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화 적반하장의 대명사
“그런데 신참. 세계수에는 가지 않아도 괜찮은 거냐? 설령 가지 않더라도 일단 부른 이상 비용은 제대로 받을 수밖에 없다.”
“그건 알고 있습니다.”
체르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콜택시.
리티토스크는 비싼 게 흠이긴 해도 가장 빠른 이동 수단답게 사람들을 전부 여유롭게 데려다준 뒤 농장에서 진우가 요리한 찐 감자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야금야금 잘도 갉아먹었다.
“역시 실력 있는 농부가 길러서 그런가? 곡물 맛이 아주 일품인데?”
자이언트 다람쥐에게도 호불호 없는 팔방미인의 매력을 지닌 찐 감자의 위력.
그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감자는 금세 게 눈 감추듯이 사라진다.
“킁킁, 이, 이거 너무 많이 먹었나?”
“아뇨, 작물이야 또 캐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먹을 거 가지고 뭐라고 하는 것만큼 치사한 게 또 있겠어요?”
“……신참! 마음가짐이 아주 잘 되어 먹었구나!”
어차피 씨앗 값도 들어가지 않는 증식하는 한무 씨감자로 수확해 낸 감자다.
무엇보다도 오늘 라타토스크가 해 준 일이 있는데, 감자 몇 개로 뭐라 하기엔 진우도 양심은 있는 법.
뭐, 정확히는…….
‘이 다람쥐.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해.’
그 거대했던 나무인 세계수를 하루도 걸리지 않고 꼭대기에 도달했던 정신 나간 속도.
물론 이동속도, 기동력이 강함의 전부라고 볼 수는 없지만 전투에 있어서 기민한 동작을 보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진우만 해도 1:1정도는 할만 했어도 2:1은 불안했었던 복면의 괴물들과의 전투를 라타토스크는 간단하게 처리해 버리지 않았던가?
아마 마음만 먹는다면 지구에 거대한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는 괴물.
허나,
킁, 킁킁-
“신참. 미안한데 감자 또 있나?”
“넵! 물론이죠! 혹시 과일주도 좋아하시나요?”
“오오! 대환영이야!”
그러한 자이언트 다람쥐도 결국에는 생명체이고 먹고 마셔야 살아남을 수 있는 법.
무한히 리필되는 감자와 진우가 손수 담근 과일주에 화색을 띤 라타토스크는 누가 다람쥐 아니랄까 봐.
양 볼 가득 볼주머니가 빵빵해지도록 감자와 과일주를 채워 넣으며 행복하게 웃어 보였다.
* * *
한 번 부르는데 자그마치 100억 원.
솔직한 말로 돈이 아무리 많아졌다 한들 부담될 수밖에 없다.
새삼 황금 상단을 이끄는 거상인 체르도 이용비를 반씩 나누자는 것이 이해가 되는 가격.
심지어 이번엔 100억보다도 더 비쌌다.
“미안하지만 신참. 나도 할인해 주고 싶지만 여기까지 넘어오면서 나도 꽤나 입은 손해가 알게 모르게 커 가지고 말이야?”
“괜찮습니다. 저도 장사하는 입장인데 그런 것도 이해 못 하겠습니까?”
“크흠, 그럼 고맙고.”
“참, 꼭 세계수가 아니더라도 어디든 갈 수 있는 걸까요?”
“응? 그거야 가능은 하지. 다만 손해일 수도 있을 텐데?”
“그건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한테는 그편이 이득이거든요.”
거리에 따라서 값이 상승하는 라타콜의 가격.
‘세계수의 숲’에서 불렀다면야 100억이겠지만 차원이 다른 지구에서 불러낸 결과 가격은 한 번 더 뻥튀기 되어서 150억이 되었다.
반영구적으로 사용 가능한 무구라던가, 영약이라면 모를까.
1회성 소모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이동에 150억을 태운다라.
낭비도 이런 낭비도 없을 터.
그러나 진우는 그다지 아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저, 정말로? 세계수의 숲에 잠시 방문할 수 있게 해준다고?”
“오오, 천둥산이라니. 정말 고향에 들릴 수 있단 말인가?”
진우야 언제든지 들릴 수 있는 곳이 ‘세계수의 숲’이라지만, 농장의 두 드워프.
그룩과 만트는 다르다.
니드호그에게 사로잡힌 영향 탓인지 스스로의 힘으로는 세계수의 숲으로 넘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나 라타토스크가 있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의 등 뒤에 달린 호텔에 투숙한 채 입장하면 문제없이 들어설 수 있다는 말씀.
덧붙여서 대지모신 왈, 니드호그의 저주에서도 약간이지만 덜 영향을 받기까지 했으니 나쁠 것이 전혀 없을 터.
“여기 왕복 비용까지 지불할 테니 충분히 휴양하고 있으시다가 언제든지 돌아와 주시면 됩니다.”
“그래. 내 꼭 돌아가도록 할 테니 걱정 말게나.”
“이 은혜는 잊지 않겠어.”
드워프에게도 소중한 고향의 존재.
이 정도면 늘 진우에게 값진 무구를 제작해 주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는 충분하지 않겠는가?
* * *
재빠른 발을 지닌 라타토스크 덕분에 일사천리로 해결된 습격자들의 문제.
유진이의 ‘태초의 깨우침’을 통해 드루이드를 양성하고, 드워프들을 고향으로 갈 수 있게 해 주는 등.
하루는커녕 반나절도 되지 않는 사이 동안 참 많은 일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입장.
허나 그것도 잠깐일 뿐.
“……아, 전성그룹!”
진우는 뒤늦게 한 가지 잊고 있던 인물들을 깨달았다.
연금 협회의 습격 속에서 가드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이 방관자를 고수하고 있을 때 유일하게 진우의 편을 들어주며 보조해 주었던 정수아의 존재.
아니나 다를까?
슬쩍 핸드폰을 확인해 보자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은 와 있는 상태다.
“아이고. 난리 났겠네, 이거.”
혹여나 전투 중에 파괴될 수 있을까 봐 따로 집에 떼어 놓았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터.
허나 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고 했던가?
우웅- 우우웅-
그러는 사이 한 번 더 울리는 핸드폰의 진동.
힐끗 확인해 보니 화면 액정에 떠오른 인물은 정수아였다.
- 어? 어어엇! 진우 씨! 몸! 몸은 괜찮으신 거예요?
어지간히도 걱정했는지 목소리에서 다급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하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잘못한 것은 습격자 측이라고는 해도 그 자리에 진우가 가게 된 계기는 어디까지나 전성그룹이 제안한 것이었으니까.
사실상 진우를 사지로 초청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격.
물론 그렇다고 해서 원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애초에 진우가 택한 결과물.
그리고 요정 찻집의 정보를 통해서 자신을 납치하려는 계획은 이미 진즉에 알고 있지 않았던가?
‘아마 파티에 가지 않았더라도 언젠가는 벌어졌을 일이지.’
유리 자이스와 정수아를 암살하기 위해서 한국에서도 대놓고 술수를 부렸는데 납치라고 못할 것 뭐 있겠는가?
글로벌 파티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한국에서 일이 벌어졌을 터.
결국 어떻게 보면 매도 먼저 맞는 게 나을 수도 있다는 소리인 셈.
“네, 물론이죠. 저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이제야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저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거든요.”
- 아니에요. 많은 도움이 되지 못한 저희가 죄송한걸요. 애초에 연금 협회에 가자고 요청한 것도 저희이기도 하고…….
그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미안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미안해하는 감정을 이용해서 이득을 취할까 싶은 나쁜 생각도 잠깐은 들었지만, 진우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도 양심은 있지.’
전성이 진우를 위해 계약 당시 굉장히 많은 부분을 양보해 주었다는 건 진우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적자를 볼지언정 진우의 브랜드 가치만을 보고 투자한 셈.
여기서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용기를 넘어선 만용일 터였다.
“설마 파티에서 대놓고 습격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몸 조심히 복귀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하, 하지만…….
“정말 괜찮습니다. 연금 협회 관련 문제도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으니 어서 와서 쉬도록 하시죠.”
-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로 고마워요.
“네.”
그것을 끝으로 종료가 된 통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연금 협회의 수장으로 취급되는 녀석이 라타토스크에게 먹혔으니 당분간은 조용해질 거다.
중국이 되었든, 연금 협회가 되었든 간에 양심이라는 게 있다면 파티 중에 습격 사건이 발생했으니 진우에게 미안해 할 수밖에 없을 터.
위잉~ 위에에엥~
“어? 진짜? 그렇다면 바로 가야겠네.”
때마침 진우에게로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다가오는 한 마리의 보석 꿀벌.
일벌 중에서도 제법 덩치가 큰.
군단장의 역할을 하고 있는 녀석이 말하기를, 꿀벌의 집에 꿀이 한가득 찼다고 한다. 진우는 곧장 룰루랄라 발걸음을 옮겼다.
“벌꿀주도 담가 보고, 가래떡 좀 만들어서 찍어 먹어 볼까? 아, 감자에 꿀 발라 먹는 것도 못 참지.”
벌꿀이라는 식재료 하나가 추가됨으로서 만들 수 있는 수많은 가공품.
그러나 진우는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연금 협회에 크나큰 피해를 입힌 범죄자, 김진우의 신병 인도를 요청한다.]
[소국이 대국에 대항해서 되겠나? 지금 당장 범죄자를 인도할 것.]
[외교적 큰 문제로 번지고 싶지 않다면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모습을 드러낸 연금 협회의 수장, 김진우에게 공격받아서 겨우 목숨만 살아남았다고 증언하고 있어…….]
중국.
이 나라의 양심은 진우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속이 좁은 것을 넘어서 방귀 뀐 놈이 성을 내는.
적반하장의 대명사라는 것을 말이다.
* * *
선동에 있어서 수적 우세만큼 유리한 게 또 없다.
14억 5천만 명. 세계 1위의 인구 수를 자랑하는 중국은 누가 봐도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당연하다는 듯 한국 정부를 향해 선포했다.
[김진우의 신병 인도를 서두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거의 협박에 가까운 요구.
한국과 중국.
둘 다 엄연히 아시아에서는 강대국이라지만 그 힘의 차이는 천지차이다.
중국이 마음만 먹는다면 한국이 받을 피해는 막대할 수밖에 없을 터.
과거 외교적으로 피해를 받은 사례도 몇 번 있었던 탓일까?
- 범죄자면 그냥 보내 버리는 게 맞지 않나? 어쨌든 나쁜 짓 했으니까 저러는 거 아님?
- 우리가 왜 저놈 하나 때문에 피해를 봐야 하는데?
- 그냥 인도하고 끝내.
중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사람들.
물론 모든 이들이 다 저런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 아직도 중국 말을 믿는 흑우들이 있네? 저 말을 믿음? 상식적으로 일개 개인이 연금 협회에 무슨 수로 큰 피해를 입히는데?
- 한 번 생각을 해 보셈. 드워프도 보유 중인 인재인데 뭐가 아쉬워서 연금 협회를 공격하겠냐고.
- 그건 맞지.
- 그리고 듣자 하니 글로벌 파티에 먼저 초청한 건 연금 협회 측이라던데. 초청하고 습격받았다는 건 무슨 말도 안 되는 개소리래?
- 아 ㄹㅇ ㅋㅋ만 치라고.
중국의 거짓말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
김치를 불매하던 때는 언제고, 이제는 김치가 자신의 것이라는 둥.
말 같지도 않은 모순을 당연하다시피 저지르는 족속들이다.
인구수라는 화력을 앞세운 채 자신들의 주장만을 펼치는 경우를 수없이 봐 왔는데 김진우가 연금 협회를 습격했다?
적어도 납득할 만한 이유라도 있어야 할 일.
한 편 넷상에서 사람들이 치고 박고 싸우는 동안 생애 처음으로 양봉을 통해 꿀을 따고 있던 진우는 난데없는 현 상황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양심이 진짜 뒤지다 못해 사라진 수준인데 이건?”
습격한 부분에 대해서 사과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진우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며 난리를 피우는 꼴이라니.
당시 목격자도 상당히 많았으나 이미 작업에 들어간 듯.
넷상에서는 진우에 대한 처벌 부분에 대한 요구만 가득하다.
“허 참…….”
이래서 요즘 세상을 문제없이 살아가려면 바디캠이라도 달아야 한다는 말이 있는 걸까? 싶은 것도 잠시.
넷상에 떠도는 내용 중 진우는 의아해진 내용이 있었다.
“이 녀석은 분명히 죽었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