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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을러서 차원최강-61화 (61/100)

제 61화

적진의 백성들 (2)

사실, 나 역시도 조금 놀랐다.

국경 지역에서는 끊임없이 분쟁이 발생한다. 그리고 국경 영지의 주인들이 종종 바뀌고는 했다.

그때마다 대량의 유민들이 발생했다. 그들은 적들의 영토로 도망치기도 하였는데, 잡히면 사실상 죽음밖에 없었다.

성국과 마도 연합의 전쟁은 다른 왕국들의 전쟁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였다. 어느 한쪽도 포로를 잡지 않는다.

주민이고 병사들이고 말살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다. 하다못해 살아남은 모든 가축들까지 도살을 해 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니 항복을 하거나 투항하는 일은 없었고, 유민들이나 패잔병들은 도주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제국의 국경을 넘어가면 살 수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 마도 연합의 세력권으로 도망친 자들은 위장을 하면서 살아갈 수도 없었다.

약간이라도 제국민들은 신성기를 머금고 있었기에 나타난 현상이다. 신성기를 머금고 있으면 암흑 사제들이 발각을 하여 살해한다.

이런 현실이었으니 최대한 숨어 지내면서 약탈로 삶을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나. 국경 지역에 도적으로 위장하고 있는 제국민들이 있다는 말은 들었지. 그런데 이렇게 깊숙이까지 들어왔나.”

“국경 지역은 토벌이 종종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놈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국경 지역에 유민들이 숨어 살면 토벌을 갈 것이다. 종종 토벌군을 보냈고, 모조리 살아남은 자들을 척살했다. 그렇기에 유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마도 연합 깊숙하게 들어올 수밖에 없었고 산적으로 위장했던 것이다.

내가 물었다.

“그 숫자가 얼마나 되지?”

“글쎄요. 마도 연합 전역에 수십만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도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제가 파악한 숫자만 10만 이상입니다.”

“허어.”

이렇게 되면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두고 보던 에르나가 말했다.

-발렌 님, 이건 기회일지도 모르겠어요.

‘기회라고?’

-그럼요. 이곳은 적진 한복판이에요. 여기서 칼도나의 백성들을 구하게 되면 얼마나 큰 위업이 달성되겠어요?

‘으음.’

-하시죠?

‘그들을 최대한 규합해서 데려가라고?’

-그래요. 그들은 구심점이 없어서 뭉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뿐이에요. 지금 발렌 님에게는 힘이 있잖아요? 구심점이 되기도 하겠죠. 그러니까 그렇게 사람들을 규합해서 마도 연합을 쑥대밭으로 만들면 어때요? 어차피 북상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고요. 지금 마도 연합의 전력은 전방에 집중되고 있죠.

놀라운 전략이었다.

적들이 상상도 못 하는 곳에서 의표를 찌르자는 것이다.

전방에 군대가 집중되어 있으니 후방에서 분탕질을 쳐도 대군이 동원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전방에 타격을 주면 보급에 차질이 생길 것이고, 어떤 식으로 군대를 운용하느냐에 따라 마도 연합 자체의 국력을 약화시킬 수도 있었다.

‘그건 산채의 사람들을 보고 결정하도록 하자.’

나는 확답을 하지 않았다.

유민들을 군대로 활용할 수 없을 정도라면 그런 계획은 접어야 했다. 오는 길에 규합하여 탈출을 하는 것만 해도 벅찰 것이다.

하지만 만약 장정들이 꽤 강하다면?

그때에는 마도 연합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할 것이다.

산채는 산속 깊은 곳에 있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지역까지 들어가자 온통 바위가 높게 깔려 있는 지역에 도착했다.

바위 위에 사람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멈춰라!”

“나다.”

“손님들이 도착했습니까?”

“그래.”

바위산에 형성되어 있는 분지에는 교묘하게 방책이 둘러져 있었으며 꽤 커다란 성문도 있었다.

성문이라고 보기에는 애매하지만 그래도 좋게 보면 방어력이 튼튼한 성문이라 볼 수도 있었다.

목책 위의 사람들을 살펴봤다.

‘꽤 강인하군.’

하기야, 지금까지 살아남으려면 훈련을 게을리할 수 없었을 것이다. 힘이 약해지는 순간 삶을 유지할 수 없을 테니까.

끼기기긱!

목책의 문이 열렸다.

사람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이곳은 하나의 마을이나 다름없었다. 산채라고는 해도 그냥 중형 급의 마을이다.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수천이나 되었다.

“많군.”

“마도 연합의 영토가 넓고 황량한 지역이 많아 이렇게 숨어 지낼 수 있었습니다. 가끔 위험을 무릅쓴 상단이 여기까지 들어오고는 하지요. 그들이 주된 수입원입니다.”

크루트가 설명하였다.

그는 이곳을 사실상 근거지로 두었고, 종종 근처 도시에서 식량을 사서 나른다고 했다. 용병들을 동원해서 말이다.

이곳의 촌장이 걸어 나왔다.

60대 초반으로 접어드는 노인 같았다.

“어서 오십시오. 먼 길을 오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참으로 대단합니다. 이렇게 살아가고 계셨군요.”

“언젠가는 여신께서 구원해 주실 거라 믿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여신이 선택하신 분입니다. 저희를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음?”

“와아아아!”

내가 개입할 틈도 없이 크루트가 그렇게 말을 해 버렸다.

정확하게 이들을 구한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나는 구원자가 되어 버렸다.

마을 사람들은 내가 구원자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멀리서 한 남자가 달려왔는데, 곰 같은 덩치를 지녔다.

“자경대장 루터스라고 합니다!”

“당신이 대장입니까?”

“그렇습니다, 성인이시여!”

“부담스러운 예는 됐고, 그냥 발렌이라고 부르시죠.”

“그리하겠습니다, 발렌 님!”

“총 병력이 얼마나 됩니까?”

“가용 인원은 1,500명 정도 됩니다.”

“총 주민들의 숫자는요?”

“저희들을 포함하여 4천 명가량입니다.”

꽤 많은 숫자다.

이런 사람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면 어마어마한 숫자를 이룰 것이다.

“그것참.”

사실 꽤나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위업을 쌓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그냥 무시를 할 수는 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북상해야 하는 상황이기도 했고 말이다.

“그 많은 숫자를 데리고 북상한다면.”

“안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간절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여기서 그들이 실망하거나 절망한다면 카르마가 깎여 나갈 것이다.

난 어쩔 수 없이 상황을 설명했다.

“저는 차원의 틈을 막기 위해 가는 중입니다.”

“차원의 틈이요?”

사람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였다.

최대한 빠르게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이 많은 인원이 움직이면 꽤 느려질 수도 있었다. 한시라도 차원의 틈을 막아야 하는데 말이다.

“저희도 한 손 거들겠습니다.”

촌장과 자경대장이 동시에 바닥에 엎드렸다.

과연 이 많은 인원을 이끌고 얼마나 빨리 움직일 수 있을까.

사람들은 군대의 보호를 받으며 움직여야 한다.

나를 크루트를 바라봤다.

“크루트 님, 노약자들을 모두 데려갈 수는 없습니다.”

“노인들은 두고 가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니 젊은 사람들이라도 데려가 주십시오! 저희들은 살 만큼 살았습니다!”

노인들이 무릎을 꿇었다.

과연 그걸 여신이 용납할까.

여기서 여신에게 의견을 구할 수도 없었다. 칼도나라면 자신의 백성이 이곳에 고립되어 있는 것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할 것이다.

여신의 의견은 무시하려고 하였는데, 하늘이 작게 열렸다.

여신도 이곳이 적진이라는 것을 의식한 듯 희미한 신성력을 내비쳤을 뿐이다.

-발렌 님!

“칼도나, 어쩐 일이야?”

-그분들을 구원해 주세요!

“그게 힘들다는 것은 너도 알지?”

나도 모르게 여신에게 반말이 나왔다.

사람들은 멍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들을 무시한 채 말했다.

칼도나 역시 현재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는 듯했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어요. 부디 위대한 위업을 달성해 주세요!

“차원의 균열을 막는 것이 급하다면서.”

-그렇기는 하지만 그건 시간이 꽤 있어요. 이렇게 된 김에 구원을 해 주실 수는 없나요?

“노인들은?”

-그들 역시 제 백성들이에요.

“끄응.”

여신이 이렇게 나오면 더 이상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위대한 업을 운운하는데 노인들까지 무사하게 데려가려면 어마어마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나도 모르겠다. 그럼 가면서 체력이 약해서 죽는 사람들은 어쩔 수가 없어.”

-거기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알겠다.”

-감사합니다! 은혜는 잊지 않을게요!

칼도나도 착각하고 있는 것이, 나는 그저 카르마를 쌓기 위해 선행을 하는 것뿐이었다. 칼도나의 자식들을 내가 구원할 의무는 없었다.

주민들은 칼도나의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여신께서 우리들을 인도하신다!”

“와아아아!”

사람들은 환호성을 내질렀다.

지금까지 오랜 세월 이곳에 고립되어 있었고, 여신에게 기도를 하며 버티고 있었다. 언젠가는 구원될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어쩌다 보니 내가 구원자가 될 판이었지만 말이다.

“후우, 그럼 앞으로 반말을 하겠다. 상관없겠지? 내가 사령관이니까.”

“뜻대로 하십시오, 성인이시여!”

“발렌이라고 불러라.”

“네, 발렌 님!”

“지휘관 회의를 하겠다. 자경대의 지휘관 급 사람들을 모으도록 해라.”

“예!”

그들은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

한눈에 보아도 자경대는 강인해 보였다. 살아남기 위해 훈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면 수만의 대군으로 불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마도 연합 내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지휘관 회의를 모집했다.

하나같이 강인한 인상과 체격이었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무장 상태였다.

짐승의 가죽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무기들도 전부 조악했다.

이 정도 무장 상태로는 대업을 도모할 수가 없었다.

“이거 문제인데. 무장 상태가 좋지 않아.”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크루트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오랫동안 첩보 활동을 해 왔다. 그러니 어째서 사람들의 무장 상태가 이 모양인지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이유는 짐작할 수 있다.

그들로서는 살아남는 것만 해도 대단한 모험이었을 것이다. 무장까지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고 말이다.

“그렇다고 제국에서 보급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결국에는 현지에서 조달을 해야 한다는 뜻인데. 돈은 있나?”

“식량을 대기에도 빠듯합니다. 가끔 산적질을 해서 거두는 수익은 모조리 식량을 구입하는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 크루트 님의 도움을 받아서 말입니다.”

지경대장 루터스가 그렇게 설명했다.

이가 없다면 잇몸으로도 씹어야 하는 상황이다. 차선책이 있을 것이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전쟁 중이지. 그렇다면 틀림없이 보급품이 전방으로 이동되고 있을 거야. 보급품을 털면 가능성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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