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3화
죽음의 신전 (2)
버블 우주론은 현대 우주론에 존재하는 이론 중 하나다.
흔히 현대에서 우주론을 논할 때, 무한 우주론, 확장 우주론, 버블 우주론이 대표적이다.
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한 우주론, 계속해서 우주가 팽창한다는 확장 우주론, 그리고 여러 우주들이 존재하다는 버블 우주론으로 나뉜다.
그에 대해서는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는데, 사실 거기까지는 인간이 알 수 없는 영역이기는 하다.
현대에서 유력했던 우주론은 우주가 확장한다는 사실이며, 어느 부분에 이르러서는 확장을 멈추고 수축을 한다고 했다.
거기에 비춰 보면 수많은 우주들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한다는 것이 정설일 것이다.
사실 지금 우주에 대해 논하는 것은 실비아와 베르체에게 있어 매우 신기한 이론일지도 몰랐다.
아예 이곳은 우주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오래전 지구의 인간들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의 사람들도 세상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고 생각했다.
대륙을 중심으로 별들이 회전을 하며 심지어는 두 개의 태양조차 대륙을 중심으로 돈다고 여겼다.
지구와는 다르게 이곳은 신성력이 존재하였으며, 신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기도 하는 세계였기에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것 같다.
여기에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 그리고 수많은 우주가 있다는 사실은 페르소 대륙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베르체나 실비아는 나와 함께하면서 고정 관념이 많이 사라진 상태다.
우주에 대한 개념도 어느 정도 잡혀 있었다.
실비아는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렇다면 우주는 일종의 막으로 싸여 있는 건가요?”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거품 우주라면 이런 우주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거잖아요?”
“그래. 우리가 거품을 내려다보듯이 절대신은 먼 곳에서 우주들을 관조할지도 모르지.”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러니까 신의 영역이라 불리는 거다.”
“아…….”
실비아는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인상을 썼다.
우주의 원리에 대해 이해하려다가는 미쳐 버릴 수도 있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기로 했다.
“어쨌든 그렇다는 거야. 이건 신의 영역이니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는 말도록 해. 언젠가 네가 신의 경지에 이른다면 그때에나 다룰까.”
“제, 제가요?”
“위대한 업을 쌓으면 신이 될 수도 있는 일이지.”
나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실비아가 신의 경지에 오를 수도 있는 일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위업을 쌓아야 하는데 인류를 구하는 정도의 업이 아니라면 신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사실 요원했다.
베르체가 말했다.
“이번 기회에 발렌 님이 깨달음을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 우주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을 세웠으니까. 확인하기는 처음이다.”
“우주의 정확한 원리에 대해서 알게 되실 날이 올 겁니다.”
“절대신의 경지에 오르지 않고서야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인간이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확률로 여러 우주의 무수한 신들 중 하나가 간신히 절대신의 경지에 오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절대신은 오직 한 명일 수도 있었다.
신들의 위에 있는 신.
유일신이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이 내 가설이다.
우리는 조금 더 주변을 둘러보기로 하였다.
신전의 중심에는 거대한 재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재단에는 악마의 조각상 하나가 지키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가디언이 아닐까 싶다.
재단 뒤에 검은 공간이 일렁거리는 것으로 봐서는 가디언이 초장거리 게이트를 지키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저건 뭘까요?”
“악마의 석상이기는 한데……. 고대의 악마가 아닐까 한다.”
“고대의 악마라고요!?”
실비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현존하는 악마가 아닌 고대의 악마. 신화시대에 만들어졌던 악마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쩌저저적!
아니나 다를까, 석상이 깨지기 시작했다.
실비아와 베르체는 곧바로 전투 준비를 했다.
석상이 깨져 나가고 꽤나 유려한 모습을 한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상당한 미남자였다.
이마에 난 뿔과 날개를 제외하면 인간이라고 봐도 무방했는데, 그는 나를 보자마자 여성체로 변했다.
스스슷!
이번에는 매력적인 여성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이게 뭘까.
“주인님을 배알합니다.”
“내가 왜 네 주인인데?”
“저주를 풀어 주셨으니 응당 주인님으로 모시는 것이죠. 그렇게 설계되어 있기도 합니다.”
“나는 천신인데?”
“상관없습니다.”
“상관이 없다고?”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데스 나이트는 그렇다고 치고 악마까지 노예로 만들어 버리면 이건 정체성에 혼란을 주는 일이다.
천신의 위를 받았는데 어떻게 악마를 거느릴 수 있다는 걸까.
혹시 마귀나 천사령처럼 변환이 가능한 걸까?
“천사가 된다는 거냐?”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지…….”
“너는 악마다.”
“그렇습니다.”
“천사와는 반대되는 개념이지.”
“천신도 악마들을 거느립니다만…….”
“뭐라고?”
“천신과 마신은 그저 개인적인 성향이 아닙니까? 언제라도 변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우리들은 눈을 부릅떴다. 말도 되지 않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신의 의지에 따라 선과 악이 변한다는 말일까.
그렇다면 필요에 따라 천신이 되기도 하고, 마신이 되기도 한다는 뜻이었는데,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내용이 완전히 뒤집어지는 충격적인 말이었다.
악마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원래 선과 악은 하나였습니다.”
“선과 악이 하나였다고?”
“마음먹기에 따라 선과 악이 나뉘는 것이 순리 아닐까요?”
“허어, 이거 충격적인데.”
“제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세상이 많이 변한 모양이네요.”
악마는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너는 중성이냐?”
“중성이라기보다는 의지에 따라 성별을 달리할 수 있는 것뿐이죠. 영체인 저희에게 남녀의 구분은 의미가 없어요. 그저 주인님의 취향에 따라 남녀를 구분하는 것뿐.”
“험험.”
-쯧쯧, 여자 좋아하는 건 어쩔 수가 없나 보네요.
‘나도 남자니까.’
에르나는 혀를 찼지만, 이건 개인적인 문제일 뿐이다.
“굳이 내 노예가 되겠다면 남자보다는 여자가 낫기는 하지.”
“마음에 드시나요?”
“그보다 궁금한 것이 있다.”
“말씀해 주세요.”
“나를 주인으로 모실 수 있게 설계가 되었다는 건 무슨 뜻이지?”
“신들의 전쟁에 상대 신을 죽이면 해당 신이 가지고 있던 권속들이 자동으로 귀속되었어요.”
“허어, 그랬었나?”
“중간계에서 활동하시는 신은 당신밖에 없으니 자동으로 저도 귀속이 된 거죠.”
“그러냐.”
“그러니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료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 신들의 전쟁이었어요.”
고대의 악마에게서 놀라운 이야기들이 줄줄이 흘러나왔다.
그렇다면 천사와 악마가 연합하는 것도 흔한 일이었을 것이다. 고대에는 그저 선과 악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었다. 천신과 마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천신은 마신이 되기도 했고, 그 반대가 되기도 했다.
이건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버블 우주론부터 선과 악의 본질까지.
단순히 죽음의 신전에 방문했다가 어마어마한 힌트들을 얻었다.
이건 추후 신격이 승급할 때에 중요한 깨달음으로 작용하게 될 터였다.
“나와 연결이 된 것으로 안다.”
“그렇습니다, 주인님.”
“이곳에는 두 명의 신이 있었다. 천신 칼도나와 마신 벨루가가 그들이지. 그들을 알고 있나?”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신화시대의 전쟁에서도 가장 강력한 신들 중 하나였으니까요. 그분들이 최후의 승자가 되리라고 많은 신들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다만 서로 성향이 명확하여 연합할 수는 없었죠.”
“선과 악이 뚜렷했다는 건가.”
“그렇습니다.”
“전쟁 없이 살 수는 없나?”
“선과 악이라는 것은 결국 자신의 신념에 따른 일입니다. 둘 중 하나가 의지를 꺾지 않는 이상은 타협이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건가.”
“예.”
“알겠다. 잠시 물러나 있어라.”
“주인님의 뜻대로.”
잠시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우리들은 말없이 주저앉아 눈을 감았다.
각자 깨달음을 얻었을 것이고 그런 깨달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의 신전 재단 앞.
나는 정좌를 한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하면서 에르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에르나, 알고 있었어?’
-저도 충격을 좀 받았어요.
‘그래? 어째서?’
-우주론이라든지, 선과 악의 대립에 대해 정확하게는 이해를 못 했거든요. 저도 신이 된 지 그리 오래된 것은 아니라서요.
‘선과 악이 하나라는 것이 좀 충격이다.’
-저는 우주론이 충격인데요.
‘이 밖에도 우리가 모르는 사실이 더 있을 것 같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앞으로는 깨달음의 영역인가.’
-그렇지 않을까요?
깨달음을 정리하고 받아들였다.
지금까지는 확실한 이론으로 정립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들은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다중 우주, 혹은 버블 우주론이 정설이라는 것을 인정해야겠군. 여기에 선과 악이라는 것은 결국 선택의 문제라는 사실까지도.”
띠링!
[위대한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30,000,000 카르마가 적립됩니다.]
“……!”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우주의 원리에 대해 이해를 하자 3천만 카르마가 적립됐다.
지금까지 카르마를 적립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어떤 업적을 세워도 백만 이상의 카르마를 적립하기가 어려웠는데 깨달음 하나로 카르마의 3할을 채웠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이야기일까.
“허어.”
-축하해요!
“이게 말이 되는 거야?”
-그래서 깨달음이 중요한 거예요.
앞으로의 방향을 약간 수정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물론 궁극적으로 마도 연합은 멸망을 해야 한다. 마도 연합이 멸망하면 어마어마한 카르마가 주어질 것은 뻔한 일이다.
전쟁과 더불어 절대신의 흔적을 쫓는다면 이번 생 안에 육체를 벗는 것이 가능할지 모른다.
이번 생에 과업을 완수하지 못한다면 영원한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몰랐다.
어쩌면 마신이 칼도나를 죽이고 나까지 죽여 버릴지도 모르는 일.
“깨달음에 주력해야겠군.”
-저도 그렇게는 생각을 하지만 과연 그것이 언제 가능할지는 모르겠어요. 원래 깨달음이라는 것이 하루 이틀 안에 되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절대신의 유적을 독식하겠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