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나비와 사슴
새로운 식구.
농장에 추가된 전설 등급의 두 가축인 버섯 녹각족 뮤린과 신비의 나비 시오.
알부터 새끼까지.
처음부터 시작했던 팜오리 때와는 달리 구매와 동시에 성체로 등장한 둘은 구매 즉시 농장에 그 영향력을 펼쳤다.
부웅-
사박 사바박-
농장 곳곳을 누비며 신비한 색깔을 뽐내는 나비 시오.
시오의 날갯짓과 함께 흰색 빛깔의 가루 하나가 스르르 떨어져서 진우의 손에 안착한다.
[시오의 수면 비늘 가루(희귀)]
* 분류 : 소모품, 재료
* 사용 조건 : 없음
* 효과 : 흡입 및 노출될 시 의식이 흐릿해집니다.
- 신비의 나비 시오의 날개에 쌓여 있던 비늘 가루입니다. 수면의 힘을 품고 있으며, 노출된 대상을 일시적으로 잠에 빠트립니다. 특별한 부작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단, 저항력이 높은 대상에게는 짧은 시간만 적용되며, 잠에 빠진 대상에게 일정 충격이 가해질 경우 잠에서 깨어납니다.
※ 수면 상태의 대상에게 첫 공격 시 데미지 200% 상승
당장 경매장에 내놔도 제법 쏠쏠한 가격에 팔릴 법한 비늘 가루.
수면 효과는 얼핏 보면 전투 쪽과는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진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전략적으로도 활용이 가능하겠는데?”
고블린 부락 같은 F등급 게이트에서는 쓸 일이 없겠지만 그보다 몇 단계 높은 상위 게이트에서는 골치가 꽤나 아픈 몬스터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그런 놈들의 움직임을 잠깐이나마 묶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불과 1분.
아니, 하다못해 10초, 5초라는 짧은 시간이라고 해도 실로 엄청난 이점이 될 터.
또한 그 밖에도 전투용으로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부작용이 존재하지 않다면 의학적으로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지.’
유독 체력이나 마력 능력치가 높은 각성자도 그렇지만 세상에는 아주 극소수긴 해도 수면제에 면역이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물론 ‘일정 충격’이 가해지면 잠에서 깨어나기에 큰 수술 같은 행위는 힘들겠지만, 불면증에 시달리는 이들에게 부작용 없이 잠들 수 있는 것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부웅~(인간이여. 이것 말고도 나에게는 재주가 많다.)
“기대할게.”
거기에다가 시오가 흩뿌리는 인분의 종류는 수면 가루만이 끝이 아니다.
‘다양한 효과’라고 했던 만큼 추가로 더 존재할 가능성이 큰 비늘 가루의 효과들.
하물며 그렇게 생산되는 인분 외에 일단 시오는 명색이 나비다.
농사에 있어서 꿀벌과 함께 대표적인 익충으로 분류되는 이유.
그것은 다름 아닌 꽃가루를 통해 수분을 돕는 충매화 활동 때문이다.
뭐, 사회성 곤충인 꿀벌처럼 집단을 이루지는 않는 1충 개체일 뿐이지만 시오는 다른 무엇도 아닌 ‘전설’ 등급의 나비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활짝-
사르르르르-
만개한 달빛처럼 수수하면서도 황홀한 색감.
그 빛을 바라본 인근의 나비들은 홀린 듯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아마도 녀석이 보유한 스킬 중 하나인 ‘나비의 유혹’의 효과일 터.
“무슨 군단을 보는 것 같네.”
이런 걸 보고 나비 여왕이라고 하는 걸까?
“허 참. 신기하네. 시골이 이래서 좋은 건가?”
그나저나 시골인지라 도시보다 나비가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또 몰랐다.
지금 당장에야 꽃을 매개로 주가 되는 작물을 기르지 않고 있지만 사람 일이라는 게 모르는 법.
업적 때문에라도 진우가 추가로 기를 작물로 딸기나 멜론 같은 작물을 키울 수도 있지 않겠는가?
부웅- 부우웅-(후훗. 어떠한가 인간?)
“엄청나! 굉장한데!”
부르르르~(후후훗. 칭찬. 고맙도다.)
귓가로 파고드는 시오의 음성.
전설 등급답다고 해야 할까?
놀랍게도 이것은 그저 진우가 보유한 소통 능력인 ‘야생을 받아들여라’의 효과로 인한 것뿐만이 아니다.
시오가 보유한 스킬 중 대표 격인 ‘동화’.
인격체와 자신을 연결시키는 힘을 지닌 녀석은 스스로 소통이 가능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말 그대로 진우와의 일대일 대화뿐만이 아닌.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다른 이들과의 연결을 통해서도 대화가 가능한 나비라는 뜻.
당연한 말이지만 소통이 자유롭다는 것의 장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당장에 노움들만 하더라도 비밀리에 정진식 패거리들의 행동을 미리 체크하는 등 정찰병으로서의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않았던가?
다만 노움들은 어디까지나 한계가 명확했다.
일단 기본적으로 진우 외에도 정수아나 유리 자이스와 같이 정령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된 이들이나 마력이 높은 이들 등에게 목격될 수 있다는 점과 이동의 한계.
반면에 나비인 시오는 비행도 가능한지라 날아다닐 수 있고 일단 동화로 연결만 된다면 일정 거리까지는 원격으로 정찰이 가능하다는 장점도 있다.
한마디로 날아다니는 원격 CCTV인 셈.
- 인간. 또 눈 그렇게 뜬다.
“아하하. 아니야. 내가 언제 그랬다고.”
뭐, 그렇다고 해서 노움이 쓸모가 없어졌다는 소리는 결코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땅의 조각가로서 웬만한 건축가들과 견주더라도 전혀 부족함이 없는 실력을 갖춘 숙련된 일꾼들.
거기에다가 이번 전투에서도 진우의 목숨을 여러 번 살려 준 은인 같은 녀석들이기도 하다.
기름 코팅도, 32의 체력 수치가 있다 해도 노움들이 펼쳐 준 바위 갑옷의 성능은 직접 사용해 본 진우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허나 이번에 농장에 새 식구로 들어온 것은 나비인 시오 한 마리로 끝이 아니다.
“푸흥! 아무리 그래도 나의 늠름했던 뿔과 몸에 좋은 버섯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오, 주군.”
진우의 곁으로 다가오는 한 마리의 수사슴.
아니, 이걸 한 마리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을까?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인.
그러나 머리에 달려 있었던 2개의 거대한 뿔의 흔적과 근육질의 터질듯한 몸매만 봐도 이미 인간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설 지경이다.
- 나! 나! 저 생명체 봤다! 원피X에서 봤다!
- 토니토니……!
“응, 아니야.”
어허, 큰일 날 소리를.
아무튼 간에 인간의 말을 잘도 하고 있는 녀석은 ‘수인화’를 한 버섯 녹각족 뮤린이다.
근육질로 생긴 것과는 달리 상당히 지능이 높은 듯.
하루 만에 한국어를 완벽한 실력은 아니어도 제법 어느 정도 습득했다.
“자, 주군. 이 버섯이 몸에 좋다. 이건 잘 다려서 먹고, 이건 볶아서 먹으면 맛이 끝내준다. 둘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른다.”
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몸에서 툭 하고 버섯을 떼서 건네는 뮤린.
힐끗 확인해 본 버섯의 효과는 시오의 인분과 비교해도 상당히 쏠쏠한 편이다.
식용, 약용 버섯부터 시작해서 독버섯까지.
가지각색으로 존재하는 것들.
[해골 광대버섯(유니크)]
* 분류 : 소모품, 재료
* 사용 조건 : 체력 60이상
* 효과 : 섭취 시 사망합니다.
- 해골 무늬가 새겨져 있는 광대버섯입니다. 생긴 것만으로도 보면 알 수 있듯. 일정 저항력이 있지 않는 대상이 먹는 즉시 사망합니다. 안락한 죽음을 원한다면 드셔 보세요.
개중에서도 독버섯은 가챠 중에서도 가히 상등품.
그런데,
“……이걸 먹으라고?”
꺄아! 꺄아아!
생긴 것만으로도 먹으면 X될 것 같은 생김새.
굳이 천묵이가 말리지 않았더라도 볶아 먹는 일은 없었을 거다.
“아차차, 실수 실수. 이건 독버섯이니까 먹으면 안 된다.”
“방금은 볶아 먹으라며?”
둘이 먹다가 둘이 죽는 맛이라더니.
그 ‘죽음’이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짜였던 거냐?
“쳇…….”
“……너 방금 혀 찼니?”
“커커커! 사슴도 가끔은 실수를 하는 법이다. 사소한 일로 속 좁게 굴지 말게나, 주군.”
“사, 사소해? 독살이?”
“암! 당연히 사소하지. 내 뿔을 잘라간 것에 비하면 말이지.”
“실수라며?”
이 새끼 이거.
지금 주군을 암살하려고 했던 거 맞지? 그래도 내가 한 짓이 있으니 뭐라고 할 수도 없고, 것 참.
새삼 녀석을 구매하기 전에 표시되어 있던 글귀가 떠오른다.
* 90일 1회 전설 등급의 녹용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단, 녹용은 사슴에게 있어서 크나큰 자존심입니다. 채취 후 사이가 나빠질 수 있습니다. 관리는 재주껏 알아서 하세요. (남은 시간 89일 23시간 20분)
‘채취 후 사이가 나빠질 수 있다’와 ‘관리는 재주껏’이라는 표시.
당연한 말이지만 앞서 소개했던 녀석의 머리에 달려 있던 ‘뿔’은 실로 안타깝게도 ‘인간’의 추악한 욕심 속에 의해 달려 있는 것이 아닌 ‘달려 있었던’이 되어 버린 상태다.
“그래도 이걸 어떻게 참으라고.”
수사슴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녹용.
몸에 좋은 보약 하면 빠지지 않는 건강 약품 아니겠는가?
천묵이야 먹으면 죽어 버린다지만, 녹용은 90일이 지나면 다시 자라난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빨리 얻으면 얻을수록 효율이 더욱 좋다는 뜻.
잘 보여야 할 암사슴도 없겠다.
진우는 요정 찻집을 통해 온전하게 녹용을 채집하는 공략법을 익히고 과감하게 뮤린에게서 녹용을 수확했다.
그 결과,
[뮤린의 버섯 녹용(전설)]
* 분류 : 소모품, 재료
* 효과 : 약재에 특출난 부분만을 온전히 섭취할 시 체력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10만큼 상승합니다. (3회 한정)
- 뮤린의 버섯 녹용입니다. 약용 효과와 독성 효과가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고품질의 약재입니다. 기름 분골과 분골 부위는 약재로 섭취를 추천드리며, 그 아래는 무척 튼튼하여 따로 잘라 내어 무구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와우!”
어메이징! 말 그대로 대박!
모든 능력치가 오르는 게 아니라 ‘체력’만 상승한다는 점이 아쉽긴 해도 3회까지 적용되니 무려 30의 체력!
3회를 다 섭취하기 위해서는 90x3.
거진 1년에 가까운 기간이 좀 걸리긴 해도 가히 폭발적인 상승량.
거기에다가 그 이후부터는 판매를 통해서 수익 창출도 가능하고 약재로 쓸 분골 부위 외의 하대 부분은 따로 떼서 무구로 가공하여 써먹을 수도 있으니 당장의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
“……주군. 기대해라. 다음에는 내가 아주 맛있는 버섯을 만들어 오겠다.”
“진우 님의 말로 인해 참으려고 했더니만! 계속해서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암살 예고라니! 진우 님!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들짐승의 정신 교육은 저에게 맡기시지요.”
“커커커! 나약한 허수아비 따위. 뿔이 없어도 충분히 이기지.”
“그건 두고 보면 알겠지.”
부웅~ 부우웅~(싸움이야? 나도 끼어야지!)
꾸와아악?(왜 저러는 거야?)
꺄아! 꺄아아아!(재밌는 놀이!)
“어허, 둘 다 싸움 멈춰. 어디서 신성한 시골에서 싸움질이야! 너는 부추기지 말고.”
뭐, 덕분에 내부의 적.
암살 사슴을 곁에 두고 있는 심정이지만 이건 인간인 내가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 없을 터.
다만 그렇다고 해서 진우도 양심 없이 갈취만 할 생각은 결코 없다.
어찌 되었든 간에 뮤린도 팜오리나 다른 가축들과 마찬가지로 진우의 농장에 새로 들어온 식구이자 품어야 할 자식 같은 녀석 아니겠는가?
“뮤린아. 이리 와 봐. 이게 그렇게 뿔에 좋대.”
“푸흥!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자라나면 다시 잘라 갈 것 아닌가?”
“하하…….”
쯧. 이래서 눈치 빠른 사슴은 싫단 말이야.
아무튼 투덜대면서도 진우가 준비해준 음식이 제법 입맛에는 맞았던 것인지 인간마냥 그릇째로 들고 잘도 퍼먹는다.
덩치만 컸지. 이럴 때 보면 조금 귀엽기도?
하지만 그러한 반응도 잠시.
뿌득- 뿌드드득-
“오오! 이럴 수가! 주군이 준 음식! 진짜로 효과가 굉장한 것 같군! 이렇게 빠르게! 더 우람하게 자라는 건 난생처음이다!”
눈으로도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자라나고 있는 뮤린의 뿔.
그러나 그것이 음식에 의한 반응이 아니란 것쯤은 진우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
[드루이드의 특성,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가 활성화됩니다.]
사슴의 뿔, 녹용 또한 결국에는 자연과 관련된 것.
이쯤 되면 모르는 게 이상한 것 아니겠는가?
(남은 시간 86일 13시간 43분)
진우의 알파이자 오메가라 할 수 있는 특성, ‘자연이 그대를 돌보리라’.
덕분에 녹용을 얻을 수 있는 기간이 90일보다도 훨씬 더 빠르게, 더 품질 좋은 녀석으로 단축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