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화 〉 서부의 악마(3)
* * *
“저… 죄, 죄송합니다. 연대장님.”
“명령일텐데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베아트리체는 수도의 작은 저택에 수감 되었다. 그녀의 명성을 익히 들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진 왕실 기사단의 레나는 쩔쩔매며 허리를 굽혔다.
“여기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눈을 땡그랗게 뜬 베아트리체는 앞을 살폈다. 구치소라더니, 생각보다 쾌적했다. 귀족인 그녀를 차가운 구치소에 수감할 수 없었던지 이건 그냥 휴양지 별장이었다.
‘…내가 원래 살던 곳보다 시설이 좋은데?’
처음 눈을 떴던 프란체스코 저택의 방보다 좋아보이는 곳이었다.
그녀는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철컥.
레나는 문을 닫기 전 물어봤다.
“무, 문을 닫아도 될까요?”
“죄를 저질러 수감되는 자한테 지나치게 친절하군. 뭘 망설이느냐.”
“죄, 죄송합니다! 그런데 혹시…”
“왜?”
왕실 기사단 레나는 얼굴을 붉히며 무언갈 꺼냈다.
종이와 펜이었다.
“싸인 한 번… 가능할까요?”
“…….”
베아트리체는 작은 손을 뻗었다. 그녀의 특유의 악필로 이름을 정자로 적어 주었다. 레나는 뛸 듯이 기뻐했다.
훗날, 이 싸인은 경매장에서 대략 1만 2천 골드에 낙찰된다.
**
“팔자 좋아 보이는구나.”
아르반체코 공작은 한심한 눈빛으로 수감된 베아트리체를 쳐다보았다.
말이 수감이지, 베아트리체는 푹신한 침대, 이불을 덮고 고개만 빼꼼 내밀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숙부.”
베아트리체는 느긋하게 일어선 뒤,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세브란스 백작의 앞니를 두 개나 털었다던데.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느냐. 그가 그러더군. 서부의 영웅이 아니라, 서부의 악마라고.”
수감된 방에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이 준비 되어 있었다. 척 봐도 고풍격스러운 것이, 값이 꽤 나갈 거 같은 원목이다.
그녀는 그곳에 앉았다. 미리 준비 되어 있는 차를 따라 공작에게 건내고, 자신의 앞에 두었다.
“내 병사들의 노고를 흥정하는 상인처럼 깎아내리던데, 참을 수가 있어야지요.”
“나나, 전하께 보고를 올리지 그랬느냐.”
베아트리체는 빙그레 웃었다.
“그러면 재미가 없지 않습니까.”
“너답구나.”
카르드는 테이블에 앉았다.
베아트리체가 대뜸 말했다.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안다.”
카르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차를 들이켰다.
“아마, 이 수도에서 내 조카가 제일 때깔이 좋을 거다.”
“과찬이십니다.”
“…칭찬 아니다.”
잠시 황당한 눈빛을 짓던 카르드.
베아트리체는 담담하게 물었다.
“크라포스에서 가장 바쁜 사람이, 고작 자작가 영애를 수감 시설에서 꺼내려 오진 않았을 거라 믿습니다.”
“그 자작가 영애가, 친척이라면 달라지지.”
“숙부. 본론부터 말하세요. 난 바쁜 사람입니다.”
카르드는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그녀를 훑었다.
왜냐면 베아트리체는 이 세상에서 제일 할 거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녀가 한 말이 틀리진 않았다.
카르드는 목을 가다듬고 말했다.
“전운이 짙다.”
“…!”
베아트리체의 평온한 눈이 커졌다.
“또… 전쟁이란 말입니까?”
“우리가 아니다.”
카르드는 묵묵히 베아트리체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제국이다. 소피에르 연방과 충돌이 있었다. 아무래도 곧, 전쟁이 벌어질 거 같더군.”
제국의 이름이 나오자 베아트리체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카르드는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었는지 이어 말했다.
“그 덕분에 크라포스는 제국의 관심에서 약간이나마 멀어질 수 있었다.”
“…시간을 번 것이군요.”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겠지. 이번 센트럴과의 전쟁은.”
카르드는 말을 잠시 끊었다. 아마, 임팩트를 주기 위함이리라.
“모든 게 제국의 계획이었으니.”
“…증거가 나온 겁니까?”
“그래. 셀 수도 없이 많은 수의 증거가 파악 됐다. 그리고 귀족파의 절반 이상이 제국에 회유 당했다는 정보도 입수했지.”
최근 들었던 소리 중, 가장 암울한 소리였다.
“…어떻게 그걸 알아냈습니까?”
“아르고스 후작을 체포한 건 최고의 판단이었다. 그의 생각을 읽었다. 그걸 바탕으로 저택에 숨겨둔 여러 문서를 확보해놨다. 참.”
아르고스 후작은 처형 당했다. 베아트리체. 그를 살려둬서 고맙다.
카르드는 그렇게 말하며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심적으로 많이 힘들지 않느냐. 친우를 베는 건, 제아무리 그럴 듯한 전후 사정이 있더라도 힘든 일이다.”
베아트리체는 씁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들으셨군요.”
“아르고스의 후계자였던 레이센과 접촉했다.”
탁.
베아트리체의 몸이 굳었다. 그녀는 찻잔을 소리나게 내려두며 물었다.
“…아셨습니까? 제가 그를 죽이지 않은 걸.”
“레이센의 의지는 아니었다. 내가 멋대로 그의 머릿속을 읽었으니, 그를 내치진 말거라. 그는 네게 강한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아직 날 찾아오진 않았습니다.”
“이곳에서 나가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분간, 내가 그를 빌려 여러 가지 일을 해결했거든.”
‘…그가 날 찾아왔단 말인가.’
베아트리체는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아비와, 형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단 말인가.
단순히 재능이 있는이라 좋다고 말할 순 없었다. 베아트리체는 어느 정도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르네의 비극은, 충분히 막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레이센이 충성을 맹세한다면 베아트리체는 받아들일 것이다.
그녀는 오는 이를 막지 않는다.
“전하는 알고 계십니까?”
“아니.”
카르드는 고개를 저었다.
“묻지 않으셨으니, 답할 이유도 없지.”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사정이 어찌됐든 왕명을 어긴 일이다.
루엘은 이 시대의 지도자치곤 꽤 유도리가 있는 편이었지만, 그도 사람인 이상 자신에게 보이는 무한한 신뢰를 하지 않을 것이다. 명을 어겼다는 사실을 알면 어떤 심적 변화가 생길지 몰랐다.
“그 부분은 걱정 말거라. 아르반체코 가문의 규율이 있다. 전하께서 왕명을 통해 명하지 않는 이상, 나는 입을 닫을 것이다.”
아르반체코 가문은 타인의 생각을 함부로 읽을 수 있는 권능이 존재했다.
때로는 의도해서, 때로는 의도치 않아도 그 생각들이 보인다.
깨끗한 인간은 드물다. 모든 진실을 남용하고 다닌다면, 사회엔 쉽게 혼란이 찾아올 것이다. 그렇기에 규율이 존재했다. 진실을 함부로 알리지 않는다는 규율.
물론 그 규율은, 왕명 앞에선 무의미했다. 묻는다면 대답할 것이다. 아르반체코는 대대로 충신 가문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크라포스의 든든한 보배였다. 괜히 그들이 진실의 가문이라 추앙 받는 게 아니다. 괜히 그들이 귀족들의 처형 권한을 가진 게 아니다. 심문관으로 오랫동안 지위를 누려온 건 다, 그런 배경이 있어서다.
어떤 범죄자도, 아무리 입이 무거운 암살자도.
아르반체코 가문의 권능 앞엔 무의미하니.
“…숙부. 내 생각을 또 읽으면 용서 안 할 겁니다.”
베아트리체는 경계심 짙은 눈으로 카르드를 바라보았다. 이따 부대에 복귀하면 딸기 크림 파이를 먹어야지, 같은 부끄러운 생각도 카르드는 알 수 있다는 말 아닌가.
“내 조카는 숙부를 좀 믿는 게 어떤가. 저번에도 말했지만 함부로 읽지 않겠다고 말했다. 또한 아이리는 아직 가진 권능이 약해 그대 정도의 강자의 생각은 읽을 수 없다. 안전하니, 걱정 말거라.”
그래도 한 아이의 아빠인긴 한가보다. 그는 아이리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말이 조금 빨라졌다.
“아이리는 내 친구입니다.”
베아트리체는 그런 그를 안심시켜 주기로 했다.
…이제부터 들을 은밀한 비밀에 대한 값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설사 내 생각을 마음대로 읽는다해도 상관 없습니다. 난 기본적으로 떳떳하니까. 단, 숙부는 금지입니다. 숙부는 내 친구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것 참, 슬프군.”
“여기 온 이유를 이제 알겠습니다. 제게 정보를 주려고 하시는 거겠죠.”
“그래. 지금까지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한 가지 결론을 낼 수 있었다. 그것을 지금부터 네게 말해주려 한다.”
베아트리체의 손에는 약간의 땀이 흘렀다.
그토록 궁금해했던 비밀을 들을 생각을 하니 설레면서도 긴장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 순간, 베아트리체는 빼도 박도 못하고 그 문제를 해결할 테니까.
어쩌면 숙부는 그걸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묶어둘 유일한 제어구는, 흥미란 것을.
상관 없다. 베아트리체는 알고 싶었다. 최근 있었던 기묘한 일들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말이다.
“프라임 제국의 황제 라이카노프는.”
카르드 아르반체코.
그의 눈엔 살기가 잠시 맴돌다 사라졌다.
강한 어조를 주며 말했다.
“신이 되고자 한다.”
**
크라포스는 황제의 가벼운 실험장으로 쓰였을 뿐이다.
왕국에겐 다행이나, 세계에겐 불행이다.
다행히 크라포스의 국운은 다하지 않았다. 시기 좋게 소피에르 연방이 끼어든 탓에, 황제의 시선이 돌아갔으니까.
그러나 언제까지고 황제가 크라포스를 내버려두진 않을 것이다. 전쟁을 도우라는 말을 할 수도 있었고, 진실을 들킨 그들이 언제 우리와도 전쟁을 벌일지도 모른다.
대비해야겠지.
그래서 네게 알렸다. 베아트리체.
넌, 크라포스의 영웅이니까.
‘솔리드.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나.’
저 말을 남긴 카르드가 사라지고, 혼자 남은 베아트리체는 창 밖을 보며 막연히 생각했다.
마나와 영령을 억제하고.
죽은 이를 살리고.
오래전에 소멸하였던 드래곤을 유일하게 소환할 수 있는 아르고스 가문을 꼬드겼다.
그 이유는 전부 신이 되기 위해서였다.
창조, 파괴, 죽음.
그간 크라포스에 있었던 일이었다. 센트럴이란 매개체를 그는 사용 했을 뿐. 제국은 신만이 가능한 저 세 가지를 관장하려 했다.
그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베아트리체는 피식 웃었다.
[건방지다.]
“건방지지. 그러나 대담하다. 그거 내 스타일이야.”
[…도무지 어린 베아트리체의 사고 방식은 알 수가 없다. 두렵지도 않나? 황제는 신이 될 수 있는 퍼즐을 거의 다 모았다. 죽음, 창조, 파괴.]
“그럼 그가 원하는 마지막 퍼즐은 내가 되겠군.”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렇지 않나. 제국은 저 세 가지를 운용할 수 있는 인재를 끌어모았다.”
베아트리체는 잠시 뜸을 들이다 내뱉었다.
“그대가 시공간의 능력을 가졌다 했으니, 황제의 계획이 실현되려면 내가 마지막 퍼즐 조각이 아니겠나.”
물론 시공간이 고작 퍼즐 조각이라기엔, 덩치가 꽤 크지만 말이야.
베아트리체는 농담처럼 던졌으나, 솔리드는 섬뜩한 느낌을 받아야했다.
그녀의 말은 진실에 상당히 근접해 있었으니.
[많은 걸 말해줄 수 없다. 베아트리체여.]
솔리드는 간만에 진지했다.
베아트리체는 가볍게 던졌다. 여전히 그녀는 기분 좋게 웃고 있었다.
“이젠 쓸모가 있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 불어.”
[그럼 계약을 하던가.]
“그건 싫다.”
[…그럼 나도 못 말해준다. 하지만 하나는 말해주지.]
“뭔데?”
[나는 전신이다.]
전쟁의 신.
베아트리체는 문득 궁금해졌다.
전쟁이란 것은 하나의 카테고리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다른 신도 존재하지 않을까?
베아트리체의 그런 의문을 읽은 것처럼 솔리드가 말했다.
[전쟁엔 모든 게 담겨져있다. 창조와 파괴. 죽음과 탄생. 그리고.]
베아트리체는 다음 말이 뭔지 알 수 있었다. 솔리드는 같은 것을 뱉었다.
[시간과 공간.]
솔리드는 자신의 권능이 시간과 공간이라 했다.
레이센이 떠올랐다.
자신의 솔리드는 그를 가짜라고 했지만, 실제 능력을 보니 아니었다.
가짜라기엔, 지나치게 강했다.
‘…그렇다면.’
베아트리체는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그대는 여러 가지로 분열되어 있다는 소리느냐. 그렇다면 왜 레이센의 영령을 보곤 그토록 발작을 했느냐.’
솔리드는 한참 동안이나 대답이 없었다.
‘이번에도 입을 닫을 생각인가?’
정내미가 다 떨어지려던 찰나, 목소리가 들렸다.
[말해줄 수 없다. 어린 베아트리체여.]
[규율에 어긋난다.]
[지금 내가 준 힌트조차, 그대가 정답에 근접했으니 도와준 것 뿐.]
[모든 건 어린 베아트리체 스스로 알아내야 할 것이다.]
베아트리체의 머릿속이 끈처럼 길게 늘어졌다. 여러 가지 복잡한 고민이 머리를 헤집었다.
솔리드는 베아트리체의 투명한 웅덩이에 돌 하나를 던졌다.
[또 하나 말해주자면, 그대는 어차피 나와 계약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운명이다.]
운명이라.
베아트리체는 의외로 운명을 믿는다.
위험한 상황, 무모한 결정은 운명을 믿기 때문이다.
죽을 운명이라면 어차피 죽고, 승리할 운명이라면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베아트리체의 무모한 행동에는 그런 배경이 깔려 있었다.
그런 불합리한 것들을 선택하지 않으면, 영웅이 될 운명도 사그라든다 믿었으니까.
실제로 베아트리체는 그러한 신념을 가지고 살아, 검황이란 위치를 누렸다. 누구나 선택할만한 선택지를 고른다면 이룰 수 없는 위치였다.
같은 이치였다.
계약하겠다. 이 한 마디면 힘을 얻을 수 있다.
거부하는 인간이 어디있단 말인가?
심지어 운명이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신이 말이다.
그러나 베아트리체는 몇 번이고 거부할 것이다.
이것이 아주 어리석고, 고집과 객기라 하더라도 생각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나도 하나 말해주지 솔리드.”
베아트리체는 희미하게 웃었다. 자신감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난 뒤져도 너랑은 계약 안 한다. 그게 내가 정한 운명이다.”
자신의 운명의 주인은 자신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이 신만이 점지할 수 있다면, 직접 신이 되리라.
얼굴 한 번 못 본 다른 나라의 황제가 아니라.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이.
솔리드는 그런 베아트리체에게 말했다.
[내가 잘 못 판단했다. 건방진 건 제국의 황제가 아닌 어린 베아트리체였군.]
그러나 솔리드의 음성은 그리 기분 나빠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그리 말할 줄 알았다는 느낌이었다.
오랫동안 자신을 보아온 듯한 어조에 베아트리체는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할 것이 많아 행복해졌다. 고맙다. 가짜 신.”
[…아니 나 진짜라니까!]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밝은 햇빛이 그녀의 머리를 투명하게 만들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레이센입니다. 저를 기억하시는지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