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 속 힘법사가 사는 법-38화 (38/145)

38. 최저층 (1)

크리스는 고개를 갸웃한다.

“지금 도망간 놈들이 다 어제 우리가 봤던 놈들일까?”

지금까지 실험해 본 결과, 놈들은 범수가 전면으로 나서서 얼굴을 보이면 그제서야 저렇게 도망을 쳤다. 마치 그의 이목구비를 똑똑히 기억한 것처럼.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다.”

아리아가 선대 단장의 이야기를 복기한다.

“탐사 초반 이곳을 조사한 마법사 중 한명은, 쉐도우 고스트가 사실 하나의 개체가 아니라 벌레처럼 무리를 지어 몰려 다니는 작은 존재들이라는 가설을 발표했었습니다.”

오, 정확한 추측인데?

범수는 속으로 그 이름 모를 마법사의 식견에 박수를 보냈다.

“그게 사실이라면, 놈들은 새로 배운 정보를 서로에게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범수 님을 본 순간, 천적을 만난 것처럼 도망치는 것일지도···.”

아리아는 묘한 눈빛으로 범수를 보았다.

“범수 님만 계시다면, 앞으로 던전의 지형이 어떻게 또 바뀌어도 쉐도우 고스트를 염려할 필요가 없겠군요.”

설마 스카웃 제의라도 하려고?

범수는 불안을 느꼈지만 곧 불필요한 걱정임을 떠올렸다. 이 세계 사람들의 문화를 고려하면, 공국을 상징하는 기사단에 동방인을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아리아가 말한 대로 범수 덕에 2층 탐사는 매우 쉬워졌다.

하지만 모든 몬스터가 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자기들끼리 정보를 교환하는 것은 아니었다.

***

“스틸 스켈레톤!”

온 몸이 강철로 만들어진 놈들은 전에 조우한 스켈레톤 워리어의 업그레이드 버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탐사대는 부상자 몇 명만 남긴 채 전투에 압승했다.

“사망자가 없다고?”

전투가 끝난 뒤.

아리아는 믿기 힘든 목소리로 보고를 받았다. 그녀의 두 눈으로 다시 확인해 봐도 결과는 똑같았다.

“적은 스틸 스켈레톤이었는데···!”

지금까지 정기 탐사를 할 때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오게 한 원흉이 바로 강철 해골들이다.

아리아는 다시금 맥케인과 그의 제자가 지닌 저력에 감탄했다.

‘저 금발 머리 남자는 솔직히 왜 데려오셨는지 모르겠어. 싸움에 도움도 안 되고 식량만 축내고 있으니까. 하지만··· 동방인 제자는 정말 대단한 인재야!’

이번 전투에서 뒤에 빠져 있었던 크리스는 아리아가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도 모른 채 건조 식량을 뜯고 있었다.

***

“이제 3층입니다.”

그렇게 계속 무난하게 진행하여 도착한 던전 3층.

그곳은 1층의 광활한 공간과 2층의 협소한 공간이 뒤틀린 채 맞물린 상태였다.

넓은 부분은 드래곤의 응접실로 보였고, 좁은 부분은 전과 마찬가지로 하인과 노예의 공간이었다.

출몰하는 몬스터는 2층과 마찬가지로 스틸 스켈레톤과 쉐도우 고스트.

탐사대는 전자는 가차없는 메이스질로, 후자는 범수를 일종의 성물(聖物)처럼 대뜸 앞세워서 퇴마하는 방식으로 공략을 이어나갔다.

"범수, 앞으로!"

"네, 네. 갑니다."

사사사사삭!

"놈들이 또 도망갑니다!"

"잘했어, 범수!"

'···이건 무슨 인간 부적이 된 느낌이네.'

놀랍게도 3층에 있는 쉐도우 고스트 역시 범수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그들 특유의 방식으로 이미 정보교환이 이루어진 것이다.

‘대체 얼마나 멀리까지 공유하는지는 나도 모르겠네. 이건 원래 게임에는 없던 설정이라서··· 아마 던전 내부로 제한되겠지?’

또 한번의 전이석을 밟은 뒤 일행은 4층으로 이동했다.

이곳 역시 드래곤의 식당과 실험실, 서재 등의 넓은 공간과 사용자들의 좁은 공간이 뒤엉킨 상태.

맥케인은 며칠 전 들은 내용을 기억해 냈다.

“본래 4층엔 쉐도우 고스트만 있었다고 했지.”

“네. 놈들이 이삼 층으로 이동한 지금 이곳에 뭐가 남아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4층의 유령을 몰아낸 미지의 존재는 무엇인가?

5층에서 나온 그 몬스터는 아직 이곳에 머물고 있을 것인가?

기사들은 극도의 긴장 속에 탐색을 진행했다. 미공개 던전인지라 공략법을 읽은 적 없는 범수도 긴장한 건 마찬가지였다. 이때부터는 맥케인조차 잡담 한 번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

“······.”

4층을 최적 경로로 가로지르는 데에는 이틀이 꼬박 걸렸다. 그만큼 공간이 넓었던 것이다. 아리아는 위험하다고 미리 파악한 구역, 그러니까 트랩이 널려 있는 곳은 아예 발을 딛지도 않았다.

그 긴 여정이 마무리될 쯤 탐사대원들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빈집이군.”

4층에는 쉐도우 고스트는 물론 그 외 어떤 몬스터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놈들은 왜 3층과 2층까지 올라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일까?

“기이한 일입니다.”

아리아의 표정에는 혼란이 가득했다.

그녀는 프로토콜에 따라 임무를 마무리하겠다며, 최저층인 5층으로 이어지는 용언 결계를 살피겠다고 했다. 여기까지 화룡점정을 찍어야 탐사가 끝나는 것이다.

"저것이 결계입니다.”

나름 표정 관리를 한다고 했지만, 범수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드디어 참룡검이··· 내 손에 들어올 차례다!'

아리아가 설명했다.

“용의 결계는 5층의 연결부 구역으로 추측되는 곳을 장벽처럼 둥글게 감싸고 있습니다.”

길이가 3km에 달하는 푸른 장막.

아리아가 한 지점에 손을 올렸다.

웅-! 웅-!

그녀가 손댄 곳에 문자열이 떠올랐다. 그 의미를 해석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축객령에 가까운 문장으로 추측되었다.

“결계도 변함 없습니다.”

이대로 힘을 주어 뚫고 가려고 해도 그대로 튕겨나갈 뿐이라는 설명.

그 후로는, 반경 3km의 결계 벽을 탐사대 전원이 일렬로 서서 움직이면서 촉수 확인했다. 혹시라도 어디 한 군데 뚫린 곳이 없나 확인하는 과정. 범수는 DMZ 인근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의 일과를 떠올렸다.

그렇게까지 하고 나서야 아리아는 선언했다.

“4층 탐사는 여기에서 끝입니다. 결국 중요한 4층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는 알아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결계는 정상이라는 것은 확인했으니 의미가 있는 여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도와주신 스승님과 센츄리온의 두 분께도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그들은 결계 근처에 숙영지를 꾸리고 하룻밤 쉬어가기로 했다.

이제 남은 일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것뿐.

제일 두려워했던 4층이 사실상 텅 빈 사실이 기사단은 물론이고 아리아의 마음에도 어느 정도의 여유를 준 것 같았다.

심지어, 여기까지 움직이는 과정에서 사망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것은 처음이라고.

"이제 잘까요?"

태양은 보이지 않지만 범수는 밖이 한밤중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하나 둘 씩 자리를 펴고 누웠다. 달콤한 잠이 그들을 감쌌다.

***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상쾌하게 잠에서 깬 아리아 엘페라토 백작은 마지막 불침번에게서 청천벽력같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뭣? 스승님이 사라지셨다고?”

아리아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던전 안에서 스승을 잃어버리다니!

보통은 소드 마스터가 길을 잃을 일은 없다. 하지만 맥케인은 이야기가 다르다.

아리아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대략 삼십 분 전에, 잠깐 볼일을 보러 간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알려 드리기를, 바로 저쪽에 모퉁이 하나 돌면 나오는 작은 골목에서 일을 보시면 될 것 같다고···.”

“네가 그분께 길을 알려드렸단 말이냐?”

아리아는 분통을 터뜨렸다.

소드 마스터가 길치라는 사실은 이미 모든 기사단원들에게 알려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은 설마 그 '길치'의 수준이 방금 걸었던 길도 까먹는 수준임을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불침번은 몸을 움츠리며 간신히 목소리를 냈다. 얼굴에는 큰 일을 저지른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이 가득했다.

“제, 제가 같이 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곳은 정말 가깝고도 가기 쉬운 길이라, 설마 그 사이에 길을 잃을 수 있다고는 상상도 못했···.”

듣고 있던 크리스가 낭패라는 듯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 참. 내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좀 움직이지. 그 양반 참··· 어지간히도 급했나 보네.”

던전 탐험 중 비슷한 상황이 발생하면 범수나 크리스가 맥케인과 동행했었다. 하지만 방금 전에는 다들 잠자는 중이라 깨우는 게 미안해서 혼자 간 것 같다고 그는 말했다.

물론, 그렇게 이야기하는 중에도 그는 범수와 은밀한 눈빛을 주고 받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자 범수도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대로 기다린다고 여기로 돌아올 확률은 낮습니다.”

“···압니다. 그 방향 감각은 정말 ‘저주’에 걸린 수준이니까.”

4층의 빈집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도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빨리 찾아야한다고 아리아는 판단했다.

그녀의 지시대로 던전에 들어온 40여 명 중 반은 짐과 함께 숙영지에 남고 책임자인 아리아 본인도 여기에 함께 있기로 했다.

그리고 나머지 20여 명은 네 명씩 조를 짜 맥케인을 찾아오기로.

맥케인은 짐도 다 야영지에 놔두고 갔다. 식수와 식량도 없이 길을 헤매는 중인 것이다. 반면 탐색조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여 여태와 마찬가지로 개인 짐을 챙겼다. 범수의 경우는 항상 들고다니던 그 거대한 배낭을 짊어멨다.

‘흠, 하필 4인 1조라.’

크리스와 범수는 같은 조였지만 그들 말고도 두 명의 기사가 붙었다. 그들은 안내역 겸 감시역일 거라 둘은 예상했다.

아무리 스승이 두렵고도 존경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아리아는 마지막 안전선은 남겨 두는 것이다.

‘이 둘을 어떻게든 떨쳐 내야겠군. 뭐, 여기까지는 예상한 바다.’

***

수색이 시작되었다.

범수와 크리스는 이미 4층 구조를 머릿속에 완벽하게 저장한 뒤였다. 그들은 맥케인이 어디에서 길을 잃었을지 추측하며 머리를 혹사시키지 않았다. 대신에 차근차근, 함정이 있다는 곳만 빼고 모든 통로를 훑었다.

그러자 동행한 기사가 의심쩍은 듯 물었다.

“아니, 정말 볼일을 보려 여기까지 오셨을까요? 여긴 숙영지에서 멀어도 너무 먼···.”

“맥케인을 과소평가하지 마십시오. 방향 감각도 엉망이지만 거리 감각 역시 구제불능이니까요. 그는 자유 도시에서 옆집 가게에 과일을 사러 갔다가 그대로 제국까지 가 버릴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

그렇게 한창 수색이 진행되던 중.

"?!"

범수가 한 장소에서 걸음을 멈췄다.

사실 그곳은 다른 조도 이미 몇 번 확인하고 지나간 곳이었다.

하지만 선발대들과는 달리 오직 범수만 이곳에서 뭔가 이상한 점을 알아차렸다.

“···흠.”

아주 작은 소리. 크리스는 범수가 보내는 신호를 알아차렸다.

서로의 눈길이 오간 후.

털썩!

범수는 혼신의 연기를 발휘하여 무릎을 꿇었다.

“우욱!”

“아, 아니?! 범수 님! 왜 그러십니까!”

기사 둘이 당황하여 부축하려 든다. 하지만 범수는 입술을 떨면서 말했다.

“모··· 몸이 마비···. 독···!”

“독?!”

기사들은 화들짝 놀라 주변을 경계한다. 하지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더듬거리는 범수가, 금방이라도 정신을 잃을 듯이 중얼거렸다.

“보이지 않는··· 독··· 5층의··· 몬스터···!”

“?!”

그때였다.

털썩!

뒤에 서 있던 크리스마저 쓰러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그 금발머리의 소매에서 액체가 흘러 나와 순식간에 기화되어 대기에 섞여 든 것을 기사들은 보지 못했다.

결국 범수와 크리스가 먼저 쓰러지는 것을 봤던 두 기사는.

“아, 머리가···!”

“나, 나도 견딜 수 없다. 단장님께 신호를!”

극심한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어떻게든 신호탄을 잡아 당기려고 하지만 손에 힘이 빠져서 자꾸만 실패했다.

결국, 지상이 거칠게 융기하는 기이한 장면을 마지막으로···.

쿵!

기사들은 앞으로 엎어진 채 의식을 잃었다.

“······.”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주섬, 주섬.

마비가 되어 쓰러진 줄 알았던 범수와 크리스가 차례로 일어났다. 둘 다 입에는 미리 해독제를 물고 있던 상태.

“제 연기 어땠습니까?”

“탁월했어. 손발이 말리면서 마비되는 연기는 저번에 오크 포로를 보고 따라한 건가?”

“네, 특징을 잘 봐뒀죠.”

크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흉수가 아직 나타나지 않은 5층의 몬스터일 거라는 의혹을 남기는 대사처리도 자연스러웠어. 깨고 나서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증언하겠군.”

“뭐, 보고 느낀 게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범수는 구석의 그늘을 향해 말한다.

“이제 나와도 됩니다, 맥케인.”

어둠이 일렁이며, 은신하고 있던 소드 마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놀란 표정으로.

“자네는 정말 감탄밖에 안 나오는군. 이번엔 최선의 힘을 다하여 은신했단 말일세. 혹시라도 아리아가 날 찾으러 동행하면 그 아이 눈도 속여야 하니까!”

범수는 뒤통수를 긁적였다.

“뭐, 체취나 숨소리는 그대로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그런 것도 감추는 게 나의 은신법인데···.”

“투덜거리는 건 그만하고 이 기사들 감추는 것 좀 도와줘요!”

범수 일행이 짠 계획은 간단했다.

맥케인은 홀로 볼일을 보러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다음 적당히 본대가 보이지 않는 장소까지만 움직인다.

그것만으로 이 남자는 위장의 영역을 넘어 완벽하게 길을 잃을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된 후에 맥케인은 자신의 위치를 범수와 크리스에게 알려줄 방법이 없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본인도 기억 못하고 자기의 위치를 본인도 모르니까.

그래서 맥케인은 발걸음을 멈춘 장소에서 은신하고 있기로 했다. 지금까지 전적을 보면, 다른 이들은 몰라도 범수는 그를 찾을 수 있으니까.

“이쪽입니다.”

다시 세 명이 된 파티는 기절한 기사들을 적당한 곳에 감춰 둔 뒤 용언 결계 쪽으로 향했다.

길이가 대략 3km에 달하는 원형 장벽. 아리아의 시선을 피해 침입할 스팟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짐은 다 챙겼나?”

“네, 여기에.”

맥케인을 찾으러 나설 때, 야영지에 팽개쳐 둔 그의 짐까지 같이 들고 움직이면 의심을 산다.

그래서 범수는 애초부터 남들보다 큰 배낭을 들고 왔다.

아리아는 여기에 필요도 없는 해골만 가득한 줄 알지만, 사실은 최저층의 공략에 필요한 식량과 식수를 포함해서 짐을 싼 것이다.

“자, 그럼. 들어가 보겠네.”

꿀꺽!

모두가 마른 침을 삼키며 바라보는 가운데.

맥케인이 용언 결계의 벽 위에 손바닥을 올렸다.

우웅!

아리아가 시도했던 때와 마찬가지로 용언이 떠오른다.

파앗!

동시에, 맥케인의 가슴도 붉은 섬광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 빛은 이미 죽은 드래곤이 남긴 용언의 결계보다 훨씬 선명하고 활기차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맥케인이 뿜는 붉은 빛과 결계가 발하는 푸른 빛. 그 두 광선이 서로 충돌하며 밀어낸다. 하지만 청광은 적광의 기세를 이기지 못했다. 그 양상을 관찰하는 맥케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크리스는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우우웅!

적색의 빛이 청광을 완벽하게 압도한 그때.

그들을 가로막던 장벽에, 딱 사람 몇 명 정도 진입할 수 있을 통로가 만들어졌다.

“자, 들어가세.”

그렇게 셋이 모두 입장하고 나자 뚫렸던 입구는 다시 닫혔다. 그전과 마찬가지로 결계를 사이에 두고는 반대편을 서로 볼 수 없는 형태였다.

“스으으읍!”

크리스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던전이 만들어진 뒤, 그 누구도 들어온 적이 없는 최저층의 공기.

그의 눈이 열정으로 빛났다.

“자, 이제 드디어 내가 활약할 차례군!”

크리스가 그렇게 기뻐하는 사이.

범수는 감각에 집중했다.

찌릿!

찌리릿!

한계까지 올려 놓은 마나 감응력과, 야수의 인장이 선물한 오감이 합쳐져 만든 신호.

범수는 그것이 인도하는 방향을 노려보았다.

‘무언가, 저 너머에서 날 부르고 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