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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을러서 차원최강-29화 (29/100)

제 29화

루시우스 후작령 (2)

다음 날 오후 늦게 나는 간신히 지휘관 회의를 소집했다. 아예 이동하는 가마에서 내리지도 않았다.

점점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지고 있었다.

“그럼 전략을 발표한다.”

“후우.”

지휘관들은 긴장을 하고 있었다.

무려 여신에게 물어보겠다고 했던 나였으니, 어떤 전략을 내놓을지 궁금해하는 것이다.

“으하하함!”

하품이 나왔다. 아무래도 전투는 내일 해야 할 것 같았다.

전략은 지금 발표를 하고 말이다.

“뭐, 별것 없어. 그냥 닥돌한다.”

“지금 장난하십니까!?”

베르체는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서 자신의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지금 뭐라고 했냐?”

“닥돌은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아니, 그전에 뭐라고 했냐고.”

“닥돌…….”

“얘들아, 방금 베르체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는 사람? 만약 기억나지 않으면 내 친히 기억이 나게 만들어 줄 수도 있다.”

“정확하게 장난하느냐고 따졌습니다.”

지휘관들은 하나같이 베르체의 잘못을 지적했다.

놈의 얼굴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미 코가 몇 번 깨져서 심심하면 코피를 주륵 흘리는 베르체 추기경이었다. 그러니 두려운 것이다.

잘못하면 영구적으로 코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나는 분명 닥돌을 전체적인 전략으로 짰다. 황제 폐하와 교황께서도 동의하셨고. 그런데 네놈 따위가 감히 토를 달아?”

“그, 그렇지만 잘못된 건 잘못된 겁니다!”

“아니, 내 전략은 틀리지 않았다. 실제로 전투를 해 본 건 아니다.”

“저런 성에 별다른 장비 없이 닥돌한다는 건 자살행위입니다!”

“뭐 이 새끼야?”

빠아악!

“끄아아악!”

내가 뭔가 액션을 취하기 전에 성녀가 몽둥이로 베르체의 코를 날려 버렸다.

코피가 사방으로 쏟아졌다.

도저히 지혈이 되지 않아 베르체는 신성력을 사용하려 하였지만, 전혀 신성력이 발현되지 않았다.

“크룩. 크룩.”

베르체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에르나가 웃었다.

-인과가 적용된 것이 아닐까요?

‘인과?’

-발렌 님과 칼도나 여신은 동맹이잖아요. 여기서 발렌 님에게 대항했으니 일시적으로 페널티를 부과한 거죠.

“오호.”

나는 놈에게 다가갔다.

“동시에 네놈은 신성 모독에 가까운 발언을 했기에 일시적으로 신성력을 잃었다. 영구적으로 신성력을 잃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알아라.”

“쿨럭! 그 무슨…….”

“어쨌든 좀 쉬었다가 진격한다.”

“…….”

나는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이제 쉴 때가 되었다.

마지막 회의가 끝난 지 며칠이 흐르고 있었다.

발렌 사령관은 공성전을 진행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날은 점점 추워지고 있었고, 하루라고 빨리 개전을 해야 하는데 사령관이 움직이지 않으니 지휘관들은 속이 타들어 가고 있었다.

일단 오늘도 그들은 모였다.

베르체를 비롯하여 로이젠 단장과 참모부, 성녀와 만인대장들까지.

다들 심각한 표정이었고 빠르게 움직이기를 바랐다. 물론 모두 심각한 표정은 아니었고 실비아는 하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아젠타 남작이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맞소. 이대로 가다가는 마군단 놈들이 대규모 군대를 만들어 남하할 거요!”

“그냥 가만 계시라니까요.”

성녀가 찬물을 끼얹었다. 대체적으로 회의는 이런 식이다.

지휘부에서 진격을 원하면 성녀가 끼어들어 중지시켰다.

이 자리에 발렌이 없었기에 카르엔 단장은 무슨 일이라도 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시위라도 해야 합니다! 도대체 지금 사령관의 행태가 말이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성녀님, 발렌 사령관은 매일 술을 마시며 병사들과 도박판을 벌이고 있습니다. 누가 봐도 전쟁을 하러 나온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귀를 속이는 중이니까요.”

“그놈의 마귀!”

사람들은 혀를 찼다.

마귀 핑계를 대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제는 슬슬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성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양가도 없는 회의에 참석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저는 가요. 어쨌든 사령관의 허락 없이 군을 움직이면 어떻게 되는지는 알죠?”

그건 당연히 반역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성녀가 나가자 사람들이 분노를 토해 냈다.

“닥돌을 하든 뭘 하든 움직여야 하는데 지휘관은 술을 마시며 도박을 즐기고 있습니다! 이게 뭡니까?”

“갑시다! 가서 죽더라도 우리들의 뜻을 전합시다!”

카르엔 신성 기사단장을 필두로 지휘관들이 발렌의 막사로 몰려갔다.

오늘도 꿀맛 같은 단잠에 취해 있었다.

어젯밤에 술을 진탕 마시고 병사들과 도박을 했다. 그 후에 잠에 빠져 있었는데 바깥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렸다.

“음……. 시끄러운데.”

“시위가 벌어지고 있어요.”

“시위?”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곳이 무슨 80년대 서울도 아니고 시위가 왜 벌어진단 말인가.

지금과 같은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시위를 한다는 것은 아예 죽을 각오를 했다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뭔 시위?”

“전략을 세웠으면 움직이자고 주장하고 있어요.”

“핑계는 대봤어?”

“벌써 3일이니 통하지 않을 때가 됐어요.”

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기야, 국경까지 와서 개전을 하지 않는 것에 지휘관들이 이상하게 생각을 할 만도 했다.

사실 게으름 수치는 진즉에 회복했지만, 귀찮아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나도 결심을 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걸 미루다 보니 3일이나 흐른 것뿐이었다.

마차 문을 열었다.

휘이이잉!

“아이고, 못 가겠다.”

나는 다시 이불로 폭 파묻혔다.

실비아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계속 더 추워져요. 기왕 고생을 하실 거 한 번 나가 주시는 것이…….”

“왜? 너도 맞고 싶어?”

“아, 아니요!”

실비아는 손사래를 저었다.

그녀는 사실 내게 뭔가를 요구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누워 있다가 도저히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마차 밖으로 나섰다.

“사령관님! 진격해야 합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다들 대가리부터 박아라.”

척!

그들은 마치 짠 것처럼 곧바로 머리를 박았다.

“내 나름대로 지금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거다. 그런데 감히 토를 달아?”

군사가 외쳤다.

“이미 전략이 나왔습니다! 저는 닥돌 전략도 반대하지 않습니다. 그저 뭔가 움직임이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게 바로 신성 모독이라는 거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신의 뜻이다.”

“그건 궤변입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그건…….”

신의 뜻 따위를 군사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사실 내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내 자체가 신격이었으므로 신의 뜻이라고 말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하여튼 신의 뜻이다.”

“그렇다면 출병 날짜라도 알려 주십시오!”

“출병? 그럼 나온 김에 하자.”

“허어.”

“뭐 그런…….”

“다시 들어갈까?”

“아, 아닙니다!”

“그리고 한마디 하겠다. 이 이단 새끼들아.”

“……!”

그들은 눈을 부릅떴다.

신을 믿고 신으로부터 단말을 받아 사용하는 사람들이었으니 이단이라는 말은 매우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분명 신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행했다. 그런데 믿지 못하니 만약 내가 전략에 성공하고 깔끔하게 루시우스 후작령을 정리한다면 어쩌겠냐? 최소한의 피해로 말이다.”

“그리된다면 어떤 처벌이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목숨도 내놓겠습니다!”

“발가벗고 영지를 활보하라고 해도 하겠습니다!”

“응?”

여러 가지 말들이 나오는 가운데 베르체 추기경의 대답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얼마 전에 다시 코를 맞고 신성력까지 먹히지 않아 지금은 코가 주저앉은 형태를 가진 베르체였다.

“베르체 추기경, 맞더니 정신을 차린 건가? 그런 좋은 구경을 시켜 주겠다니 말이다.”

“더 심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

“오호, 네놈의 코는 회복시켜 주지.”

나는 손짓으로 신성력을 아주 약간 뽑아냈다.

게으름 수치가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수치만 뽑아서 날려 주자 베르체 추기경의 코에서 빛이 나더니 순식간에 복원됐다.

“오오오!”

“저럴 수가!”

지휘관들은 대가리를 박은 상태에서도 감탄사를 연발했다.

정작 당사자인 베르체 추기경은 멍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무슨 짓을 해도 코가 회복되지 않았었는데, 내가 손길 한 번 주었다고 회복되니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어쨌든 기대가 된다.

놈들이 발가벗고 뻘짓을 한다고 생각하니 웃음이 다 나왔던 것이다.

전투 준비는 15분 만에 준비되었다.

따듯한 아랫목에 몸을 지지고 있으니 다시 귀찮아지는 바람에 마차에서 나오는데 30분이 걸렸다.

“으하하하함!”

나는 길게 기지개를 켰다.

지휘관들이 나를 바라봤다.

“돌격할까요?”

아젠타 남작이 진지하게 물었다.

당연히 나는 놈의 머리통을 후려쳤다.

빠악!

“커억! 왜 때리십니까?”

“지금 닥돌하면 어떻게 되겠어? 다 뒈지겠지. 제정신이냐?”

“아까는 닥돌하신다고…….”

“당연히 닥돌하지. 그런데 나와 시간차를 둔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가 선봉에 선다는 말이다. 한 1분 정도 차이를 두고 달려와라. 그럼 된다.”

“…….”

아젠타 남작은 도대체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다.

상관없었다.

나는 곧바로 달려 나갔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지휘관들이 돌격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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