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0화
닥돌 전략 (1)
웅성웅성.
주변이 소란스러워졌다.
내 전략은 간단했다.
마군단 녀석들은 그리 똑똑하지 않았다. 뭐, 전략이야 쓸 수 있었지만, 압도적인 화력 앞에는 모든 것이 무력화된다.
교황군과 제국군의 최정예만 모았는데 여기서 무슨 전략이 필요하단 말인가? 게다가 전투가 예상되는 지점은 평지였다.
오히려 여기서 과한 전략은 독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30년이나 악마들과 싸웠고, 놈들이 얼마나 단순 무식한지 잘 알고 있었다. 괜히 어설픈 전략을 썼다가 패한 적도 많았고 말이다.
그간 깨달은 경험에 의하면 닥돌이 최고다.
지휘관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뭔가 대단한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뛰어난 두뇌로 말미암아 낮은 작위에도 선봉대 군사로 임명된 아젠타 남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령관님, 혹시 이번에 수립한 신전략입니까? 제가 군문이 짧아서 닥돌이라는 단어를 모르겠습니다.”
“정말 몰라?”
“가르침을 주십시오.”
아젠타 남작은 정말로 내게 배움을 청하고 있었다.
닥돌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신성한 고대의 전투 방식이다.”
“오오오!”
사람들의 기대감이 커져 갔다.
그러니까 선조들이 사용하던 전투 방식이라는 건데, 그냥 도끼를 들고 쳐들어가던 시대를 이야기한 것이었다.
문제는 똑똑한 지휘관 놈들이 못 알아 처먹는다는 거다.
“우리의 위대한 선조들이 사용했던 방식을 그대로 채용한다.”
“그러니까 전술의 기초로 돌아간다는 겁니까?”
“아, 쓰바. 뭘 그렇게 어렵게 이해를 하는 건데?”
결국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손짓을 하자 대기하고 있던 기사 한 명이 하얀 종이를 전쟁 지도 앞에 붙여 주었다.
“자, 닥돌의 닥부터 알아보자. 이는 ‘닥치고’의 준말이다.”
“입을 닫는다는 소리입니까? 설마 야간 기습을 말씀하십니까!? 마군단 세력은 야밤에 더 강해지는 특성이 있습니다만?”
“내가 미쳤다고 밤에 움직이냐? 밤에는 자야지.”
“흠, 그야 그렇죠. 마군단 놈들이 야습을 했으면 했지 저희들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은 아닙니다.”
슬슬 머리가 아파 온다.
“이번에는 돌을 설명해 보자. 돌이 뭐냐?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 아니다. 돌격의 준말이다.”
“한마디로 닥치고 돌격이라는 뜻이로군요. 과묵하게 입을 다문 상태에서의 돌격이라……. 뭔가 잡힐 듯 말듯 잡히지 않습니다.”
“닥치고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는 뜻이 포함된다. 돌격이란 그냥 돌격을 한다는 거고.”
“그냥 아무 전략도 아니지 않습니까!?”
“오, 아카데미 수석 출신이라고 하던데 꽤 똑똑한걸?”
“이딴 걸 전략이라고 내놓습니까!?”
진지하게 듣고 있던 아젠타 남작이 역정을 냈다.
제 딴에는 화도 치밀 것이다.
내 말의 뜻을 간파하기 위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긴 전투들을 모조리 머릿속으로 끄집어내고 있던 중이었는데 그냥 돌격이라니.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원래 마군단 놈들에게는 전략 따위가 필요 없었다. 전략이 먹힐 것 같았으면 지구에서 수만 번도 사용했을 거다.
“나는 사령관이다. 불복인가?”
“아니, 불복을 떠나서 이건…….”
“뭐가 문제인데? 이대로 간다.”
“정말 미쳤습니까!?”
“이 새끼 보게?”
나는 말릭을 호출했다.
“예, 사령관님!”
공석이었기에 말릭도 나를 사령관이라고 불렀다.
이미 황제와 교황이 나에게 이들에 대한 군권을 주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군권이 회수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내 말이 법이었다.
“저 새끼 코 한 대 쳐라.”
“예?”
“치라고. 네놈 코가 박살 나기 전에.”
“크윽! 군사님! 저는 별로 당신에게 원한이 없습니다!”
“아, 잠깐!”
퍼어억!
“끄아아악!”
아무리 문관이 뛰어나도 무관을 이길 순 없다.
평생 칼을 잡은 사람과 펜을 잡은 사람의 무력이 같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말릭은 무려 그레이트 급에 이른 기사였다.
쌍코피가 푸확, 터지며 테이블 바닥을 적셨다.
“으읍!”
얼마나 피가 많이 나는지 입가에서도 피가 줄줄 흘렀다.
“또 코 깨질 사람?”
“…….”
지휘관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
오늘의 일이 추후에 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내 폭정(?)에 맞설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이 정도면 만족이다.
“출병이 내일인가? 오늘 편제 완료하고 내일 깨워라. 나, 간다.”
나는 하품을 하며 일어났다.
바깥에 대기하고 있던 가마에 올라 고급 여관으로 향했다.
무겁게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이곳에 있는 그 누구도 닥돌 전략에 대해 찬성하지 않았다.
도대체 그게 무슨 전략이란 말인가?
베르체는 교황의 명령이 있어 간신히 자중하고 있었지만, 제국 중앙군 측 인사들은 아니었다.
“아니, 저런 사이코를 봤나!?”
“와아, 저건 게으름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성질이 무슨……. 악마 새끼도 아니고.”
발렌은 신뢰가 가지 않는 지휘관이었다. 하지만 그런 지휘관이라고 해도 쌍욕을 하는 건 군사 재판에 회부될 일이었다.
물론 여기서 욕을 했다고 그 사람을 고발할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랬다가는 당장 군부에서 매장당하고 말 테니까.
간신히 지혈을 마친 아젠타 남작은 콧구멍마다 손수건을 꽂고 있었다. 흰 손수건이 피로 물들어 내려간다.
“선봉대는 망했습니다.”
“으음.”
“부정할 수 없군.”
“그냥 가서 죽읍시다. 그게 쉽지.”
“하아.”
한숨이 내부를 지배했다.
로이젠이 베르체에게 물었다.
“교황군 측에서는 왜 아무런 말씀이 없으십니까?”
“저희는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허어! 신탁을 받은 자라고 싸고도는 겁니까?”
“할 말이 없군요.”
오늘따라 유난히 과묵한 베르체 추기경이었다.
원래 개차반이라고 소문이 자자했지만, 베르체는 잠자코 있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만약 발렌의 의사에 반대했다는 소식이 들어가면 그의 목은 잘리고 말 테니까. 성녀까지 눈을 부라리며 죽이자고 하는데 최소한 지금은 몸을 사려야 했다.
모든 상황들이 혼돈의 카오스로 치닫고 있었다. 베르체는 이미 다수의 마귀들이 이 세상에 풀려나 활동하고 있다 확신했다.
드르륵.
로이젠 단장이 일어나, 자신의 휘하 지휘관들을 모조리 일어나게 했다.
“아무래도 황제 폐하를 알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중앙군 세력이 모두 빠지자 신성 기사단 지휘관들이 베르체 추기경을 닦달했다.
“예하! 아까 못 보셨습니까? 그건 인간의 눈깔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미친 자에게 어찌 선봉대를 맡긴다는 겁니까?”
“전부 여신님의 뜻이다.”
“와, 정말 이러기입니까?”
다들 환장하겠다는 표정이었다.
차라리 베르체는 눈을 감아 버렸다. 지금 눈을 떴다가는 발렌에 대한 분노가 터져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테이블 위에 그릇이 쌓여 간다.
나는 세 그릇째 접시를 비웠다.
배가 든든해야 잠도 자는 법이었다. 자다가 배가 고파서 깨면 그것보다 억울한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웬만하면 자기 직전에는 배가 터질 정도로 먹었다. 그래야 24시간을 자도 배가 고파서 깨는 일은 없었기 때문이다.
맞은편에서 음식을 깨작거리던 말릭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표정이 엄청 쫄아 있다고 해야 할까.
코가 씰룩거리는 것을 보면 또 맞을까 봐 조심스러운 것이 틀림없다.
“밥 먹는 거 처음 봐? 아니면, 코가 간지러워?”
“아, 제 코는 괜찮습니다. 그저 걱정이 돼서 그러죠.”
“뭘?”
“내일이 출병인데 닥돌 전략이라니…….”
“그게 뭐 어쨌다고.”
“아니, 조금 입체적으로 전략을 짜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히 황제 폐하와 교황 성하의 귀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들어가라고 해. 아까 교황이 무릎 꿇는 거 못 봤냐?”
“험험, 정말 어떻게 된 일입니까? 궁금해 미치겠습니다.”
“그냥 궁금해해.”
“도련님!”
“별건 아니고 약점 가지고 협박을 좀 해 봤어.”
“…….”
말릭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을 거다. 표정에서 보면 나를 쫓아 성스러운 길을 가겠다고 한 결심을 후회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게 어쨌단 말인가.
마지막 접시를 비웠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 오자 와인을 한 번에 때려 넣었다.
“아, 배부르다. 그럼 이제 자야지.”
“도련님!”
저 멀리서 앤드류가 달려왔다.
놈의 표정은 굉장히 구겨져 있었다.
“너는 또 왜 그래?”
“황제 폐하와 교황께서 독대를 하신다고 합니다!”
“그런데?”
“분명 오늘 작전에 대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하라고 해. 아마 뭐라고 태클 걸지는 못할 거다.”
나는 교황을 믿고 있다.
지옥 불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애를 쓰지 않을까?
그 시각.
황제는 1기사단장과 군사로부터 말도 안 되는 전략에 대해 전해 들었다.
분명 지금까지 보여 준 발렌 남작의 행보는 위대했고, 딱히 흠잡을 곳이 없었다. 게다가 여신의 축복까지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여 준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교황 쪽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는데, 그것이 이상하여 황제가 독대를 청했던 것이다.
“개새끼께서 먼저 찾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허허허! 그렇게까지 제 격을 높이지 않아도 됩니다. 성하께서 개새끼라 칭해 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천계의 신성한 언어로 ‘위대한 자’를 일컫는 단어가 개새끼다.
교황이야말로 신의 대리자였는데, 그런 사람이 자신을 높여 주니 괜히 좋으면서도 몸을 낮추게 되는 황제였다.
“사실, 오늘 제가 찾아가려 했습니다.”
“오늘의 불미스러운 일을 들으신 거로군요.”
“불미스러운 일이라니요? 오히려 성스러운 일이지요.”
“어째서요? 저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쩐 전략도 수립하지 않고 돌격이라니요?”
“휴우, 그건 이유가 있습니다.”
교황은 한숨을 내쉬었다.
신격 그 자체, 그러니까 이 전쟁은 물론이고 마신까지 몰아내 차원의 영웅이 될 분이 무식한 전략을 세웠을 리가 없었다.
교황은 다른 측면으로 접근했다.
“현재 마귀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여신님의 신탁을 옆에서 들었습니다. 그걸 신탁이라고 해야 할지……. 강림 직전의 상태였지요. 아예 여신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허어!”
황제는 매우 놀랐다.
교황씩이나 되는 인물이 거짓말을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황제는 꽤 똑똑한 사람이었고 마귀가 활동한다는 것에 선봉대 지휘관 발렌 남작이 전략을 숨기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제 아신 것 같군요.”
“설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마귀가 엿들을 수 있고 마군 단장의 귀에 들어가면 당연히 대비를 하겠군요.”
“맞습니다. 마귀라는 놈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있을 수 있으니…….”
“제가 괜한 걱정을 했습니다. 여신께서 선택한 사람을 믿지 못했다니……. 저는 황제의 자격이 없습니다.”
“아닙니다. 폐하는 진정한 개새끼이십니다. 지금까지 치세도 그랬고요.”
“당장 단장을 불러 경질하겠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그렇다면 이 늙은이는 물러갑니다.”
“아, 그러시죠. 씨발 개새끼야.”
“허허허허!”
교황은 어깨를 들썩였다.
빈말이었지만 듣기는 좋았다. 신계의 언어로 위대한 이에게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다.
황제가 그리 생각해 주니 고마울 따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