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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 약혼 지침서-82화 (82/100)

82화

“그래도 오자마자 그레이엄부터 돌본 것을 보면, 뭐 장하기는 해요.”

“흐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식으로 가자는 걸까?”

“아무 일도 없긴! 당장 내쫓아야지!”

아주머니와 내 말에 아저씨는 또 흥분하여 그렇게 끼어들었다.

용서하지 못한다는 듯이 말이다.

“당신은 좀 가만히 있어요! 그럼 하나밖에 없는 자식을 내팽개칠 거예요?”

“흥, 그딴 녀석이 무슨….”

“입 다물어욧!”

‘깨갱’까지는 아니지만 아무튼 아주머니의 박력에 아저씨는 입을 다물었다.

역시 크리스 아주머니, 나의 롤 모델.

“버나드 님은 조교사로서 참가하십니다!”

그래도 내심 뭔가가 불만이신 듯 아저씨가 혼자서 구시렁거리는 사이, 에이미는 뛸 듯이 기뻐하며 어느새 2층에서부터 도도도 계단을 내려오며 외쳤다.

“역시 말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나쁜 사람은 없어요! 아가씨의 참가 소식을 듣고 도움이 되고자 오셨다고 합니다! 팀 라이언 윈디, 부활입니다!”

…….

에이미는 참, 얌전한 아이인데 좋아하는 승마 레이싱에 대해서는 눈이 돌아가서 과감해지는 것 같다.

우리 중 아무도 묻지 못하였던 것을 저렇게 당당하게 물었다니….

여기서 ‘누가 뭐라고 해도 마니아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어.’라고 당당하게 말하였던 에스더 언니가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 * *

뭐, 어쨌든 간에 그렇게 얼렁뚱땅 바니는 돌아오게 되었다.

아닌 척하지만 아저씨는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식인 바니를 가장 사랑하기에 못 이기는 척일 뿐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시 ‘팀 영’을 만들어 잉기스시티 배를 향해 출항하게 되었다.

주니어 경기밖에 경험이 없는 우리로서는 상당히 고된 항해가 될 것이 뻔했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처음 가장 걱정했던 것은 ‘그레이엄과 달릴 수 있는가’였다.

물론 램버트가 소유의 위탁마인 알렉산드라와는 달리 그레이엄은 영 목장이 몇 대에 걸쳐 브리딩하여 권리를 얻은 아저씨의 소유였다.

그랬기에 ‘팀 영’으로서 그레이엄을 타는 것은 그다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수많은 주니어 경기에서 체커를 받은 그레이엄의 실력을 나는 의심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이제까지 그레이엄에게 박혀 있던 에테르 석은 6주를 달리는 주니어 트랙 혹은 아마추어 트랙용이었다는 것이다.

공식 시니어 경기는 12주.

주니어나 아마추어 대회의 2배 거리를 달려야 하므로 그만큼 필요한 기수의 체력도, 기수가 기마를 조종하는 에테르의 양도 늘어나게 된다.

2배로 거리가 늘었다면 기수의 체력이나 에테르의 양도 2배가 되는 것일까?

답은 ‘아니다’이다.

에테르 마 레이싱의 승패는 기마의 신체적 능력뿐 아니라 기마의 신체적 능력을 최상으로 유지하도록 기수가 얼마나 말과 동화하여 미세하게 기마의 근력, 반사, 지시 방향을 조정하는 것에 달려 있다.

한 주, 한 주 기수와 기마가 트랙을 돌 때마다 엄청난 정신력과 체력을 소모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트랙이 누적될수록 피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런 피로를 조금이라도 경감시켜 주는 것이 바로 에테르 석이다.

‘물론 나도 체력을 더 길러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쭈욱 팔을 올려 스트레칭을 계속하였다.

다시 설명으로 돌아가겠다.

에테르 마에 박힌 에테르 석의 가장 큰 역할은 기수의 에테르를 기마에 전하는 것이지만, 최근의 발전된 에네르 석은 그런 단순한 능력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에테르 술을 기마에게 전하는 것은 에테르 석의 당연한 기능.

에테르 석이 얼마나 기수의 에테르를 낭비하지 않고 기마에게 전달하는가, 그리고 기수가 경기 중에 내뿜는 에테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여 여차하는 비상시에 뽑아내게 하는가.

이것이 에테르 석의 가격을 천차만별로 만드는 것이다.

전쟁이 사라지게 되면서 공격 마법과 같은 물리 에테르 기술을 쇠퇴하고 있지만, 그 반면 이러한 기능적인 에테르 가공 기술은 마기사(魔技士)로부터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내 걱정은 그거였다.

그레이엄의 새 에테르 석은 어느 정도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가.

이제까지와는 달리 시니어 경기는 정말로 프로 기수의 대회이다.

조금 떨어지는 에테르 석으로도 어떻게 내 기술과 기합으로 짧은 시간에 이겼던 지난 대회들과는 다른 것이다.

허세를 부리긴 했지만 사실 나 정도의 실력은 상위권에서는 평균일 가능성이 크다.

결국, 같은 실력이라면 얼마나 고급 에테르 석을 가지고 있는가가 미묘한 승부의 차를 만든다는 거다.

‘규정 이상의 에테르 석이긴 하지만….’

시니어 정식 경기용 에테르 석을 박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스폰서가 없는 영 목장에서 최고급품을 구할 수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내 실력으로 승부를 볼 수밖에 없겠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후우- 하고 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포니테일로 올려 묶으며 마구간으로 들어섰다.

“용량은 12주하고도 3주를 더 달릴 수 있는 양이야.”

나를 보고 고개를 반짝 든 그레이엄에게 다가가 그의 이마에 박힌 에테르 석을 만지고 있자, 이미 나의 생각쯤은 간파하고 있었다는 듯이 바니는 싱긋 웃으며 울타리에 기대었다.

“3주….”

“대신 내부 결점이 거의 없어. 낭비되는 에테르가 없을 거야.”

“새것은 아닌 거 같네?”

“응. 중고이지만 내구력은 아직 괜찮은 편이야.”

“흐음….”

어딘가의 부잣집에서 충동 구매하였다가 판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레이엄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조금만 참아, 그레이엄. 내가 우승 상금으로 완전 최고급 새것으로 바꿔 줄 거니까.”

까짓것, 몇 번만 견디면 되지, 뭐.

내가 꼭 우승해서 바꿔 줄 테다.

그렇게 결심하며 다시 한번 갈기를 어루만져 주었다.

“정말로 잉기스시티 예선전에 나갈 생각이야?”

그렇게 그레이엄과 교감하고 있었을 때, 나와 그레이엄을 심각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바니는 드물게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응, 결심했어.”

“물론 본선과 예선을 같은 조건에서 맞추고, 또 시합도 가까우니 컨디션 조절을 생각한다면 잉기스시티로 가야 하겠지만. 탄타라의 트랙이 더 익숙하니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텐데. 게다가….”

거기서 잠시 바니는 입을 다물더니 결심한 듯 말하였다.

“예선부터 본선까지 체류비도 만만찮을 건데.”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요즘 이상하게 나에게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그레이엄의 얼굴을 톡톡 두드려 준 뒤 나는 바니에게 몸을 돌렸다.

“그 정도 돈은 있어.”

이래봬도 대귀족의 약혼녀였다고.

그 당시에는 쓸데없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는데 테오에게 받은 선물, 드레스부터 시작해서 쏠쏠하고 짭짤하게 팔리고 있다.

그렇지만 역시 양심상 반지는 못 팔았다.

자존심이라고나 할까?

“윈디.”

“스폰서가 되면 상금 지분도 늘어나니까, 요는 내가 우승해서 기수 몫 플러스 스폰서 몫을 받으면 해결되는 것 아냐?”

그렇게 말하며 나는 바니를 향해 윙크하였다.

호기롭게 우승하면 된다고 말하였지만, 사실 뭐, 상위 입상만 되기를 바라고 있다.

1년 동안 주니어 대회에도 나가지 않았으니 현재로서 내 점수는 0점이다.

주니어 때와 달리 당연히 시드권을 얻지 못하였으니 지역 예선전부터 치러야 하는 것이다.

바니의 말도 맞다.

어렸을 적부터 익숙한 탄타라의 트랙이다.

탄타라 예선에 나가는 편이 좀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탄타라에서 예선을 치르고 또 잉기스시티에 가서 본선을 준비한다고?

트랙에 적응할 시간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다른 문제도 있었다.

돈과 경기 적응 같은 것 이외의 문제.

물론 독립을 위해서라도 레이싱 선수로 복귀하는 것은 계획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준비 시간의 여유도 거의 없는 잉기스시티 시민 배에 굳이 출전하기로 한 이유는 테미스 당을 자극하여 일망타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까지 테미스 당의 움직임이 없다.

그냥 움직임이 없으면 다행인데, 트루엘 형사의 연락도 없다는 게 문제이다.

이게 왜 문제냐고?

만약 테미스 당이 제대로 된 결심도 없었던, 단지 소심하고 충동적이기 때문에 이전 테러를 일으켰고, 그 테러가 실패한 이후 다시는 이런 무서운 짓을 벌이지 않게 되었다, 라고 한다면, 분명히 트루엘 형사는 그의 성격으로 보아서 나에게 연락을 해 주었을 것이다.

아무 걱정 없으니 마음껏 대회에 참가하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나에게 연락을 끊은 상태이다.

이것은 그가 나와 접근하면 안 된다는 이유, 즉 내가 경찰과 한통속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된다는 이유일 것이다.

즉, 테미스 당은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왕 타깃이 되는 것, 잉기스시티에 있는 편이 훨씬 안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트루엘 형사의 호위를 받는 것도 훨씬 수월할 테고, 또한 내 시합 참가에 자극받아 움직일 그들을, 시합 전까지 체포하는 것이 형사와 나의 계획이었으니 말이다.

“너도 참….”

어떻게 보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을 하면서도 밖으로는 호기롭게 웃고 있었던 나를 바라보다가 바니는 피식 웃었다.

그러더니 ‘그럼 연습하러 나갈까?’라고 말하며 익숙하게 안장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준비는 오케이야.”

“그래.”

바니가 웃으면서 건네준 고삐를 잡으며 나는 훌쩍 말 위에 올라타 목장의 연습용 트랙으로 향했다.

여기서 어떤 연습을 하였느냐를 기술한다면, 경마 훌리건인 에이미는 아마도 콧바람을 하악하악 뿜으며 ‘아가씨, 자세하게 말씀해 주세요. 콤마 단위로 무슨 기술을 썼는지, 그레이엄의 근육 움직임 하나하나!’

라고 말하겠지만, 모두가 에이미는 아니기에 목장에서 한 연습은 12주를 무사히 완주할 수 있는 체력을 기르는 기초 훈련만 했다는 것으로 정리하겠다.

“수고했어.”

시뮬레이션으로 12주를 전력 질주를 가정한 완주가 끝났을 때, 바니가 얼른 다가와 나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말에서 내려 수건을 받으려 하였을 때, 나는 나도 모르게 휘청거리고 말았다.

“괜찮아?”

“응. 잠깐 멀미가 났을 뿐이야.”

“일단 쉬자. 이쪽으로 와. 땀이 식으면 추워.”

평소보다 더 길게 에테르 술을 유지해야 하므로 금방 지칠 것은 각오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온몸이 젖어 버릴 정도로 땀을 흘렸을 줄은 몰랐다.

땀이 식으며 체온이 내려가고 있는 나를 바니는 커다란 수건째로 폭- 안은 채 간이 휴게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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