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화 세계수 편도 콜택시, 라타콜
“농사 쪽은 그대들에게 맡기도록 하겠다, 제군들.”
꾸왁! 꾸와아악!(놀이 시간이다!)
꺄아! 꺄아아아아!(놀이? 놀자!)
삐삐삐삐?(놀이? 먹는 거?)
진우의 말에 각자 응답하는 세 개의 소리와,
“진우 님을 위해서 힘내겠습니다.”
“푸흥, 난 늘어지게 약초밭에서 뒹굴거려야겠다.”
붕붕~(게으른 놈.)
이어서 들리는 또 다른 세 개의 목소리들.
각자 영역을 맡고 뿔뿔이 흩어지는 모습에 진우도 손을 그러쥔다.
“나도 놀고 있을 수만은 없지.”
나름 농장의 주인으로서 직원(?)들의 복지도 챙겨 줘야 하기에 수익 창출의 활로는 열 수 있는 대로 쭉쭉 여는 편이 좋다.
뭐, 지금도 기본이 되는 감자뿐 아니라 완전히 발아율을 갖춘 핑크 인시리움까지 있긴 하지만 도전이란 끝이 없다고들 하지 않던가?
“조심, 조심.”
다음 도전할 영역은 진우가 서울의 사울 VIP경매장까지 가서 75억 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구매한 식생인 ‘만드라고라’ 되시겠다.
세 갈래로 나누어진 보라빛 꽃과 더불어서 그 정 가운데에 위치한 주황색 영롱한 빛을 뽐내는 열매.
그러나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는 꽃과 열매가 아니다.
‘중요한 건 만드라고라가 직접 내주는 정기라고 했던가?’
당연한 말이지만 일반적인 방법.
펠기르브 왈, 야만인들이나 할 법한 행동으로는 죽어도 얻을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드라고라는 뽑히는 과정에서 비명을 내지르며 그 자리에서 절명해 버리니 정기고 뭐고 어떻게 받겠는가?
결국 중요한 것은 만드라고라를 죽이지 않고 잘 가꾸어 나가는 것.
예컨대, 식물 형태의 가축이라고 해야 할까?
‘그래도 가장 효율적으로 재취하려면 잔나비 일족이 있어야 하겠지만…….’
신비의 나비인 시오나 버섯 녹각족인 뮤린과 같이 혹시나 잔나비 종족도 따로 가축으로서 판매가 되나 싶어서 상점을 확인해 봤으나 결과는 안타깝게도 꽝이었다.
야생의 드루이드 상점에도, 신용 상점에도 존재하지 않는 내역.
그 이유는 불러낸 몰리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 잔나비 일족이요? 세계수의 끝자락에서 사는 고등 생물로 분류되고 있어요. 새끼 때부터 높은 힘과 지능을 갖추고 있기에 쉽게 볼 수는 없을걸요. 하나하나가 정예들이기도 하고, 탄생과 함께 드루이드가 되기도 하죠.
“구매는 힘들까?”
- 아무래도 상점에 자기 자신을 파는 경우는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하긴, 아무리 돈이 궁하더라도 진우 또한 자기 자신을 팔지는 않으니까.
- 무슨 일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그리 추천해 드리진 않아요. 잔나비 일족들은 성격이 지랄맞기로도 유명하거든요. 장난기도 심하고요.
“그, 그래?”
- 그래도 의리는 상당히 깊어서 한 번 친해지면 목숨을 걸고 등을 맡길 만한 호걸들이니 친해질 수만 있다면 나쁘진 않죠.
“어쨌든 정보는 고맙다.”
- 네!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다음에 또 찾아 주세요. 이상, 몰리였습니다!
여간해서는 사무적으로 말하는 몰리가 ‘지랄’이라고 표현할 정도이니 어느 정도일지 새삼 감이 잡힌다.
까탈스럽다는 뜻이 그런 뜻이었나.
그렇게 몰리를 떠나 보내고 아쉬운 대로 차선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후우, 진짜 최선책은 안 되려나?”
차선책도 나쁘진 않지만, 그리고 정기도 얻을 수야 있겠지만 등급의 하락이 몇 %도 아니고 100%로 발생한다고 펠기르브의 공략집에 적혀 있었다.
희귀와 유니크 등급.
한 단계의 차이지만 거기서 발생하는 수익과 옵션의 차이도 분명히 엄청날 거다.
“그래. 차선책도 나쁘진 않으니까.”
뭐, 꾸준히 희귀 등급의 정기를 생성해 주는 식물형 가축이 생긴다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펠기르브의 추가적인 말에 따르면 만드라고라의 경우 오랫동안 공생을 유지하다 보면 정기 외에도 전투적으로 힘을 보태 주는 경우가 발생한다고 한다.
이른바 전력의 추가라고 해야 할까?
물론 이곳은 시골 농가.
기습적인 게이트 발생이 아니고서야 전투가 발생할 일은 없겠지만.
“그럼 나도 일해 볼…….”
[어이 신참!]
그렇게 일을 나서려는데 목소리 하나가 진우를 멈춰 세운다.
꽤나 익숙한 교활한 웃음.
아니나 다를까? 누구인지 곧장 정체를 밝힌다.
[킬킬킬! 나야 나 체르!]
“아, 무슨 일이시죠? 혹시 약초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나요?”
물물교환 후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찾아오다니.
분명히 문제는 없었을 텐데?
[아니, 효과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어. 구매자도 효과 직방이라며 엄지 척 하더라니까.]
“그건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벌써 팔았다고? 참, 장사 수완도 좋다. 싶은 생각을 하던 찰나였다.
[흐음, 보아하니 잔나비 일족을 찾는 모양이던데. 내가 좀 도와줄까?]
“어? 잔나비 일족과 아는 사이신가요?”
[키힛! 나 체르님이야 체르! 그쪽 우두머리랑은 아주 오래전부터 거래 튼 사이지.]
이래서 인맥, 인맥 하는 건가?
새삼 드루이드 계에서도 느끼는 인맥의 중요성.
아니, 황금 고블린이니까 인맥人脈이라기보단 고맥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간에.
어떤 방법도 찾을 수 없을 때와는 달리 해결법을 찾게 되었다.
물론 귀중한 연줄을 공짜로 날름 먹을 정도로 진우도 경우가 없지는 않다.
“혹시 원하시는 게 있으실까요?”
지식도 돈을 주는 세상이다.
연줄이라고 돈이 되지 않을까?
공짜 싫어하는 사람 없다지만 너무 공짜를 밝히다가는 오히려 밉상이 되고 손해 보기 십상인 법.
헌데 그러한 태도가 체르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음음! 이번 신참은 확실히 자세부터가 마음에 든다니까. 좋아. 기분이다. 자리를 마련하는 것 정도야 어렵지 않으니 따로 수고비는 필요 없어.]
“정말 괜찮으세요?”
[그럼. 황금 고블린은 한 입으로 두말 안 해.]
무료로 성사된 만남의 장.
그러나 막상 문제는 다른 부분에 있었다.
“……저, 그런데 어떻게 만나면 되는 거죠?”
잔나비 일족.
단언컨대 지구에서는 들어 본 적 없는 몬스터다.
지구의 시골 농가에 있는 진우로서는 일단 세계수가 있는 해당 공간으로 들어서야만 하는 입장.
재미있게도 해답은 이미 진우에게 있었다.
[드루이드라면 세계수의 부름에 누구나 응답할 수 있지. 지금의 신참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을걸? 인내의 숲 1단계도 통과했으니 자격으로는 누구도 암말 못 할 거야.]
“그게 무슨…….”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 숨 쉬는 것을 설명할 수는 없잖아? 자연의 흐름을 읽어 보라고. 그럼 통로가 보일 거야. 물론 신참은 아직 ■■■을 다 이루지 못한 상태인지라 정신만 넘어올 테니 주변 안전은 잘 살펴 두고!]
“일단은 한번 해 보겠습니다.”
다행히 위험 없는 시골.
믿음직스러운 허수진과 시오에게 안전을 부탁한 뒤 집에 들어선 진우는 숨을 골랐다.
후우-
아니, 숨 쉬는 것처럼 하라니?
그게 말이 쉽지.
한 번에 될 턱이…….
“어?”
순간 눈앞에 보이는 녹빛의 흐름.
언제부터 이런 게 있었지? 싶은 심정으로 손을 가져다 댄 순간이었다.
[세계수의 부름에 응답하겠습니까, 드루이드여? YES / NO]
끔뻑이는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YES와 함께 눈앞의 환경.
화아아악-
지구와는 비교도 안 되는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진우를 맞이한다.
“여. 제대로 찾아왔구만, 신참.”
……이게 진짜 되네?
* * *
고블린은 보통 140cm정도로 초등학생 정도의 크기인 편이 많다.
물론 모든 고블린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홉 고블린 같은 특이 케이스도 있거니와,
당장에 진우가 사냥했던 고블린 부락의 보스몹인 고블린 백부장의 경우에는 2m나 되는 거구로 꽤나 흉흉한 기세를 풍기지 않았던가?
그러나 눈앞의 황금 고블린.
체르는 진우가 생각하던 이미지와는 정반대였다.
100cm도 안 될 것 같은, 거의 유치원생 수준의 작은 키.
진우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찾지도 못했을 거다.
“……저어, 체르 님?”
“키힛! 그래, 맞아 나야. 체르 님이다, 이 말씀!”
유독 더 작아서 그런 걸까?
얼핏 보면 고블린이라고는 생각되지도 않을 정도로 꽤나 귀염뽀짝하다.
뭐, 그래도 진우보다는 나이도 훨씬 윗줄일 테니까 귀엽다고 하는 건 실례겠지?
“생각했던 것보다 되게 멋있으시네요.”
“킬킬. 그야 나는 ‘황금’ 고블린이니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하는 법.
과하면 독이 되겠지만 3년의 짐꾼 생활을 해 온 진우에게 이 정도 눈칫밥은 당연했다.
무엇보다도 말하는 건 돈이 들지는 않으니까.
그나저나,
“그런데 여기서 세계수까지 대체 어떻게 가죠?”
몰리가 말한 정보에 의하면 세계수.
그중에서도 끝자락에서 서식 중인 고등 생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당장 눈에 보이는 세계수는 저 웅장한 크기만큼이나 보이지도 않는 끝자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저런 꼭대기까지 어느 세월에 올라가란 말인가?
한평생을 다 걸려도 올라가기 힘들 거리다.
진우에게 염력이 있다고 해도 거리에 한계가 있지.
끝도 보이지 않는 하늘을 향해 쏘다가는 장담하건대 마력이 먼저 동날 거다.
무엇보다도 이곳 환경은 엄연히 야생 속의 정글이다.
세계수 인근에 위치한 동식물이 무조건 우호적이라고 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체르가 있다 한들 결국 제 몸은 스스로 지켜야 하는 법이니까.
“아아,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 안 그래도 콜택시 불렀거든.”
“……여기에 택시도 있어요?”
정정하겠다.
야생 속에도 택시는 있단다.
“그럼. 세계수 편도 택시 성능이 얼마나 좋은데. 나도 마침 잔나비 우두머리 녀석한테 볼 일이 있었거든. 가는 김에 너도 데려가면 비용도 아낄 수 있고 일석이조 아니겠어? 큼큼. 그래서 말인데. 한 50억 정도는 있지?”
“5, 50억이요? 분명 아까는 수고비가 필요 없으시다고…….”
“아니, 그건 소개비고. 찾아가는 비용은 당연히 뿜빠이 해야지. 100억 원이나 하는 비용을 나 혼자 다 낼 수는 없잖아. 난 상인이지 자선사업가가 아니라고.”
“…….”
새삼 잊고 있던 사실.
상인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장사를 한다는 옛 어른의 말씀.
그것은 사람이건, 황금 고블린이건 상관없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법칙이라는 것을.
어쩐지 약초를 물물교환하자마자 바로 접근해 온 이유가 다 있었던 거다.
“그런데 저 스마트폰도 없는데요?”
“그건 걱정 마. 출금은 다 알아서 해 줄 거니까.”
“…….”
하긴 환전 서비스도, 배달도 알아서 척척 해 주는데 뭐가 걱정일까?
문제라면 택시가 언제 도착하는지에 대한 궁금증뿐.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택시는 이동 수단답게 그렇게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쿠구구구구구-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먼지구름.
화들짝 놀란 새들이 날아오르고, 앉아서 룰루랄라 고개를 흔들던 체르가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을 일으킨다.
“자, 슬슬 일어나자고. 택시 왔어.”
“……이게 택시라고요?”
“그럼 택시지. 뭐가 택시겠어?”
이곳 환경 특성상 기계가 아닐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나타난 생명체는 확실히 예상을 뛰어넘다 못해 기를 차게 만들었으니,
킁- 킁킁-
“뭐냐, 이 인간은? 비상식량이야? 가면서 나 주려고?”
“무슨 큰일 날 소리를 하고 있어! 새로운 신참 드루이드라고! 앞으로 중요 고객이 될 친구니까 허튼 생각하지 말고 잘 대해주기나 해.”
“오호라! 이 친구가 그 신참 녀석이렷다?”
햄스터? 다람쥐? 청설모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 전에 방금 나한테 비상식량……이라고 한 거 맞지? 어? 입맛도 다시네?
아무튼 간에 거진 10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의 다람쥐.
“반갑구나! 난 라타토스크! 세계수에서 누구보다도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니 언제든지 부르라고. 방법은 간단해. 숲속 어떤 나무라도 상관없어. ‘라타콜’이라고 적기만 하면 어디든지 찾아가 주지. 어때, 참 쉽지? 참고로 비용은 거리에 따라서 측정되니까 이건 참고해 두고.”
“아…… 가, 감사합니다.”
친절하게 부르는 방법까지 홍보하는 라타토스크.
이름하여 말하는 자이언트 다람쥐, 콜택시 되시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