 넣곤 말했다.

“우리, 전쟁터에선 보지 맙시다. 각하.”

아르고스 후작은 이와중에도 어떤 표정 변화도 없었다. 그저 뚜렷히 베아트리체를 쳐다볼 뿐이다.

“…세자의 명이니 당신 아들의 목은 가져가기로 하겠습니다.”

베아트리체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등을 돌렸다.

그녀가 나간 뒤.

한참 동안이나 가만히 있던 그는, 파이프를 들었다.

적당한 목소리로 보좌관을 불렀다.

“보좌관.”

“예.”

곧바로 나타난 그는 불안한 눈초리로 후작을 살폈다. 아르고스 후작은 화가 난 거 같기도, 화가 나지 않은 것 같기도 한 애매한 표정이었다.

“…에드워드에게 연락해 말하라.”

그는 담배를 깊게 들이 마시고 내뱉음과 동시에 말했다.

“네 동기가 네 동생을 죽였다고.”

**

“와 씨! 개또라이 새끼!”

엘은 아픈 배를 부여잡으며 성질을 냈다.

“뭐 저런 미친 새끼가 다 있어!”

“엘. 그만해라. 대장 예민하다.”

베아트리체는 그와중에 답했다.

“…안 예민해.”

“예.”

루스펠트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근데 대장, 죽일 거야?”

엘은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베아트리체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의 명이다. 임무는 완료 해야한다.”

루스펠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고, 엘은 무언가 말하고 싶은 듯 입을 달싹거렸다.

­촤르륵.

레이센이 치료를 받고 침대에 누워 있는 의료실.

베아트리체는 그곳의 커튼을 걷었다.

­움찔!

레이센이 몸을 떨며 베아트리체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동자 속엔 공포가 선명했으나, 주눅 들진 않았다.

“날 죽이러 온 겁니까.”

“이야기는 들었나.”

“…아버지가 전했습니다. 오늘, 죽을 거라고.”

“그럼 다행이군. 설명할 수고를 덜어서.”

베아트리체는 냉정히 검을 들었다. 그녀의 금안이 싸늘하게 빛났다.

­푸욱!

“…!”

레이센은 눈을 크게 떴다.

눈동자를 굴려 옆을 보았다.

베아트리체의 검이 자신의 귀 옆을 스쳤다.

그와 함께, 그녀의 금발이 레이센의 얼굴을 간지럽혔다.

베아트리체는 속삭였다.

“난 분명, 방금 널 죽였다.”

“…….”

“전하의 명을 완수했다.”

“…….”

“…나머진 알아서 하거라.”

베아트리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

“가지.”

엘과 루스펠트는 잠시 몸이 굳어 있다, 그녀의 말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엘은 문득 생각했다.

오늘 따라 베아트리체의 모습이, 피곤해 보인다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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