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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약혼 지침서-51화 (51/100)

51화

나는 정말로 테오에게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그 형사의 말이 사실이라면, 테러범들이 노린 것은 바로 나이다.

정확하게 내가 왜 노려진 것인가에 대해서는 그 형사에게 더 물어봐야겠지만….

그의 말에 따르면 테러범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하여 나를 노렸고 테오는 재수 없게 휘말린 것이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뭔 헛소리야?”

너무나 미안해서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는 나를 향해 테오가 한 말은 그것이었다.

아직도 그는 사태를 모르고 있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욕과 비난을 받을 것을 각오하고 고개를 들어 솔직히 고백하였다.

“우리, 교통사고가 아니라 테러에 휘말린 거래. 우리 두 가문이 맺어지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긴 세력이 나를 노리고 마차에 폭탄을….”

그들은 말하였다.

나와 테오의 결혼은 단순히 첫눈에 반한 연인이 신분의 차를 뛰어넘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아니고, 금융권과 제조 산업이 서로 손을 잡는 더러운 결탁이라고 말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더러운 결탁은 아름다운 로맨스가 아니다.’

그렇게 말한 자는 테러범이 아니라, 좀 더 강성의 신문이었다.

[특히, 젊은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동경과 인기를 끌고 있는 레이디 그웬돌린이기에 그들의 타깃으로 잡힌 것은 아닐까?]

어떤 잡지는 이 테러를 난센스로 평가하며 그렇게도 말하고 있었다.

내가 그 형사의 말을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모든 매체가 그렇기에 이 사태가 모두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너도 폭발에 휘말려서….”

차마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니까 네 말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 뒤, 테오는 입을 열었다.

무표정하게 굳은 얼굴로 말이다.

“그러니까, 이번 마차 사고가 우연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너를 목표로 했던 테러이고. 거기에 내가 휘말리고 말았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건가?”

“맞아.”

나는 솔직히 그의 말에 긍정하였다.

정말로 미안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왜냐하면, 또다시 테오의 다리를 감싼 깁스가 눈에 들어와 박혔기 때문이었다.

괜히 나 때문에….

그러나 눈물을 글썽이고 있는 나에게 한 테오의 말은 이거였다.

“너, 의외로…. 참 곱게 컸구나?”

“?!!”

뭐가 어째?

순간 내 눈은 반사적으로 크게 떠졌다.

이 맥락 없는, 어떻게 보면 나를 우습게 보는 것만 같은 말과 말투에 욱- 하고 화가 났다.

테오도르 비텐베리언! 너란 녀석은, 사람 마음도 모르고!

“너 정말. 사람이 기껏 사과하는데!”

“가장 먼저! 이 테오도르 윌링턴 비텐베리언의 가치가 너보다 낮을 리가 없잖아?”

“허어?”

이건 또 무슨 말이여?

이 굉장한 황당함에 말이 막혀 버린 나를 슬쩍 바라보다가, 테오는 오른손으로 살짝 땀에 절어 눌려 있던 앞머리를 휙- 하고 가볍게 튕기듯 넘겼다.

“동서고금 인류의 역사를 뒤집어 봐도 자고로 테러란, 피살되면 사회에 커다란 혼란을 가져다줄 사람을 타깃으로 삼는 법.

여기 이렇게 잉기스 최대 공작가의 정식 후계자인 이 몸이 멀쩡하게 있는데 일부러 너를 타깃으로 할 리가 없는 거 아니야? 너, 네 가치를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반박하고 싶었다.

정말로 반박하고 싶었다.

특히 ‘최대 공작가’나 ‘가치’에 대해서 말한 그 부분을 말이다.

그러나!

정말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테오의 저 발언은, 정말로 누가 보더라도 고개를 끄덕일 말이었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솔직히 같은 공작가라도 가주에게 공공연하게 미움받는 천덕꾸러기 사생아와 왕가의 피를 이은 공작가의 정통 후계자의 사회적 가치를 생각해 보면.

‘나라도 테오를 택하겠군.’

갑자기 무언가, 갑자기 창피해지네?

혹시 나, 속은 건가?

“뭐, 그리고 난 테러가 처음은 아니다?”

얼굴이 홧홧- 하고 화끈거리는 사이, ‘이거 혹시 나, 그 형사에게 놀아난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말한 테오는 여전히 트레이드마크와도 같은 건방진 표정으로, ‘물론 공갈 협박이 아니라 진짜로 목숨이 위험해진 경우는 처음이지만.’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손가락을 하나씩 꼽으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던 그는, 곧 침대머리에 등을 기대며 팔짱을 꼈다.

“그래도 가장 마지막이 열여덟에 처음 사장 취임식에 갔을 때였으니…. 최근은 좀 잠잠하긴 했다. 애송이가 낙하산이라고 단상에서 썩은 사과가 날아왔었다고. 너 석탄 노동자들에게 유황 달걀 맞아 본 적 있냐? 완전 냄새 죽인다?”

‘일주일은 향수 범벅으로 살았다.’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그는 고개를 반짝 들며 덧붙였다.

“우와…. 그 뒤로 2년이나 노조가 잠잠했다니…! 역시 내가 그동안 경영을 뛰어나게 잘한 덕분이겠지?”

평소라면 저 말에 ‘아니, 그건 노동조합도 네가 바지 사장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해 주었겠지만, 당시의 나는, 놀라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해서 그저 꿀 먹은 벙어리였다.

정말로 묘하게 테오의 말과 분위기에 휩쓸려서 나는 그의 말을 한쪽 귀로 흘린 채 속으로 그 형사를 욕하고 있던 상태였다는 거다.

‘역시 나에게서 증언을 받으려고 막 꾸며 댄 거 아냐?’

생각해 보니 말이다, 생각해 보니!

에이미에게 부탁해서 가지고 온 다량의 신문과 잡지에는 테미스 당인지 뭔지 하는 그 테러범들의 목표가 정확하게 ‘나’였다는 문장은 단 한 줄도 없었다고.

“그리고 설사 네가 타겟이고 내가 휘말린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네가 미안할 것이 뭐가 있어?”

‘수사 실적을 올리려고 이 가련하고 순진한 소녀를 농락하다니…. 그 능구렁이 중년이!’라고 속으로 이를 갈고 있었을 때, 테오는 피식 웃으며 그렇게 덧붙였다.

“네가 루시 실라처럼 나에게 ‘테오 님, 꼭 저와 데이트를 해 주세요.’라며 나를 억지로 끌고 갔던 것도 아니고. 너도 몰랐잖아?”

“그건….”

“아니면. 너, 나 몰래 뭔가 나쁜 음모라도 꾸몄냐?”

‘목숨을 위협받을 정도의 것 말이야.’라고 말하는 그를 향해, 나는 고개를 힘껏 도리도리 저었다.

“뭐,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에게조차 증오의 대상이 된 적이 처음인 듯하니 당황한 네가 헷갈리는 것을 이해는 하는데. 하고 싶은 말은 지금 이 나에게 사과해야 할 사람은 네가 아니라, 바로 그 망할 테러범들이라는 거야.”

테오는 여전히 침대머리에 기댄 자세 그대로 단호하게 말하였다. 팔짱을 낀 채 말이다.

“알겠어? 지금 이 상황에서 가장 나쁜 사람은, 그리고 나에게 사과를 하여야 하는 사람은 네가 아니라 그 테러범이야. 네가 왜 사과를 해? 라이언 윈디, 생각보다 심약하네? 아니면, 역시 자기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야?”

“뭐야?”

아니, 이야기가 왜 이쪽으로 튀는 거야?

“이제야 좀 너 답네.”

나도 모르게 눈을 부라려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나를 테오는 그저 웃어넘길 뿐이었다.

“그자들이 무슨 핑계를 대며 자신의 행위가 위대한 목적을 위해서인 양 호도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자들은 우리뿐 아니라 무고한 사람들을 휘말려 죽게 한 살인자야.”

“…….”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도 없고,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도 없는 거다. 어느 한 쪽이 잘못되었다면 그것은 전부 잘못된 거야.”

이렇게 진지한 테오는, 무언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건….”

답지 않은 그의 모습에 나는 당황하여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평소에는 정말로 건방지고 자기 생각대로 안 풀리면 떼를 쓰는 어린애 주제에….

“나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다고.”

“알긴 뭘 알아? 착해 빠져서는….”

“뭐야?”

착, 착해 빠져? 얘가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나야, 나. 나 그웬돌린 스테파니 램버트라고! 성 모니카 여학원의 싸움닭!

제니 마이어스의 부하 역할이나 하던 그녀 사촌의 앞니를 부러뜨렸던 그 왈패!

아, 물론 그 치아는 유치였기에 아무 문제 없었다.

레이싱에서는 남자 선수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주니어의 여왕!

진짜 무슨 소리야, 나같이 약아빠진 사람에게?

“누, 누가 착해 빠졌다는 거야? 나 안 착해.”

그 평가에 나는 격하게 반박하였다. 내가 착해 빠졌다고?

“착해 빠져서 매번 레이싱 때도 치팅 안 하고 정공법이나 쓰고. 그래서 너 적이 많았던 거야. 혼자만 깨끗하게 군다고 말이다.”

“그건 굳이 편법 같은 거 쓰지 않아도 충분히 이길 수 있었으니까….”

“지금 상황도 그래. 이 사태를 만든 사람이 누구야? 사실 넌 키이라를 미워해도 된다고. 키이라는 말이야. 자기 좋자고 나와의 약혼에서 도망친 데다가 혼자 고생하기 싫으니까 동행으로 동생의 애인을 꼬셔서 달아난 쌍X이라고.”

“야!”

“저거 봐라, 저거 봐.”

감히 나의 언니에게 쌍욕을 하다니!

내가 너무 놀라서 테오에게 소리친 순간, 테오는 팔짱을 낀 자세로 칫칫- 하고 나를 비웃었다.

“화를 낼 상대가 틀린 것도 몰라요. 그렇게 당했어도 여전히 시스터 콤플렉스이지, 그웬돌린 스테파니. 야, 객관적으로 봐도 키이라가 나쁜 X 맞아.

만약 내가 너였으면 난 당장에 키이라가 없는 이번 기회를 살려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지어내서 키이라가 다시는 사교계에 복귀도 못 하게 짓밟아 놨을 거다.

어디 감히 꼬실 사람이 없어서 동생 애인을 꼬시냐? 그냥 제니 마이어스랑 손을 잡아서라도 확-!”

그의 말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나를 보며 테오는 여전히 팔짱을 낀 자세로 피식피식 웃으며 또 한 번 ‘착해 빠져서는….’이라고 중얼거렸다.

“뭐 그래서 내가 널….”

거기까지 말하다가 테오는 급하게 입을 다물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널 파트너로 선택한 것이지만. 음, 그래. 파트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니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할 수 있는 말은 이것뿐이었다.

“아니야.”

내 말에 테오는 표정으로 ‘뭐가?’라고 물었다.

왜냐하면 말이다. 왜냐하면….

솔직히 살짝 미성숙하다고 깔보고 있었던 테오에게 정론을 들은 것도 충격이긴 했지만 그것보다도….

그를 깔보고 있던 나와 달리 테오는 나를 상당히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에 부끄러움이 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미안. 언니는 잘못되지 않았어.”

“응?”

“바니는 말이야. 바니는….”

그러나 그것보다도 사실 더 부끄러웠던 것은.

계속 주저하는 내가 이상했는지 테오는 팔짱을 풀고 몸을 일으켰다.

“야. 너 왜 그래?”

“바니는 내 애인이 아니라고!”

말해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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