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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약혼 지침서-11화 (11/100)

11화

솔직히 마리아 부인은 그런 쪽과는 전혀 관련 없는….

그러니까 집에서 작은 정원을 가꾸거나 퀼트나 코바늘뜨기에 온 정성을 다하는 전형적인 시골 귀족 부인 같았기 때문에 충격은 더 컸다고나 할까?

“그래도 테오도르 님은 깨인 분이니 취미로 즐기는 것은 허락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요. 설마 사랑하는 사람이 하고 싶다는 것을 극구 반대하겠어요?”

라고 말하며 마리아 부인은 입을 가리며 호호호 하고 웃었다.

‘깨인 분’이나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말에는 상당히 태클을 걸고 싶었지만, 누누이 강조하지만 일단 예의를 아는 사람인 나는 참으며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깨인 분이라니. 하 참.’

도대체 이 부인은 테오 녀석의 그 어떤 면을 보고 ‘깨인 분’이라고 말하는 건지….

테오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인간 탑5 안에는 충분히 드는 녀석인 뎁쇼?

처음 나와 만난 테오 녀석이 본색을 드러내던 때만 보아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처음 만나자마자 나에게 한 이야기가 뭐였는가?

‘겨우 너냐?’ 같은 태도였잖아? ‘겨우 크리스티안 램버트 후작이 밖에서 낳아 온 사생아가?’라는.

이미 말한 적이 있지만 아빠는 도나 부인과 결혼함과 동시에 할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작위 중 르본 후작 작위를 물려받았었다.

비록 그것도 싫다고 도망쳤지만.

아니, 그런데 사실 아빠가 도망쳤던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정말로 기차도…. 비텐베리언가의 철도 사업도 테오도르 님이 담당하신 뒤에 너무 쾌적해졌어요. 특등실 인테리어뿐 아니라 주요 기차역에 전신기뿐 아니라 전신 기사를 배치한 것도 혁신적이고요.”

‘솔직히 이제 전 국영 기차는 못 타겠더라고요.’ 하고 마리아 부인은 비밀 이야기를 하듯 나에게 조그맣게 속삭이며 웃었다.

‘어라?’

여기까지 듣자 나는 조금 의구심이 들었다.

‘이 부인, 왜 이렇게 잘 알지?’

나 역시 테오도르가 학교 대신 가정 교습으로 의무 교육과 대학 교육을 마치고, 일찍 집안의 사업을 돕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물론 테오가 관여하고 있는 사업이 무언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 기차의 차장이 우리에게 인사를 오기 전까지, 일단 약혼녀인 주제에 그가 다루고 있는 사업에 철도업이 있다는 것은 몰랐다. 그것은 반성한다.

물론! 내가 타고 있는 이 기차의 소유주가 ‘비텐베리언가’인 것은 알았다.

열차 출입구에 ‘비텐베리언 운수’라고 붙어 있는데 그걸 모르면 바보이지.

이걸 속속들이 안다는 것은, 이 마리아 부인이 속된 말로 테오도르의 ‘열성 팬’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혹시, 기자 아냐?’

요즘 기자들은 기사를 잡기 위해서 신분 위조나 잠입 취재는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던데, 설마?

“이야기 재미있었습니다. 에버린에 도착하면 또 뵐 수 있길 바랍니다.”

의심을 씻을 수 없었다. 나는 벌떡 일어서며 꽤나 부자연스럽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알아, 알아. 나도 내 행동이 수상했다는 것을 안다고.

“그럼 저는 먼저 돌아가 보겠습니다.”

“어머, 혹시 제가 불쾌하게 해 드렸나요?”

“아니에요. 그냥, 좀 머리가 아파 와서….”

‘보통은 이렇게까지 날 잡으려 하지 않잖아?’라고 생각하며 나는 다시 한번 억지로 미소를 지은 채 빠르게 식당 칸을 빠져나왔다.

“큰일이야, 테오!”

그리고, 허둥지둥 객실로 돌아온 나는 문을 쾅- 하고 닫으며 그렇게 소리쳤다.

“뭐야? 무슨 일 생겼어?”

“기자가 붙은 거 같아.”

손잡이를 뒤로 잡은 자세 그대로 나는 테오를 향해 침착하게 말하였다.

내 말에 무슨 서류를 보고 있던 그는 완벽하게 정리된 올백 머리를 오른손으로 넘기며 나를 바라보더니 엉뚱한 소리를 했다.

“너 모자는 어쩌고 온 거야?”

“모자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기자가 붙은 거 같다니까?”

“기자가 붙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뭘 그렇게 흥분해?”

‘비텐베리언가의 임시 약혼녀라면 초연해져야지.’라고 그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지만.

“이번에는 좀 악질 같아. 아무래도 신분 위조를 한 거 같아.”

이 건은 심각한 것 같다고.

“신분 위조?”

“마리아 그리핀 부인 말이야.”

여기까지 말하자, 테오도르도 드디어 심각성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테오는 읽던 서류에서 눈을 뗀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제저녁에 우리에게 마리아 그리핀 부인이라고 말하며 잠깐 카드 게임을 한 부인 말이야. 아무래도 기자 같아.”

“…….”

“오늘 나에게 일부러 접근해서 꼬치꼬치 캐묻는데 깜박하면 속을 뻔했지 뭐야?”

정말 나처럼 눈치 빠른 사람이 아니면 속아 넘어갔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가십 잡지 쪽인 거 같아. 너와 그, 실라가의 후계자 이야기에 관심이 많더라고?”

그 후계자 이름이 뭐더라? 아, 레오나드.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을 때였다.

“나는 말이야. 가끔 이 계획의 파트너로 너를 선택한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게 돼.”

테오 녀석이 이상한 소리를 지껄이는 거 아니겠는가?

“???”

“너는 혹시 정보를 캐는 것에 소질이 없는 거 아냐?”

“뭐야?”

아니 이 호랑 말코 같은 자식이! 이게 또 뭔 소리야?

“마리아 부인의 신원은 내가 보장할 수 있다고.”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아무리 네가 사교계의 꽃… 그런데 남자도 꽃이라고 불러도 되나? 아무튼, 타 영지의 말단 귀족까지 모두 아는 것은 아니잖아?’ 라는 마음으로 눈썹을 찡그렸을 때 테오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더니 나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에그노엘 부인회’의 회장이야.”

“어?”

“본의 아니지만, 이전 에버린에서 만나서 소개받은 적이 있어.”

“어?”

이건 또 무슨 소리?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테오 녀석은 건방지게 검지로 내 코끝을 톡톡 두드렸다.

이 녀석, 이거 성희롱이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매너가 좋다고 해도 함부로 우리 테이블에 앉혔을 리가 없잖아?”

“아.”

부, 분하다.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내가 이런 단순한 것을 간파하지 못하였다는 치욕에 몸을 떠는 사이 테오는 다시 자리에 고쳐 앉으며 서류를 넘겼다.

“그건 됐으니까 메어리에게 부탁해서 모자나 찾아오라고.”

“응? 그냥 내가 갔다….”

“야, 내가 항상 말했지!”

‘그냥 내가 갔다 오면 되는데 웬 메어리?’라고 생각하고 있던 나에게, 테오는 갑자기 불같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넌 지금 비텐베리언가의 정식 후계자의 약혼녀이자 대외적으로는 비텐베리언가의 차기 안주인이라고! 세상에 어떤 귀부인이 그런 사소한 일까지 자기 손으로 직접 하냐? 그런 행동하기만 해 봐! 내일 조간 특집 기사는 ‘미스 램버트의 우아하지 못한 행동’이다?”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저 말 뒤에 ‘아직도 네가 멋대로 살던 램버트가의 사생아인지 알아?’라는 말이 숨어 있다는 것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하아….

보라고. 저거의 어디가 ‘진보적’이고 ‘깨인’ 사람이야?

* * *

다행히 메어리가 충실하게 식당 칸에 두고 온 베일이 달린 작은 남색 모자를 가지고 왔기에, 다음 날 조간신문에는 나의 품행에 관해 씹는 기사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그의 태도에 살짝 화가 난 상태였고, 그랬기에 에버린 역에 내릴 때까지 테오도르와는 좀 냉랭했다는 건 사실이다.

“테오도르 경! 이쪽입니다!”

“레이디 그웬돌린, 여기를 봐 주세요!”

물론, 플랫폼에서 포트레이트를 싣고자 염사기를 들고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있기에 가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여어, ‘테오도르 윌링턴 비텐베리언’ 경.”

그렇게 몰려든 기자들에게 인형처럼 미소로 화답하며 손을 흔들어 주고 있었을 때였다. 갑자기, 그래 마치 진짜 ‘바다가 갈라지듯’ 인파가 한 남자의 환영 인사와 함께 갈라졌다.

그리고 그들이 내어 준 길 사이로 역 저편에서부터 한 남자가 손을 흔들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레오나드 스틸런 실라다.”

“아, 저 사람이?”

“참고로 루시 실라의 사촌이라는 것을 기억해 둬.”

테오의 귀엣말이 아니더라도, 다가오고 있는 남자는 멀리서 보아도 그야말로 ‘나는 고위 귀족’이라는 라벨이 붙은 것 같은 건방진 기운의 사람이었다.

루시 실라와 똑같은 화려한 금발에 녹색에 가까운 푸른 눈동자를 한, 음… 마리아 부인의 말대로 잘생기긴 한 남자였는데.

‘머리 비어 보여.’

외모는 음, 도자기 인형같이 하얗고 예쁜 루시 실라의 사촌답게 잘생겼지만, 경박한 느낌?

동자가 작은 데다가 눈도 좀 길게 위로 찢어진 형상이라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날카롭고 명석하게도 보일 수 있었지만….

“이 에버린까지 행차해 주어서 감사하네. 여전히 사람들 몰고 다니길 좋아하는군, 테오도르 윌링턴?”

겉모습과 태도만으로 경박해 보이는 게 아니라, 말투도 경박해 마지않았다고!

“나는 누구와 달리 모든 곳에서 환영받는 사람이라 말이지, 레오나드 스틸런?”

아, 정정. 경박한 말투는 테오도 똑같군.

‘근데 얘 원래 안 그런 애인데….’

그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마리아 부인이 말한 ‘라이벌 관계’라는 단어였다.

부인은 실라가의 후계자가 일방적으로 테오에게 가지고 있는 감정이라고 말하였지만, 이거 참….

‘실은 테오 녀석도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있었나?’

나는 이 두 어린이의 유치함에 한숨을 쉬었다.

“묵을 곳은 정한 것인가, 테오도르? 정하지 않았다면 우리 에버린의 실라 가가 기꺼이 손님방을 내어 주도록 하지.”

“하하, 이미 말하였듯이 나는 누구와 달리 모든 곳에서 환영받는 사람이라 말이야. 너무나 고마운 제안이지만 이미 칼튼 백작의 집에 초대를 받았다네.”

“그런가?”

하고 두 청년은 서로를 보며 하하하 하고 웃었다.

물론 나누고 있는 대화와 반대되는 생각을 속으로 상대에게 내뱉고 있었으리라는 것에 나는 100빈스를 걸 수 있지만.

“그나저나 사랑스러운 약혼녀를 소개해 주지 않을 건가, 테오도르?”

호탕하게 웃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눈은 웃고 있지 않은 것을 보며 속으로 어깨를 으쓱하고 있었을 때, 실라 가의 후계자가 화려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이런 실례하였군. 익히 알고 있겠지만, 나의 약혼자인 레이디 그웬돌린 스테파니 램버트이네.”

“처음 뵙겠습니다.”

“저야말로 정식으로는 처음 뵙습니다.”

그렇게 말하며 실라 가의 후계자, 레오나드는 내 손을 잡고 손등에 키스했다.

이 남자들 증말…. 하는 짓이 둘 다 똑같아 정말. 역시 동류 아냐?

“언니이신 레이디 키이라와는 꽤나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경기에서 자주 만났으니까요.”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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