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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속 힘법사가 사는 법-37화 (37/145)

37. 지하 2층.

“쉐도우 고스트?”

맥케인은 처음 들어본 반응이다.

하긴, 던전 밖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긴 했다.

“네. 이것은 본래 2층의 몬스터가 아니라···”

범수는 이어질 말을 예측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층이 아니라 3층의 몬스터겠지.

“···4층에 서식하는 몬스터입니다.”

아, 이건 틀렸군.

“상황이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그녀의 얼굴에 수심이 깊어진다.

“쉐도우 고스트 앞에서는 방어구가 무용지물입니다. 놈은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다가오는 인간의 갑옷 속을 파고듭니다. 그리고 뼈와 살을 날카로운 촉수로 저며 말 그대로 포를 떠 버립니다.”

범수의 기억으로 저 놈들 사냥할 때는 동물 계통 펫을 절대 꺼내 놓으면 안 된다. 피라냐가 득시글거리는 강물에 토실토실한 카피바라 한마리를 던지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만 생물이 아닌 해골 종류와는 상성이 나쁘니, 아마 이곳은 3층에서 올라 온 스틸 스켈레톤과 4층의 쉐도우 고스트가 공존하는 상태일 겁니다. 본래 2층에 서식하던 스켈레톤 워리어는 스틸 스켈레톤에게 밀려 1층으로 왔을 테고요.”

그렇게 던전의 역학구조 변동을 쉽게 추측해 낸 아리아는 말했다.

“좋지 않습니다. 3층과 4층의 몬스터가 여기로 밀려 올라왔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삼사층에는 대체 뭐가 있겠습니까?”

“흐음.”

맥케인도 심각성을 깨달은 듯했다.

“애초에 쉐도우 고스트를 다른 층으로 밀어낸 몬스터는 과연 무엇일까요?”

“···5층의 몬스터?”

5층은 이 던전의 최저층이다.

용언 결계로 보호되어 있는 금역.

아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크리스가 고개를 갸웃한다.

“근데, 5층의 놈들이 용의 결계를 어떻게 뚫고 나왔겠어요?”

“우리가 그 결계에 대해 아는 건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가는 걸 막는다는 겁니다. 그 반대 방향도 방해하는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만약 후자가 가능하다면, 지금까지 한 번도 그 안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었던 미지의 몬스터가 움직일 일이 생겼다는 뜻이겠지요.”

몬스터의 지형도가 2개층이나 뒤집힌 것 말고도 아리아가 우려하는 이유가 있었다.

“더군다나, 저 길목을 막은 쉐도우 고스트는 저희 전력으로는 당해낼 수 없습니다. 이대로 철수해서 대공성의 마법사를 데려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맥케인이 화들짝 놀랐다.

“뭐? 아니, 왜?”

“쉐도우 고스트는 검이나 메이스로 때려 잡을 수 있는 몬스터가 아닙니다.”

범수는 고개를 옅게 끄덕였다.

‘그래, 고스트 종류는 물리 공격 면역이지.’

아리아가 부연 설명했다.

“흐르는 물을 칼로 베고 둔기로 내려 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설사 오러 마스터라고 할지라도 완벽한 대처가 불가능합니다.”

“아니, 그럼 자네들은 평소에 이 던전 4층을 어떻게 돌았던 거야? 놈들의 존재를 알면서 왜 마법사 없이 기사단만 온 건가?”

“쉐도우 고스트는 본래 덫을 치고 먹잇감을 기다리는 유형입니다. 그리고 빛을··· 특히 마법 조명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조명이 닿지 않는 어두운 구역에만 나타났습니다.”

빛을 싫어한다고?

맥케인과 크리스의 시선이 동시에 범수에게 꽂혔다.

몬스터의 특성을 알고 있던 그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그걸 알기에, 저희는 탐사할 때 놈들이 없을 법한 구역만 통과했습니다.”

던전을 처음 공략할 때 쉐도우 고스트와 직면한 탐사대는, 마법사들을 모아 상급의 화염 마법으로 쫓거나 태워버렸다고 한다. 현존 마법 체계에서 그 정도로 강한 빛을 낼 수 있는 마법이 그것밖에 없었기에.

“하지만 지금 여긴 그런 스펠을 외울 수 있는 능력자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수도로 돌아가야···.”

맥케인은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눈치였다.

그는 아리아에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 주게. 방법이 있을 것도 같으니.”

***

기사단과 잠시 떨어진 일행은 작전회의를 했다.

맥케인의 제안에 범수는 잠시 망설였다.

“라이트 마법이요? 아니, 가능은 한데. 그래도 될까요? 길드장님은 숨기고 싶은 눈치였다면서요.”

“이미 타실리아에서도 ‘마법 태양’을 만들어냈잖은가? 게블라인지 뭔지하는 놈과 부하들도 원래 유적지에 선발대로 와 있다가 그걸 보고 도시로 기어 들어온거라 하네. 그들 외 공국의 수많은 시민들도 목격했어.”

결국 그 태양이 범수의 작품이라는 사실은 머지 않아 공국 주요 인물들에게 알려질 것이다.

맥케인은 범수가 여기서 나서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말했다.

“이대로 철수한 뒤 마법사를 데리고 왔을 때도 우리가 동행할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네. 설사 그렇게 되더라도 마법사의 눈을 피해 탐사대에서 이탈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야!”

작전상, 범수 일행은 4층 끄트머리에서 길을 잃은 척 사라져야 했다.

‘꼬리를 이 이상 달고 움직이는 건 나한테도 불리해. 최저층의 무기를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나?’

범수는 결국 제안에 동의했고, 맥케인은 아리아에게 말했다.

“마법사가 합류할 필요는 없을 것 같네. 우리에게 이미 마법사가 있으니까.”

“?!”

그 후 맥케인이 범수의 마법에 대해 설명했다.

마력 회로가 어쩌니하는 이야기까지는 생략하고, 오직 그만 펼칠 수 있는 비기라는 식으로 퉁치며.

“아 그 태양이··· 범수 님의 작품이었군요!”

거듭 감탄한다.

“그토록 출중한 용력을 지니신 분이 마법에도 재능을! 신은 정말 공평하지 않으십니다.”

“혹시, 저 몬스터들을 몰아낸 뒤 여기에 숙영지를 꾸려도 되겠나? 마침 주방 공간이라 장소도 적당하고, 슬슬 여독을 풀 타이밍도 될 것 같은데.”

그렇게 합의가 이루어진 뒤 범수는 마법을 준비했다.

‘후우, 오늘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범수는 묵묵히 색안경 하나를 꺼내 꼈다. 셀레나가 하나 더 구했다며 챙겨 준 물건이었다. 그러자 크리스도 자연스럽게 똑같은 것을 하나 꺼내서 착용했다. 그리고 맥케인은 자연스럽게 범수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

기사단원들 표정과 시선이 매우 오묘해졌다. 맥케인은 당당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리아, 자네를 포함하여 모두 눈을 감는 것이 좋을 걸세.”

그녀도 오러 유저지만 이 빛은 감당할 수 없으리라 옛 스승은 짐작했다.

한편, 아리아는 눈을 감아야 하는 이유는 알았으나 맥케인의 손이 왜 저곳에 올라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더이상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며 그의 말을 그대로 복창하여 기사단원들에게 명했다. 그녀의 엄한 목소리에 다들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겹쳐 가렸다.

그렇게 다들 안구를 보호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힐끗!

범수는 여전히 자신에게 꽂힌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감은 척하면서 몇몇이 눈을 뜬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는 걸까?

‘꼭 저렇게 시키는 대로 안 하다가 화를 부르는 놈들이 있지.’

크리스도 눈치를 챘는지 히죽 웃는 것이 보였다.

그 표정을 확인한 걸 마지막으로 범수는 외부 세계로의 집중을 끊고 내면에 침잠하여 들어갔다.

이번에도 스킬 이름을 단순히 읊는 게 아니라, 셀레나가 가르쳐 준 대로 출력을 최대한 통제할 생각이다.

주문이 끝난 뒤 그냥 기절해버리지 않도록!

툭! 투툭!

그의 인도를 따라 마력이 회로 곳곳을 치고 지난다. 몇 번 해봤다고 전보다 훨씬 안정된 움직임이었다. 이미 셀레나를 놀라게 만든 빠른 성취.

주문 영창이 끝난 뒤 범수는 시동어를 외쳤다.

“라이트!”

파앗!

던전에 태양이 떠올랐다.

동시에 범수의 귀를 자극한 것은 기사 몇 명의 비명 소리였다.

“으아아악!”

“커헉! 누, 눈이! 내 누우우운!”

으득!

눈을 감고 있을 아리아가 격노하여 이를 악 무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범수는 그쪽에 신경을 쓸 수 없었다. 그의 시야를 가득 덮은 메시지 때문이었다. 그것은··.

[+1]

[+1]

[+1]

[+1]

[+1]

[+1]

[+1]

[+1]

[+1]

[+1]

[+1]

.

.

.

.

어찌나 많이 떠오르는지 셀 수가 없다.

형식은 익숙했다. 그가 몬스터를 사냥할 때 뜨는 수치. 범수가 얻는 경험치를 의미한다.

지금은 [1]이라는 작은 경험치 표시가 수 천개 떠올라서 시야를 가렸다.

'게임에서는 적당히 생략하던데. 여긴 유도리가 없군. 어휴, 눈 아퍼.’

쉐도우 고스트의 정체는 아주 작은 영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크기로 따지면 먼지보다 작은··· 미생물에 가까울까?

그 각각의 개체가 범수가 만든 빛에 타버리며 작은 경험치를 주고 있다. 그런데 그 수가 너무도 많은 것이다.

아찔!

익숙한 현기증이 엄습한다. 범수는 악착같이 이를 악물며 버텼다. 그래도 몇 번 해봤다고 저번보다는 수월했다.

잠시 후.

---!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 숨은 놈들이 빛에 시달리고 불타오르다가, 견디다 못해 뒤로 물러나는 기색이었다. 그것은 평범한 인간이 들을 수 있는 영역 밖의 소리를 내고 있었다. 범수의 오감이 반응한 대상은 그 작디 작은 소리이리라.

동시에, 범수는 비명 비슷한 것을 들은 것도 같았다.

꺄아아아아아!

불에 접촉한 촉수 생물처럼, 놈들은 순식간에 통로 벽을 타고 도망친다. 눈을 덮던 [+1]의 기호가 완전히 사라진 뒤.

범수는 생각했다.

‘···이쯤에서 끝내면 될 것 같은데.’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열어 젖힌 수도꼭지에서 물이 다 나오길 기다리는 대신에 그가 스스로 그것을 잠갔다.

꾹!

던전 안에 뜬 태양이 사라졌다.

***

“오! 범수?!”

색안경을 벗으며 크리스가 감탄했다.

“이번에도 기절 안 했네?”

“···네”

무릎을 꿇을 듯 말 듯 휘청거렸다. 맥케인이 그의 가슴에서 손을 떼며 부축해주려고 했지만 범수는 손을 저었다. 그는 도움 없이 두 발로 땅을 딛고 섰다.

‘아, 진짜. 뒈질 것 같네.’

어지럽다. 가뜩이나 던전에 들어오고 나서 감각에 거슬리는 느낌이 도처에 있었는데, 현기증까지 더해지니 정말로 죽을 것 같다.

하지만 오늘도 기절하지 않았다.

‘마나가 아직 남아있어. 이번엔 완전히 다 쓰지 않았다고.’

옅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마력 탈진이라는 것도 여러 번 반복되니 몸에 익나 봅니다.”

“맞아. 대장 말이, 이걸 일부러 연습하는 마법사들도 있다고 했으니까.”

환하게 웃으며 격려하는 크리스와는 달리 맥케인은 뭔가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그도 뒤늦게 칭찬의 말을 던졌지만, 곧이어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표정에는 당혹감이 가득하다.

그가 바라던 대로, 주문에 수반되는 마력 운용을 처음으로 제대로 느꼈을 텐데··· 왜 그러지?

맥케인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미 오러를 다루기 시작한 소드 마스터는 오히려 마법을 배우기 어렵다··· 그게 이런 뜻이었나?”

“?”

그리고 이어진 것은 기사단원들의 웅성거림이었다.

“바, 방금 그게 뭐야?”

“눈을 감고 있는데도 세상이 환하게 불타는 것 같았어!”

범수를 향한 시선에 경외감이 쌓이기 시작한다.

그는 방금 전 이 던전에 평범한 마법으로는 흉내낼 수 없는 강렬한 섬광을 소환한 것이다.

감탄하지 않는 자는 지금 그럴 여유가 없는 일시적인 장님들뿐이었다.

“으악! 내 눈··· 내 눈!”

“안 보여! 아무 것도··· 안 보여!”

곳곳에 흐르는 앓는 소리. 범수가 옅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몇 시간 지나면 시력은 회복될 겁니다.”

경험을 통해 하는 말이었다.

한편, 아리아는 명령을 어긴 부하들 때문에 수치와 분노를 동시에 느끼는 듯했다. 그녀는 바닥에 나뒹구는 기사들에게 속삭였다.

“던전 탐사 중이니 징벌은 미루겠다. 이후 혹독한 대가를 치룰 줄 알아라!”

그리곤 표정 관리를 하며, 돌아와서 맥케인에게 묻는다.

“놈들이 도망가는 것 같긴 했습니다만, 맞습니까?”

이미 범수와 눈짓을 주고 받은 뒤 맥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은 전부 도망쳤다. 복도는 깨끗해.”

기사들의 감탄 어린 시선이 다시 한 번 범수에게 몰렸다.

그들 모두가 보는 가운데, 기사단의 수장은 다시 한 번 검은 머리의 남자 앞에 고개를 숙였다.

꾸벅!

“스승님이 제자로 삼으신 걸 보면 분명 검술의 재능이 뛰어난 기재이실텐데, 알고 보니 유수의 마법사이시기도 했군요. 센츄리온 길드의 명성이 나날이 높아질 것 같습니다. 덕분에 탐사 중단을 피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어차피 시각을 잠깐 잃은 기사들 때문에라도 계속 나아가는 건 불가능했으므로, 탐사대는 이쯤에서 간단하게 숙영지를 꾸리고 쉬어가기로 했다.

***

던전에서의 두 번째 하루가 밝았다.

밤사이 기사단원들이 불침번을 도맡은 덕에 범수 일행은 푹 쉴 수 있었다.

‘흠, 배가 좀 고프긴 한데.’

건조 식량을 배급받은 범수는 그것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허기를 느꼈다. 어제 자기 전에 힘을 너무 많이 쓴 것이다.

이럴 때의 해결 방법은···.

‘스켈레톤이나 좀비를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마침 기상 후 정비 시간이 끝나고 다시 탐사가 시작되는 타이밍이었다. 아직 버틸 만한 것 같아서 범수는 일단 따라서 움직이기로 했다.

2층의 좁은 골목은 미로처럼 서로 이어지며 길이 모였다가 다시 갈라지기를 반복했다. 탐사대는 그 후로도 쉐도우 고스트를 몇 번 마주쳤다.

하지만 그때마다 범수가 마력 탈진을 겪을 일은 없었다.

사사사삭!

기사 한 명이 외쳤다.

“엇?! 저 녀석들··· 또 도망갑니다!”

놈들이 움직이는 순간에는 기사들도 평범한 어둠과 쉐도우 고스트의 군집체를 구분할 수 있었다.

앞에 펼쳐진 복도의 어둠이 그라데이션을 만들 듯 옅어지면서 멀어진다.

비유하자면, 골목을 덮었던 작은 바퀴벌레들이 기겁하며 놀라 떼를 지어 도망치는 듯한 광경.

기사는 신통방통하다는 듯 범수를 보았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지금까지 저 녀석들이 이런 식으로 반응한 적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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