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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후 먼치킨-24화 (24/154)

24화 집이 최고야

“언니 미안한데 나 몸에 힘이 전혀 없어서…… 먼저 좀 씻을게.”

“응? 어어, 괜찮아. 쉬고 있어. 오늘 정말 미안해.”

“아냐. 그게 왜 언니 잘못이야. 공격한 놈들이 나쁜 거지. 그리고 애초에 언니를 부른 게 우리잖아. 사과를 하려면 내 쪽에서 해야지.”

“그렇게 말해 주면 고맙긴 한데. 후우, 그나저나 수아야 진우. 그 사람은 대체 정체가…… 아니다. 고생했어, 수아야.”

확실히 필요에 의해서 부른 것은 한국 측이었으나 공략팀 멤버를 확인하고 결정하는 것은 유리 자이스, 그녀에게 주어진 권한이었다.

분명 이중에 삼중까지 걸쳐서 확인했거늘 결과물은 암살당할뻔한 현실뿐.

피하는 것도, 막을 수도 없는 화살을 보았을 때 유리는 죽음을 직감했다.

그 와중에도 수아만큼은 살려 보내려고 했던 의지가 있었으나 위험을 막아 낸 인물은 실로 어이가 없게도 정예 멤버의 탱커들이 아닌.

E등급 헌터에 불과한 김진우였다.

‘대체 정체가 뭘까?’

셀 수 없이 많은 땅의 하급 정령, 노움들과 어우러져 활동하는 관계.

그때까지만 해도 제법 땅의 친화력을 타고난 인간 정도라고 생각했다.

허나 눈으로 직접 마주한 엄청난 힘.

그런 사람의 직업이 농부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자신과 수아의 목숨을 동시에 노렸던 화살.

화살 속에 겹겹이 빛을 발하며 담겨 있던 마법들의 숫자는 가히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런 물품이 제작이 가능한 것인지 의아할 정도.

과연 저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이가 전 세계에 몇 명이나 존재할까?

미국의 제일가는 방패, 데이브 정도 외에는 온전히 막아 낼 수 있는 이들을 감히 꼽을 수도 없을 지경.

헌데 그러한 공격을 농부라는 김진우는 너무나도 간단히 막아 냈다.

‘그 거대한 힘은…….’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태산 같던 바위의 손.

유리 자이스.

중급 정령까지 다룰 수 있는 친화력을 지닌 그녀는 확실하게 보았다.

‘분명 그때 느꼈던 것과 비슷했어.’

정령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태산 같은 거대한 힘을 지닌 존재.

중급 정령인 운다이르와의 계약 과정에서 정령계에 잠시 들렸던 그녀는 그와 비슷한 힘을 지닌 존재를 알고 있었다.

‘정령왕.’

속성은 다를지라도 품고 있는 힘의 크기를 보면 비교 대상은 오직 정령왕 뿐이다.

“후우…….”

전 세계를 통틀어 스스로가 ‘정령왕과 가장 가까운 이가 될 자’라고 생각했던 것.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오만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유리 자이스가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했었다니.

보통의 범인이었더라면 그 압도적인 힘과 잠재력의 차이에 무너져내릴 테지만 유리 자이스는 아니었다.

“과연, 이러니 수아가 그렇게 관심을 가질 만했구나.”

참을 수 없이 샘솟는 호기심과 그 태산 같은 바위의 손만큼이나 물의 파도를 일으키고자 하는 욕구.

본래 1인자의 자리에 앉아 있을 때보다 2인자라는 것을 인지했을 때.

눈앞에 따라잡아야 할 목적이 존재할 때야말로 사람은 더욱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입가에 맺히는 부드러운 미소.

다만, 그 전에 처리해야 할 문제는 남아 있었으니,

“네, 톰 아저씨. 마법 처리된 화살의 유통 경로에 대한 조사 좀 부탁드릴게요. 아마 음지의 암시장을 통해서 유통되었을 확률이 높아 보여요. 예, 흑마법 쪽으로도 연관이 있어 보이니 몸조심하시고요.”

겁도 없이 자신은 물론이요,

수아의 목숨까지 노린 인물.

미국의 거대 가문인 자이스 가를 노린 자들을 결코 가만히 두고 볼 유리가 아니었다.

* * *

“아이고, 두야.”

목적이 있었기에 간만에 장거리로 진행한 운전.

서울까지 오가는 거리도 거리지만 진우의 골을 지끈거리게 하는 것은 단순히 장거리 운전의 피로 때문만은 아니다.

단 한 순간 만에 진우의 몸속에 보유하고 있던 마나를 끌어낸 미지의 힘.

덩굴 몇 개를 꺼낼 때나, 기름을 코팅할 때는 몰랐는데 단숨에 마나가 쪽 빨리는 느낌은 썩 기분 좋다고는 할 수가 없다.

“이래서 귀족들이 만성 피로에 휘둘리는 건가?”

마치 마른오징어에서 물을 쥐어짜듯.

탈탈 털어 낸 존재.

그래도 덕분에 목숨은 건졌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너희들 자는 거 아니지?”

- 인간. 바위는 예의를 안다.

- 운전자가 있는데 졸 정도로 매너 없진 않다고.

- Zzz…….

“그럼 저 친구는 뭔데?”

- 원래 바위는 가끔 흙과 하나가 되기도 한다.

“아, 그러셔?”

참 대단한 매너 납셨다.

그나저나,

“아까 너희들 작은 바위? 태초의 흙? 이라고 했던 건 무슨 뜻이냐.”

- 말 그대로다. 우리는 땅 그 자체. 태초의 흙을 이루신 분에게서 흩어진 작은 부스러기 같은 거라고 보면 된다.

“그럼 그때 소환된 건 역시 보통 땅의 정령은 아니라는 거지?”

- 인간. 말조심해라. 그분은 위대한 태초의 흙 님이시다.

- 그분에게 반말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오로지 대지모신 님 뿐이라고.

“……그래. 위대한 태초의 흙 님이시지.”

진우에게도 어느 정도의 눈치는 있다.

‘태초의 흙’이라던가, 자신의 마나를 끌어내어서 형성화 된 거석의 파편이라던가.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때의 거대한 바위가 누구인지 어림짐작은 할 수 있다.

‘아마 땅의 정령왕이겠지?’

땅 속성을 지니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격이 다른 힘을 지닌 존재.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직접 마주한 것은 아닌 탓에 신용도가 오르지 않았다는 것 정도랄까?

하급이 1, 중급이 3이었으니 정령왕이면 두 자릿수 정도는 기대할 만할 터.

뭐, 그렇다곤 해도 거기에 목멜 생각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 집이다!

- 이거 이거, 우리가 손봐 줄 게 많구만, 많아.

- 바위는 일한다!

진우는 과학자도, 탐구자도, 정령사도 아닌 귀농을 한 농부 드루이드다.

지금은 미지의 힘인 땅의 정령왕에 대해서 알아보는 것보다도 앞에 밀린 일들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다.

토도도돗-

“그래, 너도 집이 좋지?”

꺄아! 꺄아아아!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출발할 때도 아침이었는데, 돌아온 지금도 아침이다.

거진 하루가 날아간 상황.

쓰레기도 치우고 해외의 인맥을 만나고, 목적으로 했던 프로그맨의 혈액을 대량으로, 그것도 질 좋은 것으로 확보하는 등.

이래저래 많은 일이 있긴 했지만, 농부에게는 모름지기 집이 최고인 법.

물론 순전히 농지와 작물 때문만은 아니다.

꽈악! 꽈아아악!(아빠다! 아빠가 왔다!)

꾸와아아아앙!(아빠!)

푸드드드득-!

뽀얀 백설기 같은 털들을 흩날리며 날아오는 10마리의 팜오리들.

하루 못 봤을 뿐인데 녀석들은 진우의 곁에서 빙글빙글 도는 오리 결계를 펼치며 반갑게 맞이한다.

“이 맛에 애완동물을 키우는 거구나.”

비록 피를 나눈 가족도, 형제도 없지만, 집에 돌아오면 자신을 반겨 주는, 든든하기 짝이 없는 오리들.

이런 환호를 받았는데 진우도 가만히 넘어갈 정도로 경위가 없는 사람은 아니올시다.

“자, 싱싱한 벌레가 왔어요.”

꾸와아아아악!

꾸와앙-!!!

진우가 트렁크에서 꺼내 든 포대.

그 속에 담긴 것은 팜오리들이 잡아먹는 해충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크기를 자랑하는 밀웜들이다.

꿈틀꿈틀-

영양이 가득하다는 것을 상징이라도 하듯.

도톰하게 살이 오른 상태로 꿈틀거리는 거대한 특식.

솔직한 말로 인간인 진우의 시점에서는 벌레는 결코 입에 대고 싶지 않은 괴식의 영역일 테지만…….

팜오리들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최고급 스테이크요, 고양이의 캣닢이나 다름없다.

꾸와아아아앙!

꾸왁, 꾸와아악!

푸드드드득!

환장의 헤드뱅잉과 함께 밀웜들을 꿀떡꿀떡 집어삼키는 팜오리들.

지금 이 순간만큼은 S등급 헌터와 비교해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사냥꾼이라 할 수 있을 터.

이래저래 팜오리들을 위해서 제 몸을 희생한 밀웜들의 안식을 빌어 주는 것도 잠시.

식사를 하는 동안 농지를 확인한 진우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예상은 했지만…….”

*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 : 자연과 관련된 것이 더 건강하게, 더 빠르게 자랍니다. 한 번 적용된 이후 거리 유무에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적용됩니다.

거리 상관없이 한 번 적용된 이후부터는 꾸준히 적용되는 진우의 특성.

싹을 틔우고 보기 좋게 익어가고 있는 감자와 배추들.

조금만 더 있으면 수확을 해도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상품성을 자랑하고 있는 상황.

어디 그뿐만이겠는가? 더 건강하고, 더 빠르게 성장이 적용되고 있는 것은 그저 작물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팜오리 무정란(희귀) 13개]

* 분류 : 소모품, 재료

* 사용 조건 : 없음

* 효과 : 120분 동안 체력+3

- 영양이 가득 담긴 팜오리의 알입니다. 풍부한 단백질을 통해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오랜 시간에 걸쳐 제거해 줍니다.

[온전한 팜오리털(희귀) 28개]

* 분류 : 재료

* 사용 조건 : 없음

- 탁월한 보온 성능을 자랑하는 팜오리의 털입니다. 물에 쉽게 젖지 않으며, 바람의 성질을 타고났습니다.

실력 있는 일꾼들인 노움들이 손수 지은 건축물인 팜오리 축사.

그 한 켠에 놓인 오리알과 부드러운 모양을 갖춘 오리털들.

그것들은 하나같이 ‘아이템화’된 농작물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 내놓아도 부족할 것 없는 ‘상품’ 그 자체.

허나 이 앞에 있는 것들보다도 더욱 진우를 기쁘게 하는 것은 따로 있었으니,

[팜오리 유정란(희귀) 2개]

그것은 다름 아닌 따스함을 품고 있는 알.

무정란들의 숫자에 비하면 적은 숫자지만 새로운 생명이 깃든 것만 해도 어디인가?

“역시 내 새끼들. 팜오리가 최고구나.”

꾸와아아앙!

쪼꼬미 시절부터 든든해진 지금까지.

농사에 큰 도움이 되는 10마리의 팜오리들.

이제는 응애들이었던 녀석들이 부모가 되어 가고,

“허허허.”

진우는 아빠에서 엄마로, 나아가서는 이제 추후 태어날 아기 오리들의 할아버지가 되었다.

* * *

새로운 응애 오리들의 탄생을 기대하는 것도, 먹기 좋게 익어 가는 농작물도 좋지만, 모름지기 일 처리에는 순서가 중요한 법.

발전을 위해서는 농작물의 재배만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약초 재배 쪽으로도 시선을 돌려야 한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기껏 프로그맨들의 혈액도 구해 오지 않았던가?

아, 물론 그 전에…….

“브락시온 님. 혹시 특제 오리 영양제만 따로 구매 가능할까요?”

[음? 값만 치른다면야 불가능할 것도 없지. 괜찮든?]

“그럼요. 두말하면 잔소리죠.”

[껄껄! 그럼. 누구 솜씨인데. 내 갓 채집한 신선한 약초들로 제조해서 올려 주마.]

“감사합니다.”

기존의 팜오리들에게도 먹였던 특제 오리 영양제.

자잘한 병마나 독에 대한 면역성의 대폭 상승은 물론이요, 체력 능력치 3의 영구 상승까지.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조류에 살고 조류에 죽는 조류 낭만 드루이드, 브락시온의 특제품.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다고.

앞으로 태어날 새로운 아기 팜오리들에게도 하나도 빠짐없이 먹여 줘야 나중에 차별 대우받았다는 소리를 안 들을 것 아닌가?

가뜩이나 ‘야생을 받아들여라’로 인해서 소통도 되는 마당에 말이다.

“나중에 자식한테 쓴소리 듣는 것만큼 무서운 게 또 없다니까.”

이장님께서 들었다면 결혼도 안 한 총각놈이 참 별소리 다 한다고 투덜댈 모습이 눈에 훤히 보이는 자식 걱정.

어찌 되었든 아기들의 문제는 해결된지라 진우는 곧장 씨앗을 꺼내 들었다.

꺄아! 꺄아아아!(선물!)

“고마워 약초맨.”

[핑크 인시리움의 씨앗(유니크) 3개]

* 분류 : 재료

* 사용 조건 : 천년 묵은 핑크 인시리움이 인정한 대상

- 심으면 꽃과 열매가 맺히는 핑크 인시리움의 씨앗입니다. 본래 인내의 숲에서만 생장이 가능하나 천년 묵은 특별한 존재가 곁에 있을 경우 생육이 가능해집니다. 인정받지 못한 자가 땅에 심을 경우 썩게 되며 땅을 죽게 만듭니다.

※ 해당 설명은 인정받지 못한 자에게는 ‘???’로 표시됩니다.

※ 당신은 인정받았습니다.

산타클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호빵X의 의지를 이은 약초맨 덕분에 어느덧 2개가 더 추가되어 3개가 된 약초 씨앗.

뭐, 인정받지 못한 자가 심을 경우 땅을 썩게 만들어 죽게 만든다는 등.

흉흉하기 그지없는 설명문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난 괜찮은 거 맞지, 천묵아?”

꺄아! 꺄아아아!(엄마! 엄마!)

“……엄마가 아니라 아빠라니까 녀석도 참.”

나름 천년 묵은 약초님에게 ‘엄마’로서 인정받은 몸.

그래도 만약을 위해서 혹여라도 작물이나 팜오리들에게 영향이 갈까.

미리 멀찍한 위치에 터를 잡아 둔 곳에 진우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땅속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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