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화 요정 인재 파밍
적의 적은 아군으로 활용하는, 중국의 내부 세력을 이용한 분열.
이런 방법쯤은 누구나 생각할 법했으나 정보의 부족함 때문에 쉽게 시도할 수 없는 방법이기도 했다.
솔직한 말로 한국 내부 문제도 모르는 마당에, 같은 아시아라고 해도 넓은 땅덩어리를 지닌 중국에 어떤 세력이 얼마나 있을지.
또 정부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지를 진우가 어떻게 알겠는가?
“이래서 정보전이 중요하다고들 하는 거겠지.”
사실상 요정 찻집.
모두 다 요정들이 모아온 정보들로 얻어 낸 수확들이다.
……뭐, 정보가 확실한 만큼 치른 비용도 적진 않지만, 어차피 돈이라는 건 쓰라고 있는 것 아니겠나?
“사용한 만큼 또 벌면 그만이야.”
자연의 순환.
아니, 자본의 순환은 계속되는 법.
흔히 정보의 역수입이라고 해야 할까?
요정들에게 구매한 정보들을 역으로 그룹들에게 판매하고 챙겨 가는 돈도 무시 못 할 지경!
어디 그뿐이겠는가?
명색이 직업이 농부인 진우다.
팜오리와 약초맨, 여왕꿀벌 등.
수많은 이들과 함께 수확해 낸 농작물을 팔아 번 돈도 적은 금액이 아니다.
툭 까놓고 말해서 이미 벌어들인 수익은 사용한 금액을 추월한 지 오래기도 했다.
“그래도 메인 디쉬를 놓칠 수야 있겠나.”
괴식가 할짝이의 영향이라고 해야 할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맛난 먹거리가 즐비할 때일수록 더더욱 참을 수 없는 법.
중국 정부와 연금 협회.
그리고 여러 그룹의 쿠데타 세력이 서로 정부를 먹으려고 투닥거리고 있는 상황 속.
진우가 할 일이 뭐냐고 묻는다면야 뻔하지 않겠는가?
[중국에 존재하는 게이트 리스트 심화 버전(상급 요정 돌츠)] - 구매 비용 25억 원
“이럴 때 빈집털이 안 하면 언제 해 보겠어?”
넓은 땅덩어리만큼이나 적지 않은 게이트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
국력의 척도가 곧 게이트의 질과 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된 만큼 진우는 일본 때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달달하게 챙겨 가고자 쉬지 않고 발을 놀렸다.
* * *
보통의 게이트.
한국도 그렇지만, 일전에 들렸던 일본과 같이 게이트의 내부에는 늘 자생하는 식물과 리젠되는 몬스터가 존재했다.
대부분의 식물들은 섭취했을 때 얻는 이점이 거의 없다시피 하나 폭발 화염초나 호롱 잎사귀와 같이 쓸 만한 식생은 안쪽 깊숙이 숨어 있다.
그나마 몬스터의 경우 직접 이동을 하다 보니 마주할 일이 많기야 했지만 헌터 생활.
거기에 덧붙여서 짐꾼 생활까지 해 온 진우에게도 지금 같은 광경은 난생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 거참 더럽게 황량하네. 여기가 정말 숲 맞아 인간?
- 아무리 봐도 사막 같은데?
“나도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거든?”
몬스터도, 평범한 식물도 거의 없다시피 한.
사막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황폐화된 게이트의 내부.
요정에게 구매했던 정보로 확인했을 때 이곳이 ‘숲’이라고 적혀 있던 것이 아니라면 사막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원인은 굳이 먼 곳으로까지 갈 필요도 없다.
“몬스터다!”
“죽여!”
나라마다 문화 차이가 있다는 것쯤이야 알고는 있다.
그런데 제아무리 무법 지대라고 해도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완전 개판도 이런 개판이 따로 없네.”
주변에는 몬스터를 계속해서 사냥하는 헌터들만 즐비한 상황.
과연 세계 1위 인구수를 찍은 게 아니라는 걸까?
또, 보는 눈이 많다고 해서 범죄 행위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야, 우리가 발견했다고!”
“먼저 사냥한 사람이 임자지. 이건 우리 것이거든?”
“안 그래도 수익이 안 나서 짜증 나는데. 너라도 죽여서 전리품을 챙겨 가야겠다.”
옆에서 대놓고 사람을 죽이려는 행동을 취해도 나 몰라라 하는 개인주의.
이 부분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의 게이트 내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긴 하지만, 적어도 보는 눈이 적을 때 저지르는 경우와는 달리 이건 뭐, 경우 없이 달려든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런 곳에서 척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무구를 착용하고 다녔다가는 시비 털리기 딱 좋을 일.
전설과 신화 등급의 무구들로만 풀 무장에 가깝게 착용했던 진우는 그야말로 최고의 먹잇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진우의 모습이 보였을 때의 경우다.
“이럴 줄 알고 투명 비늘 가루를 뿌려 두길 잘했지.”
나름의 선견지명이라고 해야 할까?
입장 때부터 나무 가면과 함께 철저하게 가려진 진우의 정체.
지금 중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인물이 다름 아닌 스스로라는 것 정도는 충분히 알고 있는 진우였다.
대놓고 얼굴 드러내고 다녔다가 귀찮은 일에 엮이고 싶지도 않고 말이다.
“일단 그래도 중국에 있는 숲 하나는 정복해 둬야지.”
그래도 세상에 능력자는 많다고.
시오의 투명 가루를 뿌린 진우의 기척을 눈치챌 수 있는 이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진우는 만약을 대비하여 숲의 정복을 위해 걸음을 서둘렀다.
아, 물론 그 전에…….
“식생은 못 참지.”
황폐화된 숲이라고 해도 세계수의 숲.
드루이드를 직업으로 얻고 수많은 숲을 거닐면서 깨달은 것은 숲의 생명력이란 인간의 생각보다 엄청나게 질기고 끈끈하다는 것이었다.
지금쯤 어딘가에서도 인간의 눈에 띄지 않았다 뿐이지 찬란한 군락지를 형성하고 있을 터.
문제라면 수많은 각성자의 시선에 띄지 않을 정도라면 진우도 찾기 힘들다는 점이겠으나 진우는 평범한 각성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몸.
아니,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드루이드들과도 차원이 다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사아아아-
진우의 눈에만 보이는 녹음의 무지개.
유물, 신성한 세계수의 뿌리를 통해 펼쳐지는 하나의 길.
그곳으로 향하자 아니나 다를까?
“이럴 줄 알았어. 이런 데가 노다지 아니면 뭐가 노다지겠어?”
황폐화된 입구 주변.
헌터들이 오가는 길목과는 사뭇 다른 녹음의 향을 가득 품고 있는 군락지들.
이제야 좀 숲 느낌이 난다고 해야 할까?
“음, 이건 식용으로도 쓸 만하고. 이 독성풀은 아직 사람들이 약용으로 쓸 수 있다는 건 모르겠지?”
시간 날 때마다 약초학 드루이드의 펠기르브 공략집을 틈틈이 봐 둔 덕분에 이제는 웬만한 약초에 대해서는 척하면 척할 수준에 오른 진우.
허나 군락지에 대해서 기쁨을 표하는 것도 잠깐의 여유일 뿐이다.
진우는 다가오는 기척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아직 투명 비늘 가루의 효과가 유지 중일 텐데?'
명백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고 다가오는 움직임.
그렇지만 모습을 드러낸 존재는 S등급의 각성자도, 굴린이나 불보 같은 네임드 몬스터도 아니다.
아니, 애초에 진우가 예상했던 개체 모두 다 아니었으니,
- 넌 뭐야? 인간이면서 숲이 어떻게 이 정도로 거부감없이 받아들이는 거야? 인간이 맞긴 한 거야?
한껏 성이 난 듯.
날갯짓하며 삿대질 중인 자그마한 생명체.
“요정이 왜 여기서 나와?”
게이트 내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인간도, 몬스터도 아닌.
진우도 꽤나 익숙한 요정이었다.
* * *
인간도 인종, 국가에 따라서 출신이 여러 곳으로 나뉘듯 요정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다.
해당 게이트 내 숲에서 자연적으로 탄생한 요정.
녀석은 처음부터 진우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 인간이 드루이드라고?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금 바깥의 숲 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온다고?
……물론 이해가 안 되는 소리를 하는 건 아니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직접 두 눈으로 보았던 개판 5분 전의 상황.
확실히 여기서 태어난 숲의 요정이 인간에 대한 감정이 좋다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 일이다.
근데 아무리 같은 인간.
아시아권이라고는 해도 진우는 엄연히 한국인이다.
그것도 드루이드를 직업으로 가지고 있는 몸.
요정인 녀석은 절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진우로서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보시다시피 드루이드 맞는데요. 증표라고는 뭣한데. 세계수한테도 인정받았습니다만.”
- 거짓말! 내가 인간의 거짓말을 한 두 번 본 줄 알아?
이거야 원.
브락시온이나 체르.
그 밖에도 세계수의 꼭대기에서 마주했던 수많은 종족의 반응을 통해 인간이 드루이드가 되는 경우는 지금까지 전무후무했으며, 자신이 최초였다는 것 정도는 짐작은 하고 있었다.
'이제 더 늘어났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놀라려고?'
허나 이제는 유진 공주님이 마음만 먹는다면야 언제든지 리스크 없이 드루이드로 각성시키는 것도 가능해진 상황.
그런데 아무리 진실을 보여 줘도 믿지를 않으니 진우로서는 억울할 수밖에.
따라서 진우는 왼손에 새겨진 유물의 표시를 요정에게 보여 주었다.
- 의지를 가지고 있는 세계수가 은혜를 갚은 존재에게만 내리는 귀중한 증표로서 전설 속 영물과 영혼을 소환하여 다룰 수 있는 드루이드가 됩니다. 세계수에 우호적인 관계에 있는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됩니다.
신성한 세계수의 가지에 박힌 설명처럼 세계수에 우호적인 관계.
예컨대 자연과 친밀하다면 진우를 적대하지 않게 만들어 주는 깨알 같은 유물 효과가 발동하기도 했다.
- 그러고 보니 너 땅의 기운이 뭐 그렇게 넘쳐흐르는 거야?
“대지모신께서 굽어보고 계셔서 그렇지 않을까요?”
- 마, 말도 안 돼! 그건 나도 없는 건데!
“그래도 저는 가지고 있죠.”
- 쳇……. 부럽다.
이게 뭐라고 참.
그래도 유물 덕분에 누리고 있는 혜택들을 생각해 보면 요정이 부러워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이다.
- 그런데 인간인 네가 왜 여기서 온 거야? 설마 내가 가꾼 정원을 착취하려고 온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 그럼 넘보지 말고 네 세상으로 돌아가. 나도 건드리지 않을 테니까.
지금까지 몰리를 비롯해 요정 찻집 출신의 요정들과 철저하게 돈이 오가는 비즈니스 관계로 지내 왔던 것과는 달리 눈앞의 녀석은 진우가 손대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모습을 보인다.
세계수와 대지모신의 인정을 받았다 한들 그건 그거고.
일단 진우의 종족이 인간인 것은 변함없으니 좋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모양.
물론 어느 부분에서는 요정의 생각이 맞기는 하다.
군락지를 처음부터 아예 못 봤다면 모를까.
보고도 그냥 돌아갈 인간이 세상천지에 어디 있겠는가?
“그래도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제가 농부라서 약초 재배라던가 이런 건 자신 있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지금의 정원을 더 풍요롭게 가꾸는 데 힘을 보태도 괜찮을까 해서요.”
- 하아? 지금 나한테 훈수질하는 거야? 100년도 겨우 살아가는 인간이? 너 몇 살이야!?
역시 요정.
엘프와 마찬가지로 겉모습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종족 중 하나.
한두 살 먹지는 않았을 것이라고는 예상했다만 이렇게 나올 줄이야.
뭐, 진우로서도 요정이 약초 재배나 농사에 해박하면 해박할수록 좋을 수밖에 없다.
그야 그렇지 않겠는가?
“그야 나이는 제가 더 적겠죠. 그래도 명색이 요정이신데 큰물로 가서 정원을 가꿔 보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 크, 큰물 정원이라니?
“말 그대로입니다. 제가 운영하고 있는 숲이 좀 많은데, 여기랑 같이 겸사겸사 관리 좀 해 보실 생각이 있나 해서 말이죠.”
- 그걸 내가 왜 해야 하는데?
“숲을 사랑하시는 줄 알았는데……. 혹시 아나요. 열심히 정원을 가꾸다 보면 세계수나 대지모신 님께서 굽어보실지 말입니다.”
- 세, 세계수와 대지모신 님께서 날 보신다고?
실력 있는 노예.
아니지, 인재는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진우였다.